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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수호지, 그리고 생선의 보존

by nasica-old 200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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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시내암(施耐庵) 작 (배경: 송나라 휘종 재위때) --------------------------

 

송강도 이 두 친구를 알게 된 것이 대견해서 몇 잔인지 술을 연거푸 마셨다. 문득 생선 매운탕(魚辛湯)이 먹고 싶은 생각이 나서 대종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싱싱한 생선을 구할 수 없소 ?"

 

"있구 말구요. 강에 가득 차 있는 게 모두 고기잡이 배인걸요. 싱싱한 생선 쯤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

 

대종은 대뜸 술집 심부름꾼을 불러서 생선 매운탕 세그릇을 시켰다.

 

매운탕이 술상 위에 오르자, 이규는 젓가락으로 먹지 않고 손가락을 넣어서 생선을 집어내 가지고 가시건 뼈건 상관없이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송강은 그 꼴을 보자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매운탕을 서너 모금 떠마셔 보고는 그 이상 숟가락을 대지 않았다.  그 생선 매운탕은 싱싱한 물고기를 넣지 않고 소금에 절인 자반 생선을 써서 끓인 매운탕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대종이 심부름꾼을 불러서 분부한다.

 

"방금 먹던 매운탕은 자반생선으로 끓인 모양이어서 맛이 없으니, 다른 매운탕을 한가지 더 해다가 이 손님께 잡수시도록 해주시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장님 ! 이제 그 생선은 어젯밤 치입니다.  오늘 아침에 잡은 싱싱한 생선은 아직도 뱃속에 그대로 있고, 생선 주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싱싱한 생선을 쓰지 못했습니다."

 

이규가 그 말을 듣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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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는 중국 고전의 4대 기서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4대 기서란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그리고 금병매를 말합니다.  금병매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양 3국, 그러니까 중국 한국 일본 모두에서 널리 읽히는 작품들입니다.  그 줄거리 자체가 워낙 재미있고 다이나믹해서, 온갖 만화 영화 게임 등으로 컨텐츠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아이도 그 중 하나인 서유기를 재창조한 "마법 한자문"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수호지는 그 3권 중에서, 그래도 가장 인지도나 인기가 떨어지는 작품입니다.  떼강도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삼국지연의에 비해 작품의 구성도 좀 떨어지는 편이고, 무엇보다도 그 등장 인물들의 개성이 약간 처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삼국지 같은 경우는 카리스마 조조, 능구렁이 유비, 간지좔좔 관우, 단순무식 장비, 똘똘이 스머프 제갈량, 석양의 무법자 조운 등 매력 만점의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잘 융합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갑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삼국지를 읽을 때, 등장 인물의 이름을 싹 지우고 읽어도 이건 지금 누구의 행동이구나 하는 것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이건 좀 불공평한 이야기입니다.  사내아이라면 왠만하면 삼국지 1~2번 쯤 안읽어본 사람이 없으니까, 줄거리를 다 알지 않습니까 ?

 

그에 비하면 수호지는, 108명의 영웅들의 성격이 대략 온건파, 개념상실파, 급성질파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져 버려, 개개인의 특성은 그렇게 드러나지는 않는 편입니다.  가령 관승과 임충의 성격 구분이 되십니까 ?  이규와 노지심도 성격이 비슷한 편입니다.  나중에 가면 군사 오용과 보조군사 주무의 모습이나 역할도 비슷비슷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4대 기서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삼국지가 가장 인기가 있나 봅니다.

 

저 위에 인용된 부분은, 송강이 강주로 귀양을 가서, 그곳의 불량배인 이규와 사귀게 되는 부분인데, 싱싱한 생선이 없다는 이유로 '음식 투정'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 다음 부분에 이규가 벌떡 일어나서 사고를 치는 것이 바로 물귀신 장순과 싸움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이래서 또 한명의 영웅과 사귀게 되지요.

 

아, 수호지 영웅들의 최후에 대해서는 잘들 모르시지요 ?

 

송강과 노준의는 탐관오리들에게 독살당합니다.  이규는 이규의 앞날을 걱정한 송강이 독살하고요, 임충, 양지 등은 병사합니다.  독특한 것은 관승인데, 조정에 귀순한 다음에도 높은 신임을 받아 승진을 거듭하다가, 어느날 밤 훈련을 마치고 술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길에 낙마하여 사망합니다.  쌍편 호연작은 금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요.  결국 끝까지 잘되는 사람은 이준인데요, 그 친구는 썩은 송나라를 떠나 태국의 왕이 된다고 설정되어있습니다.  결국 여기서도 '해외이민'이 대세로군요.

