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폴레옹의 시대

트라팔가 해전 (2) - Cannon vs. Musket

by nasica-old 2012. 10. 20.
반응형

지난 편에서는 연합 함대의 전열을 관통하면서 빌뇌브의 기함 뷔생토르의 함미에 통쾌한 종사(rake)를 퍼붓고 치고 나오는 넬슨의 빅토리 앞에, 생각치도 않게 프랑스 해군의 넵튠(Neptune)이 기다리고 있다가 역으로 빅토리에게 종사를 퍼붓는 장면까지를 보셨습니다.  넬슨의 운명은 여기까지였을까요 ?


먼저 넵튠이 왜 이 자리에 있었는지를 보시지요.  넵튠의 원래 위치는 기함 뷔생토르의 바로 후방이었습니다.  넵튠은 80문짜리 3급 전함으로서, 프랑스 전함 중에서는 가장 탄탄한 전력을 갖춘 배였기 때문에, 일단 전투가 개시되면 적의 공격이 집중될 것이 뻔했던 기함 뷔생토르의 후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물론 산타아나나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같은 거함들이 있긴 했습니다만, 프랑스 총사령관의 함미를 못미더운 동맹인 스페인놈들에게 맡길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넵튠의 뒤를 지켜야 했던 스페인의 74문 전함 산 후스토 (San Justo)가 전투 시작 전에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바람에 떠밀려 항로를 자꾸 전방 우측으로 이탈하면서 넵튠의 항로까지 방해하며 밀어냈습니다.  이는 항행성이 떨어지는 선박이나 조함 능력(seamship)이 미숙한 선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일로서, 이를 두고 바람에 떠밀린다 (drift to leeward)라고 표현합니다. 




(범선은 항상 바람을 뒤에 안고 갈 수만은 없고,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타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바람 반대 방향으로 자꾸 밀려 가는 것은 범선으로서 최악의 성질이었습니다.  특히 바람이 해안이나 암초를 향해서 불어가는데 배가 자꾸 drift to leeward 한다면 선장으로서는 정말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 되겠지요.)



넵튠의 함장인 메스트랄(Esprit-Tranquille Maistral)은 산 후스토에게 제자리를 지키라고 신호했지만, 산 후스토의 함장 가르스통(Francisco Javier Garston)도 미치고 환장할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항해를 거의 해보지 못한 해군인 자신의 부하 수병들이 너무나 미숙했던 것입니다.  아마 영국 해군 같았으면 함대 내의 다른 전함들에게 부끄러워서 접시물에 코를 박고 죽고 싶었을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뭐 괜찮았습니다.  연합 함대는 전체가 다 미숙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창피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소동 속에서 넵튠과 산 후스토, 거기에다 산 후스토를 뒤따르던 64문 짜리 스페인 전함 산 레안드로(San Leandro)까지 함께 바람에 떠밀려 원래 위치보다 약간 전방, 그리고 바람 반대 방향 쪽으로 떠밀려 전열을 이탈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기함 뷔생토르의 후미가 텅 비게 되었습니다.  이는 함대 결전을 앞두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 간격을 메꾸고자 원래 훨씬 후방에 위치해야 했던 르두터블(Redoubtable)이 서둘러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이 르두터블 호의 함장은 루카(Jean Jacques Etienne Lucas)로서, 아마도 전체 연합 함대 내에서 가장 유능한 함장이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나중에 보시겠습니다만, 결국 산 후스토 선원들의 미숙함이 나비 효과에 의해 결국 넬슨의 죽음을 불러왔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빅토리가 빌뇌브 연합함대의 전열을 뚫고 나오는 순간의 각 전함들의 움직입니다.  붉은색의 영국 함대에도 넵튠이 있고, 파란색의 연합함대에도 넵튠이 있지요 ?  말도 마십시요.  저건 프랑스 넵튠인데, 스페인 함대에도 넵튠(Neptuno)이 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영국 함대와 프랑스 함대 모두 각각 스위프트슈어(Swiftsure)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스위프트슈어는 아부키르 해전에 참전했던 바로 그 영국 해군의 스위프트슈어가 나중에 프랑스 해군에 나포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빅토리를 넵튠에게 종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넬슨의 귀에는 분명히 우지끈 뚝딱 하고 빅토리가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빅토리의 피해는 비교적 적었습니다.   앞돛대(foremast)와 함수 사장(bowsprit) 및 사형범(spritsail, 스프릿슬) 활대에 큰 손상을 입었을 뿐, 정작 함체에는 명중탄이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







