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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19세기 초 영국군 배급 식량에 감자가 없었던 이유

by nasica-old 200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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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 시리즈에서 감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딱 한군데인 것 같습니다.  전에 소개한 부분인데, 여기서 다시 인용해보지요.

 

아래 장면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스페인 접경지역에서 임시 휴전을 맺은 상황에서, 샤프 소령이 프랑스군 진지로 찾아가 저녁 식사를 대접받는 장면입니다.

 

 

 

 

Sharpe's Enemy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2년, 포르투갈) ------------------------

 

하나의 접시 세트에 세가지 종류의 고기가 있었고, 그 옆 접시에는 아마 빵가루를 얹은 듯한 콩 요리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파삭파삭하게 구운 갈색의 감자 그릇이 있었다. 샤프는 구운 감자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므로, 머릿속으로 얼른 테이블 위에 몇개의 감자 그릇이 있고, 각 그릇 속에 감자가 몇개씩 들어있으며, 몇명이 그 감자를 나눠먹어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그는 조세피나에게 감자를 권했다.

 

"부인 ?"
"아니요, 저는 됐습니다, 소령님"
"정말이요 ?"
"그럼요."


샤프는 그녀 몫의 감자까지 자기 접시에 덜었다. 그는 정량보다 넘치는 양의 감자는 콩 밑에 파묻어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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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가 감자를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당시 영국군 배급 식량에서 감자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건 다소 뜻 밖인데, 당시 감자처럼 싸고, 영양가도 풍부하고, 조리도 간단한 식품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집요하게 염장쇠고기와 건빵 만을 공급했습니다.  왜 이랬는가를 이해하려면, 당시 감자가 사회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감자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안데스산 감자가 남부 스페인에 들어온 1565년이 최초였다는 것이 대세를 이루는 설입니다.  옥수수와 마찬가지로, 감자도 신세계에서 들어온 다른 작물들처럼 처음에는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령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대왕이 기근에 대한 대책으로 감자 재배를 명령하자, 1774년 콜헤르크 지방 농민들이 상소를 올려 "감자는 냄새도 없고 맛도 없어 개도 안먹는다"라며 하소연했습니다.  엘베 근교의 하인들은 식사로 감자가 계속 주어지자, 주인을 바꿔 다른 집으로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감자는 주류 작물로서 유럽 전역에서 받아들여집니다.  러시아에서는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작물이라는 정교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예카테리나 여제가 감자 재배를 권장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파르망티에라는 군의관 출신 계몽가가 헌신적인 노력으로 프랑스에 감자의 우수성과 재배법을 알립니다.  파르망티에는 결국 이 공로로 루이 16세로부터 훈장도 받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파르망티에는 7년 전쟁(1756~1763) 중에 프러시아군에게 포로로 잡혀 감자만으로 연명한 경험 끝에 감자의 우수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도 참 쉬운가봐요... 누구는 로제타석을 발견해서 남기고, 누구는 감자 전도사가 되어서 남기고...)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에서의 감자의 위치는, 나폴레옹 본인이 직접 알려줍니다.  나폴레옹은 1814년 1차로 폐위되어 지중해의 엘바섬으로 유배되는데,  이 섬은 당시 프랑스령이었지만, (나폴레옹의 고향 코르시카 섬처럼) 주민들은 이탈리아어를 쓰는, 사실상 이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 섬에 도착해서 맨 처음 한 일 중 하나가 이 섬 주민들에게 감자를 심도록 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감자가 그리 널리 보급된 상태가 아니었나 봅니다.)

 

 

 

(내 인생을 이런 섬에서 감자나 심다가 끝낼 수는 없뜸 !) 

 

 

프랑스나 러시아, 독일은 이러했지만 영국만은 좀 예외였습니다.  영국은 끝까지, 아주 집요하게 감자를 미워하고 천시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감자를 싫어했던 주된 이유는 '게으른 인간들의 식량'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이 컸습니다. 즉, 원래 밀이라는 식량은 추수에 탈곡에 제분에 반죽 발효 제빵 등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사람 입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자는 삽 한자루와 남비 하나만 있으면 '5살짜리 애조차도' 삶아먹을 수 있었지요.  허영심 강한 영국 중산층에게 감자는 무척 비도덕적인 식품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또 감자가 성경에 나오지않는 사악한 음식이라는 것도 한몫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지극히 아름다운 밀'이라는 등 밀을 칭송하는 말이 많이 나오지요. 그리고 창세기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바로 전에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 아브라함이 대접한 음식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에 비하면 감자는 신대륙에서 우상숭배하는 야만인들이 먹던 음식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천사님들, 제 누추한 천막에 드시어 송아지 고기와 엉긴 젖, 곱게 간 밀가루로 만든 떡을 드시지요.  감자 따위는 없나이다.)

 

 

반면에, 온 나라가 영국에 보낼 소와 말을 키우느라 목장화된 아일랜드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감자야말로 기근에 시달리던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신의 축복이었습니다.

