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폴레옹의 시대

넬슨의 고뇌 - 빌뇌브는 어디에 ?

by nasica-old 2012. 8. 5.
반응형


지난편에서는 블록버스터급 승리를 거둔 뒤 본부인과 이혼하여 엠마와 행복한 가정을 꾸미려는 넬슨의 무리수와, 그 무리수를 뚫고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려는 빌뇌브의 움직임에 대해서 보셨습니다.  넬슨은 그가 여전히 지중해 동쪽으로 향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는 사르디니아 섬 남쪽 인근에서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빌뇌브는 지브로올터 쪽인 서쪽으로 가되, 넬슨의 위치가 바르셀로나 앞바다라고 생각하여 남쪽을 빙 돌아 우회하려고 했었지요.   두 제독의 생각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이 둘은 어쩌면 사르디니아 앞바다에서 만날 수도, 또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바다에서는 예측하지 못할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넬슨이 사르디니아 앞바다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본 스페인 상선 하나가, 빌뇌브의 함대와 딱 마주친 것입니다.  스페인 상선으로서는 마주친 것이 적국인 영국의 봉쇄 함대가 아니라 우방국인 프랑스 함대인 것이 정말 다행이었지요.  하지만 사실 더 큰 행운은 빌뇌브에게 떨어진 셈이었습니다.  이 상선으로부터, 큼직한 규모의 영국 함대가 사르디니아 인근 해역에 있더라는 소식을 이 상선으로부터 전해들었으니까요.  빌뇌브는 비로소 넬슨의 속임수를 파악하고 즉각 서쪽으로 항로를 바꿨습니다. 

그는 즉각 스페인의 지중해 군항 중 하나인 카르타헤나(Cartegena)로 들어가 그곳에 정박해있던 스페인 전함들과 함께 지브로올터를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이 프랑스와 동맹 관계라고 해서, 스페인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카르타헤나의 스페인 해군 제독들은 아무런 사전 명령없이 나타난 프랑스 제독의 명령 혹은 요청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지요.  빌뇌브가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 어쩌고하며 호들갑을 떨었으나, 그들은 마드리드에서 정식 명령서가 오기 전에는 꼼짝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건 빌뇌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 전체 기획을 맡았던 나폴레옹의 잘못, 혹은 모든 일에서 굼뜨고 느렸던 스페인 내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카르타헤나는 고대 로마 시대에 카르타고인들이 새로운 카르타고 (Carthago Nova)라는 이름으로 세운 유서깊은 도시로서 로마 시대의 유적도 많습니다.)



아무튼 빌뇌브는 이 어정쩡한 상황에서 나름 정확한 판단을 내립니다.  즉, 카르타헤나에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스페인 전함들과 말싸움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서둘러 항진을 계속하여 4월 8일, 마침내 지브로올터를 통과한 것입니다.  이때 지브로올터 해협을 지키는 영국의 요새 지브랄타(Gibraltar)에는 오드 제독 (Sir John Orde) 지휘 하의 소함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봉쇄할 수가 없었습니다.  빌뇌브는 곧장 스페인의 대서양 쪽 군항 카디즈(Cadiz)로 달려가, 거기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전열함 에글(Aigle) 호와 스페인의 그라비나 제독 (Federico Gravina)이 지휘하는 스페인 전열함 6척 및 프리깃함 1척을 데리고 대서양으로 내달립니다.  




(스페인의 Federico Carlos Gravina 제독입니다.  나폴레옹은 이 1805년 8월자 편지에서 '빌뇌브가 그라비나 정도의 결단력만 있었어도 난 영국을 정복했을 것이다'라며 그라비나 제독을 칭찬했지만, 사실 트라팔가 해전 직전에 출항을 하자고 조른 것은 빌뇌브였고 그를 거부한 것은 그라비나 제독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명령의 내용은, 일단 카리브 해의 프랑스령 섬인 마르티니크(Martinique)로 가서, 먼저 그쪽 해역에 도착해 있을 미시에시(Missiessy) 제독의 6척의 전열함과 합류한 뒤, 브레스트에서 강톰 제독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강톰이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카나리(Canary) 제도로 돌아와 거기서 영국의 상선들을 요격하여 한바탕 난리를 일으키라는 것이었지요.  카나리 제도는 북아프리카 서해안 인근에 위치한 스페인령 섬으로서,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로부터 돌아오는 영국 상선(Indiaman이라고 불렀지요)들이 지나는 주요 항로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귀항하는 상선들은 막대한 금액의 상품을 싣고 있었으므로, 이들만 제대로 요격한다고 해도 영국은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영국 함대들이 이들을 잡으러 몰려 올 것이 뻔했고, 그럴 수록 브레스트의 강톰 제독이 봉쇄를 빠져나올 확률이 커지는 것이었지요.




