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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함장님 ! 군함 바닥에서 물이 샙니다 !!

by nasica-old 2008.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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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군함들의 수명은 대략 몇년일까요 ?

 

저도 고딩 시절에 한때 해군사관학교에 가보겠다고 관심이 좀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당시 우리나라의 주력함인 구축함들은 미군이 2차세계대전 이후 쓰던 것을 60년대에 한국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부분이, 그 통로나 선실의 쇠바닥에 미끄럼 방지용으로 격자 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당시 우리나라 구축함들은 그 격자 무늬가 다 닳아서 평평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사관학교 안갔거든요.

 

네이버 같은 곳을 찾아보니, 돈많은 미국같은 나라는 대개 군함의 수명을 30~40년으로 잡는 모양입니다.  아마 더 오래 쓸 수도 있지만, 유지보수비도 많이 들고, 또 30~40년전의 무기체계로는 최신예 장비를 갖춘 적군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략 그 정도만 쓰고 퇴역시킨다고 들었습니다.

 

강철로 만든 군함도 40년 정도만 쓰는데, 나무로 만든 목조 군함의 경우 몇년을 썼을까요 ?

역시 대략 40년 정도를 썼다고 합니다. 

 

 


 

1792년부터 1815년 사이,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영국 해군의 군함 명부를 보면, 각 군함이 언제 진수되어 언제 퇴역했는지가 나옵니다.

가령 1급함, 즉 포 100문짜리 전함인 HMS Britania 호의 경우, 1762년에 진수되어 1812년에 St. George 호로 이름을 바꾼 기록이 있습니다.  최소한 50년 이상 현역에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2급함인 HMS Atlas 호의 경우 1782년 진수되어 1814년에 '항구 임무'로 전환됩니다.  32년간 현역에 있었다는 겁니다.  HMS Princess Royal 호의 경우는 1773년 진수되어 1807년에 폐기 처분됩니다.  34년입니다. 

 

영국 해군 역사상 최장 기간 동안 현역으로 있었던 군함은 HMS Royal William 호였습니다.  1670년 HMS Prince라는 이름으로 100문 짜리 전함, 즉 1급함으로 화려하게 군생활을 시작한 이 군함은, 1719년 HMS Royal William이라는 이름으로, 84문 짜리 3급함으로 개조됩니다.  결국 1790년까지 무려 120년간을 현역에서 복무합니다.  '항구 임무'로 전환된 뒤에도 23년간 더 생존하다가, 1813년 마침내 폐기처분됩니다. 

 

이렇게 오래된 배들은 당연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원래 나무로 만든 배들은 항상 물이 샜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컴퓨터도 없고 정밀 공작 기계도 없던 시절에 사람이 손으로 톱질을 해서 만든 목재를 이어붙여 만든 선체에서 목판 사이로 물이 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목판 사이의 틈을 매우기 위해서 무엇을 썼을까요 ?  우리 말로는 보통 뱃밥으로 번역되는, oakum(오컴)이라는 것을 썼습니다.  이 뱃밥이라는 것은 당시 범선에서 많이 쓰이던 밧줄 중에서 낡고 굳어서 못쓰게 된 것을 풀어낸, 그러니까 삼나무 섬유 부스러기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뱃밥이라는 것을 만드는, 즉 오래된 굳은 밧줄을 풀어내는 일은 일일이 손으로 해야하는, 엄청나게 고되고 손끝이 다 부르트는 중노동이었습니다.  당시 이런 뱃밥 만드는 작업은 극빈층의 아동들이나 죄수들이 주로 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밤에 가난한 가족들이 모여 앉아 새끼를 꼬았는데, 영국에서는 새끼를 풀었군요 !)  제가 좋아하는 샤프 시리즈에서도, 주인공 샤프가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이런 밧줄을 매일 2미터 이상 풀어헤쳐야 했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뱃밥은, 조선소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배의 선체가 만들어지면, 이 뱃밥을 목판 사이사이에 단단히 그리고 촘촘히 박아넣고, 그 위에 뜨거운 타르를 칠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물이 샜지요.  그래서 당시 범선들에는 반드시 앞뒤 갑판에 펌프가 달려있었습니다.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당시 배는 틈 사이로 새들어오는 물의 양이, 선원들이 펌프질해서 퍼내는 물의 양보다 많아지면 침몰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선원이 타고 있지 않은 배, 또는 선원들이 농땡이질하는 배는 결국 언젠가는 침몰하는 것이었지요.  또, 오래된 배일 수록, 뱃밥과 타르가 굳어서 배의 목판 사이에서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삐져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래된 배일 수록 물이 더 많이 샜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랬기 때문에, 굳이 오래된 배가 아니더라도, 폭풍이 몰아치거나 전투가 한창인 중에도, 담당 사관은 함장에게 '현재 선창에 고인 물의 수위는 3 피트입니다' 라는 식으로 현재의 침수 정도를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했습니다.  상황이 나빠지면 전투 중에라도 대포에서 인원을 빼내어 펌프에 충원을 해야 했겠고, 더 손쓸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리면 '전원 권총과 검을 준비하라. 적함을 탈취한다' 라고 명령을 내려야 했을 겁니다.

