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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트라팔가 해전 (3) - 테메레르(Temeraire)들의 싸움

by nasica-old 201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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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는 루카 함장의 기발한 전술이 뜻밖의 성과를 거두어, 프랑스 전함 르두터블이 넬슨의 기함 빅토리의 상갑판을 휩쓸어 버리는 장면까지를 보셨습니다.  승기를 잡은 루카 함장은 르두터블의 수병들을 이끌고 빅토리로 승선 공격을 하기 일보직전의 상황이었지요.  여기서 잠깐 우리는 빅토리의 냄새나는 선창에서 천천히 죽어가던 넬슨을 잠시 떠나서, 빅토리의 뒤를 따르던 테메레르 (HMS Temeraire) 호의 사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테메레르라는 이름의 용이 등장하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판타지 역사소설이 꽤 히트쳤었습니다.  지금도 후속작이 집필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저도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는 다 읽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사실 소설 속의 저 용의 이름도 이 군함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입니다.)



테메레르라는 이름은 누가 봐도 영어식이 아니라 프랑스식 이름입니다.  '무모한, 막무가내의' 라는 뜻이지요.  당시 영국 해군에는 이렇게 프랑스식 이름을 가진 군함이 몇척 있기는 했습니다.  가령 트라팔가 해전에서 콜링우드 제독의 전열에 있었던 영국 전함 벨아일(HMS Belleisle) 호가 그 중의 하나였지요.  영국인들이 프랑스어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대부분 프랑스 해군 전함이었다가 영국 해군에 나포된 후, 그대로 예전 이름을 썼기 때문입니다. 




(하긴 벨 섬이 훨씬 크니까, 그롸 섬 대신 벨 섬으로 오인할 수도 있겠군요.)



사실 벨아일의 경우는 예전 이름이 벨아일(Belleisle,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도 아니었고, 이것이 제대로 된 프랑스어도 아니었습니다.  아일(isle)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섬이라는 뜻이지, 정작 프랑스어에는 isle이라는 단어가 없고, 섬이라는 뜻으로는 일(ile)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래 이 프랑스 전함은 리옹 (Lion, 예, '사자'라는 뜻 맞습니다) 이라는 이름으로 진수되었으나, 혁명의 진행 방향에 따라 마라 (Marat, 목욕하다 여자에게 살해된 그 혁명가 맞습니다), 다음에는 포르미다블 (Formidable, 영어와 똑같이 '무서운'이라는 뜻이지요) 으로 이름이 자꾸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1795년 그롸(Groix) 전투에서 영국 해군에게 나포되었습니다.  아마 영국 해군은 새로 영입한 이 전함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포르미다블이라고 읽어야 할지, 그냥 영어식으로 포미더블로 읽어야 할지 고민을 잠깐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영국 해군에는 포미더블 (HMS Formidable) 호라는 이름을 가진 전함이 이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해군은 이 프랑스 전함에게, 벨아일(Belleisle) 이라는 절반짜리 프랑스어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 전함을 나포한 곳이 프랑스 섬인 벨 일 (Belle Ile, 아름다운 섬) 근처였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일(Ile)이라는 프랑스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정작 섬에 해당하는 단어는 그냥 영어인 아일(Isle)을 붙였습니다.  더 웃긴 것은 정작 이 전함을 나포한 곳은 그 벨 일이라는 섬 근처도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족보에도 없는 반쪽짜리 프랑스 이름을 가진 이 전함은 지지난 편에서 보셨듯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름 맹렬히 싸우다 돛대 3개가 모조리 부러지는 봉변을 겪었습니다.




(트라팔가 해전 당시 오후 4시 15분 경의 벨아일의 모습입니다.  이름과는 달리 별로 아름답지는 못한 모습이지요.)



