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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증권

by nasica-old 2008.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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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르를 떠나 여호와의 계시를 받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했을 때, 그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양과 염소 몇십~몇백 마리에 식솔들이 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거의 맨몸으로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번성하면서 잘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 만약 제가 양 100마리를 사서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팔레스타인 땅이나 강원도 대관령으로 떠나면 거기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요 ?

 

 

 

 

2.  헨리 데이빗 쏘로우 (Henry David Thoreau) 라는 사람 들어보셨습니까 ?  미국의 유명한 문학자인 이 사람은 보스턴 근교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2년간 숲속에서 농사를 짓고 낚시질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쓴 책이 Walden이라는 책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이쁜 여학생들이 이 Walden이라는 원문 서적을 제목이 잘 보이도록 가슴에 안고 다녔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그렇게 영어 원서를 그렇게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답니다.)  요즘 제가 혼자서 미국 월든 호숫가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2년간 먹고 살 수 있을까요 ?

 

아마 쉽게 대답들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이유는 ?  비자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주된 원인은 바로 토지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인구는 부족하고 땅은 넓어서 유목민이 양을 방목할 땅은 주인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도 이미 비옥한 땅은 다 주인이 있었고, 아브라함도 가뭄이 들었을 때는 이집트 땅까지 유랑하여 와이프인 사라를 이집트 왕에게 팔아먹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또 월든 호숫가에서 쏘로우가 농사를 지었던 땅도, 사실은 임자가 있는 땅이었습니다. 쏘로우는 불법 점유를 했던 것이지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쌀 직불금과는 상관없었습니다.)  게다가 쏘로우는 탈세까지 저질렀습니다.  모든 국민은 국가 권력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는 법인데, 그걸 안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사실 마을에 들렀을 때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본인은 끝까지 세금 납부를 거부했지만, 보다 못한 친척이 대납을 해줘서 간신히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런 경치좋은 곳의 금싸라기 땅을 임대료도 안내고 2년이나 무단 점거... 범죄행위입니다 !) 

 

사실 대부분의 경제 활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생산 수단은 바로 토지, 즉 공간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결국 토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예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작은 음식점을 하셨는데,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망하기도 많이 망하셨습니다.  고생하신 덕분에 결국 어느 정도 돈도 모으셔서, 지금은 일을 안하고 계십니다만, 항상 저희 자식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나중에 월급쟁이 생활을 못하게 되더라도, 절대 장사는 하지 말라시더군요.  월급쟁이 생활을 (자의든 타의든) 관두게 될 때를 대비해서는, 차라리 작더라도 상가를 사라고 하시더군요.  모든 자영업 먹이사슬의 맨 위에는 상가 주인이 자리 잡고 있다고요.  어머니께서도 장사를 하시면서 상가 주인들의 횡포에 고초를 많이 겪으셨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신입사원일 때, 선배들 중 하나가 네 꿈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빨리 돈 모아서 아파트를 사서, 대한민국 법원 등기소에 내 이름을 올리는 것"

 

그때 그 선배가 참 기특한 놈이라고 반응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처럼 부동산 소유가 꿈이었던 것은 나폴레옹 시대의 육해군 장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The Happy Return by C.S.Forester  (배경 : 1808년 니카라과 연안 태평양) ------

 

(영국 해군의 혼블로워 함장은 태평양에서의 임무 수행 중, 자신의 프리깃함 HMS Lydia 호에 영국 귀족 가문의 여자인 바바라 웰슬리를 태워주게 됩니다.  처음에는 귀족들에게 반감이 많던 혼블로워도 차츰 바바라와 친해지게 됩니다... 유부남 주제에...)

