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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Trigger-happy 란 ?

by nasica-old 2008.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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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로 번역하기가 좀 괴이한 그런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trigger-happy'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걸핏하면 방아쇠를 당기려는' 정도로 해석이 됩니다만, 우리 말로 표현하려면 느낌이 좀 어눌해지지요 ?  Happy라는 말은 좋은 말입니다만, 여기서는 뭐 그렇게 좋은 뜻으로는 안 쓰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doctor-happy girl'이라는 단어도 '만들어 낼 수는' 있습니다.  번역하면 '의사라면 좋아죽는 여자' 정도가 됩니다.

 

군대에서 제일 골치아픈 병사가 바로 이 'trigger-happy soldier'입니다.  차라리 사격 솜씨가 형편없는 친구가 더 낫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실전에서 일반 병사들의 총은  어차피 명중률이 많이 떨어지쟎습니까 ?  그런데, 매복 중에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 발포 금지'라고 해놓았는데도 누군가 총을 먼저 쏘아버린다던가, 혹은 민간인들이 탄 차량이 조금 수상하다며 그냥 자동 소총으로 갈겨버린다면, 이 친구는 없는 것만도 못할 겁니다. 

 

이건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장교들은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오발 사고가 있을까 걱정하고, 병사들에게도 방아쇠를 겁내도록 훈련시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파지 자세'지요.

 

 

(이분은 아마 HK사의 개발자...?  그런데 군대에서 손가락 그렇게 하시면 혼납니다) 

 

 

 

(예, 맞습니다.  방아쇠 울레서 손가락을 뺴고 계셔야지요.  현역이 낫군요.) 

 

 

(흠... 왜놈 총이긴 하지만 손가락을 저렇게 똑바로 펴고 있는 것이 더 환영받지요) 

 

특히 실탄이 장전된 상태에서의 파지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톰 클랜시의 "Clear and Present Danger" 편에 보면, 미국 해안 경비대가 마약 운반선으로 의심되는 요트를 정선시키는데, 이때도 함장이 50구경 기관총수의 엄지 손가락이 발사 버튼에서 떨어진 채 조준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쨌거나, trigger-happy한 친구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약실에 실탄이 장전된 상태에서만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제가 군에 있을 때 전방을 제외한 후방에서는) 우리나라 육군, 적어도 일부 부대에서는 아예 총에서 공이치기 격침을 빼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초병들에게 아예 실탄을 나눠주는 것 같더군요.  초기에 자살 사고가 많이 났었습니다만, 그래도 오발 사고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요즘도 실탄을 나눠주나요 ?  

 

저는 전방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방에서 보초설 때는 실탄이 약실에 장전된 상태로 있나요 ?  전방 근무자께서는 댓글 달아주시면 감솨.

 

그런데, 군함이나 탱크의 대포는 어땠을까요 ?   평화시야 뭐 그럴리 없겠습니다만, 전시에는 당장 교전 지역이 아니더라도, 장전 상태로 유지할까요 ?

 

 

 

 

다니던 직장에 밀덕후 차장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지금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셨어요.  한 7~8년전 일인 것 같은데, 그때 그 분하고 잡담을 하다가 잠수함 어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예전에 읽은 독일군 유보트 관련 책을 본 기억이 나서, "잠수함에서는 어뢰를 발사관에 넣고, 거기에 바닷물도 채워놓은 상태로 항해한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유보트 승무원들이 가끔씩 어뢰를 꺼내어 바닷물 때문에 부식된 어뢰 표면을 닦아내느라고 생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 분은 "뭔 소리냐, 그러면 어뢰 다 상한다. 절대 그렇게 안하고 어뢰는 적함을 발견해서 발사가 필요해지면 그때 어뢰관에 바닷물을 주수한다" 라고 주장을 하셨고요.  그 분의 근거는 미해군 영화인가 책인가...그랬습니다.   저는 그렇게 적함 근처에서 어뢰관에 주수하게 되면 그 소음 때문에 들키게 된다면서 꽤 열심히 싸웠어요.  결국 결론은 안났지요.  그 분이나 저나 잠수함 근처에 가본 것이... 아마 진주만에 전시되어 있는 USS Bowfin 인가 하는 그 2차대전 당시 잠수함 옆에서 기념 사진 찍어본 게 전부였거든요.  그때는 저나 그 분이나, '전시에는 바닷물 채워넣고 다니고, 평화시에는 그렇지 않다'라는 간단한 상식을 생각해내지 못했거든요.