우습게도, 제대로 된 프랑스 이름을 가졌던 테메레르는 정작 프랑스가 아닌 영국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순수 영국 전함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얽힌 역사가 있습니다.  원래 당연히 테메레르라는 프랑스 전함이 있기는 했습니다.  1748년에 진수된 74문짜리 전함인 테메레르 호가 바로 그것이었지요.  그러나 이 배도 1759년의 라고스 (Lagos) 해전에서 영국 해군에게 나포되어, 그만 그 이름 그대로 영국 해군의 테메레르 (HMS Temeraire) 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테메레르는 1784년에 퇴역할 때까지 영국 해군에서 활약했는데, 당시 프랑스에서 건조되었다가 영국 해군에 편입된 다른 전함들처럼, 성능면에서 꽤 만족스러웠나 봅니다.  아마도 그 덕분인지, 1798년에 진수된 98문짜리 2급 전함도 테메레르 호로 명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순수 영국 해군 전함에 프랑스식인 테메레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연유입니다. 




(영국 해군의 제1대 테메레르 호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즉, 라고스 해전 장면이지요.)



하지만 프랑스 해군도 테메레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1782년에 진수된 테메레르 호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프랑스제 테메레르는 유지보수에 문제가 있었는지 1801년에 수리 불가 판정을 받고 해체되어 버립니다.  이로 인해, 트라팔가 해전 당시 프랑스 해군에 테메레르라는 이름의 전함이 있어서 영국제 테메레르와 자웅을 겨루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테메레르급 전함은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트라팔가 해전 끝무렵에 폭발한 프랑스 전함 아쉴르(Achille)도 그렇고, 빅토리를 궁지로 밀어넣고 넬슨을 사살한 르두터블도 바로 테메레르와 같은 설계 구조를 가진 테메레르급 전함들이었습니다.





(이것은 테메레르급 전함 중 아쉴르(Achille) 호의 모형입니다.  제가 보기엔 뭐가 테메레르급의 특징인지 전혀 모르겠군요.)



이렇게 영국 해군만 프랑스식 이름을 가진 전함들을 보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해군도 영국식 이름을 가진, 영국제 전함을 나포해서 가진 것이 있었습니다.  트라팔가 해전만 하더라도, 프랑스 해군의 스위프트슈어 (Swiftsure) 호가 있었습니다.  이는 아부키르 해전에서 할로웰(Benjamin Hallowell) 함장이 지휘했던 74문짜리 3급함 스위프트슈어 호가 1801년에 프랑스 해군에게 나포되어 그대로 프랑스 해군의 스위프트슈어 호가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영국 해군도 나름 자존심이 있어, 그 나포 사건 조금 뒤인 1804년에 새로 74문짜리 3급함을 진수시키면서 그 손실을 만회하고자 스위피트슈어라는 이름을 그대로 붙였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하필 이 전함이 트라팔가 해전에 참전하는 바람에, 같은 스위프트슈어가 영국과 프랑스 측에서 각각 싸우게 되었다는 점이었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같은 해전에 참전했던 이 두 스위프트슈어는 서로 직접 대포알을 주고 받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트라팔가 해전의 결과로, 프랑스 스위프트슈어는 영국 해군에게 다시 나포되었는데, 하지만 영국 해군에는 이미 그 이름을 가진 전함이 있었으므로, 기존의 스위프트슈어는 그 이름 대신 이리지스터블 (HMS Irresistible) 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위프트슈어가 프랑스 해군에게 나포되는 모습입니다.  뭐 로열네이비라고 별 거 있나요 ?  두 주먹이 네 주먹을 못 당하는 법이지요.)



