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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The Battler, 그리고 뜨거운 샌드위치

by nasica-old 200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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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ttler by Ernest Hemingway (배경 : 제1차세계대전 이전의 미국 어느 시골) -----

 

(등장 인물들 이름을 알고 보셔야 헷갈리지 않습니다.

 

닉 애덤스 - 지나가던 시골 촌뜨기

애드 프랜시스 - 약간 실성한 전직 현상금 파이터

벅스 - 애드의 동료인 흑인)

 

"배가 고픈가, 닉 ?"

 

"우라지게 고파요."

 

"들었지, 벅스 ?"

 

"대개 듣고 있소."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쟎아 ?"

 

"그래요, 이 신사분이 말하는거 들었소."

 

그 검둥이는 프라이팬에 햄조각을 늘어놓고 있었다.  프라이팬이 뜨거워지고 햄기름이 튀기 시작하자, 벅스는 그 긴 검둥이 다리를 구부리고 불가에 앉아 햄을 뒤집고 달걀을 프라이팬에 깨어넣었다.  그리고는 뜨거운 햄기름이 달걀에 고루 스며들도록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기울였다.

 

"저 봉지에서 빵을 꺼내 좀 잘라주시겠소, 애덤스씨 ?" 벅스는 불에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물론이지."

 

닉은 봉지를 집어들고는 빵 한덩어리를 꺼냈다.  그는 6조각을 잘라냈다.  애드는 그를 지켜보다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칼 좀 주겠나, 닉."  그는 말했다.

 

"안돼. 그러면 안돼요."  검둥이가 말했다.  "댁의 칼을 잘 갖고 계시오, 애덤스씨."

 

그 현상금 파이터는 다시 앉았다.

 

"빵을 내게 갖다주시겠소, 애덤스씨 ?"  벅스가 물었다.  닉은 빵을 건네주었다.

 

"햄기름에 빵 적시는 거 좋아하시오 ?" 검둥이가 물었다.

 

"당연하지 !"

 

"좀더 기다리는게 좋겠는데.  식사를 마칠때쯤 적시는 게 좋겠군요. 여기요."

 

검둥이는 햄조각을 집어들고 빵 한조각 위에 올려놓은 뒤,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잘 흘려올렸다.

 

"샌드위치를 덮어서 프랜시스씨에게 건네 주시겠소 ?"

 

애드는 샌드위치를 받아들고는 먹기 시작했다.

 

"달걀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검둥이가 주의를 주었다. "이건 당신겁니다, 애덤스씨, 나머지는 내꺼고요."

 

닉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물었다.  검둥이는 닉의 맞은편 애드 옆에 앉아있었다. 뜨거운 튀긴 햄과 달걀 프라이는 그야말로 기가 막힌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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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읽었던 헤밍웨이의 "우리들의 시대에"라는 단편집 중 한편인, "The Battler"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닉 애덤스라는 청년은 지나가는 화물 열차에 몰래 무임승차했다가 차장에게 들켜 달리는 기차에서 내동댕이쳐진 뒤, 벌판을 헤매다가 애드와 벅스 일행을 만나, 야외에서 불을 피우고 한끼 식사를 신세지게 됩니다.

 

 


 

식사라고 해봐야, 햄과 달걀프라이의 초간단 샌드위치입니다.  빵도 평범한 빵이고, 케첩도, 머스터드도 없습니다.  그래도 정말 맛있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 

아마 다들 맛있게 느끼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 기름기가 줄줄 흐른다는 것이고, 두번째, 뜨겁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이유인 '기름기 좔좔'에 대해서는 용기병은 과연 빵에 무엇을 바른 것일까 ? ( http://blog.daum.net/nasica/5126836 )를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기서는 두번째 이유인 '뜨겁다'는 것에 대해 말해보지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 대개 고기 요리는 우리나라 것이 양식보다 훨~씬 더 맛있습니다.  제 아무리 삐까번쩍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다고 해도, 평범한 삼겹살이나 특히 생갈비에 댈 바가 안됩니다.  더군다나 큰 행사에 참석해서 대량으로 나오는 스테이크 정식같은 경우 더욱 맛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고기요리가 더 맛있는 이유가 뭘까요 ?  마늘이 들어가서 ?  어머니 손맛 ?  제 생각에는 다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고기 요리는 바로 식탁에서 구워먹는 바베큐라는 점입니다. 

 

제가 카투사로 복무하던 기지에서는 매월 특정일이 steak day였습니다.  두툼한 스테이크를 점심 때 제공했는데요, 먹으면서도 '이게 뭐가 맛있다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대 짬밥으로 준 스테이크니까 그렇지 라고 하시겠지만, 나중에 고급 호텔에서 썰어본 스테이크와 별반 차이도 없었습니다.  특히 아웃뷁보다야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호주에서 갓 온 사람을 점심때 아웃뷁에 데려갔다가, 저녁에는 뚝배기 불고기를 시켜주니까, 벌컥 화를 내다시피 하면서 왜 이렇게 맛있는 걸 놔두고 맛대가리없는 아웃뷁에 데려갔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딱 한번, 그 군대 스테이크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mess hall open 시간이 11시30분부터였는데, 그 날은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11시 20분에 미리 갔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이 스테이크 데이였어요.  그날은 진짜 1착으로 도착해서, 굽자마자 내놓은 스테이크를 플레이트 위에 받았습니다.

아! 맛있더군요. 

물론 그 이후로도 군대 내에서는 그런 맛좋은 스테이크는 못먹어보았습니다.  제대하고 취직하고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그렇게 맛있는 스테이크는 못먹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생갈비나 서양식 스테이크나 똑같은 생고기를 불에 그냥 구워먹는 거쟎아요.  좋은 고기를 굽자마자 먹는게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아예 요리용 불판이 식탁에 놓여있는 한국식 고기요리를 따라올 것이 없는거지요.  전에 어디 놀러가서 숯불 피워놓고 석쇠에 돼지갈비를 구워먹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고기 굽는 담당이었는데, 제가 구우면서 슬쩍슬쩍 집어먹는 것은 굉장히 맛있었는데, 다 구워서 접시에 담아 사람들 식탁에 갖다준 것을 제가 또 먹어보니 별 맛 없더군요.  이유는 딱 하나.  그 사이에 식었기 때문이더라고요.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음식을 보고 놀란다쟎아요.  이렇게 뜨거운 걸 식기 전에 드세요 라고 말하다니 !  하면서요. 

 

다만, 뜨거운 음식은 정말 건강에 안 좋은거 다들 아시지요 ?  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동남아나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쟎습니까.  우리나 서구에서는 그들을 보고 더럽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보기에는,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다른 수천명이 입에 댔을 식기를 가지고 음식을 먹는 우리가 더 더럽다고 합니다.  특히, 그렇게 손으로 먹는 식문화를 가진 나라들에서는, 구강암이나 식도암 발생률이 현격하게 떨어진대요.  뜨거운 것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아.... 생갈비 먹어본지가 한 2년 넘은 것 같습니다...  먹고 싶다...
(박봉이라 내 돈 내고는 못사먹고, 요즘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회식은 거의 언제나 삼겹살...)

 

뭐 비싼돈 들일 것없이, 그냥 집에서 프라이팬에 스팸 한조각하고 달걀 프라이 구워서 식빵으로 샌드위치 만들어 뜨거울 때 먹어보세요.  아,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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