(위의 그림이 함수사장 bowsprit 을 자세히 보여주는 그림이고, 아래 사진에서 함수사장에 걸린 가로 활대가 사형범 spritsail 입니다.  영국은 정말 해양 국가라서, 항해 용어가 언어 자체에 확고히 녹아있는 것에 비해, 우리 말에는 전혀 없는 용어들을 억지로 번역을 하자니 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단어가 많습니다.  사형범이라니!!)



여기서 다시 함체를 쏘라고 훈련받은 영국 해군과, 돛대 및 삭구를 쏘라고 훈련받은 프랑스-스페인 해군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간단히 말해서 좀더 낮게 쏘느냐 높게 쏘느냐의 차이인데, 어느쪽이 더 옳은 교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종사 위치에서는 낮게 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긴 당시 넵튠의 장교들이나 수병들에게 대체 왜 그런 상황에서까지 돛대를 노렸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왜 그렇게 허무하게 종사 기회를 날려먹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이때 넵튠의 삽질 포격에 대해서는 영국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해군의 함포 격발 장치의 차이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영국 해군에서는 1745년부터 함포의 격발 장치를 조금씩 부싯돌 방식, 그러니까 플린트락(flintlock) 방식으로 바꿔나가고 있었습니다.  기존에는 긴 막대끝에 천천히 타는 도화선 (slowmatch)를 붙여 놓은 화승막대 (linstock)을 직접 대포의 점화구에 갖다대는 방식을 썼었습니다.  트라팔가 해전 당시 프랑스-스페인 해군은 여전히 그 화승막대 방식을 쓰고 있었고, 영국 해군도 모두 플린트락 방식으로 교체해놓은 것은 아니었지요. 




(저 플린트락은 부착식입니다.  평소에는 대포의 점화구에서 떼어놓았다가, 전투 준비가 명령되면 비로소 부착되었습니다.)



플린트락 방식이 화승막대 방식보다 더 좋은 점이 있냐고요 ?  발사 속도나 신뢰성 면에서는 특별히 없었습니다.  화승막대, 즉 린스톡 방식은 대포의 점화구(touchhole)에 화약가루를 넣은 갈대 줄기를 꽂아놓고 있다가 (뇌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린스톡의 도화선으로 직접 불을 붙이면 점화구의 1차 폭발에서 발생한 화염이 대포 내부의 장약실로 번져나가 2차 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부싯돌, 즉 플린트락 방식은 똑같은 점화구에 부싯돌 격발 장치를 덧댄 것에 불과했습니다.  먼저 부싯돌을 스프링의 힘으로 내리쳐 불꽃을 일으키고, 이 불꽃이 점화구의 뇌관 화약에 1차 폭발을,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장약실에 2차 폭발을 일으키니까, 사실 똑같은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화선은 확실히 폭발을 일으키는 것에 비해 부싯돌은 항상 점화를 일으키지는 못했으니까, 신뢰성 부분에서 보면 린스톡 방식이 훨씬 좋았습니다.   통상 품질 좋은 부싯돌은 통상 30~50회 정도 격발이 가능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격발을 했는데 부싯돌이 닳아서 포격을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이때문에 플린트락이 갖춰진 함포 옆에도 언제든 플린트락을 떼어내고 전통적인 린스톡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린스톡과 불붙은 화승을 준비해두었습니다.