 

 


 

생선탕을 주로 파는 식당에 가보면, 그냥 대구탕이 있고 생대구탕이 있습니다.  가격은 생대구탕이 약 3,4천원 정도 더 비싼 것이 보통인데요, 여러분은 그 맛을 구별하실 수 있습니까 ?  저는 사실 별로 구별이 안갑니다. 어차피 끓는 물 속에 들어가는 물고기인데, 그걸 얼렸다 넣든, 그냥 넣든 구별이 된다는 사실이 더 신기합니다.

 

생선 뿐만이 아니고, 쇠고기나 삼겹살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냉동된 것에 비해 '생고기'라는 것이 훨씬 비싼데요, 얼린 고기에서는 뭔가 냄새가 나서 먹기 싫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같은 미맹으로서는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돈은 거짓말 안 한다고, 뭔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격도 차이가 나고, 또 드시는 분들도 그렇게 차이를 인정하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 수호지에서 송강이 싱싱한 생선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선탕을 안먹는 것은 약간 이해를 해주셔야 합니다.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었쟎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강주처럼 따뜻한 곳에서는 생선이나 고기가 금방 상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고기는 반드시 소금으로 절여서 보관을 해야 했습니다.  저같은 미맹도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고기는 구별을 합니다.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 

 

고기나 생선의 보존 방법에는 말리는 것, 절이는 것, 연기에 그슬리는 것 이렇게 크게 3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냉장이 가장 흔한 방법이고요, 통조림도 자주 쓰입니다.  특히 생선은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보존 방법이 크게 문제가 됩니다.  소나 돼지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같이 사는 짐승이므로, 도살해서 먹을 때까지의 시간이나 거리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생선은 먼 바다에서 잡아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빨리 처리를 하지 않으면 정말 쉽게 상해버립니다.  또, 소금에 절인다고 해도, 아무래도 송강처럼 입맛 까다로운 인간들은 저렇게 음식 투정을 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 '간수'라는, 일종의 소금물에 절이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소금에 직접 절이지 않고 간수에 절이면 보존성이 훨씬 더 좋아진다고 하네요.  이 방법은 네덜란드의 어떤 어부가 개발헀다고 합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인가에 가보면, 간수 저장법을 발견한 그 어부의 기념비가 있다고 하며, 대대로 네덜란드를 지배해온 합스부르그 왕가에서 파견된 총독도, 네덜란드인들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그 어부 기념비를 예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항구도시, 즉 암스테르담이나 앤트워프 등은 청어와 대구로 쌓아올린 도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생선 유통업으로 부의 기초를 닦았거든요.  그러니까 간수의 발명이 없었다면, 그렇게 유럽 내륙 도시로 생선을 팔지도 못했을 것이고, 오늘날 네덜란드의 부도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Perfect Storm'이라고, 조지 클루니가 나온 해양재난 영화 기억나십니까 ?  거기서 조지 클루니는 작은 어선의 선장인데, 모처럼 고기를 잔뜩 잡아 한몫 벌 꿈에 부풀었는데, 그만 생선 사이에 채워넣기 위한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가 고장나서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고기가 다 상해버릴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 돌아가기 위한 직선 항로에는 태풍이 통과하는 거에요.  클루니와 어부들은 모처럼 잡은 '돈 벌'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과감하게도 태풍을 통과해서 귀항하려고 합니다.  결국 모두 꼬르륵.

 

이 영화의 줄거리를 보면, 결국 사람은 죽음보다 돈을 더 무서워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논어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  어떤 여인이 길바닥에 앉아 울고 있길래, 공자님이 왜 우느냐고 물으니, 호랑이가 남편을 잡아먹어서 운다고 대답을 합니다.  공자님이 그럼 왜 이렇게 호랑이가 나오는 산속에 사느냐고 물으니, 여인 왈 "세금 걷어가는 관리가 산속에는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하고, 공자님도 거기서 크게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호랑이보다 세금 징수원이 더 무서운 거라고요.  비슷한 이야기가 서머셋 모움의 '인간의 굴레'에도 나옵니다.  의대생인 주인공 필립이 응급실 당직 근무를 할 때, 응급실 수간호사가 말하기를, 자살로 실려오는 사람을 수없이 봤는데, '사랑 문제로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자살자들은 모두 돈 문제로 자살하더라'는 것입니다.

 

생선의 보존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결국 돈 이야기로 끝나네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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