테메레르의 이름 설명은 이쯤 하고, 그를 지휘하던 함장 하비 (Eliab Harvey)에 대해서 잠깐 보시지요.  이 양반은 1758년 생으로서, 넬슨과 동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출신이 서민이라서 승진이 늦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넬슨이 비정상적으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지요.  이 양반은 하원 의원이자 상당한 부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13살의 나이에 (서류상으로만) 군함에서 미드쉽맨 생활을 시작했고, 16세의 나이에 실제로 군함에 탄지 5년 만에 정식 사관(lieutenant)로 승진한 뒤, 불과 3년만에 준함장 (commander)를 거쳐, 1년도 안되어 24세에 정식 함장 (post captain)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큰 유산을 물려받은 하비 함장은 주색잡기와 도박으로 곧 가산을 흥청망청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한판의 주사위 놀음에 무려 10만 파운드 (현재 가치로 대략 300억원)를 걸고 도박을 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개차반의 나날을 보냈지요.  (이 놀음에 이겼는지 졌는지 궁금하십니까 ?  졌습니다 !  그러나 이렇게 되면 하비가 파산할 거라는 것을 잘 알던 상대방이 아량을 배풀어 한판 더 하자고 했고, 다행히 다음판에서는 이겨서 결국 본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아량있는 상대방을 둔 것도 복이라면 복이지요.)




(하비 함장입니다.  이 양반에 대한 후일담은 다음 편에 조금 더...)



하비 함장이 이런 방탕한 생활로 온 집안을 다 말아먹지 않은 것은 어쩌면 해군 덕분이었습니다.  군함 생활을 해야 하니까 당연히 도박장과 유흥가에서 멀어졌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비 함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원 의원도 겸직하고 있었으므로 (당시 영국의 의회 및 선거 제도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있었습니다) 자주 휴가를 내고 육지 생활을 했고, 동료 해군 장교들과의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비에겐 정치적, 금전적인 배경이 있었으므로, 남들은 그토록 얻고자 애썼던 현역 함장 자리를 내킬 때마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아미엥 평화 조약이 1년만에 깨지자, 그에게 주어진 배는 무려 1만7천 파운드(약 50억원)를 들여 새로 수리한 테메레르 호였습니다.   그는 테메레르를 이끌고 엄격한 콘월리스 제독 휘하에서 숨막히는 브레스트(Brest) 봉쇄 작전에 투입되었었고, 그 후 거친 브레스트 앞바다 때문에 손상된 선체를 다시 큰 돈을 들여 수리한 뒤 칼더 제독이 지휘한 피니스테라 해전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 - 피니스테라 (Finisterre) 해전 http://blog.daum.net/nasica/6862521 참조) 에도 참전했었습니다.  테메레르는 막강한 98문의 화력을 자랑하는 대형 2급함이면서도 지속적인 대규모 수리를 받은 덕분에 매우 뛰어난 기동성을 가진 정예함이었습니다.  때문에 넬슨이 카디즈 앞바다에 도착하여 콜링우드와 어느 전함을 누가 지휘할 것인지를 나눌 때, 특별히 자신의 전대에 두기를 원했던 전함 중의 하나가 바로 테메레르였습니다.  특히 넬슨은 테메레르를 바로 자신의 빅토리 뒤에 배치함으로써, 테메레르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유사시 빅토리가 위기에 빠지면, 재빨리 접근하여 빅토리를 구해낼 임무가 암묵적으로 주어진 것이지요.

트라팔가 해전 당일날,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에게 넬슨과 콜링우드의 전대가 수직의 일렬종대로 들이닥칠 때, 주로 신호 중계기 역할을 했던 프리깃함 유리알러스 (HMS Euryalus) 호의 함장이자 넬슨의 오랜 친구였던 블랙우드 경 (Sir Henry Blackwood) 은 총사령관인 넬슨이 가장 위험한 선두에 선다는 것이 몹시 불안하여, 차라리 빅토리 말고 자신의 유리알러스 호로 기함을 옮길 것을 권했습니다.  이는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실제로 전체 함대를 관찰하고 잘 지휘하기 위해서는 함대 속에 있는 것보다는 함대 진형에서 한발짝 떨어진 프리깃함에서 보는 것이 더 좋았고, 또 어차피 각 전함들의 함장은 빅토리 호가 아닌, 빅토리 호의 신호를 중계해주는 유리알러스 호의 깃발 신호를 쳐다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Nelson touch - 왜 영국 함대는 2줄인가 ? http://blog.daum.net/nasica/6862523 참조)  그러나 또한, 대 함대 결전에 임하는 총사령관이 시시한 프리깃함에 승선하여 전체 전투를 지휘한다는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었고 또한 매우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해전 관례상, 전함들끼리 전투를 벌일 때 전함들은 작은 프리깃함들에게는 (설령 완벽한 포격 기회가 생기더라도) 포격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거든요.  그러니 더더욱 '위험을 무릅쓰기 싫어했다'는 비아냥을 듣기 딱 좋은 위치였습니다.  엠마와의 결혼을 위해서라도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대승리가 필요했던 넬슨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지요.




