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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와룡묘와 이승만에서 캡틴 아메리카까지 - 민주주의에서의 지도자

by nasica-old 2016.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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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지도자에 대한 이 짧은 글은 간단해 보이지만 무려 5가지 역사 이야기의 콤비네이션...)



요즘 주말마다 산책하러 남산 산책로에 자주 가는데, 거기에 보면 와룡묘, 즉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선조가 임진왜란 이후에 세우도록 했다는 사당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건 아니고 아마 구한말에 고종의 후궁인 엄귀인이 세운 것일 거라고 추측되는 사당이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이 사당을 보고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선조가 제갈량 사당을 세우도록 한 이유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선조는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애첩인 인빈 김씨와 그 아들만 쏙 빼서 달아난 못난 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의주까지 도망쳐서는, 안전한 명나라 땅에 아예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치며 말리는 신하들에게 역정을 내기도 하고, 아예 조선이라는 나라를 명나라에 바칠테니 나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며 명나라와 흥정을 한 것으로도 악명 높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찌른 것은 명나라군의 도움도 컸고 이순신 장군의 공로도 컸으나, 지방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공도 컸지요.  확실한 것은 저 선조라는 혼군의 공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쟁 중 그리고 전후에도, 각지의 의병장들을 잡아들이고 역모로 몰아붙인 것도 선조가 한 일이고, 이순신과 원균의 공을 거의 동등하게 평가한 것도 선조가 주도한 것입니다.

선조는 왜란이 끝나자 논공행상을 하면서 '전란을 극복한 것은 모두 명군의 공로이고 조선의 공은 없는 것이다 다름없다'라고 하며, 당시 명나라 장수들이 숭상하던 제갈량과 관우 등의 사당을 세우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명군을 과도하게 치켜세우고 이순신이나 의병들의 공은 평가절하한 것은 다 선조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금인 자신이 그저 도망만 다닌 것에 비해 백성들이나 일부 장수들의 공로가 크다고 하면 자신의 체면이 너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보니, 이렇게 포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임금인 자신이 전쟁 초기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명나라로 달려가 명군 파병을 요청한 것이 왜란 극복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러자면 명군의 참전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해야 했고, 더불어 백성들에게도 그런 명군에 대한 감사를 표하도록 유교 국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도가 계통의 와룡묘나 관제묘까지도 세우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산책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승만 생각이 났습니다.  최근에 소위 애국보수 진영에서는 '국부 이승만' 띄우기에 상당히 열을 올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대체 저 양반들 뜬금없이 왜 저러나 의아하게 생각했었지요.  아마도 친일파 논란이 있는 정치인들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최근 총선 이후로 일부 정치인들이 세력을 잃으면서 이승만 띄우기 노력도 급속히 수그러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목표 의식을 상실해서 그런가 봐요.

이승만은 독재와 헌법 유린, 친일 인사 기용 등 많은 악행을 저지른 인물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추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허위로 '국군이 북진 중이니 국민들은 안심하시오'라는 방송을 틀어놓고 자기만 ㅌㅌㅌ 도망친 부분입니다.  거기에 피난민으로 가득찬 한강다리를 아무 예고 없이 폭파한 것은 클라이맥스였지요.  그러나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런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서도 쉴드를 쳐주기는 합니다. 

"전란 극복을 위해서는 국가 수뇌인 이승만 신변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도자부터 후퇴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글쎄요. 이런 어이없는 논리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몇가지 재미있는 역사적 에피소드를 보시지요.


1.  왜 전설의 어새신들은 기사단장들을 두려워했는가 ?

13세기에 있었던 제7차 십자군 시절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팔레스타인 해변의 요새인 아크레(Acre)에 머물 때, 화려하게 차려입은 일단의 아랍인 사절단이 루이 왕을 만나겠다며 찾아옵니다.  이들은 당시 십자군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산중 노인', 즉 알라무트(Alamut) 산에 근거를 둔 암살자(Assassin) 집단에서 온 사절이었습니다.  이들 중 하나는 칼 세자루를, 또 다른 사람은 두툼한 아마포를 들고 왔는데, 이는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이 칼을 왕에게 줄 것이고 결국 그 아마포로 왕의 시신을 감싸게 될 것이라는 공공연한 협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요구는 '독일 황제나 헝가리 왕, 이집트 술탄이 그래왔던 것처럼 프랑스 왕인 너도 산중 노인에게 보호비를 바쳐라, 그러지 않으면 니 목숨은 없다' 라는 것이었지요.





(알라무트 산의 어새신 요새의 잔해입니다.  누가 이 무시무시한 암살자들의 요새를 무너뜨렸을까요 ?  징기스칸 앞에서는 어새신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었습니다...)




