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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커피

by nasica-old 2008.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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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uritius Command by Patrick O'Brian (배경: 1810년, 영국) -----------

 

이 오두막은, 서양물푸레나무 숲 속에 위치해서, 경관도 아름답고 낭만적이기까지 한 것이, 잭 오브리의 신혼 초기에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크지도 않았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중략... 중략된 내용은 이 오두막은 비도 새고 습기찬 좁은 곳인데, 여기서 잭과 소피아, 그리고 갓난 쌍동이, 어린 조카딸에, 장모님과 하인 2명까지 거느리고 산다는 내용입니다.)

 

이 식구들을 오브리 함장은 하루에 9실링씩 받는 무보직 급료 (half-pay, half-pay 제도에 대해서는 Half-pay란 무엇인가  http://blog.daum.net/nasica/6356192 참조)로 먹여살리고 있었다.  반년에 한번씩 지급되는 이 급료는 종종 예정일보다 훨씬 늦게 지급되곤 했다.  비록 장모가 무척이나 절약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쪼달리는 생활로 인해, 그 쾌활해 보이던 얼굴에 걱정이 찌들게 했고, 가끔씩은 좌절감까지 엿보였다. 

 

(중략... 오랜만에 잭 오브리 가족을 찾은 친구 스티븐 매투어린이 오브리네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게 됩니다.)

 

응접실에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응접실에 들어가니, 기분좋은 커피 냄새와 함께 토스트, 그리고 나무 연기 냄새가 났다.  식탁에는 햄이 우뚝 자리잡고 있었고, 잭이 직접 재배한 무에, 달걀이 하나 있었다.

 

(중략...  잭 오브리의 어린 조카딸이 철없게도 손님 앞에서 조잘조잘 집안일을 떠들어댑니다.)

 

조카딸은 스티븐에게 큰 소리로, 자기 가족은 누구 생일이나 해전에서의 승전보가 올 때만 커피를 마시며, 오브리 아저씨는 주로 약한 맥주 (small beer, 이에 대해서는 Small Beer와 보리차 http://blog.daum.net/nasica/6862319 참조 ) 를 마시고,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우유를 마신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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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는 나폴레옹 당시 영국 해군 소설 시리즈가 두 종류 있습니다.  Hornblower 시리즈와 이 Jack Aubrey 시리즈인데, 둘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매우 유명하고, 또 둘다 영화화되었습니다.  특히 Jack Aubrey 시리즈 중 하나는 비교적 최근에, 러쎌 크로우 주연으로 'Master & Commander, Far side of the world' 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나왔습니다.  영화 흥행 성적은 좀 별로였다고 기억합니다.  일단 저도 보지 않았습니다.  망망대해를, 프랑스 군함 한척 찾아서 떠돌다가, 딱 2번 전투가 벌어지던가 했지요.  소설로 보면 재미있을 여러가지 소소한 함상 생활들이, 영화로 표현하면 상당히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령 갈색의 제독 같은 거요.  갈색의 제독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일단 식전은 피하시고, 바람과 증기 http://blog.daum.net/nasica/6862313 ) 를 참조하세요. 

 

원래 Jack Aubrey 시리즈의 작가인 오브라이언은, 유명 배우인 찰턴 헤스턴과 친구 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 시리즈를 쓸 때, 찰턴 헤스턴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썼다고 하는데, 정작 영화는 러쎌 크로우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쾌활한 성격에 통통한 체구로 나오는 잭 오브리 역에는 신사틱한 헤스턴보다는 악동스러운 크로우가 더 어울리는 것 같긴 합니다.

 

위 소설 장면은, 잭 오브리가 보직을 받지 못해서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시골 집에서 가족들과 경제난에 시달리며 옹색한 생활을 꾸려나가는 모습입니다.  하루에 9실링을 받는다고 했는데, 당시 일반 졸병들의 하루 일당이 1실링이고, 고급 식당같은 곳의 급사에게 팁으로 주는 돈이 1실링 정도니까, 아기 포함 8식구를 먹여살리기에는 충분한 돈은 아니겠지요.  저 조카딸의 지나치게 솔직한 (?) 증언을 들어보면, 커피는 거의 '이밥에 고깃굿' 수준이고, small beer나 우유는 좀 싸구려틱한 음료로 취급이 되는 모양이네요. 

 

커피는 남미나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 같은 곳에서 납니다.  즉 수입품이라는 거죠.  요즘이야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18세기말~19세기초 유럽에서 수입품은 대개 다 비싼 것이었습니다.  특히 커피나 차 같은 기호품은 특히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또 티 클리퍼니 증기선이니 하는 것들이 나와서 수입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말 일반 서민들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물건이 됩니다.

