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S Surprise by Patrick O'Brian (배경 180X년 영국군함 서프라이즈호 함상) ----
(함장인 잭 오브리는 아침식사에 그의 친구이자 군의관인 스티븐, 그리고 풀링스 중위와 사관후보생 캘로우를 초대하여, 이 4명은 잭의 비좁은 함장실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합니다. 여기서 일행은 함장 개인의 비축물인 베이컨과 달걀 등의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게 됩니다.)
"말해보게, 미스터 캘로우," 잭은 캘로우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씹는 소리를 좀 덜 들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 반에, 이 어린 손님을 편하게 만드려는 생각 반으로 물었다. "사관후보생들의 식사 형편은 요즘 어떤가 ? 한 1주일 넘게 자네들의 양을 못 본 것 같은데 ?" 이제는 옛 기억이 되어버린 그 동물이 갑판 위를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모습은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다.
"아주 빈약합니다, 함장님." 캘로우는 때마침 빵바구니로 뻗치던 손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 양은 북위 70도 지점에서 잡아먹었고요, 이젠 암탉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부스러기를 다 주고 있으니까 달걀을 낳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직 밀러(miller, 방앗간 주인) 수준으로 떨어지진 않았나보지 ?" 풀링스 중위가 물었다.
"아뇨, 밀러 수준입니다." 사관후보생이 외쳤다. "현재 마리당 가격이 3펜스입니다. 정말, 정말 부끄럽게도 말이지요."
"밀러라는게 뭔가 ?" 스티븐이 물었다.
"쥐라네. 미안하네만." 잭이 말했다. "우리가 밀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렇게 불러야 비위가 좀 덜 상하거든. 게다가 쥐들은 주로 건빵과 말린 완두 포대에서 살기 때문에 가루 투성이거든."
...중략...
(밀러, 그러니까 쥐 이야기가 더 이어집니다.)
"밀러에 대해서라면 말이지," 잭은 그의 굶주린 사관후보생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좌현 맨 뒤쪽의 사관후보실에는 쥐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우린 거기에다 치즈 한조각을 미끼로 해서 쥐가 그 구멍으로 목을 내밀면 올가미로 잡곤 했지. 야간 불침번 때 하룻밤에 서너마리를 잡았어." 그는 스티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도 잘 아는 함장이자 잭의 사관후보생 시절 동료인) 헤니지 던다스는 나중에 그 미끼 치즈를 먹곤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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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반, 영국군에는 육군이나 해군 모두 사관학교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관후보생이라는 것이 있었을까요 ? 엄격히 말하자면 없었습니다. 다만, 육군에는 임관하기 전에 어린 소위들이 각 소속 연대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과정이 있었고, 해군에서는 미드쉽맨 (midshipman)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미드쉽맨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12~18세 정도되는 어린 소년들을 군함에 태워 여러가지 잔심부름 같은 일을 시키면서 해군 기술 및 함상 생활에 익숙하게 하고, 또 수병들에 대한 지휘 경험도 가지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들은 비록 정식으로 임관되지 않은, 그러니까 King's commission을 가지지는 못한 신분이었지만, 일단 장교로 분류되었습니다. 따라서 선상에서는 반드시 규정된 정복 차림으로 있어야 했고, 또 재수가 옴붙어서 적에게 포로가 될 경우에도 장교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다만, 정규 장교가 아니다보니, 일단 급료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에 의지하여 살아갔습니다. 함장에 따라서는 얼마 이상씩 집에서 용돈을 타낼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야 장교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또, 이들은 일종의 비정규직이었으므로, 정규 장교들은 보직을 맡지 못할 경우에도 half-pay를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정말 아무 존재도 아닌, 개백수가 되기 딱 좋은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나이가 나이니만큼, 학생 신분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당시 영국 전함에는 schoolmaster라고 해서, 미드쉽맨에게 학과 수업을 가르치기 위한 가정교사가 꼭 같이 승선했습니다. 나중에 정규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육군과는 달리 Lieutenant's Test라고 해서, 일종의 항해 관련 기술 시험을 보게 되는데, 이 시험을 통과하려면 삼각함수같은 기초 수학은 물론이고, 여러가지 해군 실무에도 밝아야 했습니다. 또, 근무 태도가 좋지 못하거나, 수업 시간에 게으름을 피우면, 그야말로 수치스럽게도 볼기짝을 얻어맞았습니다. 