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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대포는 전장의 신

by nasica-old 2010.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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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지구 속 탐험, 그리고 달나라 여행 등은 모두 2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모두 영화화된 소설들이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모두 쥘 베르느 (Jules Verne)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쥘 베르느야말로, 요즘의 스티븐 킹 수준의 인기 작가였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팔린 소설가 중 넘버 1이 바로 이 쥘 베르느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쥘 베르느 역시, 스티븐 킹과 매우 유사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작이지요.

쥘 베르느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과학 기술이 들어간 SF 소설만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80일간의 세계일주에도 과학 기술이 안들어갔다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SF 소설이라기보다는 모험 소설이지요.  그런 쥘 베르느의 모험 소설 중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황제의 밀사', 원제는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딴 '미하일 스트로고프(Michael Strogoff)'입니다.




(1876년 출판된 미하일 스트로고프의 초판본 표지입니다.  이제 아이패드 등으로 전자책 출판이 대세가 되면 없어질 개념 중 하나가 초판본 수집이겠네요...)



Michael Strogoff by Jules Verne (배경 : 19세기 중반 러시아 중앙 아시아 지역)-----------------------

30년 전에는, 러시아 고위 관리가 여행할 때는 그 호위로서 200명의 코자크 기병, 200명의 보병, 25명의 바시키르 기병, 300마리의 낙타, 400마리의 말, 25대의 마차, 2척의 휴대용 보트, 그리고 2문의 대포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여행을 할 때는 이 모든 것이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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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이라고 하면 거의 나폴레옹 전쟁 즈음이었겠습니다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규모 호위대가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앙 아시아 지역이 위험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저 2문의 대포라는 것은 좀 지나친 것 아닐까요 ?  뭐 전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요새를 함락시키러 가는 것도 아닌데 대포까지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었을까요 ?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역시 이 소설 본문 중에 조금 설명이 더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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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으로서의 이 키르기즈인들을 말하자면, 이들은 그저 야밤을 틈탄 도둑질이나 캐러반을 습격하는 약탈자 정도이고,  진짜 전쟁 기술은 별로라는 말은 사실이다.  레프킨(M. Levchine)의 말에 따르면, "잘 훈련된 보병 대오나, 또는 보병 방진 하나면 그 10배 수의 키르기즈인들을 무찌를 수 있고, 대포 한문만 있어도 엄청난 수자를 몰살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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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가 왜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요 ?  아무래도, 그건 당시의 경직된 전법과 개인 화기의 보잘것 없는 위력 때문일 것입니다.  제 블로그에 출입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당시의 전투는 보병들이 열을 맞추어 밀집 대오를 이룬 상태에서 싸웠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당시 개인 화기였던 머스켓 소총의 빈약한 위력과 명중률 때문이었지요.  당시 머스켓 소총은 대략 0.7 인치 구경 (영국군 Brown Bess 머스켓은 0.75 인치, 프랑스군 Charleville 머스켓은 0.69 인치)으로서, 요즘의 중기관총 구경보다 더 컸습니다.  그러나 당시 탄약에 사용되었던 흑색화약의 위력은 그리 강력하지 못했던데다, 전장식 소총의 특징인 '지나치게 너그러운' 유극 (windage, 총구와 총탄 사이의 간격) 때문에, 그 위력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게디가 약 70m만 떨어져 있으면 거의 맞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명중률과, 분당 2~3발의 발사 속도 때문에 머스켓 소총의 위력은 더욱 무시되기 쉬웠습니다. 




(영국군 Brown Bess의 구경은 0.75 인치, 그러나 그 총탄의 직경은 0.71 인치였습니다.  그것보다 더 커지면 밀대로 총알을 총구에 쑤셔 넣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고...)



하지만 대포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 우렁찬 포성과 불꽃,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포알이 지나가는 경로에 서있는 인간이 몇 줄로 늘어섰건 간에 모조리 피떡으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의 포탄은 충격 신관이 달린 폭발탄이 아닌, 그저 둥근 쇳덩어리에 불과했지만, 빽빽히 늘어선 병사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뒤로 휙 낚아채면서 피범벅으로 부수어버리는 광경은 주변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특히, 근거리에서 발사하는 캐니스터탄(산탄)은 포구 앞에 늘어선 병사들 십여명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더욱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6-pounder 포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예쁘게 생겼습니다.  우리집 앞마당에도 한대 세워놓고 싶군요.  아, 물론 앞마당이 있는 집부터 장만해야겠군요.)