 

커피는 마시고 싶으나, 돈이 없는 사정은 또다른 시리즈의 주인공 혼블로워도 마찬가지입니다.  혼블로워가 임시 함장 (commander) 자격으로 처음 지휘를 맡은 함상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당시 커피를 어떻게 끓여마셨는지 대략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Hornblower and the Hotspur by C.S.Forester (배경 180X년, 영국 해협)---------

 

그는 커피를 한잔 하고 싶었다. 아주 강하게 끓인, 뜨거운 커피 2, 3잔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배 위에 가진 것은 겨우 2파운드의 커피 뿐이었다. 커피 1파운드 가격이 17실링이나 했으므로, 그것이 그가 살 수 있는 전부였다.

 

(중략 ....)

 

"내 급사는 어디있지 ?"  그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라임스 !  그라임스 !"
"함장님 ?"
그라임스는 해도실 문 안으로 머리를 삐죽 내밀었다.


"이제 옷을 차려입고 아침을 들겠다. 커피도 마시겠어."
"커피라고요, 함장님 ?"
"그렇다니까." 혼블로워는 말 끝에다 '이 망할 자식아'라고 욕을 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맞받아 욕을 할 수 없는 처지의 부하에게 욕을 해대는 것은 그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너 커피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는거야 ?"
"없습니다, 함장님."
"그 떡갈나무 상자를 여기에 가져와."


혼블로워는 0.25 파인트의 물로 면도를 하며 그라임스에게 커피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 커피콩에서 20알을 골라내. 그걸 뚜껑없는 남비에 넣고 주방 불에서 볶는거야. 남비는 요리사에게 빌리라구. 그거 볶을 때 조심해야 해. 계속 흔들어주라고. 갈색이 될 때까지만 볶아야 해. 검은 색이 되면 안돼.  볶는거야, 응 ? 태우는 게 아니고. 알겠어 ?"


"어, 예, 함장님."


"그리고는 그걸 군의관에게 들고가. 내가 안부 전하더란 말과 함께."


"군의관이요 ?  예, 함장님." 

그라임스는 혼블로워의 눈썹이 천둥구름처럼 한데 모이는 표정을 보고, 대체 왜 여기서 군의관이 나오는지에 대한 놀라움을 억누를 분별력은 있었다.

 

"군의관에게는 약을 넣고 찧을 수 있는 막자와 사발이 있쟎나. 그걸 빌려서 커피콩을 찧으라고. 잘게 부숴야 해. 하지만 조심해. 가루로 만들면 안돼. 알갱이가 굵은 화약 정도로 만들면 돼. 완전히 가루 상태로 된 화약 말고 말이야.  알겠어 ?"


"예, 함장님. 알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말이지 - 아니다, 가서 그거 먼저 해가지고 다시 내게 와서 보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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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사로 나오는 저 그라임스라는 친구를 보면, 커피라는 것은 전혀 듣도보도 못한 물건인 모양입니다.  저기가 영국이고, 영국은 커피보다는 홍차를 즐겨마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상하게도 육군 시리즈인 Sharpe 시리즈에서는 주로 홍차를 마시는데, 같은 영국인이지만 해군 시리즈인 혼블로워나 오브리는 홍차 이야기는 거의 안나오고 커피 이야기만 자주 나옵니다.  홍차가 커피보다 보존성이 안좋아서 ?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튼 샤프 시리즈의 일반 졸병들도 홍차를 즐겨마시지만,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커피가 홍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커피도 어디까지나 수입품입니다.  당시 영국과의 전쟁으로, 거의 모든 해외 무역이 차단된 상태에서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커피를 마셨을까요 ?  다음에 답이 나옵니다.

 

Flying Colors by C.S.Forester  (배경: 181X년 프랑스) ----------------

 

(혼블로워의 전함은 프랑스 해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항복합니다.  혼블로워와 그의 부관인 부시는 파리로 압송되는 도중, 프랑스 호송군인들과 함께 시골 여관에서 묵습니다.)

 

하녀 하나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쟁반을 들고 마당을 건너와서, 창문을 통해 혼블로워에게 넘겨주었다.  거기에는 빵 한접시와 뭔가 검은 액체가 담긴 사발이 3개 놓여있었다.  이 검은 액체는, 혼블로워가 나중에 짐작해보니, 봉쇄당한 프랑스가 커피라고 생각하고 마시는, 대용 커피였다.  그건 혼블로워가, 재보급도 없이 오랫동안 항해를 하다보면 마시게 되는, 빵부스러기 태운 것을 우려낸 대용 커피와 비슷한 맛이 났다.  하지만 아침에 따뜻한 채로 마시니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설탕은 없습니다, 나으리."  하녀가 사과하듯 말했다.

