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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민간인 가옥에서의 숙영 (billeting)

by nasica-old 2008.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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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군인은 야전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야 합니다...라는 건 농담이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붕과 벽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지요.


 

 

 

로마 군단병 같은 경우도 행군할 때만 8인 1조로 천막을 치고 살았고, 대개는 제대로 지은 요새의 병영에서 역시 8인 1실로 된 방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8인 1조가 10개 모이면 센추리온(Centurion, 백인대장, 백부장)이 지휘하는 100인대가 된다고 하더군요.  (어 ?  8 X 10 = 80명인데 ?)

 

문제는 대개 병사들이 행군하는 곳에는 요새나 병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1개 사단이 천막을 칠 만한 넓은 평지를 찾는 것도 어렵지요.  그런 장소에는 대개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교들은 물론이고, 병사들도 마을에 들어가서 자고 싶어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마을 주민들은 자기 집에 낯선 병사들이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적군 병사들은 물론이고, 자국군 병사들이 들어오는 것도 oh, no thank you 였지요.  뭐 특히 당시 영국군 병사들은 인생막장의 쓰레기 인생들만 모여있었으니 당연하지요.  사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젊고 거친 병사들이 그렇쟎아도 좁은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안좋지요.

 

미국 독립전쟁의 직접적인 원인 중의 하나가, 영국군을 미국인들의 집에 '무료로' 숙박시킬 수 있도록 하는 'Quartering Act'라는 법안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 모든 국가에서는, 병사들의 민간인 가옥에의 숙영이 많이 이루어졌었고, 또 많은 불만을 만들어냈습니다.

 

 


 

적국의 병사들이 민간인의 집에 숙영하러 들어온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  1870년 보불전쟁을 경험한 모파상은 이 주제에 대해 그의 단편 소설에서 몇번 다루었습니다.  모파상의 '소바쥬 부인'을 한번 읽어보십시요.

 

나폴레옹 전쟁 중의 영국군 이야기를 그린 Sharpe 시리즈에서도, 당연히, 민간인 가옥을 숙영지로 징발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인도에서는 매우 안하무인으로 나오고, 스페인같이 전쟁으로 초토화된 곳에서는 우방국인데도 많이 깔보는 태도로 나옵니다.  반면, 영국이 덴마크를 침공했을 때는 많이 공손하게 나옵니다.  당시 덴마크는 이미 상당히 복지국가였고 길거리도 아주 깔끔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것이 많이 작용했나봅니다.

 

 

Sharpe's Fortress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그 작은 인도 마을의 대로는 텅 비어있었으나, 샤프는 어두운 창문 안쪽과 커튼을 친 문 안쪽에서 영국군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개 한마리가 그늘에서 으르렁거렸고, 닭 두마리가 뭔가를 쪼아대고 있었다.

 

 

...중략...

 

 

그는 그의 상관인 토런스 대위가 묵을 집을 찾아나섰다.  (토런스가 구해놓으라고 명령한)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있는 집 같은 건 찾을 수 없었지만, 작은 마당이 딸린 진흙으로 만든 집을 한채 찾았다.  샤프는 그 집에 대한 소유권의 표시로, 그 거실에 자기 배낭을 내려놓았다.  거실 한쪽 구석에서는 아이 둘이 딸린 여자가 몸을 웅크렸다.

 

"괜찮아."  샤프가 말했다.  "집 사용료를 받게 될거야.  아무도 너희를 해치지 않을거라고."

 

그 여자는 울기 시작했고 곧 맞기라고 할 것처럼 몸을 더 웅크렸다.

 

"빌어먹을." 샤프가 말했다. "대체 이 망할 나라에선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거야 ?"

 

 

...중략...

 

 

"이게 자네가 찾을 수 있었던 최고였나, 샤프 소위 ?" 토런스 대위가 숙영 가옥의 거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대위님." 샤프가 말했다. "저 길 위에 아주 아름다운 집이 있었습니다. 크고 그늘진 마당과, 연못 2개와, 옹달샘과 무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이요. 하지만 전 대위님이 이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을 더 좋아하실거라고 생각했지요."

 

"비아냥거리는 건 소위 계급에 어울리지 않네." 토런스는 흙바닥에 안장가방을 내려놓았다.

"사실 소위 계급에 잘 어울리는 건 거의 없지, 샤프. 상관에게 공손히 복종하는 것 빼고는 말이야. 이 집 정도면 괜찮겠군.  저건 뭐야 ?"  그는 그가 점령한 집의 원주인인 인도인 여자를 보고는 몸서리를 쳤다.