(뭐하러 저렇게 거추장스럽고 비싼 플린트락을 쓰지요 ?  그냥 이렇게 화승막대 linstock을 쓰면 되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영국 해군이 비싼 돈을 들여 대포 점화구에 플린트락을 설치한 것은 영란은행에 돈이 넘쳐나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발사 속도나 신뢰성은 그렇다치고, 조준의 정확성에 있어서 플린트락이 엄청난 이점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포는 6~12명 정도가 한팀을 이루었는데, 각자 역할이 있었습니다만, 조준 및 격발은 대포 조장 (gun captain)이 직접 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발포 반동이었습니다.  당시 대포는 아무런 스프링 장치가 없었으므로, 뉴튼의 작용 반작용 법칙에 의해 대포알이 적함에 날아가는 힘만큼, 대포도 뒤로 격렬하게 밀려나왔습니다.  물론 당시 전함에서 이런 대포들은 적정한 거리까지만 뒤로 밀려나도록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뒤로 밀려나오는 대포에 부딪히거나 발을 밟혀서 큰 부상을 입는 경우는 매우 흔했습니다.  린스톡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발포 반동 때문에 조준과 격발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사람의 신체 구조상, 눈으로 대포의 가늠자와 목표물을 조준한 상태에서 대포 반동이 미치지 않는 아주 먼 거리 뒤에 서서 긴 화승막대를 손에 들고 정확하게 도화선을 점화구에 닿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으로 대포 가늠자와 목표물과 도화선의 끝부분과 점화구를 모두 동시에 볼 수도 없었고, 또 먼 안전거리 밖에 있는 점화구를 긴 화승막대로 닿게 하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대포 조장이 대포 뒤에서 조준을 하다가 손으로 신호를 보내면, 대포 옆에서 그 신호를 보고 있던 수병이 화승막대, 즉 린스톡을 점화구에 닿게 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저렇게조준은 조준대로 해놓고 화승막대로 점화하는 것은조금 뒤에 다른 사람이 한다면 좌우로 요동치는 전함에서 제대로 명중탄을 내는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나저나 저 그림은 당시 수병들을 몹시 미화하고 있네요... 모두들 장교복을 입고 있어요 !)



이 방식은 지상전에서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대포는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바다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선박이 앞뒤로 요동치는 것을 pitch라고 하고, 좌우로 요동치는 것을 roll이라고 하는데, 당시 측면에 붙어있던 함포들은 이 roll, 즉 좌우 요동에 따라 조준한 것보다 위로 날아가기도 하고 밑으로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전함들이라고 해봐야 고작 2천~3천톤 급이었는데, 이런 배들은 대양에서는 끊임없는 좌우 요동(roll)에 시달렸습니다.  한마디로, 정확한 순간에 격발을 해야 좌우 요동에 따라 대포알이 하늘 위로 날아갈지 바다 물에 그냥 처박힐지가 결정되었는데, 린스톡 방식은 이 타이밍을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온 것이 플린트락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대포 조장이 안전거리 뒤에서 조준을 하다가 배의 좌우 요동이 딱 맞는 순간에 끈 (lanyard)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발포가 되었습니다.  조준과 격발이 비로소 일치화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Roll이란 저렇게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말합니다.  저럴 때 상부돛대의 망루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면 정말 멀미작살이겠는데요 ?)



그 이유가 돛대를 노리라는 교리때문인지 플린트락이 없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넵튠의 회심의 종사 포격은 빅토리의 돛대들에 손상을 입힌 정도로 끝나버렸습니다.  넵튠은 빅토리로부터 보복 포격을 당할까 두려워 돛을 접고 후미로 빠져버렸습니다.  정말 도움이 안되는 배였지요.  이때 뷔생토르의 빌뇌브는 빅토리가 자신을 노리고 다가 오고 있으며, 곧 영국 수병들이 승선 백병전(boarding)을 해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으로부터 하사받은 독수리 지휘봉을 손에 쥐고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적함이 옆에 닿으면 난 이걸 적함에 던져 넣을 것이다 !  너희들은 이걸 적함에서 되찾아와야 한다 !"  그러나 그건 빌뇌브의 오버였지요.  빅토리는 사실상 표류 상태에 들어간 뷔생토르를 내버려두고, 뷔생토르 앞 쪽의 거대 전함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노리고 좌회전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독수리 깃봉입니다.  이건 제 105 전열 연대의 것입니다만, 나폴레옹은 육군말고 해군 함정에도 이런 것을 나눠준 모양입니다 ??  원래 해군에는 저런 전통이 없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뷔생토르 뒤에는 프랑스 전함들 중 가장 뛰어난 함장인 루카를 태운 르두터블이 있었고, 르두터블은 맹렬한 속도로 빅토리를 노리고 다가왔습니다.  빅토리가 좌회전하는 동안, 르두터블은 빅토리의 우현에 다가와 붙었습니다.  빅토리는 우현으로 일제 사격을 날려 르두터블에게 크게 한방을 먹여주었고, 당연히 반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르두터블은 반격하지 않고 그대로 빅토리와 옆구리를 부딪히며 맞붙었습니다.  3층 포갑판을 갖춘 1급함인 빅토리는 르두터블 같은 2층 포갑판의 74문짜리 3급함과 툭탁거릴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도적으로 바디 체크를 구사하며 빅토리에게 도전하는 르두터블을 빅토리는 재빨리 털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왼쪽이 빅토리, 오른쪽이 르두터블입니다.  빅토리로서는 애초에 1대1로 붙기가 창피한 꼬맹이였지요.)



