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절이고 말리고 그을리고...

by nasica-old 2008. 9. 24.
반응형

 

80년대 이후에 출생하신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전력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가끔씩 planned 또는 unplanned 정전이 있곤 했습니다.  저는 그럴 때면 촛불켜는 재미에 사실 정전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냉장고에 들어있던 음식들은 혹시 상하지나 않을까 어머니는 걱정하셨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음식물 보존을 거의 대개 냉장으로 처리합니다.  그것이 음식물의 맛과 영양을 가장 싼 가격에 가장 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냉장고는 널리 보급된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100년도 안되었지요 ?  그렇다면 그 전에는 어떻게 음식을 보존했을까요 ?

 

가장 쉬운 방법은 요즘도 많이 쓰이는 건조입니다.  채소이든 과일이든 곡물이든 잘 말리면 아주 오래동안 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은 말린 생선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냉장이 발달한 지금도, 다른 건 몰라도 건어물은 여전히 많이 먹습니다.  서양에서도 건어물, 특히 말린 대구는 많이들 먹었습니다.  스칸디나디아 반도에서는 잡은 대구의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내장을 뺀 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바위투성이 해안에서 말렸습니다.  이렇게 말린 대구는 스톡피쉬(stockfish)라고 불렸는데, 우리나라의 북어처럼 거의 나무판자처럼 딱딱한 저장식품이었습니다.  특히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아이슬란드에서는, 곡식 농사가 전혀 되지 않았으므로, 전 국민이 이 스톡피쉬를 먹고 살았습니다.  유럽인들이 빵을 먹을 때, 가난한 아이슬란드인들은 이 딱딱한 스톡피쉬를 뜯어서 버터를 발라 먹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수출도 많이 되었고요.

 

 

 

 

그러다가 이 말린 대구는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는데, 바로 염장 대구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말라서 딱딱해진 물고기보다는, 그래도 말랑말랑한 염장 대구가 더 맛있겠지요.

 

물고기를 말리지 않고, 통에 넣고 소금에 절여 저장하는 염장법은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인들이 개발했다고 하는데, 뭐 당연히 영국인이나 네덜란드인 어부들도 이 방법을 따라, 염장 대구를 유럽 각지로 수출했습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염장대구가 대단히 인기있는 음식이어서, 생대구를 뜻하는 단어는 없지만 '바칼라오'라는 염장대구를 뜻하는 단어는 매우 유명한 단어입니다.  지금도 스페인의 주요 민속요리 중의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아무튼 특히 나중에 네덜란드의 어떤 어부가 간수(bittern, 바닷물을 졸여서 농축한 것)에 물고기를 저장하면 더 오래, 더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뒤로, 내륙 지방까지 염장 물고기를 내다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이렇게 청어나 대구를 팔아서 번성한 도시였고, 그래서인지 그 간수 보존법을 발명한 어부의 동상까지 세웠다고 하네요.  당시 네덜란드를 소유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도 그 동상에 경의를 표하러 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생선은 그렇다치고, 고기는 말려서 육포를 만드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요 ?  이유가 뭘까요 ?  간단합니다.  그냥 산 채로 끌고다니다가 잡아먹으면 되니까 그렇지요. 

 

 

 

출처 : DC 힛갤 아캬님의 '오즈의 마법사'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6410&page=1&search_pos=-3569&k_type=0100&keyword=%EC%98%A4%EC%A6%88

 

하지만 뭐 모든 사람들이 유목민도 아니고, 여행을 떠날 때 다들 소나 돼지 한마리씩 데리고 길을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가뜩이나 좁은 화물선이나 군함에, 소떼와 그리고 소떼들이 먹을 사료와 물까지 싣고 항해를 나설 수는 없었습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 영국 해군 기지 근처에는 반드시 'victualling yard' (빅츄얼링이 아니라 그냥 비틀링이라고 읽습니다.  군량 마당 정도의 뜻이지요.)라는 곳이 있었고, 여기서는 거의 매일 홀로코스트가 일어났습니다.  즉 소와 돼지가 도살되어, 나무통에 소금을 듬뿍듬뿍 써서 절여졌던 것이지요.
 

