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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무기여 잘있거라, 그런데 롤빵은 ?

by nasica-old 200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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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있거라, 헤밍웨이 작  (배경: 제1차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스위스 국경지대) ----------------------------

 

"우리가 스위스 국경을 넘은 것 같아, 캐더린," 내가 말했다.

"정말이요 ?"

"정말인지는 스위스 군대를 만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또는 스위스 해군이겠지요."

"스위스 해군을 만나면 이야기가 골치아파질 수도 있어. 아마 마지막으로 우리가 들었던 모터보트 소리가 바로 스위스 해군이었을거야."

"스위스 땅에 들어온거라면 우리 거창한 아침을 먹어요.  스위스에는 아주 근사한 롤빵과 버터, 잼이 있어요."

 

...중략...

 

아주 깨끗하고 멋져보이는 여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와서 주문을 하겠냐고 물었다.

 

"롤빵과 잼과 커피요." 캐더린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시라서 롤빵은 없습니다."

"그럼 빵이요."

"토스트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좋아요."

"달걀 프라이도 먹고 싶어요."

"신사분께는 달걀 프라이를 몇개 해드릴까요 ?"

"3개요."

"4개로 해줘요, 여보"

"달걀 4개요."

 

여자가 물러났다.  나는 캐더린에게 키스하고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또 카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보, 정말 멋지지 않아요 ?"

"아주 근사해."  내가 말했다.

"롤빵이 없다고 섭섭하지는 않아요." 캐더린이 말했다.  "사실 밤새도록 롤빵 생각만 했어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섭섭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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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부터 roll 이라고 하면, 롤케익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냥 둥글고 작은 빵을 roll 이라고 부르더군요.  또 roll에서 소프트 롤이 있고 하드 롤이 있고, 나름대로 종류가 많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처음으로 롤과 빵이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은 우습게도 군대였습니다.  저는 카투사 출신입니다.  하루는 미군 하사관 하나와 같이 기지내 식당(mess hall)에서 점심을 먹는데, 줄을 서서 음식을 한 종류씩 받아서 트레이에 올려놓다가, 빵을 집는 코너에 왔었습니다.  그때 내가 롤을 가리키며 bread라고 부르자, 그 하사관이 씨익 웃으며 그건 roll이고, bread는 저거라고 가리키더군요.  그 녀석이 가리킨 것은 sliced bread, 즉 식빵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녀석이 좀 까칠하게 구분한 것 같고, roll도 분명히 bread의 일종입니다.  Bread roll이라고도 부르니까요.  생긴거야 분명히 다르지요.  또 사실 식빵(sliced bread)이라는 것도 1930년대 들어서야 대중화된 것이니까 꼭 식빵만 bread라고 부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bread라는 말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일반적으로 덜 사용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Bread라는 말보다는 빵의 종류 이름을 더 자주 부르더군요.  가령 롤, 패스트리, 크롸상 등의 구체적인 이름으로 부릅니다.  심지어, 햄버거용 빵도 bread라고 하지 않고, hamburger bun이라고 부릅니다.  왜 햄버거용 빵은 또 bun 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Bun은 일반적으로 우유와 버터가 많이 들어간 달콤한 빵이라고 알고 있는데...

미국 외에,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이나 기록 같은 것을 봐도, bread라는 말은 잘 안쓰고, 차라리 loaf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 하사관 녀석이 bread라고 불렀던 sliced bread, 즉 식빵은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1930년대에 미국에서 대중화되었습니다.  최초의 식빵 써는 기계는 1917년대에 미국 아이오와 주의 어떤 발명가가 만들었는데, 제대로 작동하는 최초의 기계는 1928년에야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loaf를 칼로 써느라고 고생들 했겠습니다 ?

 

(이 그림이 당시 미국 특허청에 출원된 식빵써는 기계의 구조도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무기여 잘있거라'의 한 구절에서 인상적인 것은 빵 이외에 하나 더 있습니다.  달걀이지요.  아침에 달걀을 4개 ?  아, 생각보다 많이 먹지 않습니까 ?  아주 어렸을때 TV로 본 영화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스티브 맥퀸이 나오는 19세기 후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맥퀸은 거기서 미군의 소형 군함의 선원으로 나옵니다.  거기서 그 배에 새로 전입온 맥퀸에게, 동료 병사들이 '아침으로 달걀을 몇개나 먹겠느냐'라고 묻자 맥퀸은 '10개'라고 대답을 하는데, 그걸 그냥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면서 동료 병사들이 말하는 것이, '이 배가 좋은 점은 정말 집에 있는 것 처럼 잘 먹여준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정말 미군들은 저렇게 잘 먹나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아침 식사로 달걀 10개를 먹어봤으면 생각을 했었지요. (어릴 때 가난했거든요.)  지금은 먹을 처지가 됩니다만, 도저히, 도저히 그렇게는 못먹겠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전쟁이라고 롤빵이 없다는 것도 이해가 안가지만, 그럼 달걀은 왜 그냥 있는지도 웃깁니다.  전쟁때 달걀은 필요가 없나보지요 ?

 

Tour of Duty라고 우리나라에서는 '머나먼 정글'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미국 월남전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미군 병사들이 휴가로 방콕엘 가는데, 거기서 병사들이 달걀 프라이를 허겁지겁 열심히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전선에서는 달걀 프라이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지요.  이건 사뭇 이해가 갑니다.  달걀이라는 것이 쉽게 상하고, 쉽게 깨지기 때문에, 대량으로 전선에 보내기 힘든 식품입니다.  달걀 통조림이라는 것도 없쟎아요 ?  미군 MRE 중에도 (제가 종류별로 다 먹어봤다고 생각하는데) 달걀이 들어간 MRE 요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달걀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또 우수한 식품이라서, 전선에서 병사들에게도 먹이면 좋습니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달걀도 분유처럼 분말화해서 공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돈많은 미군애들이 한 짓이지요.  어떤 종군기자가 그렇게 분말화된 달걀로 만든 요리를 먹어본 소감을 적은 것을 읽어보았는데, 한마디로 '묘한 맛이 나지만 분명한 것은 이건 달걀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보아, 그 기자만 입맛이 까다로왔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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