(카나리 제도는 그 예쁜 이름과는 달리 스페인 사람들의 끔찍한 인종 청소가 벌어진 학살의 현장이었지요.)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넬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그는 아무리 기다려도 빌뇌브가 나타나지 않자, 프리깃함을 동원하여 그 일대를 샅샅이 뒤지다가, 마침내 자신이 오판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빌뇌브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을 향해 나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서둘러 지브랄타로 달려왔는데, 5월 7일, 트라팔가 앞바다에서 오드 제독 휘하의 영국 군함을 만나, 빌뇌브가 무려 1달 전에 대서양으로 빠져 나갔으며, 북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또다시 넬슨은 좌절에 빠집니다.  무리하게 전공을 세우려다, 조국을 위기에 빠뜨린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빌뇌브가 북쪽, 그러니까 영불 해협 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갔다는 점이었습니다.  넬슨은 직감적으로, 빌뇌브의 행선지는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라고 판단하고 그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빌뇌브보다 무려 31일이나 뒤진 상태였습니다.

넬슨이 바베이도스(Barbados)에 도착한 것은 약 1달 뒤인 6월 4일이었습니다.  넬슨은 그 한달 동안 프랑스 함대가 평온한 카리브 해를 발칵 뒤집어 놓아 영국령인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 (Kingston)에 프랑스의 삼색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넬슨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카리브 해의 모습이었습니다.   넬슨의 마음은 또 다른 의미에서 철렁했습니다.  '아뿔사, 빌뇌브의 행선지가 카리브해가 아니었나 ??'




(저 빨간 원 안이 영국 식민지인 바베이도스입니다.  바로 위의 마르티니크는 프랑스령 식민지였지요.  당시 카리브해는 정말 영-프-서의 치열한 식민지 각축장이었습니다.  당시 카리브해에서 영국의 근거지는 바로 자메이카 섬이었지요.)



하지만 정작 세인트 루시아 (St Lucia) 섬의 주둔군 사령관 브레러톤 (Brereton) 장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빌뇌브의 함대가 이곳에 나타나기는 했었습니다.  이 프랑스 함대는 약 1주일 전에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정말 뜬금없이 남쪽으로 사라지더라는 것이 현지 영국 육군의 관측이었습니다.  아마도 남미 연안의 영국령 섬인 트리니다드(Trinidad) 쪽을 향했을 것이라는 것이 현지의 추측이었습니다. 

1주일이라 !  그동안 빌뇌브가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1주일이라면 따라 잡을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넬슨은 다시 열심히 남쪽으로 쫓아가지만, 이 모든 것이 헛걸음이었습니다.  프랑스 함대가 남쪽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빌뇌브가 나름 머리를 써서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쇼'를 꾸민 것이었습니다.   넬슨이 바르셀로나 앞바다에서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한 멋진 복수였지요.  넬슨이 남쪽으로 군함에 채찍질을 하며 달려갈 때, 빌뇌브는 정반대인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4일 후인 6월 8일, 남쪽에 프랑스 함대가 없다는 정보를 입수한 넬슨은 비로소 빌뇌브의 기만 전술에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배를 돌려 정반대인 북쪽을 향했습니다.  다시 4일 후인 6월 12일 안티가(Antigua)에 도착한 넬슨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빌뇌브가 바로 어제 이곳에 나타났다가 유럽 쪽을 향해 사라져갔다는 보고였습니다. 





(안티가는 저 카리브해의 동북쪽에 있습니다.  '안티가 바부다'라는 지명 보이십니까 ?)



