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Small Beer와 보리차

by nasica-old 2008. 11. 5.
반응형

 

 

 

Ionian Mission by Patrick O'Brian  (배경 180X년 영국) ----------------

 

"송로버섯을 좀 드릴까요 ?" 스티븐은 옆자리에 앉은 노부인에게 말했다.

 

"아, 전 사양하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댁이 드신다면 아주 기쁘겠네요.  저같은 늙은이의 충고를 받아주신다면 말씀드리겠지만, 아직 젊어서 소화가 된다면야 송로버섯이란 송로버섯은 기회닿는대로 모두 드시는 게 좋을거에요."

 

"그러면 제가 먹어야겠군요." 스티븐은 그렇게 말하고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인 음식에 스푼을 꽂았다.  "저는 조만간 송로버섯은 볼 일이 없거든요.  내일 바람만 좋으면 출항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건빵과, 소금에 절인 말고기, 말린 완두콩에 small beer를 주식으로 삼게 됩니다.  최소한 보나파르트가 폐위되기 전에는 말이죠."

 

--------------------------------------------------------------------

 

 


 

저기서 말하는 small beer란 무엇일까요 ?  저는 영어책을 볼 때, 귀차니즘의 영향으로 인해 왠만하면 영어 사전을 잘 안봅니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 뜻을 넘겨 짚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저 small beer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사전을 찾아보기 전에는, 저는 저 small beer라는 것을 그냥 '맥주 약간' 정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 시대를 그린 Sharpe 시리즈나 Aubrey-Maturin 시리즈를 읽다보니, small beer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눈치를 챘지요.  '아, 이게 그냥 맥주 약간이라는 뜻은 아니고 뭔가 명사인 모양이구나.'

 

사전을 찾아보니, 알코올 함량이 매우 적은 맥주라고 되어 있네요. 

 

그러고나니까, 예전에 번역해놓았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Sharpe's Rifles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9, 스페인) ---------------

 

"예, 부인"


"부하들이 술을 마신단 말이요 ?"


"병사들은 술을 배급받도록 되어있습니다, 부인."


"배급이라고 ?"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 말썽을 예고하는 듯 했다.


"영국 육군 규정에 따르면, 부인, 하루에 포도주 1 파인트 (베스킨 라빈스의 1파인트 그릇 생각하시길... 역주) 또는 럼주 1/3 파인트를 배급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병사 한명당 말이에요 ?"


"물론입니다, 부인"


"그들이 크리스챤 가족을 안전지대로 호위 중일 때는 안됩니다."  파커 부인은 치마 속 주머니에 지갑을 쑤셔넣었다.  "우리 주님과 구세주의 돈으로 술 같은 걸 살 수는 없어요, 중위.  부하들에게는 물을 마시라고 하세요.  내 남편과 나는 물 외에는 마시지 않는답니다."


"또는 small beer를 마시기도 하지요."  조지 파커는 서둘러 정정을 했다.

--------------------------------------------------------------------

 

전에는 맨 마지막 조지 파커의 대사를 "또는 맥주를 약간 마시기도 하지요." 라고 해서 번역을 해놓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 파커 가족은 본문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독실한 선교사들이라서, 술은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조지 파커가 서둘러 한마디 붙이는 것을 보고, '아, 술을 안마시는 엄격한 종교인도 맥주 정도는 허용이 되나보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 아니네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무알콜 맥주를 파는 곳이 있긴 있었지요.  바로 노래방.  원래 노래방에서는 알콜성 음료를 팔면 안되는데, 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내고 싶은 손님들을 위해서 OB인가 어디에서 무알콜 맥주를 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망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은 OB에서는 그 전부터 무알콜 맥주를 계속 만들어서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중동국가들로요.  그쪽 동네는 (적어도 겉으로는) 매우 신실한 이슬람이어서, 절대 주류를 마시면 안되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그쪽 동네는 맥주를 마셔야 할 의료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사막의 모래인데요, 이 작은 모래들로 인해, 남성들이 요로 결석에 걸릴 위험이 더 높대요.  그래서 맥주 같은 것을 자주 마셔서 이뇨 작용을 활발히 해야 그 위험을 낮출 수 있는데, 이슬람에서는 맥주를 못마시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무알콜 맥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이유로 무알콜 맥주를 수입하는 건 그야말로 페인트 모션이고, 이 사람들도 무알콜 맥주를 마신다고 하면서 사실은 진짜 맥주를 마셨던 것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제가 너무 사람을 못믿나요 ?  음... 커피나 홍차도 이뇨작용을 활발히 해주는데... 왜 굳이 맥주를...?)

 

저 small beer는 중세 시절부터 아주 인기있는 음료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뭐 맹물보다야 맛이 좋다는 것도 있지만 주로 그 이유가 위생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일단 small beer에 들어있는 0.5 ~ 1%의 알콜이 살균 효과가 있었고, 또 small beer이건 진짜 beer이건 맥주를 만들 때는 끓인 물을 쓰기 때문에, 더욱 안심하고 마셔도 되는 물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최근까지도, 비슷한 개념의 음료가 있었습니다.  바로 보리차이지요.  요즘이야 식당에서 주로 생수를 제공합니다만, 불과 1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써놓고 보니까 불과가 아니군요 !) 식당에서는 주로 보리차를 내놓았습니다.  왜 보리차를 내놓느냐고요 ?  맛보다는, 최소한 끓인 물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ㅎㅎ, 실제로 대부분의 식당에서 내놓던 보리차는 끓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리차를 끓이고, 그걸 식히고 하는 일은 굉장히 번거롭고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가게 문 닫기 전날 수돗물에 보리차 한줌을 뿌려놓고 퇴근한대요.  그 다음날 아침에 와보면 차가운 보리차 완성 !  그러니까 사실 오히려 위생에는 더 안좋았대요. 

 

 


 

중세 시절의 small beer는 정말 우리나라 보리차 정도의 용도로 사용되었고, 또 가치도 보리차 정도였답니다.  가격이 아주 쌌다는 이야기지요.  셰익스피어의 오델로에 이런 장면이 나온답니다.  여주인공인 데스데모나가, 남자 주인공 이아고에게 '이상적인 여자상'을 대보라고 하자, 이아고가 내놓는 조건들 중에 'chronicle small beer' 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small beer의 소비 내역을 연대기로 적는다는 뜻인데, 집안의 하찮은 비용까지도 일일이 챙기는, 알뜰한 (...라기보다는 째째한) 성품을 말한다고 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