(넬슨보다 12살이나 어렸고 지위도 훨씬 낮았던 블랙우드 함장이 넬슨의 '친구'가 된 것은 1800년, 지중해에서 프랑스의 80문짜리 전열함 기욤 텔을 나포할 때 당시 불과 36문짜리 프리깃함 페넬로피 호의 함장이던 블랙우드가 보여준 맹활약에 넬슨이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르모에서 엠마와 연애 중이던 넬슨은 블랙우드에게 편지를 써서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물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당신과 친구 먹고 싶다' 라고 극찬을 했다고 합니다.)



넬슨이 그를 거절하자, 블랙우드는 '하다 못해 테메레르가 더 빠르기도 하니, 테메레르가 빅토리를 추월하도록 허용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넬슨은 이마저도 거절했고, 실제로 빅토리를 앞지르려고 빅토리의 후측면으로 바싹 접근했던 테메레르의 하비 함장에게는 넬슨이 특별히 확성기를 통해 '하비 함장, 자네의 제대로 된 위치인 빅토리의 후미를 지켜준다면 고맙겠네' 하고 직접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설도 있습니다.  즉, 원래 넬슨도 테메레르에게 추월을 허용하려고 했는데, 콜링우드 전대를 보니 콜링우드가 양보는 커녕 제2번 함을 훨씬 뒤에 남겨두고 전속력으로 온갖 위험을 혼자 무릅쓰고 달려가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꿔 테메레르에게 '뒤로 빠져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넬슨은 선두에 섰고, 그에 따르는 위험과 피해를 보면서도 뷔생토르에게 종사를 퍼부으며 연합 함대의 전열을 관통해 들어갔습니다.  테메레르의 하비 함장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는데, 그는 더 앞 쪽에 있던 세계 최대의 거함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노렸고, 이 거함과 무려 20분간 교전했습니다.  하지만 이 거함에게 전력을 쏟아붓는 동안 프랑스 전함들인 넵튠과 르두터블에게 두들겨 맞아야 했지요.  마치 17대1의 패싸움에서, '난 내가 얼마나 두들겨 맞든 아무튼 한놈만 팰거야' 하는 식이었지요.  이때 테메레르는 상부 돛대 2개가 부러지는 심각한 손상을 입습니다.   그러나 마치 멧돼지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진 사냥개처럼 집요하게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두들겨 패던 하비 함장의 눈에, 자신에 종사를 퍼부었던 르두터블의 움직임이 들어왔습니다.  르두터블은 어느덧 빅토리와 딱 붙어있었는데, 불길하게도, 아직 르두터블의 돛대에 프랑스의 삼색기가 휘날리는데도 빅토리가 포격을 멈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좋지 않은 신호였습니다.  그는 즉각 배를 돌려 빅토리와 르두터블을 향했습니다.  이제 영국의 테메레르가 프랑스의 테메레르급 전함인 르두터블과 혈투를 벌일 차례였습니다. 




(주로 육군이 쓰던 canister탄은 머스켓 탄환이나 돌조각/쇳조각이 들어있어 두꺼운 목재 및 해먹 방호벽을 뚫어야 했던 해군용으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군에서는 훨씬 굵은 알(?)을 쓰는 grapeshot을 썼지요.)



