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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웰링턴 공작의 이름이 웰링턴이 아니라고 ??

by nasica-old 200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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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 장교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Hornblower 시리즈라는 역사 소설이 있습니다.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햅번 주연의 명작 영화 '아프리카의 여왕'의 원작자이기도 한 C.S. Forester라는 본좌 작가의 대표작이 바로 이 혼블로워 시리즈입니다.   저를 나폴레옹 시대의 역사물 쪽으로 이끈 작품인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은 보잘 것 없고 별로 뛰어나지도 않은 혼블로워라는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이, 자기 힘으로 장교로 승진하고, 함장이 되고, 결국 큰 공을 세워 귀족의 반열에 오르고 제독까지 되는, 그야말로 인생 역정을 그린 총 10권짜리 작품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국내에서는 연경사에서 출판되어 나왔습니다.

 

 

 

 

 

이 소설의 제1권인 'Midshipman Hornblower' 편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해군 중위가 영국 육군 소령을 만나 인사를 하는데, 해군 중위가 해군식으로 "Aye, aye, sir" 라고 대답을 하자, 귀족이었던 그 육군 소령이 이렇게 대꾸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를 부를 때는 Yes, my lord 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는 많은 귀족들이 있었습니다.  귀족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통답게, 많은 귀족 청년들은 육해군 장교로서 최전선에서 복무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유럽 귀족의 이 전통은 정말 부러워할만 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교들은 귀족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대개는 젠트리, 즉 소위 말하는 신사 계급 출신이었지요.  문제는 이 신사 계급이라는 것이 뭐 뾰족하게 자격 요건이 있는 계층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냥 중산층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평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귀족 출신의 장교들은 귀족 출신이라고 뭐 특별히 더 우대받는 것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오직 하나, 저 위에 나온 것처럼, 본인이 진짜 귀족인 경우에만 호칭을 특별히 불러주었지요.  평민 출신의 대령이 귀족 출신의 대위를 호되게 꾸짖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자, 여기서 한가지,  제가 저 위에 '귀족 출신'의 장교라고 부른 경우와 '본인이 진짜 귀족인 경우'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  여기서 유럽 대륙의 귀족들과, 영국 귀족들과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대륙에서는, 귀족 집안이면 모두가 귀족으로서 대우를 받고, 여러가지 법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작위를 가진 백작이나 남작같은 본인만 '진짜 귀족'으로 인정되고 나머지는 모두 법적으로 '평민 (Commoner)'에 불과했습니다.  즉, 백작의 아들이라고 해도, 백작이 죽어서 그 작위를 상속받기 전에는 그냥 평민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백작의 아들이고, 백작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장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냥 평민으로 계속 살아가야 했습니다.  영지같은 것들도 모조리 작위와 함께 장자에게 100% 몰빵으로 넘어갔습니다.  저 위에 자기를 'my lord'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젊은 소령 같은 경우는 본인이 백작인 경우입니다.  그냥 백작의 아들인 경우에는 그렇게 불러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귀족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장자가 아니라서 실제로는 개뿔도 없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귀족 가문 출신이다보니 허드렛일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굶어죽기 딱 좋았기 때문에, 뭔가 그럴싸한 직업을 가져야 했습니다. 

 

당시 신사들이 할 만한 직업은 딱 4가지가 있었습니다.  법률가, 성직자, 육군 장교, 해군 장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외의 직업들, 가령 뭔가 해외 무역업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tradesman'이라고 해서 약간 멸시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서 tradesman이라고 할 때의 trade는, 꼭 무역이나 거래를 뜻하는 것이 아닌, 생업으로서의 직업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법률가나 성직자는 공부를 많이, 아주 잘해야 했기 때문에, 대개의 귀족 청년들은 육해군 장교를 택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수상인 처칠도 아주 유서깊은 귀족 가문입니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청년 시절에 개차반이었고 공부도 지지리 못했다고 합니다.  이 양반도 젊었을 때 육군 기병 장교로 복무해서 실전에도 참전했었습니다.

 

 

 

(1895년 제4 경기병 연대 소속이었던 이 잘 생긴 귀족 청년은, 45년 후 아래와 같이 몰골로 변합니다.)

 

 

 

이렇게 영국에서는, 귀족의 특권(가령 귀족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귀족들로만 구성된 별도 재판정에서 따로 특별 재판을 받는다는 등등)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을 엄격히 통제하다보니, 그 숫자가 상당히 적었습니다.   1800년 즈음에, 영국의 인구는 대략 1천 5백만, 그 중 소위 말해서 공식적으로 귀족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고작 200 여명 정도였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0.0013%.  하지만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인구가 약 2천 5백만 정도였던 프랑스에서는 귀족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25만명에 달했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1%가 귀족이었던 것이지요.

 

어느 쪽 귀족이 더 높은 대우를 받았겠습니까 ?  당연히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영국 귀족이야말로 진짜 귀족다운 생활이 가능했고, '귀족 인플레이션'이 팽배했던 프랑스나 다른 유럽 대륙의 귀족들은 호칭만 귀족일 뿐 실제 생활은 그냥 시골 농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Sharpe's Devil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20년 프랑스) ------------------

 

(워털루 전투가 끝난 뒤, 영국군 장교인 샤프는 몰락한 프랑스 귀족 미망인인 루실 카스티노와 정분이 나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루실의 농장에서 농부로서 살아갑니다.)