 

 

 

(비키셈 우리 배에 지금 물이 콸콸 샘 - �미 ? 우리 배는 더 샘) 

 

소위 말하는 HMS, 즉 국왕의 군함이 버들고리로 만든 소쿠리마냥 물이 새는 것도 문제였습니다만, 그건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가끔씩, 선체를 이루는 목재가 썩어서 대양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통째로 파선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나 봅니다.  이런 형태의 파선 (foundering)을 막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로, 이 시대의 군함 바닥은 구리판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구리판으로 목조 군함의 홀수선 아래 부분을 감싸는 것을, 흔히 따깨비나 해초가 달라붙어 군함 속력이 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실은 그보다는 그런 것들로 인해 뱃바닥의 치명적인 부식 손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기사 이런 문제는 굳이 오래된 군함이 아니더라도, 뇌물과 부정행위로 범벅이 된 해군 건조창 탓에, 불과 20~30년된 군함들도 이렇게 갑자기 파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Post Captain by Patrick O'Brian (배경: 1803년 영불 해협) ----------------

 

(잭의 함장실에서 잭과 스티븐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기 자네가 관심있어할 만 한 것이 있네. 자네 '강도 볼트(robber-bolt)'라는 거 들어본 적 있나 ?"

 

"아니, 없네."

 

"이게 그거라네."  그는 한쪽 끝에 커다란 너트가 달린, 짧고 굵은 구리 봉을 내밀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볼트라는 것은 굵은 목재판을 관통해서 선체 접합에 사용되는 것이라네.  가장 좋은 재료는 구리지.  녹이 슬지 않으니까.  구리는 비싼 물건이지.  아마 2파운드의 구리, 즉 짧은 구리 볼트 한개면 조선소 기술자의 하루 일당은 될 거야.  만약 자네가 아주 나쁜 악당이라면, 볼트의 중간은 잘라내고, 양쪽 끝만 선체에 박아넣어서 마치 멀쩡한 접합부인 것처럼 해놓고, 그 잘라낸 구리 볼트를 팔아서 돈을 챙길 수 있네.  실제로 선체가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어.  그리고 선체가 벌어지는 것은 배가 세상 저 반대편 바다에 나가 있을 때겠지.  게다가 배가 그런 식으로 파선하면, 아무 흔적이나 형체도 남기지 않는다네."

 

"이 사실을 언제 알았나 ?"

 

"난 처음부터 의심했었네.  힉맨 조선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는 이 배가 아주 형편없이 만들어졌을 거라는 것을 짐작했었어.  게다가 그 조선소의 인간들은 아주 역겹고, 기자재를 아주 거리낌없이 다루지.  하지만 확신한 것은 바로 며칠 전이야.  이제 이 폴리크레스트 호가 바다에 나와서 좀 힘을 받으니까, 그 사실이 분명해지더군.  난 이걸 선체에서 내 손가락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네."

