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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왜 서양이 동양을 압도했는가 ?

by nasica-old 2008.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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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다른 글에서도 썼듯이 (인쇄술, 통계, 그리고 세금 http://blog.daum.net/nasica/6604521 참조)  세계 4대 발명은 모두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4대 발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결국 세계를 정복한 것은 유럽인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처음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끗발이 좋았으나,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19세기 들어오면서 가진 것을 거의 다 날렸지요.  왜 그랬을까요 ? 

 

김성한 작 임진왜란, 행림출판 (배경: 1570년대, 임진왜란 약 20년 전) ----------------

 

(김지라는 무관께서 총포 연구에 매진하다가 좀더 가벼운 개인 화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는 벼슬이 높이 되어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있을 때나, 더욱 승진하여 경상좌병사로 울산에 있을 때나 일상 업무는 우후에게 맡기고 연구에 몰두하였다.  언제나 연장을 드고 쇠붙이를 두드려 맞추는지라 <땜쟁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저런 것도 장수냐 ?"

 

부하들은 마주쳐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으나 김지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쇠붙이를 두드렸다.

 

차츰 무게를 줄여 드디어 사람이 들고 다닐 만한 소총을 만들어 냈다.  사정거리는 1백여 보에 불과했으나 길이가 짧아 (57cm) 들고 다니기에도 편했다.

 

이리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소총 제작에 성공한 김지는 이 총에 승자총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술자리를 같이했다. 

 

"더도 말고 이것을 3천 자루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3천 명을 3대로 편성하여 차례로 발사하고 장전하면서 전진한다면 천하를 통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죽기 전에 너희들과 함께 북쪽에 가서 이 총으로 오랑캐들을 휩쓸어 버리는 것이 소원이다."

 

이미 반백이 된 김지는 감개무량한 목소리였다.

 

"참으로 장하외다."

 

부하들은 맞장구를 쳤으나 뒤에서는 빈정거렸다.

 

"땜장이가 온 동네를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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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지가 만든 승자총통은 조정에서도 푸대접을 받았고, 또 김지는 연구에만 너무 치중한 탓에, 부하들의 신망을 잃어 병사들의 폭동까지 겪습니다.  결국 실의에 빠진 김지는 관직을 내놓고 얼마 안가 홧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다가 선조 16년, 그러니까 임진왜란 9년 전에 여진족 니탕개의 난 때,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아 각 군영의 창고 속에서 녹이 슬고 있던 승자총통의 진가를 신립 장군이 알아보고 이를 활용해서 여진족을 섬멸합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라서, 특히 뭔가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고 연구하는 것이 무척 천시되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서양으로 따지자면 몽테스키외나 칸트 같은 도덕 철학자들만 우대해주고, 뉴튼이나 라브와지에 같은 자연 철학자는 상놈 취급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영정조 시대에 대두된 실학파의 등장이 더더욱 아쉽습니다.  정약용 같은 분께서는 기중기 같은 것도 설계하시고 그랬지요.  실학파가 좀더 일찍 나와서 좀더 득세를 했었더라면 우리나라도 구한말의 암울한 역사를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중국의 경우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조선처럼 철두철미한 성리학의 나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물질적, 과학적인 분야를 천시했던 것은 맞지요.  그래서 애써 만든 화약 무기의 발전도 더뎠고요.

 

그에 비해서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18~19세기 유럽은 어땠을까요 ?

 

 

 

 

Post Captain by Patrick O'Brian (배경: 1804년 영국) -------------------

 

(의사이자 생물학자이자, 영국 해군성의 가장 뛰어난 비밀 정보원인 스티븐이 친구인 해군 함장 잭과 잡담을 나눕니다.)

 

잭이 말했다.  "자네가 이성적인 존재로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여자가 있다네.  그 코사인 값이 0인 곡선호(arc)의 측정값을 물어보게나.  즉각 2분의 파이(pi)라고 대답할 걸세.  모두 머리 속에 들어있더라니까.  그녀는 위대한 미스터 허쉘(Herschel)의 여동생이라네."

 

"그 천문학자 말인가 ?"