Sharpe 시리즈 중에서, 대포의 위력을 엿볼 수 있는 몇 부분을 발췌해보지요.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영국군에 근무하다가 도망쳐 인도 마라타 연합군의 용병 지휘관이 된 도드가 인도군을 지휘하여 스코틀랜드인으로 구성된 영국 보병대를 위기에 빠뜨립니다.  포위된 영국군은 급한 대로 동료들의 시체와 죽은 말을 끌어 모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그 뒤에서 간간이 응사하며 저항합니다.)

"조준은 낮게 !"  윌리엄 도드는 복수심에 불타는 하이랜더(스코틀랜드인들의 별명: 역주)들이 총검을 움켜쥐고 견고한 대오를 짜고 있을지도 모르는 포연 속을 향해서 부하들 앞에서 돌격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도드는 스코틀랜드인들을 싫어했지만, 그들과 칼 싸움을 벌이는 것을 꺼릴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었다. 

먼저 저 개자식들의 수자를 좀 줄여놓고, 일제 사격으로 두들겨 패고, 피를 좀 뽑은 다음 학살해버려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지만, 그의 인도군 부하들은 이제 막 손에 잡히려는 승리에 너무 흥분했는지 사격이 자꾸 너무 높은 곳으로 날아가버리거나 시체로 쌓은 방어물에 헛되이 꽂힐 뿐이었다.

"조준은 낮게 !" 그는 다시 소리질렀다.
"조준은 낮게 !"
"저것들 오래 가지는 못할 겁니다." 주베르 대위가 말했다.  사실 이 프랑스인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죽이기 까다로운 것들이지, 저 스코틀랜드놈들은."  도드가 말했다.  그는 수통에서 물을 한모금 마셨다.
"난 저 개자식들이 싫어.  모조리 설교꾼 아니면 도둑놈들이거든.  잉글랜드인들의 일자리를 훔치지.  조준은 낮게 !" 
도드 옆에 서있던 병사 하나가 하얀 코트에 선명한 피자국을 남기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주베르 ?" 도드는 프랑스인에게 말했다.
"소령님 ?"
"우리 연대의 대포 2문을 끌고 오게.  캐니스터탄을 재워서 말이야." 
그거면 저 개자식들을 끝장낼 수 있었다.  4파운드 포에서 발사되는 캐니스터탄 2방이면 저 스코틀랜드 방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것이고, 도드는 그 구멍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쳐들어가서, 저 죽어가는 스코틀랜드 연대를 그 안쪽으로부터 살을 발라낼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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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 시리즈 중 걸작에 속하는,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저 오디오 북을 낭독한 Paul McGann은 우리나라에서는 영국드라마 닥터 후의 주인공으로 유명합니다.  원래 이 Sharpe 시리즈가 BBC에서 제작될 때, Sharpe 역을 바로 이 McGann이 맡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그 첫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축구를 하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그 역할이 Sean Bean에게 넘어갔고, 그것이 Sean Bean의 출세작이 되었습니다.)



Sharpe's Havoc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9년 포르투갈) -------------------------

(포르투갈 산악 지대를 통과하여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영국군이 추격하여 전투가 벌어집니다.  프랑스군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여 협곡의 다리를 통과하는데만 안달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대포들, 즉 평소에 (그 작은 크기로 인해) 경멸받던 3파운드 포가 프랑스군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오렌지보다 약간 큰 그 작은 대포알들이 빽빽한 프랑스군 대오를 뚫고 바위에 부딪혀 튀어나와 더 많은 프랑스 병사들을 죽였다.  콜드스트림(ColdStream) 근위대의 군악대가 '브리타니아여 지배하라 (Rule Britannia)'를 연주하면서 그 축축한 대기에 커다란 군기를 펼쳐 세웠고, 다시 3파운드 포탄이 내리 꽂혔다.  각각의 포탄은 마치 보이지 않는 칼이 휘둘러지는 것처럼 프랑스군 대오 가운데를 긴 피자국을 뿌리며 뚫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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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포는 밀집 대오에 대한 위력, 그리고 임시 방어물에 대한 파괴력에 있어 소총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효과가 컸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필리핀에서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정부패 독재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었고, 일부에서는 무장 반란도 일어났었습니다.  그때 뉴스 한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마르코스 대통령의 지시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반군을 제압할 때 중화기는 사용하지 말고 견착식 무기 정도만 사용하도록 하라."  이런 것을 보면 대포는 물리적인 파괴력 및 심리적 충격과 함께, 정치적 의미도 심오한 모양입니다.

