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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1814년, 런던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던 사건

by nasica-old 2008.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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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verse of the Medal by Patrick O'Brian (배경: 1814년 서인도제도) -----

 

(해군 군의관 스티븐 머투어린이 서인도 제도에 도착하여, 현지의 영국 함대 소속 비서관인 미스터 스톤에게서 유럽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 물론 우리 영국 육군이 스페인에서 좀 진척을 이루고 있지요.  하지만 그 스페인 사람들은... 뭐 닥터께서도 스페인 사람들 됨됨이에 대해 좀 아시쟎습니까 ?  어쨌거나, 우리가 계속해서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전역의 우리 연합국들에게 자금을 계속 댈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의 전쟁 자금조차도 딸리는 편이거든요. 

 

씨티(The City: 런던 내의 금융가를 가리키는 말로서, 현대 뉴욕의 월 스트리트처럼 금융 회사들이 몰려 있는 구역이라고 합니다. 역주)에서 일하고 있는 제 동생에게서 들은 말에 따르면, 자금줄이 이렇게 말라버린 적이 없다는군요.  무역도 아주 안좋은 상태이고요.  사람들은 체인지 가를 우울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다니고, 금화도 아주 부족합니다.  은행에 가서 돈을 좀 인출하려고 하면, 분명히 예금은 기니 금화로 했는데도, 지급되는 것은 지폐 뿐입니다. 

 

 

 

(당대 최고 신용도를 자랑하던 영국의 기니 금화. 아프리카 기니에서 가져온 금으로 만들었다나...) 

 

게다가 대부분의 증권은 이제 휴지 취급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남해 주식회사 통합 채권(South Sea annuities)은 58.5에 거래가 된답니다 !  동인도 주식회사 주식(East India Company stock)조차도 충격적인 가격까지 내려갔고요, 재무부 증권(Exchequer bills)으로 말하자면...  연초에는 전쟁이 끝난다는 소문이 돌아서 거래가 아주 활발했습니다만, 그게 헛소문으로 판명되면서 완전히 죽어버렸지요.  씨티는 전보다 더 침체되어 버렸구요. 

 

지금 활황인 것은 오직 농업 뿐입니다.  밀 가격이 1쿼터 (the quarter, 1/4 평방 마일에서 생산된 밀을 뜻하는 듯 ?. 역주)에 125 실링이나 하고, 토지는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말입니다, 전쟁 전에는 아주 상당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었던 우량주를 지금은 5천 파운드 정도면 살 수 있답니다.  여기 신문과 잡지가 좀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장담하건데, 읽고 나시면 기분이 아주 나빠지실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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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금융의 나라답게 저 시대에도 이미 상당히 발달된 증권 시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stock과 bond, bill 등의 차이점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 위 소설 속에서 비서관이 주워섬기는 주요 유가증권 이름만 해도 여러가지가 나오지요 ? 

 

번역하기도 좀 망설여질 정도로 이상한 증권 이름도 많습니다.  가령 저 위에 남해 주식회사 통합 채권(South Sea annuities)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한 번역이지만) 제대로 된 번역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원래 annuities라고 하면 연금을 말하쟎습니까 ?  그러니까 그냥 사전만 찾아보면 '남해 연금'이라고 변역이 됩니다만, 저는 (나름대로 과감하게) '남해 주식회사 통합 채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South Sea라는 것이 뭘 뜻하는 지는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증권  (http://blog.daum.net/nasica/6862316)에 대략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저 annuities라는 것이, 남해 주식회사가 사들였던 정부 공채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때 쯤이면 이미 망했을 남해주식 회사가 연금을 줄 리는 없으니, 그와 연관된 정부 공채겠지요.