이런 협박을 받자 루이 9세는 성전 기사단(Knights Templars)과 병원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의 단장(Grand Masters)들을 각각 불러오게 했습니다.  이들은 이 무시무시한 사절들에게 '프랑스 왕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면 혼난다' 라는 식으로 감히 훈계를 했는데, 왕 앞에서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이 암살자들은 놀랍게도 이 기사단장들 앞에서는 뱀 앞의 쥐처럼 꼼짝을 못했습니다.  결국 이들과의 회담은 루이 9세와 알라무트 암살자들 상호간에 금은보석을 주고 받으며 불가침 동맹을 맺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왜 이 암살자들은 두 기사단장에게 꼼짝 못했을까요 ?  이 두 기사단장의 무공이 소드마스터급이어서 그랬을까요 ?  루이 왕의 연대기를 쓴 그의 신하 조앵빌(Jean de Joinville)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산중 노인은 기사단장들을 죽이느라 휘하의 암살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완전히 손해보는 장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왕들과는 달리, 기사 단장은 죽여봐야 똑같이 훌륭한 다른 기사가 단장이 되어 버리므로 암살의 효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2.  왜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테르모필라에에서 그렇게 싸우다 죽는 것을 택했나 ?

민주정이 아니라 세습 왕정이었던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왜란 때의 선조와는 달리 페르시아의 침공에 맞서 테르모필라에에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역시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파르타의 왕은 하나가 아니라 항상 두 명이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를 견제해야 했고, 또 동시에 상호 보완적이어야 했습니다.  두 왕 중 하나가 저렇게 싸우다 죽으면, 나머지 한 명의 왕이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나라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왕은 전제군주가 아니라 사실상 군사 지휘관이었습니다.  실제 권력은 10명의 에포르(ephor), 즉 장로들에게 있었습니다.  알고보면 왕 2명이 다 죽어도 상관없었지요.  새로운 왕을 뽑으면 되니까요.







3.  지도자에 대한 크세륵세스와 데마라투스의 대화

스파르타의 왕 중에 정치 싸움에 휘말려 고국에서 쫓겨난 데마라투스(Demaraths)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크세륵세스 치하의 페르시아 제국으로 망명하여, 크세륵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할 때 그와 함께 동행했습니다.  전형적인 매국노였지요.  크세륵세스는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이 사람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물었는데, 대화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크세륵세스 : 만약 그리스군의 병력 수가 내 군대에 맞먹는다고 하더라도, 그리스군은 질 수 밖에 없다.  내 군대는 나의 명령 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에 비해, 그리스군은 하나의 지도자 아래 단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데마라투스 : 왕이시여.  스파르타인들은 자유인이지만, 완전히 자유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군주는 법(nomos)입니다.  법에 따라 그들은 싸우고 죽습니다.  그들은 전하의 군대가 전하의 명을 무서워 하는 것보다 더 법의 명을 무서워 합니다.




4.  프리드리히 대왕과 히틀러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7년 전쟁 도중 1759년 쿠네르스도르프 (Kunersdorf) 전투에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에 참패를 당해 위기에 빠집니다.  프랑스와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3대 강국에게 완전히 포위된 프리드리히에게 뜻 밖의 행운이 옵니다.  러시아의 여걸 엘리자베타 여황이 1762년 1월 사망해버린 것입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프리드리히 대왕의 친척이자 그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표트르 3세였으므로 러시아는 자연스럽게 전선에서 이탈했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다시 한번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브란덴부르크 가문의 기적' 사건이었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위기에 몰린 히틀러에게도 희소식이 날아듭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사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틀러를 위한 기적은 없었습니다.  미국은 18세기 러시아와는 달리 민주정이었거든요.  부통령 트루먼이 그대로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나찌 독일을 짓눌러 버렸습니다.





(믿고 보는 굽시니스트...  출처 : https://www.maximkorea.net/m/contents/contents_view.php?contents_uid=4759&contents_cate2=27&from=pcweb )



5.  시빌 워 중 캡틴 아메리카의 명연설

"공화국에 있어, 누가 국가이지 ?  정권을 쥔 정부인가 ?  정부는 그저 하인, 그것도 임시 하인에 불과해...  (중략) 정부의 기능은 명령에 따르는 것이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누가 국가이지 ?  언론인가 ?  성직자들인가 ? .... (중략)  공화국에 있어서 그것은 민중의 공통된 목소리야.  너희 각각이, 너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너 혼자서, 그리고 스스로의 책임 하에 목소리를 내야 해... (하략)"





(출처 https://lowbrowcomics.files.wordpress.com/2015/05/img_7172.png  원래 이 연설은 마블사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저 만화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마크 트웨인의 Adams 가족의 서신에 나오는 내용 거의 그대로입니다.)



저도 어벤저스 영화 시리즈 아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캡틴 아메리카 아주 좋아합니다.  복장도 유치찬란하고 수퍼 히어로 치고는 정말 약해빠진 스펙에... 아이언맨에 비해 관객수도 형편없지만, 저런 연설을 할 수 있는 확고한 미국적 가치관, 그리고 강자에게 굴하지 않고 주먹을 쥔 채 'I could do this all day'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때문입니다.  미국 어린이들은 만화책을 보면서도 저런 가치관 교육을 받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는지 좀 걱정이 됩니다.  이승만 같은 인간이 또 지도자가 되어 위기 때 또 너희를 버리고 도망가더라도 다 국가를 위한 것이니 받아들여라 라고 배우는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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