사실 정치가 불안한 국가들에서는 (과거의 우리나라도 그랬고, 월남전 때의 미국도 그랬지요) 시위대를 향하여 소화기를 발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시위대를 향하여 대포와 같은 중화기를 사용한다면 그건 이미 시위 진압 수준을 벗어나 내전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더더욱 정치적인 의미가 있을 겁니다.

나폴레옹은 일개 포병 장교였다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전공 과목인 대포를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바로 1795년의 방데미에르 (Vendémiaire) 13일 (10월 5일) 사건입니다.  나폴레옹은 왜 교황과 화해했을까 ? (http://blog.daum.net/nasica/6862386) 편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프랑스 국내는 방데 지방을 비롯한 북서부 프랑스의 친카톨릭-반혁명 반란으로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게다가 영국이 프랑스 망명 귀족들을 도와 지원 물자와 병력을 이곳저곳에 상륙시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아르투와 백작 (Comte d'Artois, 훗날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샤를 10세가 됩니다)이 1천명의 망명 귀족 및 2천명의 영국군 병력과 함께 상륙했다는 소식에 고무된 왕당파들이 파리로 몰려와 소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1824년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프랑스 왕위에 오른 샤를 10세.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아우스테를리츠에서의 나폴레옹 및 조세핀 초상화를 그렸던 Gerard입니다.)



이때 국민공회는 므누(Menou) 장군을 방어 책임자로 삼아 왕당파를 해산시키려 하지만, 마음이 약했던 그는 감히 동족들과 파리 한가운데서 본격적인 전투를 벌일 생각은 하지 못하고 협상을 진행하려 합니다.  이런 약한 모습에 더욱 고무된 왕당파들의 세력이 더욱 불어나, 국민공회 근위대 5천명에 비해 무려 6배인 3만명 수준으로 강화되자, 국민공회는 그를 해임하고 바라스를 지휘관으로 임명하는데, 이때 바라스의 식객 비스무리한 상태이던 무보직 상태의 젊은 포병 장교 하나가 혜성처럼 나타납니다.  바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었지요. 

원래 군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바라스가 방데미에르 13일 새벽 1시에 나폴레옹에게 전권을 위임하자, 나폴레옹은 그 한밤중에 즉각 요아킴 뮈라 (Joachim Murat)를 파견하여 파리 외곽에 배치되어 있던 대포 40문을 끌고 오게 합니다.  이때 뮈라가 다녀간 직후 왕당파에서도 부대를 파견하여 그 대포를 장악하려고 했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늦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이 밝고 나서, 왕당파의 공격이 시작되자 미리 배치해둔 대포 40문에서 포도탄(grapeshot)을 발사하며 격렬히 반격하며 2시간 정도 전투를 벌였고, 결국 6대1이라는 수적 열세를 포도탄의 화력으로 극복하여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 집계된 왕당파 사망자의 수는 약 300명 정도였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 전투에서 포도탄의 효과는 물리적인 것보다는 심리적인 공포가 더 컸던 것 아닌가 합니다.  2시간 동안 40문의 대포로 그 비좁은 파리 시내 골목에 포도탄을 퍼부으며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이때 나폴레옹이 타고 있던 말이 적탄에 맞아 쓰러질 정도로 격렬했답니다) 사망자가 전체 적군의 1% 정도라는 것은, 적군들이 감히 대포가 조준하고 있는 거리로는 달려나오지 못하고 꼬리를 뺐다는 이야기거든요. 




(방데미에르 13일 사건에 대해서는 확실히 나폴레옹도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심지어 브뤼메르 쿠데타 사건에 대해서도 멋진 그림이 있지만, 방데미에르 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그림이 없네요.)



확실한 것은 이때의 전공이 나폴레옹을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전투에서 패배한 왕당파들은 그를 '포도달 장군(Général Vendémiaire)' (당시 계절 및 농사철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혁명력에서, 방데미에르는 '포도의 달'이라는 뜻입니다)이라고 부르며 '동족에게 포도탄을 퍼부으며 학살한 냉혈한'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포도달에 포도탄을 쏜 장군이라... 좀 우스우면서도 우리나라처럼 정치군인들의 쿠데타가 있었던 나라에서는 좀 씁쓸한 해학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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