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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인쇄술, 통계, 그리고 세금

by nasica-old 2008.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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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 상에서는 한중간 찌질이들의 상호 비방이 한창입니다.  거의 전쟁 수준이지요.  저도 가끔씩 인터넷 댓글 달 때 짱깨라든가 하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 이름이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것만 봐도, 우리가 중국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제가 볼 때 중국은 위대한 문명국입니다.  세계 4대 발명, 즉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은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만 봐도 할 말이 없지요.

 

 

저는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 중 가장 중요한 발명은 바로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발명품이라고 생각하기엔 조금 문제가 있겠지요 ?)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제한된 개개인의 천재들이 연결되어 오늘날 인류 문명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지요.  즉, 문자야말로 인간들의 두뇌를 이어주는 그리드 (Grid) 컴퓨팅의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자만으로는 불충분한 그 무엇을 채워준 것이 있으니, 바로 종이와 인쇄술입니다.  세계 4대 발명 중 2가지가 바로 이렇게 '지식/정보의 공유'와 관계된 것이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왜 현대 세계는 유럽인과 그 별종인 미국인들이 지배하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대략 16세기, 유럽의 근대화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습게도 세계 4대 발명의 원작자인 중국인들은 그를 이용한 발전을 크게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이, 유럽인들은 종이와 인쇄술로 내부 역량을 키운 뒤, 나침반과 화약으로 세계 무역 내지는 침공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 즈음입니다.

 

실제로 1500년 이후, 유럽에서는 각종 인쇄물이 활발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각종 국가 통계 자료나 사업상 자료들이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인쇄본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각종 물가 동향이나, 선박 항해 자료 등이 책으로 나와 서점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15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침공의 닻을 올릴 때, 이미 리스본 시내에서는 무적함대에 실린 화약이나 건빵, 미늘창, 도화선 등 각종 보급품에 대한 세부 목록이 출간되어 팔리고 있었고, 무적함대가 영국 남해안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서점에서도 발간될 정도였습니다.  인쇄술과 책이라면 결코 딸리지 않는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통계치나 각종 자료 수집에 열을 올렸던 것일까요 ?  그건 유럽 근대화의 시작이 바로 이때였기 때문입니다.  국가 근대화, 그리고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바로 이런 자료 및 통계가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항우와 유방이 진나라를 쓰러뜨리고 그 수도인 함양에 진입했을 때, 유방의 다른 부하들은 모두 금은보화 약탈에 정신이 없을 때, 오직 소하만은 승상부의 각종 문서들을 챙겼고, 이로 인해 천하의 인구, 토지, 지형들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유방이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방과 소하 이야기에서 보듯이,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로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기록물의 꽃은 바로 인구 조사 통계입니다.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로마 제국의 사실상의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도 제국 전체에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지요.  덕택에 아기 예수도 나자렛이 아닌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났고요.  당시 그 드넓은 중국이나 로마 제국 각지에서 온갖 사람들의 다양한, 대개는 읽기 힘든 필체로 씌여진 나무판/양피지/석판 등에 씌여진 기록들을 중앙에서 편집하고 계산하고 손으로 다시 베껴썼을 당시 관리들의 노고가 상상이 가십니까 ?  인쇄술과 종이가 없던 시대에는 이런 기록물들이 매우 한정된 분량만 만들어져 매우 한정된 사람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는 근대적인 국가로 발전할 수 없겠지요.

 

 

("하늘에서 천사가 춤출 때 우리는 날밤 깠다" - 당시 로마 중앙 세무서 제2과장 짜내라투스씨의 증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유럽의 근대화 초기인 1500년대에, 종이와 금속활자는 이미 널리 보급되었고, 여러가지 각종 통계치도 활발하게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근대적인 인구 조사는 매우 늦은 시기에야 이루어졌습니다.  통계학이 가장 앞섰다는 영국에서도 1801년에애 최초로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고, 프랑스는 무려 1876년에야 공식 인구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인구 조사가 왜 그렇게 중요하고 또 어렵냐고요 ?  바로 세금 때문입니다.

 

정부는 왜 인구 조사를 하려고 애를 썼겠습니까 ?  바로 세금을 거두려고 그랬습니다.  왜 국민들은 인구 조사에 그렇게 비협조적이었을까요 ?  바로 세금을 안내려고 그랬습니다.  인구 조사란 정말 사람 머리 수만 세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거 형태, 직업, 기본적인 재산 등이 모두 기록됩니다.  그런 공식 기록이 있어야 효율적인 세금 부과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최초의 소득세도 이와 비슷한 시기, 즉 1798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부과됩니다.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장교가 되는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네, 샤프."  맥캔들리스 대령이 말했다.

"첫번째 방법은 장교직을 돈주고 살 수 있지.  소위 계급의 가격은 400파운드야.  하지만 소위로서 복장과 장비를 갖추는데 또 150파운드가 들지.  하지만 그 정도 돈으로는 겨우 쓸만한 말과 4기니짜리 검, 그리고 중고품 제복을 살 수 있을 뿐이야.  게다가 장교 식당의 식대를 대려면 따로 사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네.  소위의 연봉은 약 95파운드 정도인데, 거기서 비용으로 일부를 떼가고 소득세라는 명목으로 더 많이 얼마를 떼가지.  자네 소득세라고 들어보았나, 샤프 ?"

"아뇨, 대령님."

