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폴레옹의 시대

총, 결투, 그리고 서양인들의 미소의 상관 관계

by nasica-old 2008. 9. 10.
반응형

 

 

 

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4년, 프랑스) -------------

 

가장 치열한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 역전의 용사가 '아침식사 전의 잔디'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적절한 운명의 장난처럼 보였다. 

 

"왜 그걸 다들 '아침식사 전의 잔디'라고 부르는 거지 ?"

 

샤프는 프레데릭슨에게 물었는데, 프레데릭슨은 사실 샤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으며, 그저 초조해서 물어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

 

여기서 샤프가 말하는 '아침식사 전의 잔디'(grass before breakfast)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  다들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바로 결투를 뜻하는 것입니다. 

 

왜 결투를 그렇게 불렀을까요 ?  대개 결투는 이른 새벽에, 권총이나 검을 쓰기에 적절한 넓은 공터에서 치루어졌습니다.  18~19세기의 유럽 쪽의 공터는 대개 풀밭이었나봐요.  거기서 쓰러지는 사람은 입에 풀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투를 치른다는 것을 반농담 반진담으로 '아침식사 전에 풀을 먹는다'(eat grass before breakfast)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뭐 쓰러지면 쓰러지는 거지 꼭 풀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시면 할 말 없습니다.  다만, 영어식 표현에 'bite the dust'라는 표현이 있지요.  쓰러져 죽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애까지도 좋아하는 락그룹인 Queen의 명곡 중에 'Another one bites the dust' 라는 노래까지도 있습니다.  비슷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결투라는 것은 정말 독특한 풍습인데, 문화인인 척, 신사인 척 하는 백인들에게 남아있는 야만성과 호전성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풍습입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는 다른 문명권에서도 결투라는 희한한 문제 해결 방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신사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끼리라면, 누구에게라도, 심지어 자기 상관에게라도 결투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Midshipman Hornblower' 편을 보면, 자신을 구타, 갈취, 학대하던 고참 미드쉽맨에게 혼블로워가 결투를 신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결투를 하기 위해서는, 그냥 '쟤가 미워서, 쟤가 날 괴롭혀서'라는 이유로는 할 수 없었고, 반드시 명예 훼손이 있어야 했습니다.  혼블로워의 경우에는 고참이 자기에게 '거짓말 하지마' 라고 말햇다는 것을 꼬투리잡아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서양인들에게는 '거짓말장이'라는 것이 엄청난 모욕이라고 하지요. 

 

이와 같이, 결투는 잘잘못을 가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결투의 핵심은 명예 회복에 있습니다.  즉, 뭔가 상대에게 명예를 훼손당하는 일이 있을 때, 적어도 그런 치욕을 참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그러다보니, 결투의 목적은 상대방을 꼭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목숨을 걸고 싸운다'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결투에서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남자로서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더군다나, 검술 실력이 승패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검보다도, 점차 결투는 권총으로 하는 것이 되면서부터는, 승패라는 것은 결국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다보니, 결투는 반드시 '치명적 무기'를 가지고 임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용기가 증명되는 것이니까요.  가령 권투장갑을 끼고 싸운다라든가, 목검을 들고 싸운다라든가는 신사들의 결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결투는 권총 또는 장검으로 싸웠습니다.  긴 머스켓 소총으로 결투를 하는 것은 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사들은 장교여야 하는데, 소총은 일반 병사들이나 들고다니는 무기이지, 장교들의 무기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검은 반드시 긴 장검이어야 하지 단검은 절대 안되었습니다.  귀족들은 검을 당당히 차고 다녀야 했으므로, 장검을 패용했고, 단검은 암살을 노리는 잡것들이나 들고다니는 불명예스러운 무기였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중에서도, 악녀 밀라디의 사주를 받은 젊은 영국군 장교가 버킹엄 공작을 죽이려고 할 때, 버킹엄 같은 파렴치한은 장검에 죽을 권리도 없다, 단검으로 죽이겠다 라고 다짐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단검은 불명예스러운 무기였습니다.

 

 

 

 

가끔 영화를 보면, 결투에 임하기는 하되, 권총을 묵묵히 하늘을 향해 쏘는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이건 우리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자비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명예로운 행위이지만, 당시 유럽 신사계급에게는 정말로 파렴치한 행위였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는 결투가, 즉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늘에 대고 쏘는 행위는 상대방도 그렇게 쏘아주기를 구걸하는 비겁한 행위이고, 상대방이 자기에게 쏜 뒤 하늘에 대고 쏘는 행위는 '너같은 색희는 총에 맞을 자격도 없다' 라고 선언하는 오만한 행위였습니다.  정말 상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면 티가 나지 않도록, 약간 비껴서 쏘는 경우는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투는 신사들, 귀족들 간에서나 있는 풍습입니다.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평민은 신사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 없었습니다.  신청했다가는 몽둥이 찜질이나 당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예는 신사 계급에게나 있는 것이었거든요.  또 평민이 신사를 모욕한 경우에도, 신사는 결투를 신청하지 않고, 그냥 채찍으로 그 평민을 흠씬 두들겨 패거나 하인들에게 두들겨 패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결투 문화는 '남성적'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굳어져서 사회의 엘리트 계급에서는 19세기 말까지도 결투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또 나름대로 우쭐한 자랑거리였습니다.  어찌나 유행이었던지, 19세기 말 결투를 벌인 사람들 중에는 유명한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장 조레스(Jean Jaures)나 병약자로 잘 알려진 작가 프루스트 (Marcel Proust)까지도 있었습니다.  제1차 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호랑이'로 알려질 정도로 독일을 핍박한 프랑스의 정치가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의 경우, 평생 22번의 결투를 치렀다고 합니다.