빅토리가 아무리 열심히 포격을 퍼부으며 들러붙은 르두터블을 떼어내려 해도, 희한하게도 르두터블은 포문조차 열지 않았습니다.  르두터블의 이상한 점은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돛대와 활대, 그리고 쉬라우드(shroud) 등의 삭구에 마치 거미줄에 거미들이 달라붙어 있듯 새카맣게 수병들이 달라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넬슨, 그리고 빅토리의 함장인 하디 (Thomas Hardy)가 의아하게 르두터블의 돛대를 올려다보는 동안,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그야말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르두터블의 망루(fighting top)은 물론, 삭구와 활대에 매달려 있던 프랑스 수병들이 빅토리의 노출된 갑판에 머스켓 총탄을 우박처럼 퍼부어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물론 르두터블의 갑판에서도 프랑스제 탄환이 빗발처럼 날아들었고, 덤으로 희미한 연기를 뿜는 수류탄들이 날아들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빅토리의 후방 돛대 망루에서 내려다 본 전투 모습입니다.)



원래 1급함인 빅토리는 대포 수도 100문으로서 74문짜리 르두터블을 압도했으나, 더 중요한 것은 수병의 정원 숫자도 850명으로서, 정원이 550명 정도였던 르두터블이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해전의 대부분은 시작은 포격전으로 시작해도, 해전의 로망인 권총과 커틀라스(cutlass, 해전용 군도)를 휘두르며 적함에 뛰어드는 육탄돌격 (boarding)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거든요.  이런 육탄전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머리수자가 가장 중요했으므로, 3급함 한척이 1급함을 1대1로 상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전함들이 항상 그랬듯이, 빅토리호도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출항했으므로 실제 탑승 수병은 821명이었던 것에 반해, 르두터블은 정원을 훨씬 초과하는 643명을 싣고 있었습니다.  거의 100명 정도되는 초과 인원은 백병전 경험이 미숙한 선원들이 아니라, 100% 전투병인 머스켓 소총병들이었습니다.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애초에 빌뇌브의 연합 함대가 출항한 목적은 2~3천명의 병력을 싣고 지중해의 나폴리로 향하는 것이었거든요.  그 지상군 병력들이 르두터블에도 나눠 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양반이 루카 함장입니다.)



르두터블의 함장 루카는 유능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애초에 카디즈에서 하는 일 없이 갇혀 있을 때부터, 바다에 나가 영국 함대와 포격전을 벌일 경우, 대포 한방 제대로 쏘아본 적 없는 르두터블의 선원들은 앵글로 색슨들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상전에서도, 비록 머스켓 소총의 시대이긴 하지만 전투는 사격으로 시작하여 끝은 총검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해전에서도 시작은 포격으로 하더라도 승부는 소총과 커틀라스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카디즈 항구에서부터, 쓸데없이 함포 훈련한답시고 차가운 빈 대포를 괜히 굴렸다 당겼다 하는 훈련은 때려치우고, 자신의 수병들에게 사격 훈련과 백병전 훈련을 열심히 시켰다고 합니다.  32파운드 짜리 캐논볼이든, 0.69인치짜리 머스켓 볼이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거든요.  그리고 이날 10월 21일, 현실주의자이자 혁신적인 사고 방식도 보유하고 있던 루카 함장의 눈에, 뷔생토르에게 종사를 퍼붓고나서 다음 타겟으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노리고 좌회전하는 빅토리의 육중한 함체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루카 함장은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정확히 깨닫습니다.