"아주 고약한 것이지. 사람이 정직하게 일해서 번 돈에서 세금을 떼가다니 !  이건 정부라는 탈만 썼지, 완전 도둑질이나 다름없다네, 샤프."  대령은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결국 소위가 공제 후 실제로 받는 연봉은 대략 70파운드 정도라네.  아무리 절약을 해도 그 돈으로는 장교 식당 식대를 댈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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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왠 뜬금없이 개 풀뜯어먹는 소리냐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세금은 인류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는 순간부터 항상 있어왔지요 ?  케사르 및 폼페이우스와 함께 3두정치를 구성했던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을 떠나서, 소아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전쟁 준비는 안하고 각 도시에 세금부터 걷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또, 성서에도 엄연히 '세리'라는, 세금걷는 직업이 버젓이 나옵니다. 그런데 19세기 초에 와서야 비로소 소득세가 생겼다고요 ?

 

그런데 사실입니다.  사실 세금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인두세나 재산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소득세는 비교적 최근에야 생겨난 것입니다.  소득세라는 것이 생기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첫째, 화폐 경제여야 합니다.  정확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때, 세금으로 각 지방의 특산물 바치느라고 온갖 폐단과 피해가 많았던 거 국사 시간에 배웠던 것이 기억나네요.  영조 때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결국 쌀로 통일해서 내라고 한 것이 상당한 개혁이었지요 ?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전기까지만 해도 사실상 물물교환 경제였던 것이 경제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둘째, 정확한 회계처리가 필요합니다.  어떤 상인이 한번 거래에서 100 파운드의 매출을 올렸다고 할 때, '소득세'를 내려면 판 물건의 원가와, 창고 비용, 운송 비용 등의 비용에 대한 신빙성 있는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이러한 것을 다 감안하여 소득세를 부과하려면, 사회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장부와 영수증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공인회계사라는 직업은 영국에서도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 '인간의 굴레'의 주인공 필립도 처음에는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다가 때려치우지요.)

 

 

 

 

그래도 비교적 문명화된 사회였다는 고대 그리이스나 로마에서도, 소득세는 없었습니다.  대신, 세금은 생산수단인 토지, 건물 같은 것에 부과하는 재산세나 , 사람에게 부과하는 인두세같은 것이었지요. 가령 당시 배에 물건을 싣고 가는 상인을 보면, 그 상품 자체에 대해 관세를 부과했지, 그 상품을 팔아서 번 돈에 대해 부과하지는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표적인 세금인, 유대인들의 십일조가 있겠습니다.  사실 이런 것이 소득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확성이라는 면이나, 농산물같은 것 이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부과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소득세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가령, 새끼양 100마리를 키우는 목동이, 1년 후에 어미양 100마리와 새끼양 20마리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 대체 하나님에게 양을 몇마리를 바쳐야 하는 걸까요 ?  아마 신앙심이 조금 약한 목동은 적절히 셈을 속였겠지요. 오죽했으면 구약성서에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개신교 목사님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성경 구절이라고...)

 

말라기 3장 8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

 

사실 신앙심이 강한 목동이라고 해도, 정확한 십일조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성경 어느 구절에 보면, 곡식의 경우 낟알 수를 세어서 십일조를 내었다고 합니다만, 그 경우에도 비료값이나 일꾼 품삯 등등을 생각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정확하게는 힘들었겠지요.  적어도 국가가 하는 일인데 종교처럼 인간의 양심에 맡겨서야 일이 제대로 안되었겠지요.

 

약간 이야기가 삼천포로 갑니다만, 제가 아는 한, 성경에서 나온 십일조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명기 26장 12절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여러분도 이 구절이 반드시 개신교 교회에 십일조를 매달 내고, 그 돈으로 대형 교회 건물 짓고 아프간에 선교 활동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시나요 ?)

 


 

아무튼 당시 유럽인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에 대해서마저 세금을 뜯긴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1798년, 당시 영국 수상인 윌리엄 피트는, 나폴레옹 전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원 확보를 위해, 임시로 소득세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어 부과합니다. 

 

이 소득세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세금이어서, 1802년 아미앵 조약에 의해 잠깐 평화가 오자, 곧 폐지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서 곧 부활되었고, 워털루 전쟁 1년 후 마침내 폐지됩니다.  그러나, 1842년, 불어나는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영국 정부는 소득세를 다시 걷기에 이릅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소득세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이러한 소득세 추적은 정확한 회계 장부가 없으면 매우 비효율적이 되버립니다.  따라서,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인쇄술과 통계학이 없었다면, 소득세도 많이 피해갈 수 있었겠지요.  요즘이야 종이와 인쇄술의 효율성을 훨씬 뛰어넘는 전산 체계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국세청이 여러분 모두를 점점 더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소득세와 주민세(인두세), 자동차세(재산세) 같은 것을 냅니다. 거기에다 준조세에 해당하는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료, 고용보험료도 내지요.  부르스 월리스 주연의 아마겟돈이란 영화에서, 부르스 윌리스가 그런 위험한 임무를 맡는 조건으로 '평생 면세'를 내걸던 것 기억하십니까 ?  사실 세금만 면제되어도 상당한 혜택이지요.  또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트리니티를 처음 만날 때, "네가 IRS (미국 국세청)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한 바로 그 트리니티냐" 하고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세리들을 두들겨 패고 세무 장부를 불태우면 이야기가 끝났는데, 요즘은 세금을 안내려면 256-bit 암호화 체계를 깰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세금이 매우 약한 편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역시 세금을 미워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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