지칠 줄 모르는 넬슨은, 이제는 지쳐버린 부하들을 닥달하여 다시 추격에 나섭니다.  넬슨은 틀림없이 빌뇌브가 카디즈 항, 또는 모항인 지중해의 툴롱으로 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7월 19일, 1달이 넘는 항해 끝에 다시 대서양을 건너 마침내 지브랄타에 도착한 넬슨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빌뇌브가 카디즈에도, 지브랄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식 뿐이었습니다.  대체 빌뇌브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  확실한 것은 넬슨은 자신이 전담 마크해야 할 빌뇌브를 놓쳤고, 빌뇌브가 어디에서 영국에게 무슨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건 툴롱 봉쇄의 책임을 진 제독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무려 4개월 가까이 거친 대서양을 2번이나 가로지르며 추격전을 펼친 결과가 이 모양이었습니다.  넬슨은 자책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봉쇄하거나 추격할 대상이 없던 그로서는, 일단 상급자인 해협 함대 (Channel Fleet)의 콘월리스 제독에게 돌아가 함대를 반납하고 자신은 기함 빅토리(HMS Victory) 호를 타고 영국 포츠머스 항으로 돌아옵니다.   거의 2년만에 처음으로 육지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습니다.  엠마의 품을 떠날 때는 반드시 빛나는 전공을 세워 개선 장군처럼 돌아오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건만, 돌아오는 그의 마음 속에는 번민과 부끄러움 뿐이었지요.

자, 여기서 넬슨을 잠시 떠나, 넬슨을 이토록 궁지에 몰아넣은 빌뇌브의 신출귀몰한 활약상을 엿보기로 하시지요.  그 전에, 빌뇌브란 인물이 어떻게 이번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 작전의 핵심 요직인 툴롱 함대 사령관을 맡게 되었는지 보셔야 합니다.  원래 나폴레옹은 이 툴롱 함대 사령관에 트레빌 (Louis-Rene Levassor de Latouche Treville) 제독을 임명할 생각이었습니다.  1801년 불로뉴에 대한 영국의 공격 때 넬슨을 막아내기도 (불로뉴의 한가운데서 영국 침공을 외치다 http://blog.daum.net/nasica/6862514 참조) 했고, 또 최근에 벌어진 대규모 해상 작전이었던 생 도밍그 원정 (검은 나폴레옹 vs. 하얀 나폴레옹 http://blog.daum.net/nasica/6862510 참조) 때도 중추 역할을 하는 등, 가장 경험이 많았고 평도 괜찮았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이 양반은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심장마비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폴레옹은 그 빈자리에 누구를 앉혀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후보는 3명이었습니다.  브뤼 (Bruix), 빌뇌브 (Villeneuve), 그리고 로질리 (Rosily)였지요.  결국 나폴레옹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해군성 장관이던 드크레(Decres)에게 그 셋 중에서 골라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드크레도 고민을 하다, 결국 빌뇌브를 낙점합니다.  사실 드크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브뤼 제독은 당시 나폴레옹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다가 나폴레옹의 분노를 사서 파리로 쫓겨난 신세였습니다.  (불로뉴의 한가운데서 영국 침공을 외치다 http://blog.daum.net/nasica/6862514 참조)  그런데 거기서 감히 브뤼를 천거한다는 것은 드크레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리고 로질리는 별다른 경력이 없는 평범한 제독이었으므로, 당연히 남은 후보는 빌뇌브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빌뇌브를 고른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는데, 이 빌뇌브 제독은 아부키르 해전에서 영국 해군에게 당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양반의 트라우마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결국 프랑스 해군의 발목을 붙잡게 됩니다.




(1798년 아부키르 전투에서의 빌뇌브의 활약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nasica/6862485 참조)



자, 이제 빌뇌브가 넬슨을 약올리듯 따돌리며 카리브 해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보시겠습니다.  빌뇌브의 함대는 5월 14일, 그러니까 지브로올터를 빠져나온지 36일만에 카리브 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Martinique)의 수도인 포르 드 프랑스 (Fort de France)에 도착합니다.  그 2일 뒤에 카디즈에서 따라온 스페인 함대도 도착하지요.  당시 카리브 해에는 빌뇌브의 함대를 막을 만한 강력한 영국 함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빌뇌브의 함대에는 역 2천명의 육군 병력도 탑승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빌뇌브가 마음만 먹는다면 영국 식민지들을 마음껏 유린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단 물과 식량을 보충한 빌뇌브가 한 행동은 어이 없게도 그냥 기다리기였습니다.  

