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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Sharpe's Companion에 소개된 실화 - 군기를 둘러싼 혈투

by nasica-old 2009.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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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시간이 안되는 관계로 예전 글 올립니다.  이 글은 사실 제가 쓴 부분이 거의 없고, Mark Adkins라는 현역 영국 육군 장교가 쓴 "Sharpe's Companion : The Early Years"이라는 책에서 거의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Sharpe 시리즈의 배경에 대한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 가령 당시 병사들의 복장이나 무장, 식생활, 각 부대의 역사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설해준 책입니다.  저를 밀덕으로 이끈 책이자,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이 이 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이 책은 Sharpe 시리즈의 초반부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어서, 나중에 "Sharpe's Companion : The Later Years"도 나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이 작가 양반이 군무에 바빠서 그랬는지 판매량이 시원찮아서 그랬는지 아직도 안나오고 있네요.  많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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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기수의 역할은 매우 명예로운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결코 인기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사하기에 딱 좋은 자리였으니까요.  워털루 전투 같은 격렬한 전투에서는, 연대 깃발을 지키는 팀에 들어가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제로 워털루 전투가 시작된 날 오후에, 연대 깃발 팀(Colour Party)으로 가라고 명령을 받은 윌리엄 로렌스 상사의 회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 일은 결코 맡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용감하게 나아갔다. 나 이전에 그 역할을 하던 하사관이 그날 하루만 벌써 14명이나 죽거나 다쳤었다. 깃발 팀의 장교들도 비슷한 비율로 전사했었고, 연대 깃발은 이미 조각조각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난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인가)



1811년, 영국/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이 베레스포드 장군 지휘하에 술트(Soul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격돌한 살라망카 전투에서도 사정이 비슷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베레스포드 장군은 약 6천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그 대부분은 영국군이었습니다.  이때, 보병 제3연대의 제1대대는 아직 방진(square)을 구성하기 전에 프랑스군의 창기병들에게 덜컥 걸리고 맙니다.   (보병 방진과 기병들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는 1812년, 기병대 영광의 순간 http://blog.daum.net/nasica/5880589 참조)




(영국군의 보병 방진은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를 끝장냅니다.)



창기병들이 미완성의 방진 안으로 뚫고 들어와서 보병들을 닥치는대로 찔러죽이는 와중에 중대장도 전사해버리는데, 당시 16살이었던 에드워드 토마스 소위는 (당시 소위들의 평균 연령이 대충 16~18세였습니다) 연대 깃발을 붙잡고 병사들을 불러모았습니다.  프랑스군이 항복하라고 권하자, 자기가 무슨 화랑 관창이라고 '죽기 전에는 그렇게 못한다'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결국 이 소년 소위는 창과 칼에 수없이 꿰여서 쓰러지고, 연대 깃발은 프랑스 기병들이 차지합니다.


당시 각 연대는 연대 깃발과 함께 국왕의 깃발 (그러니까 국기죠)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 국왕의 깃발은 찰스 월시라는 소위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포알 하나가 이 소위를 거꾸러뜨리고 깃대마저 부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매튜 레이썸 중위가 (깃발은 최하위자가 지키도록 되어있었으므로, 소위가 쓰러지자 중위가 나선 것입니다) 깃발을 집어들었습니다.  물론 순식간에 이 중위는 프랑스 기병들에게 포위되었습니다.  프랑스 기병들은 이 굉장한 노획물을 가져가려고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얼굴에 군도로 한방 크게 먹은 레이썸 중위는 출혈로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깃발을 꼭 쥐고 놓지 않았습니다만, 깃발을 쥐고 있던 왼쪽 팔이 적의 군도에 절단(!)되고 맙니다.  그러자 레이썸 중위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칼을 내던지고 오른손으로 깃발을 집어들었습니다.  프랑스군도 포기하지 않고 쓰러진 레이썸 중위를 여러번 창으로 찌르고 말발굽으로 짓밟았습니다만, 거의 초인적인, 아니 바보같은 고집으로, 레이썸 중위는 깃발을 깃대에서 뜯어내어 자기 자켓 안쪽에 쑤셔 넣었습니다.  결국 프랑스군은 이 깃발을 손에 넣지 못합니다.


전투가 끝나고 난뒤, 다른 연대의 하사관이, 위에서 적에게 빼았겼던 연대 깃발을 주워서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국왕의 깃발을 지켜낸 레이썸 중위도,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집니다.  이 중위는 당장 대위로 승진했고, 연대로부터 금메달도 수여받습니다. 이 중위의 얼굴은 처음에 당한 군도의 일격으로 흉칙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나, 당시 섭정이던 영국 왕세자의 후원 하에 유명 의사에게 성형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레이썸은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한참 뒤인 1820년에 은퇴를 하는데, 연금으로 1년에 170파운드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대령의 연봉 약 1/3 정도되는 금액입니다.)




(평화시의 기수... 다 좋은데, 저 곰가죽 모자 때문에 앞이나 보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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