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푸딩 이야기

by nasica-old 2008. 11. 9.
반응형

 

 

 

Post Captain by Patrick O'Brian (배경 : 1804년 영국)-----------------

 

잭은 캐닝에게 말했다.  "이번엔 말입니다, 아마 선생님을 즐겁게 해드릴 해군 요리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우린 그걸 피기-다우디(figgy-dowdy)라고 부른답니다.  내키지 않으면 안드셔도 됩니다.  여긴 자유로운 공간이니까요.  제 판단으로는, 식사를 마무리짓기에 딱 좋은 디저트입니다만, 어쩌면 제 입맛이 거기에 길들여져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캐닝은 그 희미한 빛깔의, 약간 투명하고 끈적거리는 음식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그런 것을 처음 본 것이다.

 

 

 

 

 

"먼저 해군용 건빵을 꺼내다 튼튼한 캔버스 자루에 집어넣고요," 잭이 말했다.

 

"청새치용 작살로 한 30분 정도 두들깁니다." 풀링스가 이어받았다.

 

"거기에 돼지기름 약간하고 서양자두, 무화과, 럼, 커란트(일종의 산포도)를 넣은 뒤에," 파커가 말했다.

 

"그걸 주방에 보내서 끓인 뒤, 갑판장의 그록(물과 럼을 섞은 것)과 함께 내놓지요." 맥도널드가 말했다.

 

캐닝은 이 새로운 경험, 즉 해군의 입맛을 경험하는 것이 아주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군함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맛도 아주 훌륭하군요." 캐닝이 말했다.  "정말 맛있군요.  그리고 이게 그 갑판장의 그록이라는 겁니까 ? 한잔 더 달라고 해야 하겠는데요 ? 아주 훌륭해요, 훌륭해." 

 

------------------------------------------------------------------------

 

한식에 비해, 서양식 요리를 먹을 때의 큰 기쁨 중의 하나가 바로 디저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식사가 끝나고는 과일로 입가심을 하는 것에 비해, 서양에서는 뭔가 달고 기름진 것을 먹지요.  원래 정말 우리 조상들, 좀더 세분화하면 부유한 양반들이, 과일이든 뭐든 후식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식사 후에 과일을 먹는 것도 서양식 디저트를 따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댁에서들 식사 끝나면 과일 드십니까 ?  저희 집에서는 안먹습니다.

 

또 군대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카투사있을 때 미군 대위와 결혼한 한국 아주머니가 저희 부대 중령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예쁘장한 아주머니였는데, 이 아주머니 말씀이, 자기 남편만 하더라도, 저녁을 잔뜩 먹어놓고도, 식탁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금방 감자칩이나 뭐 그런 군것질을 곧바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해가 안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무튼 서양식 식습관은 디저트라는 개념이 꼭 들어가나 봅니다.

 

디저트 중에 푸딩이 있지요.  저는 푸딩이라고 하면, 뭔가 젤라틴 형태의 음식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니, 제가 어렸을 때 XX 푸딩이라고, 그런 플라스틱 컵에 담긴 반투명 젤라틴 형태의 과자(?)가 나왔었어요.  아마 그 영향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제가 진짜 푸딩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본 것은 (죄송합니다) 또 군대였습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2달 넘게 척박한 생활을 하다가, 평택의 카투사 교육대, 그러니까 미군 시설로 넘어간 뒤 처음 한 식사 메뉴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Creamed ground beef and steamed rice(여기서의 쌀은 안남미)"에, 디저트로는 초콜릿 푸딩이 나왔습니다. 

 

당시 식빵 한조각과 함께 작은 소스 접시에 초컬릿 푸딩이 담겨져 나왔는데, 우리들은 모두 그게 빵에 발라먹는 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힐끗 메뉴판을 보니 푸딩이더군요.  빵에 들어가는 슈크림같은 느낌의 푸딩은, 일부는 약간 따뜻한 부분이 남아있고, 일부에는 작은 얼음조각이 섞여있어서 차가왔습니다.   한마디로 상태가 안좋은 푸딩이었지요.  나중에 군기가 좀 풀어지고 나서야, 카투사 교관이 '야, 그거 빵에 발라먹는거 아니다.' 하고 알려 주더군요.

 