 

"바로 그렇다네.  그 천문학자는 전에 내가 왕립 학회 (Royal Society) 에서 발표를 할 때, 굴절에 대해서 아주 현명한 언급을 해줘서 나를 빛내 주었지.  그때 그 여자도 알게 되었다네.  그녀는 이미 내 목성의 위성들에 대한 논문을 읽어보았더라고.  그리고 그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말해줬고, 또 태양을 기준으로 한 (heliocentric) 경도 측정을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를 하더군.  난 그녀가 뉴먼의 천문대에 올 때마다 그녀를 만나보러 간다네.  자주 오는 편이야.  그리고 우린 거기 앉아서 밤새도록 혜성을 찾아 온 우주를 관찰하며 각종 관측 기구에 대해 이야기한다네.  그녀와 그녀 오빠가 만들어낸 기구만도 수백게는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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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이 윌리엄 허쉘) 

 

일단 오해를 피하자면, 저 미스 허쉘이라는 분은 나이가 60~70 정도되는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저 허쉘이라는 분은 실존 인물로서, 천왕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통계 항성 천문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위대한 천문학자입니다.  이렇게 적절하게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 실제 군함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잘 융화시킨, 탄탄한 스토리가 바로 이 오브리-머투어린 시리즈의 묘미지요.  아, 이번에 황금가지 사에서, '마스터 앤드 커맨더'라는 제목으로 제1편이 국내 출판 되었습니다.  많이들 읽어보세요.

 

이 시대, 그러니까 18세기~19세기의 유럽 중산층에서는 과학과 철학, 예술에 대한 논의가 마치 유행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저 위에 인용된 것처럼, 부유한 가정의 신사 숙녀들이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종 실험 기구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물론 모든 신사 숙녀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최소한, '상놈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점잖은 사람들이 한다'라는 눈총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아, 저 사람들은 고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구나'라는 찬탄을 받았지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상당수가 그런 학자이거나, 혹은 그런 것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주인공 잭 오브리는 직업 해군 장교이지만 천문학에 취미가 있고, 또 다른 주인공인 스티븐 머투어린은 직업은 의사지만 자연 박물학자입니다.  스티븐의 협력자인 해군성 정보부장 조셉 블레인 경도 스티븐과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물학자가 뭐냐고요 ?  찰스 다윈 정도를 생각하시면 될 듯.)  저 위에 나오는 것처럼, 소위 지성인이라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저런 주제로 잡담을 하는 것이 꽤 위신이 서는 일이었습니다.  저 시대에는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커피 하우스나 살롱에 모여서 각자의 관찰 결과나 실험 결과 등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모임이 자주 있었다고 하네요.

 

 

 

(영국 화가 Joshep Wright, 공기 펌프에 든 새 실험) 

 

이러한 중산층 신사 숙녀들의 모임에서 과학이 고상한 취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서구 사회의 과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서양은 동양을 압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야기 끝... 이라고 하면 뭔가 좀 아쉽지요 ?

 

왜 저 시대 유럽인들은 과학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였고, 중국이나 아랍 등 동양 문명권에서는 그렇지 않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빠져서 그럴 겁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글 초기에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첫끗발이 개끗발' 운명을 겪었던 것과 관계가 깊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이 나라들은 철저한 카톨릭 국가였지요.  영국이야 국왕의 결혼 문제로 일찌감치 로마 교황청과 등을 돌렸고, 프랑스에서도 위그노 전쟁을 통해 신구교 간에 많은 피를 흘려가며 결국 어느 정도 신교도들의 권리가 인정되었습니다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는 신교가 뿌리는 커녕 아예 싹도 틔우지 못할 정도로 카톨릭의 권위가 대단했습니다.  스페인 국왕의 공식적인 영어 명칭은 His Most Catholic Majesty 였습니다.  그 정도로 스페인은 카톨릭의 수호자로 자부했던 것이지요.  참고로 영국은 His Britannic Majesty, 프랑스는 His Most Christian Majesty 였지요. 

 

 

 

(나는 카톨릭의 수호자로서, 로마 교황청을 부정하는 이단의 무리 잉글랜드를 치겠노라... 필리페2세)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이 어느 개신교 목사 말대로 'X교 믿는 나라치고 잘사는 나라 못봤다' 라는 식의 망언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카톨릭과 과학 발전은 상극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계몽시대를 이끈 프랑스는 대표적인 카톨릭 국가입니다.  실제로 20세기 초에 빅뱅 이론도 처음 발표한 사람이 카톨릭 신부였다지요 ? 

