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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Half-pay란 무엇인가

by nasica-old 2008.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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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거느리던 군대의 조직을 보면, 계급 중에 double-pay ma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급료가 2배인 병사입니다.  명확한 역할은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미군의 first sergeant 또는 한국군의 행보관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double pay라는 것이 꽤 의미가 있는 것이, 당시의 급료 체계는 '하는 일이 같으면 급료도 같다'라는 원칙에 의해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같은 병사라면, 그 병사가 경력이 전혀 없는 신삥이든, 경력 10년의 고참이든 급료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급료를 더 받고 싶으면 인정을 받아서 진급을 해야 하는 거지요. 

 

사실 이건 매우 합리적인 봉급 체계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한국 월급쟁이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언제 명퇴 대상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해마다 쓸데없이 연봉이 계속 오르기 때문입니다.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연봉만 쳐오르다보면, 결국 비용 대비 효율성면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일꾼이 되는 것이고, 결국 퇴출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급쟁이 여러분, 월급 안오른다고 상심하거나 하지 마세요...

 

아무튼, 군대에 double-pay man이 있다면, 당연히 half-pay man도 있겠지요 ?  실은 없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병사들의 일당은 매우 작아서, 일반 노동자 일당의 1/2 ~1/3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일반 노동자의 일당이 1드라크마인데 비해, 노젓는 수병의 경우는 2오볼 정도였습니다. (1드라크마는 6오볼입니다.)  따라서, 그 작은 pay의 절반만 받는다고 하면, 그야말로 굶을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병사들의 급료에는 식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남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로, 페르시아 키루스 왕자의 반란에 고용되었던 그리스 용병 1만명도, 일단 키루스 왕자가 전사하고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자, 키루스의 형인 아르타크세륵세스와 귀환 협상을 하는데, 뻔뻔스럽게도 아르타크세륵세스에게 자기들을 고용해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에 대해 아르타크세륵세스가 "걍 집에 가라"고 하면서, 그리스로 돌아가는 길에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밥값을 내야지 도둑질이나 약탈을 해서는 안된다는 답변을 합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그리스 병사들은 크게 동요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밥 사먹을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Anabasis, 페르시아 원정기)를 한줄로 요약하면, 문명국인 페르시아에 불법 취업된 제3세계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되지 떼강도로 돌변한 사건이었다는 이야기지요.

 

 

 

 

이건 19세기 영국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반 병사들은 급료에서 식비와 피복비 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또 경력에 상관없이 병사들은 계급에 따라 일괄적인 pay를 받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병사들의 계급에는 일병과 이병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병(private), 상병(corporal), 하사관(sergeant)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병장 같은 계급은 없었습니다.  저는 사실 카투사 출신이었는데, 미군 계급에서도 이런 병장이란 계급이 없거든요.  그런데 굳이 번역하면 병장이 sergeant이고, 하사가 staff sergeant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은 sergeant부터 하사관이고, 우리나라 군대는 하사부터가 하사관이었지요.  그래서 카투사 병장은 졸지에 하사관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실 미군에서 sergeant이 되려면 경력이 꽤 길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1년반만에 sergeant가 되는 일은 거의 없지요.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군요.  그러나 half-pay 시스템이 널리 쓰이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장교들이었습니다.  현역 보직을 받지 못한 장교들은 모두 half-pay, 즉 급료의 절반만 받았습니다.  영국 외의 대륙 국가의 장교들은 사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육군 장교였던 Sharpe나 해군 장교였던 Hornblower와 모두 pay에 대해 민감했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 혼블로워가 더욱 소심했습니다.  홀홀단신 고아 출신인 샤프에 비해, 혼블로워는 결혼을 일찍 했거든요.  애도 둘이나 있었고요. 혼블로워는 시쳇말로 돈도 빽도 없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실수해서 현직에서 짤리면 얼마안되는 half pay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전긍긍합니다.  혼블로워가 post captain, 즉 정식 함장이 되고자 했던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post captain 정도가 되면, 나중에 현직에서 짤려서 집에 있게 되더라도, 그 half-pay 만으로도 어느 정도 생활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잘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혼블로워가 나중에 자신의 2번째 아내가 되는 바바라 웰슬리(웰링턴의 여동생)을 만나서 잡담을 하면서, 자신이 나중에 은퇴해서, 시골에 땅과 작은 집을 사서 half-pay의 부족분을 메꾸면서 먹고 살려면, 한 2천 파운드 정도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하고 만나서 쫀쫀하게 생계비 이야기나 하다니... 혼블로워도 진짜 소심하지 않습니까 ?)

