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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145

쉬블림 포르트의 분노 - 이스탄불의 대응 지난 '외계인은 사각형으로 싸운다 - 피라미드 전투' 편에서 언급했던 쇼브라킷(Chobrakit 또는 Shubrakhit) 전투 전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의 보이에르(Pierre Boyer) 장군은 마멜룩 군의 동정을 살피러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강변의 마을을 모두 수색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마을 중 몇몇 곳에서.. 2011. 6. 26.
문명의 충돌 - 1798년 10월 카이로 폭동 무자비한 영국 해군에게 함대를 탈탈 털어먹힌 나폴레옹과 그의 '동방군'은 물론 크게 당황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보다는 부하 장교들과 일반 병사들의 당혹스러움이 더 컸습니다. 인도까지 사정권에 두었던 나폴레옹과는 달리, 이들은 그저 이집트를 후딱 털어먹고 금은보화를 잔뜩 챙겨서 몇달 안.. 2011. 6. 19.
빵이냐 콩이냐, 이집트에서의 고뇌 지난 편에 피라미드 전투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아부키르만 해전이 나올 것을 기대하셨을 (피에 굶주린) 여러분... 오늘은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아니고 사람이 먹고 사는 이야기입니다. 피라미드 전투는 사실 나폴레옹과 그 일당들에게 별로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프랑스군이 대단했다거.. 2011. 5. 2.
외계인은 사각형으로 싸운다 - 피라미드 전투 여태까지 전투 장면이 거의 없는 전쟁사를 보시느라 다소 지루하셨을 여러분께서 기다리시던 피라미드 전투에 드디어 도달했습니다. (오래도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꼭 죽어야 재미가 있으신 건 설마 아니시겠지요 ? 그림은 Louis Lejeune 이 그린 피라미드 전투입니다.) 나폴레옹.. 2011. 4. 24.
알렉산드리아 - 기대만큼 큰 실망 드디어 1798년 7월 1일, 프랑스 함대는 알렉산드리아 외항에 도착합니다. BC 332년, 그러니까 약 2100년 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한, 책에서나 읽던 전설의 도시에 도착한 나폴레옹의 심정은 정말 두근두근 쿵쿵이었을 것입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출발했다가, 말타를 떠난 다음에야 이집트.. 2011. 4. 18.
말타에서 생긴 일 지난 편에서 제가 나폴레옹의 말타 정복기는 다루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만, 그 사이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말타 기사단은 원래 이름이 병원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으로서, 그 기원은 11세기 경 십자군 원정 시작 이전에 칼리프의 허락을 얻어 예루살렘에 설립된 병원에 두고 있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는.. 2011. 4. 8.
지중해를 가로질러 이집트로 향하는 낭만적 항해...? 지난 편에서는 나폴레옹의 함대가 어떻게 넬슨의 요격을 용케 피해 알렉산드리아에 입항했는지를 영국 해군 입장에서 보셨습니다. 넬슨이 나폴레옹의 신기루를 쫓아 지중해를 갈팡질팡하는 동안, 나폴레옹과 그의 '동방군(the Army of East)'의 지중해 항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먼저, 툴롱에서 출발.. 2011. 4. 3.
넬슨과의 숨바꼭질 지난 치기어린 계획, 그러나 완벽한 출항 편에는 프랑스인들치고는 정말 놀라운 기밀 유지로 인해, 영국 해군이 나폴레옹 원정군의 목적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5월 20일 프랑스 함대가 툴롱을 출항하는 것까지 보셨습니다. 여기서 문맥을 유심히 살펴 보시면,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함대의 출항을 전.. 2011. 3. 25.
나폴레옹, 이집트를 침공하다 - 치기어린 계획, 그러나 완벽한 출항 이제 드디어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갑니다. 그러나 가기 전에, 대체 왜 뜬금없이 이집트에 가게 된 것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유럽에서 유럽국가들과 싸우던 나폴레옹이 왜 갑자기 아무런 관계도 없던 이집트를 침공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간단합니다. 영국 때문이었습니다. .. 2011. 3. 18.
프롤로그 - 나폴레옹, 이집트를 침공하다 마멜룩 이집트의 초간단 역사 1240 아이유브 왕조의 아스-살리 아이유브 술탄 등극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다시 정복한 살라딘의 성이 아이유브였습니다.) 1249 프랑스 루이 9세 7차 십자군을 이끌고 이집트 다미에타에 상륙 (다미에타를 눈 앞에 둔 루이 9세) 1249 아스-알리 아이유.. 2011. 3. 11.
캄포 포르미오 - 나폴레옹의 우승컵 지난 편에서, 드디어 만토바 요새를 함락시킨 나폴레옹이 드디어 비엔나 침공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1979년 2월 만토바 함락 이후에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방면군은 사실 비엔나 침공을 계획하기에는 너무 약했습니다. 증원을 받았지만 그래도 5만명 정도였으니까요. 하지.. 2011. 2. 27.
나폴레옹의 교과서 - 리볼리 전투 지난 '아르콜레의 용자' 편에서 보셨듯이, 비록 나폴레옹이 알빈치의 제3차 만토바 구원 작전을 물리치기는 했습니다만, 이는 정말 아슬아슬한 승리였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의 인적 피해가 결정적이지도 않았고, 프랑스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물론, 오스트리아군도 그 사실을 알.. 2011.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