테메레르는 빅토리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르두터블의 함미 쪽을 가로질러 접근했습니다.  테메레르가 막 르두터블의 비어있는 우현에 접근하여 보니, 무너진 가로 활대를 다리 삼아 막 프랑스 수병들 몇몇이 빅토리로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테메레르는 좌현의 빅토리에 정신이 팔려 방심하고 있던 르두터블에게 구형탄(roundshot)과 포도탄(grapeshot)으로 이중 장전된 일제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특히 영국 해군의 신무기 캐로네이드(carronade) 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높은 테메레르의 후갑판(quarterdeck) 위에 장착된 캐로네이드 포는 사실 이럴 때 쓰라고 있던 물건이었거든요.   이 캐로네이드에는 구형탄(roundshot) 위에 머스켓 탄환이 가득 든 캐니스터탄이 이중으로 장전되어 있었으므로, 수병들이 빽빽히 모여 있던 르두터블의 상갑판을 내려다보면서 발사된 이 일격은 그야말로 처참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승리를 낚아채기 일보 직전이었던 르두터블의 함장 루카도 이때 부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영국군에게 생포되었던 루카 함장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의 테메레르가 퍼부은 일격만으로 자신의 부하들 약 200명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무게가 일반 cannon의 1/3~1/4에 불과했던 저압포인 carronade 포는 스코틀랜드의 Carron 사에서 개발/제작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단거리 포는 특히 전함의 후갑판에 장착되어 적의 수병이 밀집된 갑판에 대해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습니다.  18세기 후반 내내 프랑스 조병창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무기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근접전에서 영국 해군이 우세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캐로네이드 포는 단거리 저압포라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전함의 포문수를 셀 때 그 숫자에 넣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테메레르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테메레르는 피범벅 난장판이 된 르두터블 옆에, 마치 르두터블이 빅토리에게 했던 그대로 쿵 하고 옆구리를 부딪히며 밀착한 뒤, 재빨리 갈퀴줄을 던지고 서로의 활대 끝을 묶어 르두터블과 엉겨붙었습니다.  테메레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사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그 전에 르두터블과 넵튠에게 종사를 당하다 보니, 돛대와 삭구에 큰 손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기동성을 거의 잃은 상태였고, 그나마 르두터블 옆으로 다가온 것이 마지막 힘을 다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테메레르는 이렇게 몸을 르두터블에게 묶어 고정시키고 계속적으로 포격을 가해 르두터블을 그야말로 벌집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빅토리도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시 포격을 시작하여, 키큰 떡대 2명이 (3-decker 2척)이 덩치가 작은 1명 (2-deck 1척)을 사이에 끼우고 글자 그대로 '배때지에 연장질'을 해대는 보기 흉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이때의 포격은 너무 치열하여, 빅토리에서 쏜 포탄이 르두터블의 함체를 관통한 뒤 테메레르의 측면을 강타하기도 하고, 반대로 테메레르의 포탄이 빅토리를 때리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 사이에 낀 르두터블은 도저히 대포로 반격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르두터블의 포갑판은 그야말로 쇳덩어리와 날카로운 나무 파편으로 이루어진 양방향 폭풍이 휩쓸고 있었거든요.




(맨 왼쪽이 빅토리, 가운데가 르두터블, 오른쪽이 테메레르입니다.  이런 비겁한 영국놈들 !)



아마도 이런 '비열한 쓰리섬 쌈박질'에 열이 받았는지, 정의감에 넘치는 112문 짜리 스페인 전함 산타아나 (Santa Ana)가 지나가며 테메레르에게 종사를 먹였고, 또 또다른 74문짜리 테메레르급 프랑스 전함 푸구외 (Fougueux)가 같은 테메레르급의 자매함인 르두터블을 구출하기 위해 테메레르의 비어있는 우현에 맹렬한 일제 사격을 퍼부으며 접근했습니다.  이제 쓰리섬 쌈박질이 포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도, 빅토리를 제외한 3척의 전함은 모두 테메레르였습니다.  그야말로 테메레르들의 싸움이었지요.