 

"저 여자 집이 여기랍니다."

 

"이젠 아니지. 저 시커먼 년과 그 더러운 애색희들을 쫓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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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역사학자가 쓴 책을 읽어보니, 이런 말이 씌여 있더군요.  나폴레옹의 군대가 온 유럽에 진주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나폴레옹 법전이 함께 들어왔기 때문에, 나폴레옹을 환영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사실 들어온 것은 그것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비밀 경찰, 관세원, 그리고 병참 장교도 함께 들어왔답니다.  즉, 나쁜 것들도 같이 들어온 것인데, 왜 병참 장교도 '나쁜 놈' 취급을 받았을까요 ?  병참 장교는 식량이나 물품을 강제 징발하는 것은 물론, 자기 가족이 살고 있던 집까지도 약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래는 영국군 이야기지만, 비슷하니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병참 장교가 분필 한토막을 들고 마을이나 도시를 한바퀴 휘익 돌면 그 동네 주택은 모두 순식간에 군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런 부동산 임대료에 대해서는 나중에 프랑스 정부에 청구를 할 수 있었겠습니다만, 말이 쉽지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  인터넷은 커녕 기차도 없던 시절에, 저 먼 폴란드의 농부가 자기 집 임대료를 파리의 프랑스 육군 병참 사령부에 청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Sharpe's Battle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1년, 스페인)  --------------------------

 

샤프와 하퍼는 마을의 어느 대문 안쪽으로 몸을 숨겼는데, 거기에는 프랑스군과 영국군 양쪽 모두의 병참 장교들이 표시해놓은 분필 자국들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어떤 분필 표시는 5/4/60 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 뜻은 제60 라이플 연대 4중대에서 5명이 이 곳에 묵으라는 뜻이었다.  그 바로 위의 다른 표시 중 7이라는 숫자에는, 프랑스식으로 7 가운데에 짧은 가로 막대를 가로질러 그려놓았는데, 프랑스군 병사 7명이 묵는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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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 부분은 소설이 아닌, 실제 병사의 회고담입니다.  이는 1848년에 출간된, "Dorset 출신 라이플맨" 이라는 책에서 발췌된 것이고, 실제 1807년 영국군의 코펜하겐 포위 작전에 참전했던 라이플 연대 소속 해리스라는 병사의 회고담입니다.  영국군이 왜 당시 코펜하겐을 포위 폭격했었는지에 대해서는 화장실 이야기 - 고대 그리스에서 나폴레옹까지  ( http://blog.daum.net/nasica/4842359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Dorset 출신 라이플맨"  (배경 1807년, 덴마크) ------------------------------

 

 


 

가끔씩, 우리는 푸른 눈의 덴마크 아가씨들과 즐거운 모험을 하기도 했다.  라이플맨들은 이런 쪽으로는 아주 지독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당은 어떤 신사의 집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 가족은 집주인과 그 부인, 그리고 5명의 아주 예쁜 딸들과 그 하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날밤에, 우리는 집주인으로부터 매우 정중하게 대접을 받았다.  사실 외국 병사 한무더기를 집안에 들여놓는 것이 즐거울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런 손님들일 수록 비위를 잘 맞춰두는 것이 상책이었으므로, 집주인은 우리가 마치 그들이 초대한 손님인 것처럼 녹색 군복의 우리를 자기 가족과 함께 티를 마시도록 해주었다.

 

한 딸이 티 포트에서 티를 따르는 동안, 다른 딸들은 아버지 어머니의 양쪽에 앉아있었다.  응접실에 다섯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거칠고 용감한데다 파렴치하기까지 한 라이플맨 한무리가 같이 있었으니... 쯧쯧.  마침내 라이플 병사들 중 몇몇이 차와 토스트 조각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뭔가 좀더 센 것을 요구했다.  증류주가 그들에게 제공되었고, 이는 좀더 분위기를 친숙하게 만들어주었다. 

 

일단 분위기가 풀리자, 내가 우려하던대로, 집주인과 마나님에 대한 존중은 눈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몇몇 병사들은 아가씨들은 끌어당겨서 키스를 하기도 하고 (점잖게 말해서) 좀더 무례한 행동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상황이 급박하게 나쁜 방향으로 발전할 것 같아서, 나는 벌떡 일어나 질서를 바로 잡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친절한 대접을 받고 불한당처럼 구는 것에 대해 야단을 쳤다.  이런 질책과, 그리고 아가씨들에게 무례한 짓을 저지르는 맨 처음 병사는 장교에게 보고하겠다는 나의 협박이 효과를 발휘하여, 나는 딸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무척이나 고마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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