매를 때리는 것은 원래 함장의 명령으로 갑판장이 때리게 되어 있었지만, 같은 미드쉽맨들 중 선임이 사적으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어디까지나 HMS (His Majesty's Ship)에 올라탄 군인이었으므로, 전투시에는 애들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전투에 임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미드쉽맨들이 꿈에도 그리던 King's commission을 얻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적의 대포에 두동강이 나거나, 적의 칼에 가슴을 찔려 목숨을 잃는 것은 그나마 덜 억울한 경우이고 (해군 신문에 명예로운 죽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니까), 대개는 질병이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험한 생활에 귀한 자식들을 보냈을까요 ? 일단은 귀족들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장자 1명에게 모든 지위와 재산이 몰빵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차남 이하 떨거지들은 그야말로 몸빵 하나로 평생을 먹고 살 직업을 골라야 했는데, 그러기 딱 좋은 곳이 바로 군대였습니다. 그나마, 육군은 해군과는 달리 계급을 돈주고 사는, 매관매직이 제도화되어 있었으므로 귀족들이 발 붙이기 편했습니다. 해군은 그와는 달리, 일단 정규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몇년을 위험한 군함에서 고달픈 미드쉽맨 생활을 거치고 시험에도 통과해야 했으므로, 상대적인 인기는 조금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먹고 살만한 중산층이지요. 상대적으로 귀족들이 덜 지원했으므로, 중산층 자식들이 도전하기 좋았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정말 일반 서민층에서도 지원은 가능했습니다만, 일단 미드쉽맨이 되려면 읽고쓰는 것이 가능해야 했으므로, 당시 영국 서민층에서는 미드쉽맨에 도전할 만한 소년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함장 자신으로서도, 자신의 빽이 되어줄 든든한 귀족 가문과 연관을 맺고 싶어했으므로, 귀족 가문 출신의 미드쉽맨은 서로 데려가려 애썼고, 그렇지 않은 미드쉽맨들은 자기를 받아줄 군함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당시 미드쉽맨은 어쨌거나 어린애들이 많았습니다. 요즘 이런 어린애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은 제3세계의 소년병들 경우 말고는 없겠지요. 이렇게 어린 애들에게 군복을 입혀놓고 '너희들은 gentlemen이다' 라고 강요를 했으니, 우스운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미드쉽맨 제복에는 소매에 단추 3개가 달려있는데, 이 쓸데없는 단추들은 왜 단 것이었을까요 ? 믿거나 말거나, 코흘리게 미드쉽맨들이 소매로 코를 닦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월급쟁이들이 입는 양복 소매 단추의 기원이라고 하는데, 글쎄요, 사실 여부는 직접 확인해보세요.
아래는 그런 어린 미드쉽맨과 함장인 잭과의 대화입니다. 아래에 '포술장의 딸' 이라는 이야기는 해군 은어를 가지고 선원들이 어린 미드쉽맨인 파슬로우를 놀린 것입니다. 영국 해군에서 '포술장의 딸과 만난다'라는 것은, 미드쉽맨에게 체벌을 내릴 때는 주로 대포 위에 엎드리게 하고 볼기를 쳤던 것에서 유래된 말로서, 볼기를 맞는다는 뜻입니다.
Post Captain by Patrick O'Brian (배경: 180X년 영국 군함 Polycrest 함상) ----
"자네 얼굴은 왜 그 모양인가, Mr. 파슬로우 ?" 잭은 그 벌겋게 벌어지고 실보푸라기로 감싼 상처가 귀에서 턱까지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면도를 하고 있었거든요, 함장님." Mr. 파슬로우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면도말입니다. 면도를 하는데 뎁따 큰 파도가 닥쳤거든요."
"의사에게 보이게. 그리고 의사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나와 차를 함께 해주면 고맙겠다고 전해주겠나. 그런데 왜 그렇게 가장 좋은 군복을 꺼내입은 건가 ?"
"사람들 말이 - 아니 제 생각에는 이게 바다에서 맞이하는 제 첫 근무일이니만큼 선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나라면 이젠 궂은날 입는 옷을 입겠네. 그런데 자네 내부 용골의 열쇠를 받으러 온건가 ?"
"예, 함장님. 그걸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더군요. 수부장인 본덴이 말하기를 포술장의 딸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길래 포술장인 Mr. 롤프에게 물어보았습니다만, Mr. 롤프 말이 미안하지만 자기는 미혼이라고 하더군요."
"아, 그런가... 자네 궂은 날 입을 옷은 있나 ?"
"그럼요, 함장님, 제 항해용 궤짝에는 물건이 많습니다. 가게 주인이 엄마에게 이런게 필요하다고 말한 건 다 샀었습니다. 게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방수복도 있습니다."
"Mr. 바빙턴이 어떻게 입는 건지 알려줄 걸세." 잭은 고참 미드쉽맨인 바빙턴의 비인도적인 야만성을 기억하고는 덧붙였다. "아, 그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자네에게 어떻게 그걸 입는지 알려주라고 전해주게."
"그리고 자네 소매로 코 좀 닦지 말게, Mr. 파슬로우. 신사답지 못한 일이야."
"안그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함장님."
"그럼 가보게." 잭은 짜증이 나서 말했다. "젠장, 이젠 내가 유모 노릇까지 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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