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4년 프랑스) -----------
(루실의 오빠가 영국군으로 위장한 괴한들에게 살해됩니다. - 역주)
장군(루실의 죽은 남편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 - 역주)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 말에 따르면 넌 전혀 먹지를 않는다더구나."
루실은 시아버지의 걱정을 무시했다. "저는 영국놈들이 미워요."
"물론 이해가 간다." 카스티노 장군은 달래 듯이 말했다. 사실 그가 들은 바에 따르면 러시아군에게 포로가 되는 것보다는 영국군에게 포로가 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들 했다. 장군은 그 불쾌한 주제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 루실은 지금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늘 너를 위해 렌틸콩 수프를 주문해놓았단다."
"만약 그 영국인들이 돌아오면 죽여버리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먹지 않으면 어디서 힘이 나서 그들을 죽이겠느냐 ?"
그 말에 루실은 마치 장군이 뭔가 어려운 생각을 해냈는데, 그 생각이 꽤 쓸만 하다는 듯한 눈길로 장군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요, 아버님."
점심때 그녀는 렌틸콩 수프를 걸신들린 듯이 먹고는, 햄덩어리에서 아주 두껍게 한 조각을 썰어내어 먹었다. 사실 그 햄은 장군이 그 다음날 돌아갈 때 안장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
(결국 루실은 나중에 찾아온 샤프를 산탄총으로 쏘아 중상을 입힙니다. 그러고난 뒤에야 샤프는 오빠의 죽음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미안해 합니다. - 역주)
...
하지만 이날 밤, 루실은 불안한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샤프가 잘 먹기를 바란다고 했다. 식탁 위에는 포도주, 빵, 치즈와 작은 햄조각이 있었는데, 프레데릭슨 대위는 햄을 조심스레 샤프의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샤프는 프레데릭슨의 접시를 보고, 이어서 루실의 접시를 보았다. "자네 햄은 어디 있지, 윌리엄 ?"
"카스티노 부인(루실)은 햄을 좋아하지 않으신답니다." 프레데릭슨은 치즈를 잘랐다.
"하지만 자넨 좋아하쟎아 ? 난 자네가 햄을 빼앗으려고 살인하는 것도 봤는데."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 건 소령님이쟎습니까." 프레데릭슨은 고집을 부렸다. "제가 아니고요."
샤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집에는 돈이 부족한 모양이지 ?" 그는 카스티노 부인이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리지 않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합니다, 소령님. 물론 땅은 많은데, 요즘은 그게 도움이 안되나 봅니다. 게다가 앙리의 약혼식에 가진 돈을 거의 다 써버렸나봐요."
"망할." 샤프는 햄을 우스꽝스럽도록 작은 세조각으로 잘랐다. 왼팔을 아직 제대로 쓸 수가 없어서 그의 동작은 매우 서툴렀다. 그는 햄을 세 접시 위에 공평하게 나누었다.
--------------------------------------------------------
다들 동의하시겠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육류는 대단히 비싼 것이고, 잔치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유럽이나 미국애들은 빵이 주식이 아니라 그냥 고기가 주식인 것 같더군요. 제가 어렸을 때,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맨날 지는 것을 보면서, 주변 어른들이 하던 말이 기억납니다. "고기먹고 자란 애들하고는 상대가 안돼."
실제로, 히딩크도 처음에 한국에 감독으로 왔을 때, 한국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의 식단부터 고쳐야하며, 이는 1~2년 사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언급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유럽에서 키가 가장 큰 국가는 (스웨덴이 아니고) 네덜란드인데, 이유는 우유나 치즈 같은 낙농업 제품을 많이 먹되, 과식을 하지 않는, 매우 좋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반면에 가장 고기를 많이 먹는 미국에서는, 오히려 자꾸 평균 신장이 작아져서 걱정이라는 기사를 최근에 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백인 인구의 신장은 괜찮은데, 흑인 인구의 신장이 자꾸 작아진답니다. 그 이유는 패스트푸드만 자주 먹는 등, 좋지 않은 식습관이 주원인이라고 합니다. 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사실 네덜란드도 그리 좋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이, 키는 가장 클지 몰라도, 골다공증 발생률도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이유는 유제품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너무 많아서, 그 소화에 칼슘이 과다 소모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성장기가 지나면, 우유를 자주 마시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처음부터 그렇게 고기를 많이 먹었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당연하지요 ! 누가 뭐래도 고기는 곡물이나 채소보다 비쌉니다. 저 위에 인용된 소설 한 장면에도, 햄이라는 육류가 비싼 것이라서, 가난한 집주인이 많이 내놓지 못하는 것이 보이지요.