 

다만, 과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확인하려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과학 혁명의 시발점은 주인공 잭의 취미이기도 한 천문학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중세 길드부터 이어진 장인들의 솜씨가 축적되어, 정밀 관측 기기가 만들어지면서, 여러가지 행성과 항성의 운동을 정밀하게 관측하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과정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즉 그때까지 교회에서 가르쳐온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에서 과학 혁명이 태어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알고보니 지구가 모바일이라는군 !)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의 일화에서 보여지듯이, 과학은 기본적으로 종교와 충돌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종교적, 즉 이념적으로 규제가 심한 사회에서는 과학이 제대로 꽃피워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코페르니쿠스의 조국인 폴란드나, 갈릴레이의 조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이들의 생각이 용납되지 않았고, 결국 그 두 나라는 과학 혁명 시대에 별 활약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에 비해,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카톨릭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사상, 즉 계몽주의가 퍼지면서 과학의 중요성이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종교의 권위가 반드시 충돌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칸트나 볼테르, 뉴튼 모두 죽는 그날까지 독실한 신자였고, 자신의 연구 결과가 자신의 종교에 해가 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나 천동설 같은 과거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점에 있어서, 과학은 분명히 기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깊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뭐 임마 ?  과학적으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  너 나하고 이론으로 다툴래 ?) 

 

반대로,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종교 뿐만 아니라 신분제도와 같은 사회 제도도 개인과 사상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합니다.  독일 연방의 작은 나라들이나, 프러시아 같은 경우는, 모두 일찌감치 신교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였지만, 과학 발전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상당히 더뎠습니다.  각기 프러시아와 러시아의 부흥을 이끈 프리드리히 2세나 예카테리나 2세는 모국어보다도 프랑스어에 능통할 정도로 프랑스 문화를 사랑한 사람이었고, 또 서유럽의 기술을 받아들여 부국 강병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당대의 프러시아나 러시아는 아마 군사력만으로 보면 프랑스도 어쩌지 못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당시 계몽주의나 과학발전에 프러시아와 러시아는 이바지한 바가 거의 없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 - 나는 우리 러시아의 법률에 계몽정신이 들어가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 어디가 그렇다는 거죠 ?) 

 

이는 프러시아를 포함한 독일 연방국들이, 나폴레옹에게 패할 때까지도 여전히 반(半) 농노제를 유지한, 전근대적 신분제 사회였다는 것과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  러시아는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농노제가 폐지되었지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별로 가진 것 없는 서민층 아들이 자수성가하여 (비록 귀족은 아니더라도)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는 것이 (물론 매우 어려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프러시아나 러시아, 스페인에서는 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척 어려웠지요. 

 

그냥 과학 기술만 들여와서는 별로 쓸 모가 없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과학 기술을 탄생시킨 그 정신, 즉 과거의 권위를 부정하고, 뭐든지 근본 원리와 진리를 찾아 탐구해보는 자유로운 정신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청나라 말기에도 양무운동이라고, 병기와 군편제를 유럽식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사회 제도나 사상같은 소프트웨어는 그대로 있으면서 하드웨어만 바꾼다고 큰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현재 세계는 유럽과 그 후손들이 제패하고 있습니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20세기 초반, 유일하게 유럽 세력에 맞서는 비유럽 세력을 고르라고 하면, 그건 아마 일본일텐데, 일본은 교육이나 복장, 심지어 일부 식생활까지 모조리 유럽 것을 모방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고 나서야 유럽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탈아입구라는 말도 이때 나왔지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유일한 비유럽 세력이라는 것도 지극히 유럽화되고 난 뒤에야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건 당장 중국이나 우리나라를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 문화를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먹고 살만 해졌습니다.  중국도 서구화되면서부터 비로소 기지개를 펴고 있지요.  이건 정말 씁쓸한 일입니다.  특히 학교에서 국어 대신 영어로 교육을 하자는 망언까지 나오는 것이, 더더욱 씁쓸해집니다.

 

하지만 너무 씁쓸해하지 마십시요.  유럽이 인류사를 제패한 것은 불과 300여년 정도입니다.  기나긴 인류 역사에 빗대어 보면 그야말로 눈깜작할 사이입니다.  아마 임진왜란 당시까지만 해도, 스페인이든 영국이든 동아시아 국가들이 충분히 격파할 실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왜 동양이 패배했는지, 곱씹어 보는 것도, 다 앞으로는 승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

 

P.S.  이 글의 기본 개념은 J.M. Roberts 라는 분의 'Historica 세계사'라는 책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끌리오라는 출판사에서 국내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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