(해전이라고 꼭 대포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총과 칼로도 얼마든지 승리를 낚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아예 상부 포갑판의 포문을 아예 닫아버리고, 원래 거기서 대포를 조작해야 하는 수병들을 모조리 갑판으로 불러모읍니다.  그들에게 머스켓 소총, 커틀라스, 파이크(해전용 창) 등을 주어 무장시킨 뒤, 특히 사격에 능한 병사들은 돛대 망루 (fightingtop)과 삭구, 활대에 올려보내 재주껏 몸을 고정시키게 합니다.  이때문에, 빅토리의 옆구리에 르두터블이 와서 쿵하고 부딪혔을 때 르두터블의 삭구에는 마치 거미줄에 거미들이 잔뜩 붙어있는 것처럼 병사들이 빽빽히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20~30m의 근거리에 빅토리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맹렬한 총격을 퍼부어댔습니다.

이런 형태의 공격은 빅토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습니다.  원래 큰 1급함과 작은 3급함의 전투에서는 1급함이 무조건 유리했습니다.  대포가 더 많다는 점 외에, 이렇게 머스켓 소총으로 소화기 총격전을 벌일 때도 1급함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일단 병력수가 더 많다는 점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높이의 차이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즉, 1급함인 빅토리 호의 상갑판이 훨씬 높았으므로, 빅토리의 수병들은 두꺼운 뱃전과, 그리고 전투 준비의 일환으로서 뱃전 위에 묶어놓는 두꺼운 해먹뭉치(hammock net) 뒤에 몸을 숨긴 채로 3급함인 르두터블의 노출된 갑판을 내려다보며 사격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성벽 위의 수비군이 저 아래의 공격군을 내려다보며 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지요.  하지만 함포에서 병력을 모조리 철수시켜 상갑판과 돛대에 소화기로 무장한 병력을 올려보내니, 당장 총격전을 벌이는 병사의 수에 있어서는 르두터블이 빅토리를 압도했습니다.  게다가 높이에서도, 3급함인 르두터블이 1급함인 빅토리를 제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르두터블의 수병들이 높은 망루와 돛대에서 내려다보며 쏘아댔기 때문에, 빅토리의 영국 수병들은 숨을 곳도 없이 완전 노출된 채로 사격을 뒤집어 써야 했던 것입니다.




(저렇게 뱃전에 묶어놓은 하얀 뭉치들은 수병들이 밤에 자는 해먹들입니다.  전투시에는 뱃전에 걸어 방탄벽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빅토리도 망루나 삭구에 머스켓 소총병들을 배치하면 되지 않냐고요 ?  여기에는 또 약간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넬슨 제독은 기묘한 지침을 내려 함장들, 특히 각 전함에 소속된 해병 대위 (marine captain)들의 기분을 팍 상하게 했었습니다.  망루에 소총병을 배치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머스켓 소총의 화약마개 (wad)가 돛에 화재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전에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만, 화약마개, 즉 왜드(wad)라는 것이 뭔지 보시지요.  당시 머스켓의 탄약은 짧고 두툼한 담배 모양의 기름먹인 종이포에 화약을 넣고, 그 끝에 둥근 납탄이 함께 종이에 싸여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장탄할 때 종이로 된 탄약포(cartridge) 끝에 달린 납탄(musket ball)을 앞니로 물어 뜯어내고, 뇌관용으로 부싯돌 발화장치(priming pan)에 넣을 약간의 화약을 손가락으로 집어낸 나머지 화약을 총구에 부어 넣은 후, 빈 종이 탄약포 껍질을 총구에 구겨 넣고, 이어서 입에 든 납탄을 총구에 뱉어 넣고, 장전봉으로 납탄과 탄약포 껍질을 약실 깊숙히 밀어넣었습니다. 





이때 종이로 된 빈 탄약포 껍질은 왜 총구 속에 함께 밀어넣었을까요 ?  당시의 기술적 한계, 그리고 전장식 소총이라는 특성 때문에, 머스켓 탄환은 머스켓 소총 구경보다 꽤 작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의 힘으로 쉽고 빠르게 밀어넣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탄환 직경과 총강 구경이 차이가 나면 (이를 유극 windage 라고 합니다) 발포할 때 당연히 그 틈으로 화약의 폭발 가스의 상당 부분이 새어나가 버려 납탄에 충분한 파괴력이 실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그 유극을 매꾸기 위해 화약마개, 즉 왜드(wad)로서 빈 종이 탄약포 껍질을 밀어넣었던 것입니다.  비록 이 껍질은 종이로 된 것이긴 하지만, 화약이 폭발할 때도 순간적으로 다 타버리지 않고 그 폭발 가스에 떠밀려 나오며 탄환을 힘차게 밀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대포에도 이런 화약마개를 당연히 썼습니다.  물론 대포 장약은 너무 커서 종이 탄약포에 싸여 있지 않았으므로, 지푸라기나 삼베찌꺼기 같은 섬유질을 뭉쳐서 만든 두껍고 둥근 마개를 썼습니다.