 

"적절한 기관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나 ?"

 

"할 수 있었지.  조사를 요청한 뒤 한달이나 6주 정도 기다릴 수 있었어.  하지만 그러고난 뒤에 난 어디로 가겠나 ?  이건 조선소의 일이고, 군함 상태가 어떻건 간에 검수를 통과한다거나, 보잘 것 없는 서기들이 그런 일들을 꾸민다는 뭐 그런 음울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네.  아니. 난 그냥 이 배를 몰고 나오고 싶었어.  사실 여태까지는 이 배가 풍랑에도 잘 견뎌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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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당시 영국 해군 군함들 중 좋은 것들은 대개 프랑스 해군이나 스페인 해군에서 나포한 것들이었고, 영국 해군 조선창에서 만든 배들은 항해성이나 내구성 면에서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합니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 직전에 민간 조선소와 계약을 맺고 건조된 전열함 40척은 그 품질이나 성능이 그야말로 영국 해군의 수치로 여겨져서, '아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빗대어 '40척의 도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이런 목조 군함들 중, 놀랍게도 현재도 남아있는 군함이 있습니다.  바로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 때 기함으로 사용했던 HMS Victory 입니다. 1765년 당대 최고의 군함 설계자인 토마스 슬레이드 경에 의해 진수된 이 100문짜리 1급 전함은, 1805년 넬슨과 함께 트라팔가 해전을 치른 뒤, 1822년에 가서야 헐크선으로 전환됩니다.  무려 57년간의 현역 생활이었습니다. 이 상태로 소금물에 바닥을 담근 채 1922년까지 있다가, 그 해에 드라이 독으로 옮겨져서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1805년 트라팔가 해전 당시 사용되었던 HMS Victory의 진짜 돛이라고 합니다.  흠... 저런 걸 보존하는 전통이 부럽군요.)

 

 


 

당시 군함들은 모두 오크, 즉 떡갈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군함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떡갈나무의 평균 나이는 대략 80~100년이었습니다.  영국이 뭐 삼림지대도 아니고, 100년짜리 떡갈나무가 동네마다 빽빽히 들어서 있지는 않았겠지요.  이런 나무들은 대개 발트해 지역 국가들, 특히 스웨덴 등으로부터 수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스웨덴 쪽에 손을 뻗칠 때 영국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었다고 합니다. 

 

떡갈나무라고 아무거나 다 배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배에서 구조 역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릎(knee)'이라고 하는 부분은, 워낙 힘을 크게 받는 부분이라서 그냥 직선의 나무를 깎아서 만들면 충분한 강도를 낼 수 없었고,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자연스럽게 원하는 각도로 자란 것을 골라 써야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구하기도 어려웠고, 값도 비쌌겠지요.

 

 

 

 

18세기 말, 1척의 3급함, 즉 74문의 대포를 탑재한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대략 5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액수를 현재 피부로 느껴지는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해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 육군 대위 연봉이 대략 190 파운드였습니다. 5만 파운드라면 263년치 연봉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현재 대위 연봉을 대략 2천5백 정도라고 보면, 당시 5만 파운드는 현재 가치로 대략 65억원에 해당합니다   생각보다 싼데요 ?  계산이 잘못 되었나...   현재 우리 해군의 차세대 주력함인 KDX-3의 경우 약 5천억~1조원이 든다고 합니다.  대신 당시 영국 해군은 이런 군함을 100여척 정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현재 해군은 KDX-2급 함정도 10척 미만일 겁니다.  (구체적인 숫자는 저도 잘 모릅니다 !)  하긴, 예전에 이런 군함 10척이 하던 일을 이런 현대적 군함 1척이 하고도 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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