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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칼바도스와 꼬냑, 위스키의 공통점 그리고 전통주

by nasica-old 200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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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이번 주는 새글이 안나옵니다.

대신 예전에 싸이 시절에 써놓았던 글들 갈무리 해두었던 것을 대거 방출합니다.

이미 읽으셨던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특히 이 글, 그러니까 칼바도스에 대한 글에서, 저 아래 '곡물로 담근 술을 증류...' 이 부분은 원래 제가 그 아래의 포도주, 사과주와 운을 맞추려고 '맥주'라고 써놓았다가... 어떤 분이 집요하게 '맥주 좋아하시네 무식한 놈'하며 댓글을 달아주셨던 것이 기억나서, 이번에는 그냥 '곡물로 담근 술'이라고 고쳤습니다.



 

 

Sharpe's Waterloo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5년 벨기에) ---------------

 

"정말 화가 나는 부분은 말이죠," 달렘보드 소령은 갑작스러운 총격소리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저는 그걸 알 도리가 없쟎아요 ?  그렇지요 ?"

 

샤프는 그의 친구의 공포심을 비웃듯이 고개를 저었다. "올 여름이 끝날 때쯤이면 말이지, 이 친구야, 자네와 나는 파리를 정복하고 거기서 와인을 마시고 있을걸세.  우리는 아마 벨기에에서 하루 전투를 벌였었다는 것도 기억 못할 걸 !  그리고나서 자네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앤과 결혼해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거야."

 

달렘보드는 그 예언에 웃었다.  "그리고 샤프 중령님은 어찌되나요 ?  노르망디로 되돌아가실 겁니까 ?"

 

"그럴거야."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은 중령님이 프랑스에 맞서 싸웠다는 것에 대해 원한을 품지 않을까요 ?"

 

"모르겠어."  그 걱정은 샤프의 마음 한구석을 내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루실의 마음도 그 때문에 늘 어두웠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어."  샤프는 말을 이었다.  "난 거기서 행복하거든.  올해는 칼바도스를 좀 만들어볼 생각이야.  우리 샤또(chateau)에서는 예전에는 칼바도스를 많이 생산했는데, 한 20년 넘게 전혀 못만들고 있었거든.  우리 마을 의사가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해.  그 친구 아주 좋은 친구야." 

 

샤프는 갑자기 존 로센데일 경을 만났던 것과, 그에게서 우격다짐으로 받아낸 어음에 대한 생각이 났다.  만약 그 지급 어음이 현금화된다면 그 돈으로 루실의 샤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었다. 

 

"오늘 그 빌어먹을 로센데일을 만났어. 그 친구에게서 직접 지급어음을 받아냈지.  자네가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네만."

 

"물론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달렘보드가 말했다.

 

"우습게도 말이지,"  샤프가 말했다.  "난 그 친구를 좋아한 편이었어.  이유는 모르겠어.  그 친구가 그렇게 돼서 유감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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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영어를 배울 때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cider라는 말이, 우리가 평소에 알던 것과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이다는 그냥 탄산청량음료지요.  그런데 영어에서는 사과로 만든 술을 사이더라고 부른다지요 ?  하지만 정작 사이더, 그러니까 능금주를 마셔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번도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서양애들도 사이더를 잘 마시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탄산청량음료를 사이다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더군요. 일본 사람들이 영국인들이 가져온 능금주를 마셔보고 그 톡쏘는 탄산의 맛에 반해서, 그렇게 톡 쏘는 과일향 나는 음료를 무조건 사이더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이 진짜 사이더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웹에서 찾아낸 이 사진의 제목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  '농부의 점심'이라는군요.  젠장,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점심 차려먹으려면 한 2~3만원은 줘야 할 것 같군요.)

 

 

 

 

저 인용된 문구에서, 샤프 중령이 올해 자기 농장에서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칼바도스(calvados)'라는 것은 어떤 술일까요 ?  어디서 많이 들어는 보셨지요 ?  여기서 간단한 퀴즈.

 

1. 곡물로 담근 술을 증류해서 더 독하게 만들면 뭐가 될까요 ?  : 정답 - 위스키입니다.

 

2. 포도주를 증류해서 더 독하게 만들면 뭐가 될까요 ?  : 정답 - 브랜디입니다.

 

3. 능금주를 증류해서 더 독하게 만들면 뭐가 될까요 ?  : 정답 - 칼바도스입니다.

 

 

 

 

그러니까, 칼바도스도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증류주인 셈입니다.  사과를 으깨어 즙을 낸 뒤, 그 사과주스로 먼저 사이더, 즉 능금주를 만듭니다.  이 능금주를 만드는 과정 자체도 나름 꽤 복잡한 모양입니다.  발효 과정 도중에 통을 바꿔주면서 죽은 효모군을 걸러내기도 하고, 색다른 향을 위해 다른 과일 주스를 조금 섞기도 하고... 아무튼 이렇게 만들어진 능금주를 증류기에 걸어서, 1차 증류 또는 2차 증류까지 거친 뒤, 포도주처럼 오크통에 넣어서 숙성시키면 칼바도스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도 숙성기간이 길 수록 더 비싸져서, 20년짜리 칼바도스는 10년짜리의 두배값을 받는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발포 포도주는 그냥 발포 포도주이고, 상파뉴 지방에서 나는 발포 포도주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칼바도스도 노르망디의 칼바도스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 칼바도스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지방에서 만든 것은 그냥 eau de vie cidre, 즉 '능금주 생명수' 라고 불러야 한다네요.