 

그는 바바라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암초투성이의 비스케이 만에서 폭풍과 싸워가며 몇달씩 봉쇄 임무를 수행했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혼블로워에게는 아주 딴세상 이야기처럼 멋지게 들렸던 것처럼, 펠류 제독이 그의 프리깃함들을 바로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가까지 끌고가서 이천명의 수병들에게 프랑스 인권선언 (Droits-de-l'homme)를 노래하게 했던 이야기며, 함상에서의 온갖 고초와 보급품 부족에 대한 따분한 이야기들이 바바라에게는 환상적인 이야기였다. 

 

혼블로워의 과잉 자의식이 점점 줄어들면서, 바바라에게는 마치 아이가 목마를 바라는 것처럼 사소하게 들릴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경제적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중에 보직을 받지 못할 경우 받게 될 무보직 급여 (half-pay, 이에 대해서는 Half-pay란 무엇인가   http://blog.daum.net/nasica/6356192  참조)를 보충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2천 파운드의 나포 포상금 (prize money, 이에 대해서는 1804년, 스페인 보물선 함대를 둘러싼 모험  http://blog.daum.net/nasica/5311309 참조) 과, 몇 에이커의 땅과 작은 집, 그리고 서재를 가득 채울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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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Forester의 혼블로워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Patrick O'Brian의 오브리-머투어린 시리즈의 주인공 잭 오브리 역시, 나포 포상금을 받고는 시골 마을에 작은 집과 농토를 좀 사들여 소박한 시골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처럼, 나폴레옹 시대 때만하더라도, 돈을 벌면 당연히 부동산 매입에 사용되었습니다.

유럽 뿐만 아닙니다.  중국 전국 시대 말기에, 조나라의 명장이었던 조사의 아들 조괄이 조나라의 장수에 임명되자 그의 어머니가 조나라 왕에게 상소하여 조괄의 장수 임명을 거두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왕이 묻자, 그 어머니가 대답한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사기(史記) 중 염파-인상여 열전, 사마천 작 (배경: 중국 전국시대 말기) ----------------

 

조괄은 조사와 부자지간이지만 그 마음쓰는 것이 아주 다르옵니다.  사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친한 벗이 몇 십 명이나 되옵고 벗으로 사귀는 사람은 몇 백 명이나 됩니다.  나라에서 상금을 내리시면 그것을 모두 군사와 사대부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나라에서 명령을 받은 날에는 집안 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괄은 하루 아침에 장수가 되자 군리들이 그를 우러러볼 수 없을 만큼 거만하오며 왕께서 내리신 금품과 비단은 모두 창고에 두었다가 날마다 전답을 살펴보아 그것을 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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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괄이 부동산 투자에 몰빵한 것은 재테크 측면에서는 그럴싸 했습니다만, 결국 조괄은 진나라 장수 백기와의 싸움에서 무려 40만명의 조나라 군사를 말아먹는 막장 테크트리를 타게 됩니다... 

 

그러다가 영국이 산업화되기 시작하면서, 부자라는 개념이 새로운 측면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즉, 토지나 황금같은 실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 외에도, 주식, 유가증권, 공채 같은 종이쪼가리를 가진 사람들을 부자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Hornblower in the West Indies by C.S.Forester  (배경 : 1821년 미국 뉴올리언즈) ------

 

(카리브해에 파견나온 영국 해군의 혼블로워 제독은 본국에서 온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편지 내용은 영국 군수 산업체의 백만장자 청년이 곧 그쪽을 방문하니 잘 대해줘라, 니 와이프인 레이디 바바라도 그 청년을 매우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입니다.)