 

 (진정한 급진 우파라면 이 남자처럼... Le Tigre (호랑이), 클레망소)

 

일전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만, 결투를 할 때 신사들은 실크로 된 셔츠를 입고 싸웠습니다.  특히 권총으로 싸울 때는요.  이유는 총상을 입을 때는 실크로 된 옷이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무명이나 삼베로 된 옷은, 총알에 맞으면 그 부위가 총알 모양으로 동그랗게 잘려나가며 총알과 함께 살 속으로 파고 들게 됩니다.  그 천 조각이 몸 속에서 염증을 일으키게 되므로 그걸 뽑아내는데 애를 먹게 되지요.  실크는 몸 속에서 염증을 안일으키는 것인가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에야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실크는 상당히 질긴 섬유입니다.  그래서, 다른 천과는 달리 총알에 맞아도 찢어지기만 할 뿐, 조각나서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사라고 다 실크 셔츠를 입을 만큼 부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  그런 경우면 어떻게 했을까요 ?   다음 글을 보시지요.

 

 

 

 

HMS Surprise by Patrick O'Brian (배경 180X년 인도) ---------------

 

(잭 오브리의 친구인 군의관 스티븐 매튜어린이 여자 문제로 동인도 회사의 고위 간부와 권총 결투를 벌입니다.)


스티븐은 코트를 벗더니, 이어서 셔츠까지 벗어서 조심스럽게 접어놓았다. 

 

"자네 대체 뭐하는 건가 ?"  잭이 옆으로 와서 나직히 물었다.

 

"난 항상 바지만 입고 싸운다네.  상처 속으로 말려들어간 천 조각은 아주 끔찍한 결과를 낳거든."

 

-----------------------------------------------------------------

 

스티븐은 이 결투에서, 자신도 총상을 입지만, 본의아니게 결국 상대방을 사살하게 됩니다.

 

원래 서양인들은 좁은 길에서 모르는 사람과 마주쳐도 미소를 짓기도 하고, 아주 예의바르게 굴지 않습니까 ?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주 무뚝뚝하고, 길가다 어깨가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지나갑니다.  왜 서양인들은 그렇게 예의가 바를까요 ?  농담인지 진담인지, 우리들은 '서양인들이 그러는 것은, 안 그러면 언제 총 맞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다음 글은 스티븐의 결투 이후, 잭이 참석한 어느 연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HMS Surprise by Patrick O'Brian (배경 180X년 인도) ---------------

 

(잭 오브리의 식탁 앞자리에 앉은 낯선 두 신사가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스티븐의 결투를 화제삼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결투의 원인이었던, 스티븐의 짝사랑이자 죽은 동인도 회사 간부의 내연의 여인 다이애나에 대해서도 험담을 늘어놓습니다.)

 

'불러의 부인이 그 여자가 어떻게 하고 있나 보러 방문했었다네. 하지만 문간에서 거절당했다는군.'

'좌절하고 있겠지, 물론. 아주 좌절한 상태일거야. 어쨋거나 그 아일랜드인 좌충우돌 사람 백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게.  듣기로는 그 여자가 그 남자하고..."

 

이때 부관 하나가 그들 뒤에서 다가와 뭔가를 속삭였다.  그 판사는 외쳤다.  "뭐 ?  응 ?  이런, 난 몰랐어."  그는 안경을 코에 걸치고 잭을 쳐다보았다.

 

잭이 말했다. "여러분꼐서 화제로 삼는 사람은 제 친구인 닥터 매투어린같군요.  여러분께서 언급한 여자분이 닥터 매투어린과 제가 알고 있는 그 숙녀분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들은 절대 아니라고, 닥터 매투어린에 대해서도 절대 기분 상하는 말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발뺌하며, 혹시라도 실례되는 언급이 있었다면 당장 철회하겠다고 했다.  특히 오브리 함장과 안면이 있는 숙녀 분에게 험한 말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하며, 와인 한잔을 같이 마시지고 했다.  잭은 그에 응했고, 판사는 곧 자리에서 물러갔다.

 

------------------------------------------------------------------ 

 

저 판사 및 그의 친구는 왜 저렇게 겁에 질려서 자기들의 말을 철회하고 사과했을까요 ?  잭의 덩치가 컸기 �문에 ?  잭이 신분이 권력이 있는 것이어서 ?  아닙니다.  혹시 잭이 결투라도 하자고 나설까봐 그러는 것입니다.  저렇게 결투라는 관습 때문에, 정말 본의아니게 상대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분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려 전전긍긍하게 된 것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