가난한 농민들은 거의 고기를 못먹었습니다. 프랑스의 상징이 닭이쟎습니까 ? 그 이유도, 백년전쟁 이후 앙리 4세의 명재상 쉴리가, 통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잡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농민들의 냄비 속에 적어도 일요일에는 닭이 들어있을 수 있도록 하자 !"
국가 통치 목표치고는 상당히 멋지지 않습니까 ? '반공'이나 '소득 2만불시대를 열자' 또는 '닥치고 운하' 등 보다는 훨씬 소박하면서도 간단 명료합니다. 서민들도 좋은 것을 먹고 살게 해주자 라는 것은 굉장히 멋진 통치 이념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프랑스 인구의 대부분은 빵을 주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쌀 소비가 자꾸 줄어드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빵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육류의 소비가 늘고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빵은 계속 먹는다는군요. 한번은 프랑스에서 앙케이트 조사를 해보았는데, 왜 식사 때 빵을 먹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그냥 안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가 저녁으로 햄버거나 닭을 먹었다고 하면, 어르신들은 '밥을 그래도 먹어야지'하고 또 차려주시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이 되네요.
저 위에 인용된 소설에서 나온 육류는 햄입니다. 대표적인 장기 보존용 육류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햄이나 소시지나 그게 그거처럼 통용이 되는데요, 사실 햄이라는 것은 소시지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햄이라는 말은 원래 가축의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의 부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박찬호가 부상당한 부위가 햄스트링이었다는거 기억하시지요 ? )
소시지는 이런저런 잡고기를 갈아서 만드는 것인데 비해, 햄은 돼지 뒷다리를 그대로 절이거나 훈제한 뒤 숙성시켜 만드는 것입니다. 원래 이렇게 다른 것인데, 햄이나 소시지나 그게 그거라는 인식을 퍼뜨린 것은 미제 스팸이 주된 역할을 했지요.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식품 법규상 햄이라는 것을 꼭 돼지 뒷다리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요. 햄은 돼지 뒷다리를 대개 1~2년간 숙성시킨 뒤에야 먹는다고 합니다. 훈제하지 않은 생햄의 종류도 많다고 합니다. 영화로 유명해진 스페인의 하몽(jamon)도 생햄의 일종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1~2년 동안 냉동 보관도 하지않은 돼지고기를 날 것으로 먹는다는 사실이 상당히 꺼림직해보이는데, 위생에는 별 문제가 없는 모양이네요. 저는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드신 분들의 표현에 따르면, 좀 꾸릿꾸릿한 냄새가 약간 거슬린다고 합니다.
이성기 교수라는 분이 쓴 '벨기에 이야기'라는 책에, 이 생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성기라는 분은 축산식품과학과 교수이신데, 예전에 어떤 국립 연구소에 있을 때 상사가 난데없이 고기 덩어리를 하나 주면서 이런 것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여 우리나라 축산업계에서도 만들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도통 영어로 된 자료가 없어서 난감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게 생햄이었는데, 글쎄요, 교수님의 연구가 아직 본격화되지 못했는지, 또는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는 안맞았는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햄이 생산된다는 이야기는 못들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돼지고기는 무조건 삼겹살 아니면 목살만 먹는 나라에서야말로 돼지뒷다리로 만드는 생햄은 아주 좋은 산업이 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harpe는 내장 요리를 좋아해 (0) | 2009.08.29 |
---|---|
집없는 천사, 그리고 빵 껍질 (0) | 2009.01.30 |
간식과 패스트리 (0) | 2009.01.13 |
분노의 포도, 그리고 1센트짜리 캔디 (0) | 2008.12.24 |
고기 진리교와의 전쟁 ! (0) | 2008.12.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