 

 

 

 

증류주는 중세에 연금술사들이 만들어낸 술입니다.  사실은 과학문명이 발전된 아라비아에서, 와인을 증류하면 뭔가 더 독하고 불이 붙는 액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냈지요.  그것을 alcohl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al 이라는 것은 아랍어에 자주 붙는 관사이고, kohl은 역시 아랍어로 숯이라는 뜻이라네요.  이것이 유럽에 들어와 연금술사들이 이어받게 되었는데, 연금술사들은 이를 생명의 물이라고 해서 라틴어로 aqua-vitae 라고 불렀습니다.  불어로 색깔없는 브랜디를 아직도  l'eau de vie, 즉 the water of life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카톨릭의 아일랜드 전파와 함께 증류기술이 아일랜드로 전파되면서, 맥주를 증류한 것을 아일랜드에서 쓰는 켈트어 그대로 번역해서 Uisage-Beatha 라고 불렀답니다.  위주베다라고 읽는다는군요.  그러다가 이것이 오늘날의 Wihisky라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브랜디도, 프랑스산 포도주를 사가던 네덜란드 상인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부피를 줄이려고 포도주를 증류해서 가져가면서, 이를 brandewijin, 즉 불타는 와인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소주나 중국의 고량주도 증류주입니다.  소주의 소(燒)자가 탄다는 뜻이지요.  사실 증류 기술은 결국 서양에서, 정확하게는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을 점령할 때 몽골 제국에 전해진 증류 기술이, 역시 몽고 침략을 통해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술은 재료별로 나누면 크게 두가지 종류입니다. 즉 곡물로 만든 술과 과일로 만든 술이지요.  물론 마유주같은 별종도 있습니다만...   지구상에 사는 인류는 모두 공통적으로 술과 금속제 도구를 만들 줄 알았습니다.  지구상 민족 중에서 딱 두 민족, 즉 북미 인디언과 에스키모만이 술을 만들지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이 두민족은 금속제 도구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술이라는 것이 문명의 결정체같기도 합니다.  사실 에스키모는 얼어붙은 땅에서 과일도 곡물도 나지 않았고, 땅에서 철광석을 캘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 두가지를 만들지 못한 변명거리가 됩니다만,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왜 두가지를 못만들었는지 좀 의아스럽습니다.  미국 백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야만인이며 뒤떨어지는 인종으로 규정할 때 이 두가지 근거를 들기도 했답니다. 

 

전에도 한번 썼던 것 같은데, 저는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도 좋고, 백인 애들이 딩가딩가하고 놀 때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서구 사람들보다 못살까' 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해졌기 때문에 천추의 한까지야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왜 유럽 애들은 잘 살까 하는 것은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유럽에도 농부도 있고 어부도 있는데, 우리나라 농부나 어부들보다는 잘 사는 것 같더라고요.  대체 왜일까요 ?

 

샤프 중령이 한 말 중에도 그 실마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칼바도스를 만든다쟎습니까 ?  저렇게 1차 농산물을 그대로 내다파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술이나 치즈, 버터 등의 가공 생산물을 내놓고, 또 그 자체에 대해 품질 관리나 생산량 관리를 해서 나름대로 브랜드 가치를 키워왔기 때문에 똑같이 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틀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샤프도 존 경에서 되돌려받을 돈으로 농장에 뭔가 투자할 생각을 하는 것처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즉, 농업이나 어업도, 그냥 예전에 해오던 대로만 하지 말고, 뭔가 더 고부가가치를 주기 위해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가령 능금주를 가만히 놔둔다고 칼바도스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복잡한 칼바도스 증류기를 설치해서 증류과정을 거친 뒤, 오크통에 최소 2년, 왠만하면 6년 이상 묵혀야 칼바도스가 됩니다.  우리나라 농가들 중, 5년 동안 수입이 없이 투자만 할 수 있는 농가가 몇가구나 되겠습니까 ?  결국 돈이 돈을 낳는다는 것은 금융업이나 제조업에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농어업에도 통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몇년전 일본에 가보니까, 묵던 호텔 최고층 라운지에 서양식 바와 함께, 일본 소주 바가 있더군요.  여기서는, 서양식 바 형태에서 정말 일본 정통의 소주만을 팔더군요.  물론 아주 비싼 값에요.  저처럼 술 못마시는 사람이야 별로 맛있다는 생각 안들었는데요, 같이 간 분들은 아주 독특한 맛이다 라며 좋아들 하시더군요.  거기서도 또 한국분들의 장기, '병째로 시키기' 신공이 발휘되어, 일본인 웨이터들을 당황시켰습니다.  병째로 주문을 하니까, 한번도 병 단위로는 팔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더라고요.  아무튼, 걔들은 그렇게 전통주로 돈을 벌어들이는데, 우리나라는 좀 아쉽쟎습니까 ?  외국 관광객들이 왔을 때, 이게 한국 전통의 술이다 라고 내놓으며 돈을 울궈낼, 재료가 없쟎습니까 ?  아,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요.  그건 증류주도 아니고 발효주도 아닌, 화학주입니다.  하긴 그것도 좋다고 잘 마시는 외국인들이 많더군요.