 

루실은 자신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칭호 대신, '마담 리차드 샤프'로 오해되는 것을 더 좋아했었다.  하지만 지금 샤프는, 루실도 재미있게 여길 정도로, 루이자에게 그녀를 Vicomtesse de Seleglise, 즉 세글리즈 자작 부인으로 소개했다.  모우로모르토 백작 부인인 루이자는 그 호칭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루실은 항상 그렇듯이, 그런 말도 안되는 작위 놀음은 프랑스 대혁명 때 이미 폐지되었고, 게다가 고대 프랑스 가문에 연관된 누구라도 어디선가 아무 호칭이나 하나쯤 끌어낼 수 있다고 하며 그런 호칭을 사양하려 했다.

 

"프랑스 농부들 중 절반은 자작이랍니다." 세글리즈 자작 부인은 겸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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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인용된 소설에서 루실, 즉 세글리즈 자작 부인이 하는 말이 꼭 겸손만은 아닙니다.  가령 알렉상드르 뒤마의 스릴러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경우만 봐도, 주인공이 감히 돈 좀 있다고 백작을 사칭하고 다녀도, 누구도 그 진위 여부를 쉽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즉, 프랑스에서는 자칭 백작이나 남작 같은 것은 발에 차이도록 많았던 것이지요.  영국같은 경우리면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줄거리의 소설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아마 양반 가문일 걸요 ?  그 많은 상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  ㅎㅎㅎ  어차피 다 부질없는 체면 문화일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영국 귀족의 이모저모에 대해 좀더 보도록 하시지요. 

 

 

 

 

아마 웰링턴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영국의 장군이지요.  그러나 그 사람의 이름은 사실 웰링턴이 아니었습니다.  그 양반의 이름은 아더 웰슬리 (Arthur Wellesley)였습니다.  이 양반 가문도 원래부터 유명한 귀족 가문이었습니다만, 이 양반이나 이 양반의 형도 각각 군인 및 정치가로 성공해서 모두 스스로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원래 이 웰슬리 가문은 지방 영지에 근거한 모닝턴 백작 (Earl of Mornington)이었습니다만, 정치가였던 형이 개인적인 공적을 세워 개인적인 작위를 받게 되면서 웰슬리 후작 (Marquis Wellesley)가 됩니다.  뒤이어 공작이 된 아더 웰슬리는, 이미 형이 웰슬리라는 가문 이름을 써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웰링턴 공작이 된 것입니다.  왜 웰링턴이냐고요 ?  그냥 웰슬리라는 가문 이름과 될 수 있는대로 비슷한 이름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웰링턴이라는 이름 때문에, 당연히 공작은 영지가 있을 테니까라고 생각하시면서 영국에 웰링턴이라는 지방명이 있는지 찾으실 수도 있습니다.  실은 저도 찾아보았는데, 뭐 눈에 띄는 곳은 뉴질랜드의 수도 이름 밖에 없더군요.  사실 작위에 어느 지방명을 붙이는 것이 꼭 그 지방을 영지로 소유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합니다.  

 

원래 이렇게 작위 이름은 영지에 근거한 이름이 있을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이름이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군이나 제독을 새로 백작이나 자작에 봉할 때, 그 이름은 대개의 경우 스스로 정했다고 합니다.  웰링턴 공작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름을 정할 때 특별히 엄격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활용해서 지을 수도 있고, 자기와 연관있는 지방명을 따서 지을 수도 있었습니다.  가령 저 위에서 언급한 혼블로워 시리즈의 주인공 호레이쇼 혼블로워는, 나중에 남작에 봉해질 때, 그냥 자기 이름, 그것도 상당히 유치한 이름인 혼블로워를 그대로 따서 'Lord Hornblower'가 됩니다.  그에 비해 그의 상관인 펠류 제독은 'Lord Exmouth'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실제의 예를 들어볼까요 ?  가령 2차 세계대전 때 북아프리카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사막의 여우 롬멜을 패배시킨 영국 육군의 몽고메리 원수는 나중에 알라메인 자작 (Viscount Montgomery of Alamein)으로 봉해집니다만, 그렇다고 몽고메리가 알라메인을 자기 소유로 가졌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아마도 몽고메리는 엘 알라메인 전투를 평생 기념하고 싶은 업적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면 몽고메리의 아들이나 혼블로워의 아들은 무엇이라고 불리웠을까요 ?  분명히 그 젊은이들은 'my lord'라고 불릴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공식 호칭은 그냥 앞에 'Honourable'을 붙이는 것에서 끝났습니다.  법적으로, 그들은 그냥 평민일 뿐, 아버지가 죽어서 그 작위를 물려 받을 때까지는 공식적인 귀족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영국 여왕의 직계 가족, 소위 말하는 로열 패밀리조차도, 법적으로는 평민(commoner)에 속한다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직계 왕자들의 경우는 The Prince of Wales니 The Duke of York니 하는 개개인의 작위를 갖기 때문에 공식적인 귀족(peer)이 됩니다.  영국에는 왕(Sovereign)과 귀족(peer) 외에는 모두가 평민(commoner)일 뿐이라고 하네요.  좀 의외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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