테메레르는 우측에 새롭게 나타난 위협에 대해서 침착하게 대응했습니다.  하비 함장은 포수들을 좌현에서 우현으로 급히 이동시켰으나, 서둘러 포격하지 않고 푸구외가 약 100m 안쪽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제 사격을 날렸습니다.  이 포격으로 푸구에의 삭구와 활대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고 (이런 것을 보면 프랑스군은 돛대를 쏘고, 영국군은 함체를 쐈다는 말이 꼭 100% 들어맞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이로 인해 기동력을 잃은 푸구외는 관성의 힘으로 테메레르의 뱃전에 밀려와 쿵 하고 맞붙었습니다.  테메레르의 수병들을 재빨리 푸구에도 테메레르의 뱃전에 묶어버렸습니다.  이제 테메레르도 르두터블과 푸구외의 2척 사이에 낀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들 어느 배가 빅토리인지는 알아보실 겁니다.  빅토리 바로 왼쪽이 르두터블이고, 그 왼쪽이 테메레르인데, 테메레르는 이제 막 푸구외에게 일제 사격을 퍼붓고 있기 때문에 흰 포연을 뿜고 있습니다.  Clarkson Frederick Stanfield 의 그림입니다.)



르두터블은 테메레르와 빅토리의 협공을 받으며 크게 기세가 꺾었으나, 루카 함장의 기본 전술은 테메레르에 대해서도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루카 함장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갑판 위를 떠나지 않고 (사실 갑판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위험했을 겁니다) 전투를 지휘했는데, 이제 빅토리보다는 새로 도착해 기세가 등등한 테메레르에게 머스켓 사격과 수류탄 투척을 집중했습니다.  테메레르의 수병들도 르두터블의 희한한 전술에 고전을 하며 픽픽 쓰러졌는데, 특히 수류탄 한발이 테메레르의 3층 포갑판까지 굴러떨어지며 폭발, 후방 화약고 근처에 화재가 발생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또한 테메레르의 전방 돛과 우현 삭구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것을 끄느라 전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테메레르의 돛에 불이 붙은 것은 아마도 르두터블의 망루에서 쏘아대는 머스켓 소총에서 튀어나온 붙붙은 화약 마개 (wad)가 일으킨 것이 아닐까 하는데, 넬슨의 선견지명이 옳았다고 해야 할까요 ?  아니면 돛에 불이 붙긴 했으나 불이 붙은 것은 쏜 측인 르두터블의 돛이 아니라 맞은 측인 테메레르의 돛이었으므로 넬슨의 명령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했을까요 ?  아무튼 이렇게 르두터블의 수병들이 강력한 저항을 펼쳐서인지, 르두터블이 이미 입은 피해 정도면, 왠만하면 빅토리나 테메레르에서 승선 공격조 (boarding party)를 보내어 백병전을 시도할 만도 했는데, 빅토리도 테메레르도 그럴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죽어라 포격질만 해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르두터블의 승무원은 절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으로 쓰러진 상태였습니다.  아직도 돛대의 망루에서 열심히 머스켓 소총을 쏘아대기는 했으나, 워낙 포격이 거세다보니 주돛대까지 꺾여 테메레르의 선미루 갑판 (poopdeck)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주돛대의 망루와 삭구에 매달려 있던 머스켓 소총수들이 비참한 추락사를 당해야 했던 것은 물론이었지요.  약 20분간 이렇게 집중 포격을 받고 나자, 르두터블 수병들의 투지는 모르겠으나, 르두터블의 함체가 견디지를 못했습니다.  보통 이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도중에도, 최소한 한두명의 수병은 계속 선창에 물이 얼마나 새어들어오는지를 계속 점검하고 있어야 했는데, 그로부터 루카 함장에게 전해진 소식은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르두터블이 곧 침몰할 것 같다는 보고였지요.  결국 루카 함장은 깃발을 내리고 테메레르에게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하비 함장은 비로소 나포조 (prize party)를 테메레르로 파견하여 항복을 접수했습니다.  이때 르두터블의 사상자는 총원 643명 중 사망 300에 부상 222명, 무려 81%의 사상률이었습니다.  정말 처절한 싸움이었지요.




