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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통신의 비극 ?

by nasica-old 200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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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 대통령궁 이름이 백악관이 되었는지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1812년 영미 전쟁때 영국군이 워싱턴 DC를 침공하면서 불탄 것을 개보수하느라 흰색으로 칠했기 때문이라지요.

 

 

 

 

1812년 영미 전쟁은 사실 그렇게 널리 알려진 전쟁이 아닙니다. 전쟁의 원인은 영국이 미국의 대유럽 통상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불만, 그리고 수천명의 '미국 국적'의 선원들을 영국 해군의 수병으로 강제 징발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땅덩어리도 뭐 지금처럼 크지도 않았고, 인구도 적었으며, 무엇보다 국가로서의 체계가 그렇게 신통치 않아서, 전쟁 수행 능력은 크게 민병대와 사략선(privateer, 국가에서 발행한 면허를 소지한 일종의 해적선)에 의존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런 전력으로 감히 대영제국의 영토인 캐나다를 선제 공격합니다.

영국 육군 수비대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을 간단히 무찔러버리고 남진합니다.  이로부터 1815년까지 근 3년 넘게 영국과 미국은 전쟁을 수행합니다.

 

마지막 전투는 1815년 루이지애나의 뉴 올리언즈에서 벌어집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미군의 승리로 끝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투의 전개 상황이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이 전투는 네덜란드 Ghent('강'이라고 읽나요 ?)에서 미국과 영국간에 종전 협정을 맺은 후에 벌어졌던 것입니다.  당시 전투에서 죽거나 다친 미군 6천여명과 영국군 4천여명은 너무나도 쓸데없는 희생을 치루었던 것입니다. 

 

 


 

 

또 Sharpe도 참전했던, 나폴레옹 퇴위 전 마지막 전투였던 툴루즈 전투도, 사실 나폴레옹 퇴위 4일 후에 벌어집니다. 당시 전화는 고사하고, 전보만 있었어도 당시 전투에서 발생한 프랑스군 사상자 3천여명과 영국-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 사상자 4천여명은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Hornblower 시리즈에도 비슷한, 하지만 상황이 180도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잠깐동안 영국과 프랑스가 휴전을 하고 있는 동안, 혼블로워는 작은 sloop 선인 Hotspur호를 타고, 프랑스 항구인 브레스트 앞바다에서 적정 탐지 임무를 수행합니다.  프랑스가 다시 개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아무튼 휴전 기간이었으니, 상대방 영해에 진입하지만 않으면 전투의 위험은 없어야 했지요. 

 

 

 

 

그런데 Hotspur 호보다 훨씬 큰 frigate 함인 프랑스의 Loire 호가 위협적인 자세로 다가옵니다.  지금 이 분위기는 단순히 앞바다에 얼쩡거리는 영국 군함을 쫓아내기 위한 무력 시위인지, 아니면 그 사이에 전쟁이 선포되어 지금 우리 배를 격침하러 다가오는 것인지, 이건 뭐... 분위기가 파악이 안됩니다.  그렇다고 먼저 발포한다면 그거야말로 전쟁의 원인을 자기가 제공하는 셈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자기보다 훨씬 큰 적 군함이 가까이 다가와 자기에게 발포할 때까지는, 지금이 전쟁 상황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 혼블로워의 속이 얼마나 탔겠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이때 무전기만 있었어도...


여러분들 중 직장인이신 분들은 핸드폰이 정말 짜증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24시간 어디서나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은 현대인을 옥죄이는 족쇄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원활한 통신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제 생각엔 유선 전화와 삐삐 정도까지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핸드폰은... 족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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