 

혼블로워는 편지를 끝까지 다 읽었으나, 이 Mr. 찰스 램즈버텀이라는 청년에 대해 더 언급된 내용은 없었다.  혼블로워는 다시 처음 문장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백만장자'라는 단어를 본 것은 바로 이 문장에서가 처음이었는데, 여기엔 두번이나 적혀 있었다.  그는 그 단어를 보자마자 확 싫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사람이 백만 파운드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상이 안갔고, 또 그 돈을 넓은 토지의 형태가 아닌, 공장과 주식과 유가증권으로, 또 아마도 영구 공채(Consol)의 큰 지분과 은행의 어마어마한 잔고의 형태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백만장자라는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상류 사회 소속이든 아니든, 그 단어 자체처럼 역겨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 아내 바바라도 매력을 느꼈다고 소개장에 씌여 있었다.  혼블로워는 대체 그게 소개장에 좋은 뜻으로 쓴 것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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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위에 인용된 1821년 이전에도, 인도 무역 등에서 떼돈은 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도 영국에 돌아와서는 대개 토지와 장원을 매입하고 귀족 흉내를 냈습니다만, 일부는 이미 예전부터 생겨났던 주식 회사의 주식이나, 정부에서 발행하는 공채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경제사 중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즉, 1720년 영국 경제를 뒤흔들었던 남해 회사 (South Sea Company) 거품 붕괴 사건은 아주 유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매우 유명하고, 또 이에 대해 소상하게 다룬 블로그가 많으므로 제가 자세히 다루는 것은 주제 넘은 일입니다만, 한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당시 재정 적자 문제에 허덕이던 영국 정부에게, 남해 회사라는 기업이 정부의 공채를 모조리 매입해줄테니 동인도 회사 (East India Company, EIC) 처럼 남미와의 독점 무역 면허를 부여해달라고 했고, 그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예상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회사 주식에 투자를 했다가 결국 거품이 터져 거덜이 났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회사들의 주가가 덩달아 마구 치솟았다가 결국 거품이 꺼지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남해 회사 관계자들 중에는 자살한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당시는 요즘 나오는 것과 같은 파생상품이 없었고, 남해 회사의 거품은 남해 회사 및 연관 몇몇 회사의 주식에만 연관이 되어 있었으므로, 그렇게까지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대개의 부는 토지와 실물로서 존재했습니다.  종이쪼가리가 아니고요.

 

 

(저렇게 사라진 돈 중에는 아이작 뉴튼의 돈도 있다는 거... ㅎㄷㄷ)

 

아마 주인공 혼블로워가, 토지나 실물에 근거한 것이 아닌, 채권, 유가증권 등으로 백만장자인 사람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이유 중에는 그런 기억들과도 연관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저 위에 나온 Consol 이라는 것은 Consolidated Debt 라는 이름의 공채입니다.  이 공채의 특징은 상환 기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저 채권을 들고 있으면 계속 이자만 나오고, 원금은 상환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원금을 찾고 싶다면 ?  그냥 유가증권 시장에 내다 팔면 됩니다.  아마 저 시대에는 이자율이나 그런 것이 변화가 적어서 저런 영구채가 가능했나봐요.  요즘도 영구채라는 것이 있나요 ?

 

요즘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가 다 그렇습니다만, 부동산에도 거품이 끼기 쉽지만 그런 유동 자산에는 더욱 거품이 끼기 쉽쟎습니까.  특히 CDS니 뭐니 하는 파생상품은 대체 어디에 얼마만큼의 위험이 존재하는지 파악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고 봅니다.  제가 대학다니던 80년대 말에도 영어 공부하면서 읽은 뉴스위크지에, 당시 있었던 금융 위기의 원인이 바로 파생상품(derivatives, 아직도 기억나는 단어입니다)의 복잡성과 위험성 때문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또 보게 되네요.  사람은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인데, 꼭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아마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의 탐욕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파생에 탐닉했나봐요.

 

 

 

(지금 이 도시를 위협하는 것은 기갑부대도, 핵미사일도 아닌, 파생상품의 위협입니다...) 

 

내일 한국은행에서  임시 금융통화 위원회가 열린다고 하지요. 뉴스를 보니 내일 그 회의에서 시중 은행채를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의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그 회의에서 은행채를 매입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면, 당장 은행에 달려가서 제 얼마 안되는 돈을 다 빼서 침대 밑에 넣어둬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아니, 금을 사야 하나...  아무튼 심란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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