"상관없네." 혼블로워는 갈증이 나는 듯 마시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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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커피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녹차나 홍차도 좋아하는 편이고요.  원래 커피나 차는 모두 약간 씁쓸한 맛이 나쟎습니까 ?  그 약간 쓴 맛이 묘한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다방 커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탕과 크림이 들어가서 그런 것인지, 상쾌한 쓴 맛이 안나고 좀 텁텁한 맛이 되쟎습니까 ? 

 

제가 아주 어렸을 때, 토요일인가 일요일에, 월트 디즈니 만화 또는 영화가 했었습니다.  그날 나온 단막 TV용 영화는, 시골 깡촌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서 사는 어떤 꼬마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가난한 가족이었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셔서, 결국 몸져 누우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꼬마가, 나름대로 다 컸다고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 가져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토스트를 먹으려고 보니, 새카맣게 탄 거에요.  꼬마가 미안하다는 듯 조금 태웠다고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입맛을 다시더니 지금은 생각이 없다면서 그 토스트를 내려놓고, 커피만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꼬마가 또 미안하다는 듯이, '진짜 커피를 끓일 줄 몰라서 인스턴트 커피를 끓였다' 고 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 커피를 조금 마셔 보고는 다시 내려놓으면서, 나중에 마시겠다고 하는 겁니다 !!!  그때 그 어린 나이에 제가 받은 충격은, 나름대로 컸습니다.  당시 제가 보던 모든 커피는 다 인스턴트 커피였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 시골의 가난한 할아버지조차도 '인스턴트 커피는 차라리 안마시고 만다'라고 하다니 !!! 

 

그런데 세월이 흘러, 실제 원두커피를 마셔보니, 확실히 인스턴트 커피하고는 좀 차이가 나더군요.  처음에는 그게 다 설탕과 크림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스턴트 커피도 설탕과 크림 넣지 않고 블랙으로 마셔봐도, 확실히 제대로 끓인 진짜 커피의 쓴 맛과는 뭔가가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실제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인스턴트 커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만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스턴트 커피이건 스타벅스의 에스프레소이건,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커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M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중에, 안재욱과 김희선이 출연했던 "안녕 내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대략 1999년 정도였지요.  내용은 뭐... 야먕에 찬 남자와 백혈병 걸린 여자가 나오는 뻔한 러브 스토리였습니다.  특히 가난한 공장 여공으로 출연했던 김희선과 그 친구로 나온 이혜영이, 드라마 속에서 모두 구찌였나 루이뷔똥이었나 명품 가방을 각각 둘러메고 나왔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최 이해가 안가요...)

 

(와, 얼굴 크기 비교된다 !) 

 

하지만 그 드라마에서도 명대사가 있었습니다.  김희선이 친구에게 하는 대사였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랬습니다.

 

"이렇게 자판기 커피를 보면 예전에 공장 다닐때 동료들이 같이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할때 매몰차게 거절하곤 했던 것이 생각나.  사실 커피라는 것은 마시는 자체보다도 그걸 마시면서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쟎아 ?  그때는 그걸 몰랐었나봐."

 

김희선이 구찌 가방을 둘러매고 나와서 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렸던 것에는 공감이 안가지만, 저 대사에는 정말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인지, 18~19세기의 커피 하우스에서는 커피를 주문할 때 절대 한잔이든 두잔이든 잔 단위로 주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커피는 혼자 마시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항상 포트(pot) 단위로 주문을 했다고 하네요.  당시에도 커피 하우스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세상사를 논의하고 잡담하고 토론하는 곳이었다고 하니까요.  의외로 교양이나 주식 관련 정보를 배우기에 매우 좋은 분위기여서, 당시 커피 하우스를 1실링짜리 대학이라고 불렀다지요.  요즘으로 따지면 인터넷 포털 게시판 같은 곳이었나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서 술 주문을 할 때 잔 단위가 아니라 병 단위로 주문을 해서 외국 바텐더를 당황하게 한다는 말씀은 많이들 들으셨지요 ?  저도 실제로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이어주는 것이 커피나 차가 아니라 주로 술, 그것도 여러병의 술라는 사실이 그런 것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처럼 술 못마시는 사람으로서는 좀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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