당연하게도, 제대하고 나서는 푸딩을 먹을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뭐 사실 따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푸딩을 먹어본 것이, 몇년 전에 미국에 가서 어떤 인도 음식 부페 식당에서였습니다.  말이 인도 식당이지, 부페 상 차려놓은 곳에 가서 보니까 태반은 그냥 미국 음식 또는 미국화된 인도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디저트 코너 한쪽 구석에 놓인 커다란 펀치 보울 같은 곳에, 마치 우리나라 식혜 비슷한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목을 보니 'rice pudding'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어느 소설인가에서 읽어본 적은 있었으나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서, 한번 먹어봤어요.  우유빛 액체 속에 밥알 (물론 안남미)이 동동 떠있는 것은 정말 우리 식혜와 비슷했으나, 그 액체가 거의 시럽 수준으로 찐득찐득하고 게다가 정말 시럽처럼 달다는 것은 다르더군요.  한마디로 말하면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 뒤로 몇년 지난 뒤에 인터넷질을 하다가 rice pudding의 레시피를 찾았습니다.  의외로 재료도 간단하고 해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만, 결과는 'Not even close', 대실패였습니다.  제대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아무튼 레시피 자체가 우유반 설탕반이었으니, 건강에는 확실히 안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 위에 나오는 해군식 피기-다우디도 일종의 푸딩입니다.  그 모습은 제가 먹어본 라이스 푸딩과는 좀 다르게, 떡처럼 좀 굳은 형태인 모양이네요.  푸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이 다 슈크림 또는 죽 같은 형태는 아닙니다.  또 사실 푸딩이 뭐 그리 대단한 음식도 아닙니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에도 푸딩이 나옵니다만, 거기서 주인공이 이탈리아군 야전 장교 식당에서 먹은 푸딩은 그냥 굳은 빵으로 만든 간단한 것이라고 표현됩니다.  또 국내 포털을 잠깐만 뒤져봐도 식빵같은 것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푸딩 요리법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먹어본 적은 없지만, 영국인들이 크리스마스에 즐겨먹는다는 suet pudding 이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Suet은 소의 콩팥 부분에 있는 기름 덩어리인데요, 이걸로 만드는 푸딩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라이스 푸딩과 비슷한데 다만 우유가 아니라 소의 기름을 넣나보다 라고 생각하고는 그 맛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만, 야후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그냥 케이크 모양이네요.  Suet pudding에 대해서는 아래의 Sharpe 시리즈 중 한장면을 읽어보세요.

 

 

 

 

Sharpe's Christmas  (1813, 배경 : 스페인-프랑스 국경지대) ------------------

 

하퍼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황소떼 중 한마리를 가리켰다.

 

"쟤가 기름이 잘 올랐네요, 소령님.  아주 잘 구워지겠어요."  선택된 황소는, 자신의 운명도 모른채, 그 두 남자를 쳐다보았다.

 

"정말 못 쏘겠어."  샤프가 불평을 했다.

 

"이제 크리스마스란 말입니다, 소령님."  하퍼는 그의 지휘관을 다독거렸다.  "제대로 된 로스트 비프에, 서양자두 푸딩과 와인이 있어야지요.  이미 서양자두와 와인은 구해놓았으니까, 이제 필요한 건 쇠고기와 수엣(suet) 뿐이에요."

 

"수엣은 어디서 나는데 ?"

 

"물론 황소에서 뽑아내는 거지요 !  콩팥 옆에 층층이 쌓였다니까요. 그러자면 먼저 저 불쌍한 축생을 쏘셔야지요.  산 채로 뽑아내려면 불쌍하지 않습니까 ?"

 

샤프는 황소 곁에 더 다가갔다.  황소는 아주 큰, 갈색의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나 못하겠어, 패트릭."

 

"딱 한방이에요, 소령님.  저게 프랑스놈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샤프는 라이플을 올리고는 노리쇠를 당기고, 소의 눈 사이를 겨냥했다.  소는 원망스럽다는 듯이 샤프를 쳐다보았다.

 

"자네가 쏘게."  샤프는 하퍼에게 말하며 총구를 내렸다.

 

"이걸로요 ?"  하퍼는 9개의 총신이 달린 그의 발리건 (volley gun : 원래 해군용으로 개발된, 9개의 총알이 한꺼번에 발사되는 무지막지한 소총 - 역주)을 들어보였다.  "이걸 쏘았다가는 황소 머리통이 남아나질 않을 걸요 !"

 

"우린 황소 머리는 필요없쟎아 ?"  샤프가 말했다.  "그냥 고기하고 수웻만 필요하니까.  그냥 쏘게."

 

"소령님, 이 발리건은 말이죠, 명중률이 별로 좋지 않아요.  떼거리로 몰려있는 프랑스 개구리들 죽이는데는 좋지요.  하지만 소 도살에는 좋지 않습니다."

 

"그럼 내 라이플을 쓰게."  샤프는 자신의 무기를 내밀었다.

 

하퍼는 말없이 그 라이플을 잠시 쳐다보았지만, 받아들지는 않았다.  "실은 말이죠, 소령님. 어제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습니다.  제 손이 막 떨리는 거 보이세요 ?  아무래도 소령님이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소설 본문에도 나왔지만, 특히 저 suet pudding은 크리스마스 때 영국 가정에서 많이들 만들어먹나 봅니다.  저 위의 suet pudding 그림을 보면, 위에 뭔가 잎사귀들이 보이지요 ?  그건 원래 호랑가시나무, 즉 영어로는 holly라고 하는 식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보이네요...)  Holly라는 것은 유명한 캐롤인 "Deck the halls with bows of holly"에 나오는 바로 그 holly입니다.  모양은 아래 사진과 같은데, 주로 크리스마스 장식에 많이 쓰이지요.  Suet pudding은 위에 저렇게 holly를 얹고, 브랜디를 뿌려서 촉촉하게 만들어 식탁에 내놓는다고 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