 

감자는 영양학적으로 아주 우수한 식품이었습니다. 아일랜드 인구폭발의 원인이 감자였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반증입니다. 실제로 감자는 단백질과 비타민 A,D를 제외한 각종 영양소가 균형있게 갖춰진 좋은 식품입니다. 감자와 함께 우유나 치즈 등의 유제품을 함께 먹으면 그 불균형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마침 당시 아일랜드는 목축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쇠고기는 주로 영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요.

 

감자가 아일랜드에서 유독 대성공을 (물론 나중에는 대참사로 이어지지만) 거둔 주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간편하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주식이었던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분소에도 돈을 내야하고 또 화덕을 갖춘 제빵소에도 돈을 내야 했습니다. (당시 빵굽는 화덕을 갖춘 집은 별로 없었습니다.) 또 빵을 구우려면 연료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에 비해 감자는 남비하나에 물을 채워서 삶기만 하면 먹을 수 있었으므로 아일랜드인들은 없는 살림에도 굶주리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이 집터를 구할 때 따지는 조건 중의 하나가 '토탄 (이탄, peat, 지표 부근에서 풀, 이끼 등이 탄화된 것)'을 구할 곳이 근처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작이 없어도, 토탄만 있으면 감자 삶는데는 충분했거든요.

 

 

 

(이것이 토탄.  당시 아일랜드 총각이 장가를 가려면 '감자밭이 있는가' 그리고 '토탄을 캘 곳이 있는가' 이 두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총각들에겐 강남 30평대 아파트가 필요하다지요 ?)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청년이 맘에 드는 아가씨를 만나면, 초라한 성당에서 간단한 예식을 치르고는 함께 숲 언저리에 움막을 쌓았습니다. 이 움막은 글자그대로 돼지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는, 돌을 대충 쌓아만든 벽에 뗏장 지붕을 얹은, 제대로 된 문도 안달린 쪼그만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 속에서 돼지도 함께 살았습니다. 이 돼지들은 확실히 집안에 살 자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일랜드인들은 돼지를 팔아서 '집세(소작료)'를 내었거든요. 그리고는 해마다 토실토실한 애기들을 씀풍씀풍 잘도 나았는데, 어떤 영국인 여행자가 그렇게 혈색좋은 아이들이 누더기를 입고 돼지들과 뒹구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애들을 많이 낳았냐고 묻자 아일랜드인 부부는 '감자덕분입죠, 나리'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빠, 왜 우린 지겹게 맨날 감자만 먹어 ?

걱정마라... 이젠 감자 안먹어도 된다... 감자 잎마름병이라고, 또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들어봤냐 ?)


 

이렇게 아일랜드인들이 감자를 주식으로 한다는 것이 콧대높은 영국인들에게는 더더욱 감자를 싫어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과 아일랜드의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영국인들이 흰빵과 홍차를 먹는 동안, 아일랜드인들은 감자와 물을 마신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영국인들은, 육식, 특히 쇠고기를 먹는 것이 지배자로서의 특권이자, 용기와 힘을 주는 원천이라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육해군의 사병들에게 집요하게 염장쇠고기를 계속 공급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실제로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하면 성격이 많이 양순해진다고들 하더군요.)  그래서 샤프 소령은 영국군 내에서 감자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지는 못합니다.  결국 감자가 승리한 거지요.  열렬하게 반(反)감자 운동을 펼치던 윌리엄 코빗이라는 사상가가 1818년 쓴 글을 보면 이렇게 개탄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감자를 극구 칭찬하면서 감자를 먹는 유행이 생겼다. 모든 사람들이 끼어들어 감자를 격찬하고 있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감자를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척을 한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런던의 추운 겨울밤 거리에는, 군밤과 함께 군감자를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했다고 합니다.  (군감자 ?  군고구마가 더 나을 것 같군요.)  또한 이 시대에 들어서면서, 생선튀김이 런던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함께 팔지는 않았다고 합니다만, 결국 이 둘을 함께 튀겨 팔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서민 요리인 Fish & Chips 입니다.  초기의 피쉬 & 칩스는 썩어가는 생선 냄새에 질나쁜 기름 냄새까지 겹쳐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났기 때문에, 서민층이나 먹는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피쉬앤칩스에 전통적으로 식초를 뿌려먹는 이유도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한 서민적인 양념이 식초였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떡볶이나 순대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참고로 제 직장이 강남 타워 팰리스 근처입니다.  거기서 그런 포장마차 하시는 아저씨 말씀이, "나도 타워 팰리스 사는 사람들은 이런거 안먹을 줄 알았거든 ?  그런데 아주 잘 사먹드라고 !"  음... 그 아저씨 거기서 돈 많이 벌어서 요즘은 그 포장마차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다른 사업을 하신다고 합니다...

 

* 이 책 중 상당 부분은 '악마가 준 선물 - 감자 이야기' (래리 주커먼 지음 / 박영준 옮김 | 지호 펴냄) 중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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