이 행동은 사실 명령에 어긋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빌뇌브가 받은 명령은 여기서 강톰 제독의 브레스트 함대가 봉쇄를 뚫고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합류하라는 것이었으니까요.  빌뇌브는 마치 '명령서에 명시적으로 적혀 있지 않은 사항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꼴불견을 보다 못한 마르티니크 현지 프랑스 총독이 열심히 설득한 끝에, 영국의 수십명 규모의 작은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던 다이아몬드 바위 (Diamond Rock)라는 작은 바위섬을 점령하는 정도의 공세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결국 빌뇌브는 넬슨이 따라오는 1개월 대부분을 포르 드 프랑스 항구 내에서 빈둥거리며 허비했습니다.  아, 원래 명령서에 카리브해에서 합류하라고 씌여있던 미시에시 제독의 소함대와는 조우했냐고요 ?  아닙니다.  1월 11일에 로슈로프에서 탈출했던 미시에시 제독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빌뇌브의 함대가 도착하지 않자, 기다림에 지쳐 3월 28일에 이미 유럽을 향해 회항을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바다는 육지와는 달리 함대의 이동이나 그 사이의 연락이 원활치 않다는 점을 간과한 나폴레옹 작전의 오류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 별볼일 없는 바위섬은 그 전략적 위치로 인해 1805년에 후드 제독이 대포 5문을 섬에 끌어올리고 슬룹함 (sloop) HMS Diamond Rock으로 정식으로 취역시킵니다.  그리고 이 섬에 대포를 끌어올리는데 아이디어를 발휘했던 모리스(James Wilkes Maurice) 중위를 슬룹함의 준함장(commander)로 임명했습니다.)




(이 그림은 이 HMS Diamond의 '선실' 모습입니다.  한번은 영국 해군 중위 하나가 이 섬 꼭대기에 작업을 하러 올라갔다가 부하 선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장교 식당에서 먹지 않고 선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 것은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해서 나중에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고 합니다.)



(이 섬에는 약 100명의 영국 선원들이 주둔했는데, 프랑스는 이때 이 섬을 장악하기 위해 2척의 전열함에 프리깃함 등을 3척 더 동원했고 상륙대만도 400명을 동원했습니다.  영국군은 며칠을 저항하다가 결국 탄약과 식수가 떨어져서 항복했는데, 그 지휘관인 모리스 '함장'은 나중에 '군함'의 상실에 따른 군법회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명예롭게 무죄 처분을 받았지요.  이 그림은 그 섬에서 분전했전 영국 해군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러다 빌뇌브가 움직여야 할 순간이 마침내 왔습니다.  6월 2일 이 바위섬의 영국 수비대가 항복할 무렵, 프랑스에서 용케 영국의 봉쇄를 뚫고 프리깃 디동 (Didon) 호가 명령서를 들고 도착했거든요.   이 명령서에는 곧 마공 (Rene Magon) 제독이 이끄는 전열함 2척이 도착할테니, 그들과 합류하여 한달 간 카리브해에서 영국 식민지를 공격하며 난리법석을 떨라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뒤에 전 함대를 이끌고 브레스트로 돌아와 강톰 제독의 봉쇄를 풀고 불로뉴의 대군이 영불 해협을 건너는 것을 엄호하라는 것이었지요.  더불어, 이 명령서에는 '너의 뒤를 쫓던 넬슨은 이집트로 갔단다 ㅋㅋㅋ' 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넬슨 이집트설에 용기를 얻은 빌뇌브는 마침내 출항하여 안티구아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인 6월 7일, 빌뇌브의 함대는 영국 상선대를 만나 이를 추격, 다음날 이들 중 몇척을 나포하는 개가를 올립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빌뇌브는 또 충격을 받습니다.  나포된 영국 상선으로부터 얻은 소식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넬슨이 바로 3일 전 바베이도스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  넬슨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겁에 질린 빌뇌브는 즉각 이리저리 기만 동작을 보인 뒤 동쪽, 즉 유럽 쪽을 향해 냅다 뜁니다.  그토록 명령서 문장에 충실했던 그도, 정작 넬슨과 부딪히게 되자 '함대의 보존이 더 중요하다'라며 갑자기 풍부한 융통성을 보였던 것이지요.


------------------------------------------------------


원래는 당연히 훨씬 더 글이었어야하나, 잠 안자고 축구보느라 피곤한 것도 있고 또 너무 더워서 이번주는 그냥 여기까지만 쓸랍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브라질이라고 다리가 4개 달린 괴물들이 아니니 항상 가능성이야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