(대포는 앞뒤로 wad를 넣나 봅니다 ?)



그런데 방아쇠를 당기면 이 화약마개는 어디로 가나요 ?  이건 종이로 된 물건이므로 무게가 가벼워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쏜 병사의 전방 3~4m 정도에 떨어졌습니다.  불이 붙은 상태였을까요 ?  예, 당연히 불이 붙은 상태인 경우가 많긴 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었을까요 ?  예,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늦가을 마른 풀밭에 전투가 벌어지면, 이 불붙은 화약마개로 인해 작은 들불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육군에서야 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문제는 해군인데, 당시 해군은 화재를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배 전체가 나무로 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전투 준비 중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취사실 난로의 불씨를 꺼버리는 것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돛대 위 망루에서 머스켓 소총을 쏠 경우, 그 붙붙은 화약 마개가 돛에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았을까요 ?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  당연히 저보다야 넬슨 제독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 !!!  당시 시대 사람들이 쓰던 일종의 라이터같은 장치로, 틴더박스(tinderbox, 부시깃 상자)라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이 속에는 부싯돌 및 그것과 부딪힐 강철, 그리고 부시깃이 들어있었는데, 그 부시깃으로는 지푸라기같은 것도 쓰였지만 얇은 아마포, 즉 리넨 조각이 들어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돛도 (두껍긴 하지만) 아마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넬슨 제독께서, 망루에서 머스켓 소총을 쏘면 돛에 불이 붙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신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Tinderbox의 모습과 내용물입니다.  물론 신사들의 물건이지요.  가난뱅이들은 그냥 주머니에다...)



하지만 당시 해전에서 망루에 소총병을 올려두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일단 그 명칭 자체가 fightingtop이거든요.  여기에 올라 앉아 적함의 갑판을 내려다 보며 쏘면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 망루 바닥은 두꺼운 나무로 되어 있었으므로, 적함 갑판의 병사들이 이쪽을 올려다보며 소총을 쏘아도, 머스켓 소총탄이 이 두꺼운 목재를 뚫지는 못했으므로 장갑판 역할도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여기에 작은 선회포 (swivelgun)을 장치해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부 망루, 또는 fightingtop이라고 불리는 발판대입니다.)




(이렇게 전투시에는 망루 위에 올라가서 싸우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이것이 swivel gun입니다.  보통 뱃전에 장착했지요.)



여기서 산탄(canister)을 적 갑판에 쏘아대면 효과 만점이었지요.  그렇다면 실제로 이렇게 망루에서 떨어지는 붙붙은 화약마개 때문에 돛에 불이 붙은 경우가 있었을까요 ?  전혀 없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는데, 최소한 잘 알려진 사례는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한 것이, 보통 전투가 벌어질 때의 기본적인 돛 구성은 하부 돛 (main sail)은 걷어서 묶어놓고, 중간 돛 (top sail)만, 혹은 거기에 상부 돛 (topgallant sail)만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저 분홍색 하부돛 (mainsail)은 걷어들인 상태로 전투에 돌입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투 중 망루 밑에는 원래 돛이 없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간혹 중간 돛 위의 더 높은 망루에서도 사격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거센 바닷바람 속에 눅눅해진 돛에 그렇게 쉽게 불이 붙지 않았는지, 혹은 불이 붙어도 선원들이 황급히 돛을 잘라내어 던져 버렸는지, 아무튼 주요 전투 중 망루에서 떨어진 화약마개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1805년 10월 21일 당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감히 넬슨 제독 앞에서 자기가 해전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주장할 수 있었겠습니까 ?  덕분에 빅토리를 비롯한 전체 영국 함대는 망루에 전혀 머스켓 소총수를 올려두지 않은 채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넬슨은 그 댓가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이건 1304년 슬루이스 Sluys 전투의 모습입니다.  이때부터도 돛대 위의 망루에서 싸우는 것은 상식이었지요.)



