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IP TV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영화 중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가 떴길래,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2005년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해군 네이비 씰 특수부대와 탈레반 간의 전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사건 내용은 뉴스에서도 많이 보도되었고, 생각해보면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이 블로그를 보실 때 딱히 스포일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산간 지방에 헬기로 투입된 4명의 네이비 씰 부대원들이 비밀 임무 수행 중에 3명의 염소치기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들을 놓아주면 미군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곧 탈레반에게 알려질 것이므로, 임무가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무장 민간인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서 부대원들은 의견이 갈립니다. 두 명의 대원은 죽이고 가자는 의견이었고, 주인공이자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인 러트렐은 '그럴 수 없다, 교전 수칙 위반이기도 하고, 결국 CNN 등 뉴스에서 알게 된다'라며 놓아줘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부대원들끼리 옥신각신할 때, 이들의 지휘자인 머피 중위가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론을 내립니다.
"이건 투표가 아니다. 교전 수칙대로 한다. 발각된 순간 임무는 실패한 것이니 이들을 놓아주고 헬기를 불러서 여기를 빠져 나간다."
(영화 상에서 머피 중위로 나왔던 테일러 킷취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산악 지방이라 무전이 잘 터지지 않았던데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다수의 탈레반 병사들이 나타나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약 10배가 넘는 적을 상대하게 된 미군들은 모두 여기저기 부상을 입고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여기서 제가 굉장히 심쿵했던 부분이 나옵니다.
일단, 이렇게 사지에 놓이게 된 부대원들 중 누구 하나도 염소치기들을 놓아줄 것을 주장했던 러트렐에게 비난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각자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러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자, 러트렐은 이미 심각한 중상을 입은 머피 중위에게 다가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라고 말합니다. 부상에 신음하던 중위가 '뭐 때문에 ?'라고 묻습니다. 저는 이때 러트렐이 '내가 그들을 놓아주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라는 말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러트렐은 '저 놈들을 더 많이 죽이지 못해서요' 라고 말했고, 이미 피를 철철 흘리고 있던 중위는 '괜찮다, 평지에 내려가서 다 죽여버리면 된다' 라고 허세를 부리지요.
여러분이 그 4명의 네이비 씰 대원이었다면, 염소치기들을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
일단, 미군에게는 교전 수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는 일은 군법회의에 회부될 만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머피 중위는 부하들이 뭐라고 하든,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염소치기들을 놓아주어야 했습니다. 만약 머피 중위가 부하들에게 '저들을 쏘아 죽여라' 라고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병사들은 그 명령에 따라서는 안 됩니다. 따른다고 하면 그 범죄 행위에 동참하는 것이 되고, 아무리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군법 회의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덕분에 3명이 전사하고, 덧붙여 그들을 구하러 왔던 네이비 씰 1개 소대가 헬기 격추로 인해 전멸했으니 그런 규정은 정말 멍청한 것이고, 그런 규정은 결국 지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일한 생존자인 러트렐 자신도 '염소치기를 놓아줬던 것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멍청한 결정이었다'라고 후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마 미국방부의 똑똑하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봅니다.
(실제 머피 중위입니다. 예전에 이 사진을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머피 중위의 행동은 미군 수뇌부에서도 매우 높게 치하되었습니다. 임무는 실패하고 많은 미군 병사들이 죽었지만, 머피 중위는 사후에 무공훈장 Medal of Honor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한 척에도 USS Michael Murphy 라는 이름을 붙여 그의 이름이 영원히 역사에 남도록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친미파라고 부릅니다만, 저는 친일파나 친중파와는 달리 친미파는 매우 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꼭 미국에 돈과 미사일이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당장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교전 수칙을 무시하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다면, 전투에서는 승리할지 몰라도 결국 전쟁에서는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강력한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손쉽게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 결국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 했던 것은 결국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전 수칙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 민심을 얻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비무장 민간인 살해 금지라는 기본적인 수칙조차 지키지 않을 경우, 더 심각한 민중 저항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저 사건에서 러트렐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위험에 빠진 손님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이슬람 율법을 지키려는 파슈툰족 마을 주민들 덕분이었는데, 미군이 당장의 목표 달성을 위해 평소에 민간인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면 그런 보호도 받을 수 없었겠지요.
최근 필리핀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좋게 말해서 초법적, 나쁘게 말하면 무법이나 다름없는 경찰 폭력을 이용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고, 덕분에 강력 범죄가 30% 넘게 감소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박정희와 전두환이 각각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에 시중 깡패들을 초법적 조치를 통해 잡아들여 탄압했었지요. 글쎄요... 전투에서는 승리하고 전쟁에서는 지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 사족 : 러트렐을 보호해주고 살려줬던 현지 마을 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네이비 씰이 탈레반의 공격을 받은 것은 그 염소치기들이 탈레반에게 고자질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침투할 때 이용했던 헬리콥터의 엔진 소음이 너무 심해서 미군의 침투를 모두가 예상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또 영화 말미에 나오는 탈레반과의 교전은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았고, 러트렐이 미군에게 구조될 때는 매우 평온한 상태에서, 마을 주민들이 대접하는 차까지 한잔씩 나눠마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잡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주의 멋과 희열 - The Commodore 중 한 장면 (0) | 2016.09.25 |
---|---|
몬산토 인수 합병 기념 - 영국의 보물 상자, Wardian case 이야기 (0) | 2016.09.16 |
와룡묘와 이승만에서 캡틴 아메리카까지 - 민주주의에서의 지도자 (0) | 2016.06.05 |
미 공군 사관학교 관광 - 2015년 8월 (0) | 2016.05.12 |
콜로라도 여행 - 2015년 8월 (0) | 2016.05.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