(저 포문을 통해 수병들이 돌격해 나갈 수 있을까요 ?  약간 좁기는 하지만 대포를 뒤로 끌어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항구에 정박할 때 어떤 경우에는 저 포문 위를 그물로 덮어놓기도 했습니다.  포문을 열고 수병들이 탈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테메레르의 좌현에서는 싸움이 끝났을지 몰라도, 우현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테메레르는 더 높은 3층 포갑판이라는 높이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여 푸구에의 승선 공격 (boarding)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즉, 이번에도 푸구에의 수병들이 승선 공격을 하려 상갑판 위에 잔뜩 모여들었으나, 역시 훨씬 높은 테메레르의 갑판 위로 쉽게 기어오르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해먹 뭉치 (hammock net) 뒤에 숨어 쏘아대는 테메레르 수병들의 머스켓 사격에 애꿎게 사상자 숫자만 늘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좌현의 르두터블의 항복을 받아낸 테메레르의 하비 함장은 푸구외에게 역습을 가합니다.  즉, 푸구외의 갑판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있던 테메레르의 포문들을 통해 승선 공격을 시작한 것입니다.  의표를 찔린 푸구외의 수병들이 사력을 다해 막으려 했습니다만,  그 전의 포격전에서 테메레르의 전과가 더 좋았던 지라, 결국 병력에서 밀려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백병전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푸구외의 함장인 보도앙(Louis Alexis Baudoin)은 치명적 부상을 입고 넬슨처럼 죽어가고 있었고, 다른 장교들도 백병전 과정에서 대부분 죽거나 부상당한 상황이 되자, 결국 남아있던 준함장 계급의 장교 바젱 (Francois Bazin)은 테메레르의 선임 사관이자 승선조 지휘관이었던 케네디 (Thomas Fortescue Kennedy)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총 사상자 수는 135명, 총원 755명의 18%에 달하는 사상률이었습니다.

하지만 테메레르도 피해는 심각했습니다.  총원 718명 중 47명 전사에 76명 부상, 빅토리와 거의 맞먹는 17%의 사상률을 기록했고, 특히 가로 활대는 물론이고 상부 돛대 3개가 모조리 부러져 하부 돛대만 덜렁 남아있는 흉물스러운 모습이 되어 버렸지요.  대포를 잃은 군함은 아직 싸울 수 있지만 돛대를 잃은 군함은 사실상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테메레르의 트라팔가는 사실상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리고 빅토리와 테메레르를 제외한 나머지 영국 전함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쉬운 전투를 치루었습니다.  그 어떤 전함에서도 7% 이상의 사상률을 내지 않았거든요.  역시 군대는 줄이라고, 맨 앞 줄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통계치입니다.  나머지 프랑스-스페인 전함들은 여기저기서 종사를 당하고 전투 능력을 잃거나 돛대가 부러져 항행 능력을 잃어서, 결국 차례로 영국 해군에게 항복을 해야 했습니다. 