Hornblower and Hotspur by C.S. Forester (배경 : 1803년 프랑스 해안의 소형함 HMS Hotspur 선상) ----------------------

 

혼블로워는 비좁은 해도실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 먹고 있는 염장 쇠고기에서는 여태껏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톡쏘는 맛이 나는 것이, 새 나무통에서 꺼낸 것이 틀림없었다.  이 새로운 풍미가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쇠고기는 다른 절임 작업장에서, 다른 종류의 소금을 가지고 절여진 모양이었다.

 

----------------------------------------------------------------------------------

 

저 위에 나오는 염장 쇠고기 (salt beef), 즉 소금에 절인 쇠고기는 두번 구운 딱딱한 빵, 즉 비스킷(건빵)과 함께, 영국 해군 뿐만 아니라, 영국 육군에서도 주식으로 사용했던 식품입니다.  사실 매일매일 쇠고기를 먹었던 것은 아니고, 해군의 경우 매주 2번씩 쇠고기를 먹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BBC에서 만든 Sharpe 시리즈의 최종판 "Sharpe's Waterloo" 편을 위한 광고판인데, 이때가 영국에서 광우병이 한창이어서, 영국산 쇠고기가 수출 금지되었던 때입니다.  그래서 저 광고판의 카피가 '1815년에도 프랑스인들은 British beef를 안좋아했다' 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영국인들의 유머 감각도 나쁘지 않지요 ?  참고로, beef라는 말에는 쇠고기라는 뜻도 있지만 힘, 근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을 얕잡아 부를 때 영어로 'roast beef'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음식인 로스트 비프를 프랑스인들은 '그것도 음식이라고 ㅋㅋㅋ' 하고 조롱했던 것이지요.  (로스트 비프에 대해서는 '영국인들은 하루에 네끼를 먹었다' http://blog.daum.net/nasica/5561033 를 참조하세요.)

 

 

 

 

사실 쇠고기라는 것이 장기간 보존하기에는 영 껄끄러운 식품입니다.  그런데도 고기를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먼 바다로 나가면서도 꼭 쇠고기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특히 당시 영국군 수뇌부는, 병사들에게 꼭 필요한 난폭성, 남자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기를 먹여야 한다고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건강에도 좋지 않고 가격도 비싼 염장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주식으로 공급했습니다.  그 보존을 위해서는 소금을 썼지요.

 

소금에 절이면 왜 고기가 썩지 않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잘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고기의 부패를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증식을 하려면 수분이 필요한데, 소금을 잔뜩, 최소한 전체 육류의 20% 정도를 섞어놓으면 이 소금이 삼투압 효과로 고기의 조직에서 물을 빨아들이게 되고, 이때문에 박테리아 증식이 억제되는 것입니다.  이때 박테리아가 억제되면서 유익한 유산균의 활동이 대신 일어나는데, 그때문에 고기에는 산성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약간의 발효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 위에서 혼블로워가 먹는 염장 쇠고기에 톡 쏘는 강한 맛, 영어로는 tang 이라고 하는 것이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게 지급된 육류는 소금기가 너무 많아서, 그대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삶기 전에 장시간 물에 담가두어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물이 부족한 원양 항해선에서는 큰 골치였었지요.  게다가 소금에 오래 절여둔 고기는 필연적으로 질겨지고 이상한 누린내도 납니다.  그러니 1820년대 즈음해서 통조림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선원들이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소금에 절였던 쇠고기를 물에 삶은 것이 바로 콘비프입니다.  Corn beef라는 말은 원래 corned beef에서 나온 말이고, 여기서 corn이라고 하는 것은 밀이나 옥수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래나 소금, 곡물의 작은 알갱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즉, 굵은 소금에 절인 쇠고기라는 뜻이지요. 

 


샤프 시리즈 중, 나폴레옹의 1차 퇴위 직전의 툴루즈 전투를 다룬 "Sharpe's Revenge" 편을 보면, 전투 직전에 아침으로 먹던 삶은 염장 쇠고기를 옆구리에 차는 식량주머니(haversack)에 넣어두는데, 전투가 끝난 뒤에 갑자기 시장기가 돌아 그걸 다시 먹으려고 꺼내보니 거기에 총알이 박혀있더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질기게 굳어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아마 소금에 오래 절여놓으면 고기가 질겨지겠지요 ?  더군다나,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음식을 주지는 않습니다.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쇠고기는 연골과 힘줄이 잔뜩 섞인 아주 형편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래의 샤프 시리즈 중 한 장면을 보면, 당시 영국군들이 이 염장 쇠고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4년 프랑스 ) -------------------

 

"프레데릭슨 대위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 ?"