 

혼블로워 및 그의 친구 Bush가 아직 Lieutenant (중위라기 보다는, 아직 captain, 즉 함장이 되지 못한 모든 해군 장교를 모두 lieutenant라고 부릅니다)일때, 잠깐 영국과 프랑스가 휴전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되버린 일이 있습니다.  이때 이 둘은 half-pay만으로 정말 비참하게 삽니다. 부시 중위같은 경우는 먹여살릴 여동생들이 있어서, 길을 가다가 맥주 한잔을 사마시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꾹 참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혼블로워 같은 경우는 가불해서 쓴 돈이 있었던 고로, 그나마 half-pay도 받지 못하고 어떤 도박장에 취직하여, 일종의 '타짜' 노릇을 하면서 먹고 삽니다.

 

여러분들이 half-pay를 받게 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  사실 전 신날 것 같습니다.  그저 빈둥빈둥 놀면서도 월급의 절반이 나온다면 그거 괜찮은 장사 아닙니까 ?  그리고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면 안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위에서 보다시피 혼블로워는 half-pay 기간 중 도박장에 취직을 했었고, 샤프는 전쟁이 끝난 뒤 half-pay를 받으면서 프랑스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장교들은 모두 half-pay가 되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그걸 이해하려면 먼저 영국군의 젊은 장교들이 애초에 왜 장교가 되려고 했는지부터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당시 영국군 중위 계급까지는, 군대 생활을 하면 버는 돈보다 쓰는 돈, 즉 식비 등이 오히려 더 많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전에 말씀드렸듯이, 장교가 되려면 돈을 내고 그 계급을 사야 했습니다.  샤프는 웰링턴의 목숨을 구해준 댓가로, 공짜로 소위 계급을 '선물'받았습니다.  나중에 샤프가 동료 장교들에게서 왕따를 당하자, 샤프는 그 소위 계급을 약 500 파운드에 '팔고' 영국 시골에 술집이나 하나 차릴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계급은 비쌌습니다.  일반 부대의 대위 계급은 약 1500파운드였고, 근위대 같은 명예로운 부대의 계급은 더 비싸서, 중위 계급이 1500파운드였습니다.

 

샤프 시리즈를 보면, 몰락한 귀족 가문의 소년이, 집안의 값비싼 유물을 팔아서 소위 계급을 사고,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은접시를 팔아서 군복과 군도를 마련하여 전쟁터로 나왔다가 첫전투에서 전사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그렇다면 왜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죽음의 위협을 무릅썼을까요 ?  그냥 그 돈으로 시골에서 술집이나 할 것이지 말이지요.  그들에게 애국심이 있어서는 '절대' 아닌 것 같고, 사회적 체면 때문이었다고 밖에 생각이 안듭니다.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를 보면 (이 소설의 배경은 19세기말인데), 영국 사회에서 신사로 인정받는 직업은 단 4가지 뿐이라는 것입니다.  법률가, 성직자, 육군장교, 해군장교.  그래도 명예로운 가문의 아들이 시골에서 상것들 상대로 술장사나 할 수는 없고, 용기있고 신체 건강한 청년은 장교가 되는 것이 어느 정도 통상적인 사회적 관습이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머리가 좋거나 공부하는 것이 마음에 들면 법률가가 성직자가 되었겠지요. 

 

 

 

 

아뭏든 군 장교는 pay가 후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혼블로워는 꿈에도 그리던 post captain이 되고 난 뒤로도 항상 가난했습니다.  샤프 시리즈 중 덴마크 침공사건을 그린 Sharpe's Prey 건을 보면, Wilsen이라는 영국군 대위가 대위 봉급만으로는 처자식을 먹여살리기가 힘들어 스포츠 센터에 파트 타임으로 취직하여 귀족들에게 펜싱과 권총 사격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포츠 센터 주인은 Wilsen에게 군대를 때려 치우고 스포츠 센터에 정규직으로 취직을 하라고 권하지만, Wilsen은 영국 사회에서 지위를 가지려면 장교직이 필요했기에 거절합니다.

 

애초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시나요 ?  Half-pay 장교에게는 명예도 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신사틱하지 않은 직업, 즉 혼블로워처럼 도박장 직원이나, 샤프처럼 농사꾼이 되는 것은 일종의 불명예였습니다.  다시 '인간의 굴레' 이야기를 하면, 주인공 필립의 삼촌 내외는 조카가 tradesman(꼭 상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직업인을 말합니다)이 될까봐 걱정을 합니다.  어느 정도 최소한의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면서도 사회적 지위도 가지려면, full time 장교가 꼭 되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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