(싸움은 덩치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호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거함이었던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는 빅토리와 테메레르에 이어, 영국 함대의 넵튠(Neptune)에게 종사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특히 넵튠과는 장시간 포격전을 벌인 끝에, 결국 돛대를 모두 잃고 표류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대포와 수병들도 많이 잃었지요.  그러나 워낙 덩치가 큰 거함이다보니, 넵튠도 섯불리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거의 2시간 만에야 선회를 마치고 되돌아온 연합 함대의 선두그룹, 즉 뒤마누아르 (Pierre Dumanoir le Pelley) 제독의 분대를 상대하느라 넵툰은 이 자리를 뜨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에 아직 온전한 대포와 수병들이 많이 있다고 해도, 또 전함이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해도, 돛대가 모두 부러진 다음에는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호에 탑승한 최고위자였던 시스네로 (Baltasar Hidalgo de Cisneros) 제독입니다.  당시 이 양반은 떨어지는 삭구에 머리를 다쳐 뇌진탕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게 항복을 거부한 것이 이 양반이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이 양반은 이때의 부상이 일부 영구히 남아, 그 후에도 평생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 스페인 전함은 항복하기로 결심했으나, 넵튠이 자리를 비우고 대신 들어온 것이 고작 64문짜리 아프리카 (HMS Africa) 호였습니다.  돛대가 모두 부러져 깃발을 휘날리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본 아프리카의 함장 딕비 (Henry Digby)는 보트를 보내 이 거함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습니다.  그리고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에서도 이렇게 노를 저어 오는 아프리카의 보트에게 아무런 공격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의 후갑판까지 올라가 스페인 함장과 대면한 아프리카의 선임장교 스미스 (John Smith)는 아프리카에게는 항복하지 않겠다는 스페인 측의 답변에 깜짝 놀라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돛대가 부러져 깃발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꼭 항복 의사 표시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거든요.  까딱하면 스미스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나포조 (prize crew)가 오히려 포로가 될 판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체면을 중시하는 스페인 장교들은 스미스를 '잘 타일러 돌려보내는' 아량을 베풉니다.  사실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는 체면상 아프리카처럼 조그만 전함에게는 항복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스페인 전함은 무려 1시간 30분 동안 아무 하는 일 없이 표류하다가, 간신히 어느 정도 체면이 서는 규모의 상대, 즉 98문짜리 2급 전함 프린스 (HMS Prince) 호에게 항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린스 호는 지난편에 보셨듯이, 원래 콜링우드 제독의 전대의 맨 후미에 위치한 배로서, 너무 속력이 느려 전투에 늦게 참전하는 바람에 부상자 1명조차 내지 않은 전함이었습니다.  아마 항복하는 측에서나 항복받는 측에서나 서로 상당히 쑥쓰러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훗날 제독이 된 딕비 함장의 모습입니다.  이 분은 이날 비록 타고 있는 배가 작다는 이유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로부터 항복을 거절당하는 굴욕을 받아야 했지만, 그 이후에도 뒤마누아르 제독의 분대를 막아내는데 결정적인 활약을 했습니다.)



결국 뒤마누아르 제독도 이미 상황이 거의 끝나버린 것을 보고 몇번 포격전을 벌인 뒤 도망쳐 버렸습니다.  10척 (프랑스 6척, 스페인 4척)으로 구성되었던 뒤마누아르 제독의 분대 중에서 정말 투지를 가지고 동료들을 도우려 했던 전함은 오직 한척 프랑스 전함 엥뜨레피드(Intrepide, '용기있는, 대담한' 이라는 뜻) 뿐이었습니다.  결국 이름값을 발휘한 이 전함은 1대5의 싸움을 벌이다 32%의 사상자를 내고 오후 5시 쯤 항복했고, 이때 즈음해서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연합 함대의 다른 전함들도 모두 재주껏 현장을 빠져 나와 도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전함들은 그 뒤를 끝까지 추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대의 돛대와 삭구를 노린다'는 프랑스-스페인 함대의 전술 교리가 여기서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영국 함대 중 빠른 전함들은 대개 돛대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고, 피해가 적은 전함들은 너무 느려서 (사실 그래서 피해가 적었지요) 도주하는 적함들을 추격할 처지가 못되었거든요.  결국 오후 5시 45분 경, 프린스 (예, 부상자 한명 없는 그 프린스 맞습니다) 의 포격으로 화재가 발생했던 프랑스 전함 아쉴르(Achille)가 결국 화약고 유폭으로 폭발하면서, 트라팔가 해전은 사실상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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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트라팔가 해전은 일단락됩니다.  아래 손가락 표시 눌러서 추천주시면 다음 회에는 개인적으로는 트라팔가 해전 그 자체보다 재미있던 그 후일담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11월 중에는 사정이 좀 있어서, 아마 다음 편은 3~4주 후에나 나올 것 같습니다.  그때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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