 

"그 명령이 수행되기를 바라신다면 특히 없겠지요.  하지만 그 친구는 일 하나는 딱 부러지게 해내지요.  그리고 장군님이 방문해주시면 그의 부하 병사들이 기뻐할 겁니다."

 

"물론, 물론." 네언 장군은 그의 차에 럼주를 더 부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프레데릭슨의 라이플 부대는 내 여단에서 제대로 먹는 유일한 부대란 말이야.  염장 쇠고기는 전혀 먹지 않더라고 ! 그런데도 한번도 약탈질을 하다가 잡힌 적이 없었지 ?"

 

"왜냐하면 그들은 라이플맨이거든요. 그 녀석들은 너무 영악해요."

 

네언 장군은 웃었다. "이 전투에서 이기면 최소한 염장 쇠고기는 더 안먹어도 될 걸세. 프랑스군 식량을 차지하게 될테니까."

 

----------------------------------------------------------------------------

 

문제는 당시 소금은 결코 싼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야 소금은 당연히 염전에서 바닷물을 말려서 얻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조량이 부족한 영국에서는 그게 어려웠다고 합니다.  중부 유럽인 독일에서도 소금하면 바다소금보다는 암염이 더 많았지요 ?  영국에서는 해염과 암염의 비율이 어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소금은 뭐 그렇게 싼 물건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금에 절이는 것 만으로 고기의 부패를 막으려면, 적어도 소금 농도가 20%는 되어야 했다고 하니까, 정말 막대한 양의 소금이 필요했겠지요.

중국만 해도, 전국시대에 산동반도의 제나라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다에 면해있어서 염전으로 소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니까, 화학 소금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기 전에는 소금이 비싼 물건이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당시 소금에 절이는 것 대신 쓸 수 있는 육류 저장법은 또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  요즘도 많이 쓰이고 있는 훈제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훈제는 연료도 많이 들고, 또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에 적절한 대용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훈제 식품에는 발암 물질이 가득하다고 해서 금기시 되는 식품이지요.

그 외에도, 소금이 없다면 기름에 절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Desolation Island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1년 인도양의 어느 무인도) ---------------

 

(잭 오브리의 프리깃함인 레오파드 호가 빙산과 충돌하는 바람에 침몰하다가, 간신히 인도양 남쪽 어느 무인도에 도달하여 재출항 준비를 합니다.  이 섬은 남극에서 그리 멀지 않아, 바다 표범이 많이 삽니다.)

 

해안에서는 바다 표범의 도살이 크게 늘어났고, 통장이는 통에다 그 고기와 여러가지 바다새의 고기를 담았다.  소금이 부족한데다, 그나마 약간 남은 소금은 야생 배추를 절이는 데 써야 했으므로, 그 고기들은 바다 표범 기름으로 익힌 것이었다.  맛은 없겠지만, 그래도 바다 표범이나 새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라도 그것을 먹고 남극 지방의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라고들 생각했다.

 

----------------------------------------------------------------------------------

 

물도 오래 통에 담아두면 상하지만, 기름은 잘 상하지 않습니다.  댁에서 식용유나 올리브유를 냉장고에 보관하지는 않으시지요 ?  원래 고기를 보관할 때, 겉에 식용유나 올리브유를 잔뜩 칠해서 랩에 싸두면 오래 간다고 합니다.  얇은 기름막이 세균과 산소를 차단해주기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하지만 랩은 기름기에 약해서 환경 호르몬이 나오므로 무효...)  총이나 검같은 강철 제품에 기계유를 얇게 발라두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즉 산소를 차단하기 때문에, 부식, 즉 강철이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기름이 소금보다 훨씬 비싸니까 이런 '기름절임'은 쓰인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혹시 혼자 사시거나 이해심많은 어머니 또는 와이프를 두신 분들께서는 테스트를 해보세요.  식용유 속에 쇠고기나 닭고기 한덩어리를 넣어두고 실온에서 한 1주일 방치해보십시요.  그런 다음 그 고기를 요리해서 먹어보시고, 아무 탈이 안나면 여기에 '성공'이라고 적어주세요.  혹시 드시고 나서 심각하게 배가 아프시면 즉시 병원에 가보시고요.  저는 굳이 몸을 사린다기 보다는 제 와이프가 저를 쫓아낼까봐 그런 테스트는 차마...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