 

사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여러가지 전통주가 있기는 했는데, 유럽처럼 고급주로 발전하지 못한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지요.  특히 일제시대에 수탈을 목적으로 민간에서의 양조 행위를 엄금했던 것이 컸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일제시대나 노무현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는 고작 35년이고, 이제 일제시대가 끝난지도 벌써 반세기가 훨씬 지났는데, 여전히 국내 전통주는 그 존재가 미미하쟎습니까 ?

 

명품 브랜디의 대명사인 꼬냑은, Cognac 지방에서 만든 브랜디입니다.  원래 꼬냑 지방은 포도주의 명산지인 보르도에 바짝 붙어있지만, 이 지방의 포도는 시기만 하고 당도가 높지 않아, 고급 와인이 되지 못했답니다.  그러나 꼬냑 지방 사람들은 노무현 탓만 하지 않고, 그 저급 포도주를 증류하여 브랜디를 만들어 오늘날 꼬냑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몇년전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분이 계셨나 봅니다.  우리나라는 나주의 배가 달고 맛있기로 유명하지요.  이 배로 와인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놓으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뉴스에도 나오고 그랬어요.  지금은 사업이 잘 되어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 떠들썩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나 봅니다.  일단 뭐 국내 시장에서도 나주의 배 와인이 명성을 얻지 못했는데, 해외에서는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겠지요.  아무래도 술이라는 것은 특히 전통이 중요한 모양이라서, 쉽게 성공할 수는 없나봅니다.  게다가, 저 능금주나 칼바도스는, 유럽에서도 뭐 별로 고급주로는 쳐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전통주 산업이 성장 못하는 것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 성향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음주 문화는 정말 독특한 구석이 있습니다.  일단 너무 많이 마시고, 술의 맛과 향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 것을 즐기려고 마시고, 또 꼭 여자를 끼고 노래를 부르며 마셔야 제 맛이고...  제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유별난 부분은, 대통령이나 그룹 회장같은 최고위층이나, 길거리 노숙을 하시는 최하류층이나, 똑같은 술을 즐겨마신다는 점입니다.  바로 소주지요.  (제가 아는 바로는 아주 높으신 양반들도 양주보다는 소주를 더 많이 마시는 것으로 아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이건 우리나라의 귀족 제도가 조선말기, 특히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완전 아작이 난 것과도 상관있고, 또 우리나라 특유의 '평등문화'와도 상관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아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농담이, 중국 사람들처럼 전통적으로 돈밝히는 인간들이 공산주의를 한다는 것과, 한국 사람들처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민족이 자본주의를 한다는 것은 2대 미스터리라고들 하더군요.  가만 보면, 우리나라 정서는 정말 사회주의가 더 맞는 것 같기도 해요.  가만 보면, 일단 저부터가 젊은 친구가 벤츠나 BMW (그것도 컨버터블로) 몰고 다니는 것을 보면 막 부아가 끓는다니까요.  남이사 자기 돈으로 뭘 타고 다니든, 제가 왜 부아가 끓지요 ?  ㅎㅎ.

 

유럽에서도, 위스키 산업이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하다가, 세금 문제도 있고 생산 과잉도 있고 해서 말썽이 많았다나 봅니다.  그러다가 위스키 제조업자들의 자체적인 합병 및 생산량 조절 노력과, 정부의 적절한 관리 감독이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에야, 오늘날의 세계적인 주류 회사들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걔들이 100년 200년 걸려 얻은 것을 몇년만에 날로 먹겠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모양입니다.

 

전에 아는 사람하고 강남의 유명한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음식점이 상당히 크고 손님도 아주 많더군요.  보니까 간판에 할머니 사진을 붙여놓고, 설명도 해놓았는데 그 집 할머니께서 몇십년전부터 고아오던 방식으로 끓인 설렁탕이라는 겁니다.  그걸 보고 같이 같던 친구가, '아, 우리집 할머니는 이런 것도 안 끓이시고 뭐하셨던 거야' 하고 우스개 소리를 하더군요.  여러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증류기 사다가 뭐라도 증류해서 술을 만들기 시작하면, 나중에 우리 손자 때 즈음 가서는 뭔가 명주(名酒) 가문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  아, 물론 국세청이나 식약청과의 문제는 알아서들 해결하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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