 

 

 

 

(진주만에 전시된 USS Bowfin.  입장권 내도 잠항은 안해요.)

 

나폴레옹 시대의 육해군 병사들도, 평상시 머스켓 소총이나 대포에 화약과 탄환을 장전한 상태로 다녔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장전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는 전장식 소총과 대포인데, 적이 나타난 이후에 장전하면 문제가 좀 될테지요.  문제는 이 당시의 포탄이나 탄약은 금속제 카트리지로 깔끔하게 포장된 것이 아닌지라, 필요할 때 장전된 탄약을 쉽게 뽑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장전된 탄약을 뽑아낼 때 어떻게 했을까요 ?

 

Sharpe's eagl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스페인 1809년) ------------------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몇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능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채 밤을 보냅니다.)

 

머스켓 소총 소리가 먼 거리에서 불규칙하게 들려왔다.  부하들은 서로에게 뭔가를 중얼거리고는, 프랑스군 진영을 따라 탕탕 터지는 간헐적인 총 소리에 귀를 바짝 세웠다.  노울즈 중위가 샤프에게 다가와서는 '무슨 일일까요' 라고 묻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 올렸다.  샤프는 고개를 저었다. 

 

"쟤들은 머스켓 소총을 비우고 있는 거야.  그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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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냥 쏴버렸습니다.  위에 인용된 장면에서는, 밤 사이 보초를 섰던 병사들이 막사로 돌아가기 전에, 밤 이슬에 혹시 화약이 축축해질까봐 총에 든 탄약을 'clear'하고 있습니다. 

 

해군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대포라는 것은 소총보다 구경이 무지무지 큰 지라, 속에 든 화약과 포탄도 소총 것보다는 당연히 무지무지 비쌌거든요.  그 비용 문제 때문에  전투 이외에 연습용으로 쓸 탄약에 대한 명확한 해군 규정이 있어고, 또 그 때문에 일부 함장들은 사비를 털어서 연습용 화약과 포탄을 따로 구매할 정도였으니까 ( 병력이나 장비보다 더 중요한 것 http://blog.daum.net/nasica/4857170  참조), 혹시 화약이 축축해질 까봐 정기적으로 한번씩 쏘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대포에 재어둔 화약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포구 마개(tompion)을 씌워두었습니다. 

 

하지만 육군에서건 해군에서건, 또  tompion을 씌우건 말건, 분명히 이렇게 대포에 미리 쟁여둔 화약은 결국 일부 습기가 차거나 변질이 일어나게 되었고, 또 대포알 자체에도 녹이 슬게 되므로, 결국 전투가 벌어져서 처음 쏘게 되는 사격의 효율성은 어느 정도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당시는  정밀 사통장치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초탄 명중은 기대도 하지 않았거든요.  대개 초탄 발사 하면서 '거리 측정용 사격' 이라고 표현을 하던가 '아직 포신이 차가운 상태라서' 라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는 식으로 최초 사격은 '버리는 사격'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해군에서는, 특히 영국 해군은 원거리 사격보다는 근접 사격을 선호했으므로, 어차피 정확도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장전된 대포를 싣고 다녔기 때문에, 혹시 배에 뜻하지 않게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배에서 탈출하기 전에 반드시 모든 대포를 발포하고 보트로 옮겨탔습니다.  화재 속에서 장전된 대포의 화약에 불이 붙을 경우, 근처에 떠 있을 구명 보트들에게 대포알이 쏟아질 위험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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