빅토리는 3층의 포갑판에서 르두터블의 함체를 향해 절대 빗나갈리 없는 살인적인 지근거리 포격을 퍼부어댔습니다.  24 파운드 혹은 32 파운드 포탄이 무자비하게 르두터블의 측면을 뚫고 들어가 그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렇게 날아드는 포탄도 무서웠겠습니다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단단한 떡갈나무가 포탄에 박살이 나면서 날카로운 목재 파편들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전함 포갑판의 좁은 공간을 이렇게 쇳덩이와 날카로운 목재 파편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당연히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르두터블의 함체 내에는 프랑스 수병들이 전혀 없었고, 모두 상갑판과 돛대, 삭구에 머스켓 소총과 커틀라스 등을 들고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포성 소리에 귀가 먹먹했던 빅토리의 포병들은 그런 것을 깨닫지 못했고, 르두터블의 반격이 없는 것에 신이 나서 그저 대포만 죽어라 쏘아대고 있었습니다.




(이건 깔끔하고 쾌적하게 정리된 빅토리의 포갑판입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이런 모습은 금방 사라졌습니다.)



(전투시의 포갑판은 아군의 포성과 포연, 먼지와 열기 때문에 정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적의 포탄이 날아들어와 동료들을 두동강내기도 하고, 날카로운 나무 파편의 폭풍이 수병들을 덮쳤기 때문에 비명소리와 피바다까지 겹쳤습니다.)



사단이 난 것은 바로 빅토리의 상갑판이었습니다.  빅토리는 약 500명이 넘는 수병들이 포갑판에서 우측면의 포 52문을 다루느라 빠쁜 상태였으므로, 상갑판과 돛대에는 전투원과 선원들이 약 3백명 이하만 나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프랑스군의 0.69인치의 샤를비유 (Charleville) 머스켓 탄환이 빗발처럼 날아들었고, 피할 곳이 없던 병사들은 수십명씩 무더기로 쓰러져야 했습니다.  그때, 르두터블의 뒷돛대 망루 위에, 혹은 뒷돛대 쉬라우드(shroud) 밧줄에 매달려 이렇게 빅토리의 수병들을 차례차례 쏘아쓰러뜨리던 어느 프랑스 소총병의 눈에, 빅토리의 후갑판 (quarterdeck)을 침착하게 거닐고 있는 어느 장교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어깨 위의 황금빛 견장은 물론 가슴과 모자에도 번쩍거리는 화려한 장식품을 붙인 것이, 누가 봐도 최고위급 제독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빅토리에서 탑승한 최고위급 제독이라면 당연히 넬슨일 것이라고 생각한 이 프랑스 소총병은 침착하게 조준을 한 뒤, 르두터블이 파도 위에서 좌우도 출렁이는 요동의 박자에 맞춰,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펑 하는 소음과 함께 잿빛 연기가 그의 시야를 가렸고, 그 연기가 바람에 걷히고 나자 그가 노렸던 제독이 빅토리의 갑판에 무릎을 꿇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함장이나 제독들이 전투시 정복을 입고 싸우는 것이 전통이기는 했습니다만, 넬슨은 이런저런 훈장과 장식품을 잔뜩 붙이고 전투에 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는 적의 저격병에게 '나 넬슨이 여기 있소' 하고 광고를 하는 셈이었는데, 넬슨은 스타병이 좀 걸려 있어서, 항상 전투에서는 이런 복장을 하고 싸웠다고 하네요.)




(넬슨의 죽음을 그린 가장 대표적인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빅토리는 우현의 르두터블 말고도 왼쪽에서도 무엇인가와 교전 중인 것처럼 그려져 있습니다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게다가 넬슨을 비롯한 몇몇이 쓰러진 것을 제외하면 그렇게 전황이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빅토리의 후갑판에 있던 다른 장교들도, 처음에는 넬슨이 쓰러진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상황이 워낙 안좋았거든요.  사방에 픽픽 쓰러지는 수병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러다가 빅토리의 함장 하디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넬슨이 무릎을 꿇은 채 갑판 위에 손을 대고 있다가, 서서히 옆으로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넬슨은 즉각 선창 아래의 응급 치료실(cockpit)로 내려보내졌습니다만, 왼쪽 어깨를 뚫고 들어간 총알은 그의 척추를 부수고 오른쪽 어깨뼈에 박혀 있었습니다.  넬슨은 어깨 아래 부분을 움직이기는 커녕 아무 감각을 느낄 수 없었고, 그는 자신이 끝장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하디 함장이 이 위대한 인물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선창에 내려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빴습니다. 




(갑판 위에 쓰러지는 넬슨의 다른 모습입니다.  매우 미화된 그림으로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넬슨 곁에 무릎을 꿇고 두손 모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대하듯 경건한 모습을 취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빅토리의 상갑판에 두발로 서있는 수병들의 숫자보다 쓰러져 있는 수병의 숫자가 훨씬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서로의 돛줄이 엉긴데다 이젠 프랑스군의 갈퀴줄로 르두터블과 단단히 얽혀버린 빅토리를 항해, 르두터블이 승선 백병전 (boarding)을 감행하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르두터블의 상갑판에는 머스켓 소총 뿐만 아니라 도끼와 커틀라스, 파이크 등으로 무장한 수병들이 잔뜩 집결해 있었거든요.  비록 빅토리의 포갑판에서는 여전히 신나게 르두터블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고, 덕분에 용골까지 뻗어내려간 돛대의 뿌리까지 거듭된 포격에 손상을 입고 부러질 정도였으나, 그건 상갑판 아래의 이야기였을 뿐, 상갑판 위는 프랑스군이 절대 우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두 전함이 서로 옆구리를 맞대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측이 이런 grappling hook이 달린 밧줄을 상대 전함의 뱃전에 던져 넣고 잡아당겨 묶었습니다.  반면에 끌려가는 측에서는 이런 밧줄을 도끼로 끊어버리려고 노력했지요.  가끔씩은 양측 모두 자신감이 넘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갈퀴를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갑판 위와 갑판 아래 중 어디가 더 중요했을까요 ?  현대전에서는 갑판 아래가 더 중요할 겁니다.  엔진과 통제실이 다 거기에 있으니까요.  그러나 범선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절대적으로 갑판 위가 더 중요했습니다.  엔진에 해당하는 돛은 물론이고, 통제실에 해당하는 타륜까지 모두 갑판 위에 있었거든요.  (빅토리의 경우, 연합 함대에 직각으로 돌진하는 과정에서 타륜이 포격에 맞아 날아가버렸기 때문에, 갑판 아래에서 키에 연결된 밧줄을 직접 당겨 조향을 해야 했습니다.)  막말로, 갑판 위를 프랑스 수병 200명이 완전히 점령한다면, 갑판 아래에 영국 수병 500명이 멀쩡히 살아있다고 해도, 갑판 햇치에 빗장을 걸고 못을 박은 뒤, 그대로 배를 카디즈로 몰고간다고 해도 눈 뜨고 당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비로소 빅토리도 무의미한 포격을 중단하고 수병들에게 갑판 위로 뛰어나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다, 빅토리의 갑판 위로 유리병으로 만든 수류탄이 휙휙 날아들어 폭발해대는 바람에, 이들은 선뜻 갑판 위로 뛰어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프랑스 놈들을 못 막으면 우린 다 죽거나 포로가 된다 !!)



루카 함장과 르두터블로서는 정말 기발한 전술로 대어를 낚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에 루카 함장은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요.  바로 높이의 차이였습니다.  아무래도 1급함인 빅토리의 갑판이 르두터블보다 훨씬 높아서, 배는 서로 딱 붙어 있었으나 르두터블에서 빅토리로 기어오르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루카 함장은 재치있는 사나이였습니다.  아직 서있던 중앙 돛대의 아래돛활대를 지탱하고 있는 밧줄을 끊어, 활대를 갑판 위로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르두터블의 두툼한 아래돛이 감긴 두꺼운 활대는 빅토리와 르두터블의 뱃전을 가로질러 떨어졌고, 프랑스 수병들은 이 외나무다리를 타고 빅토리로 돌격하기 위해 그야말로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빅토리로서는 이들을 막아낼 병력이 상갑판 위에 남아 있지 않았고, 그나마 아직 남아 있던 인원들도 여전히 날아드는 르두터블의 머스켓 사격으로 계속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루카 함장이 죽어가는 넬슨 사이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과연 루카 함장은 넬슨의 시체와 빅토리 호를 전리품으로 삼아 카디즈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