 

요즘 금융위기로 시끄럽습니다만, 이번 금융 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빚잔치의 끝'입니다.  원래 빚으로는 소도 잡아먹는다고, 빚은 무서운 것입니다.  당장 돈이 없으면 원래는 돈을 안쓰는 것이 맞는데, 요즘은 다들 너무도 당연하게 당장 돈이 없어도 빚내서 차를 사고, 빚내서 집을 사고, 빚내서 옷을 삽니다.  할부 같은 것들이 바로 빚이지요.  그러다보니 거품이 쌓이기 시작했던 것인데, 사실 빚을 내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은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저 위 소설 인용구 속에도 나와있습니다만,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정부에서 할 일은 많은데 돈이 없을 경우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채권'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시작했던 것은 아니고, 권력과 재산이 미약했던 왕실이 돈많은 유태인이나 부르조아들을 상대로 '님하 돈좀 굽신굽신'했었지요. 

 

그러다가 아예 '채권 발행'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서 '내가 이자 줄 테니까 돈 좀 꿔주라'면서 그 증서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에 재미를 붙여서 아예 '안갚아도 되고 이자만 주면 되는' 영구 공채를 만들어 팔기까지 했습니다.  그게 바로 찰스 디킨즈의 '데이빗 코퍼필드'나 E.M.포레스터의 '하워즈 엔즈' 등 유명 문학 작품에도 등장하는 콘솔(Consols, Consolidated Annuities)입니다.  이 콘솔은 18세기 중반에 나왔다고 합니다.  왜 공채인데 bond라고 부르지 않고 연금(annuities)라고 부르는지가 여기서 설명되는 것이지요.  원금을 되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영국 정부로부터 그 이자만 받는 것이거든요.  그 이자는 대략 3%였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인플레가 심하지 않았던, 금본위제의 경제 체제였던 당시로서는 꽤 짭짤한 수준이었던 모양입니다.

 

 

(3% 콘솔 - 1793년  대영제국의 은혜로우신 조지 2세께서 3% 이자에 445파운드만 꾸겠다는 증서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 재정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영국은 자기 자신의 군대에도 총과 대포, 군복과 염장 쇠고기(염장 쇠고기에 대해서는 절이고 말리고 그을리고...  http://blog.daum.net/nasica/6862307 참조)를 사줘야 했지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프러시아와 러시아 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돈을 꿔주고 물자를 공급해야 했습니다.  물론 각국 권력자들에게 '나폴레옹과 한판 붙어보셈. 님은 밸도 없삼?' 하며 뇌물도 뿌려야 했고요.  그러다보니, 뇌물을 저 위의 3% 콘솔 공채로 줄 수는 없으므로, 금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금화, 지폐, 그리고 군사력  http://blog.daum.net/nasica/6481329 참조)  어차피 금본위제였던 시절에, 요즘 미국 FRB나 한국은행처럼 그냥 돈을 마구 찍어낼 수도 없었겠지요.

 

결국 금 값은 올라가고, 각종 주식이며 공채 가격은 떨어지고, 런던 주식 시장은 침체에 빠져듭니다.  생각해보면 경제나 주식은 참으로 오묘해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리암 니슨은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딱 하나, 전쟁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이 당시 런던 주식 시장을 구해낼 요소는 딱 하나, 평화였습니다.

 

 

 

(전쟁은 수지 맞는 장사 아닌가 ?  그렇고 말고 !)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으면, 꼭 사기꾼이 끼어듭니다.  이때도 그랬습니다.  이로 인해 1814년 아주 유명한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바로 1814년 런던 주식 시장 조작 사건입니다.

 

1814년 2월 21일 월요일 아침, 영국 육군 수뇌부의 캐쓰카트 (Cathcart) 자작의 부관인 뒤 부르그(Du Bourg) 대령이라고 자칭하는 군인이 도버에 선박편으로 도착해서, 나폴레옹이 전사하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당시의 세마포어 신호대를 이용해 (세마포어 신호대에 대해서는 넬슨의 메시지 http://blog.daum.net/nasica/5435214 참조) 곧 런던에 전해졌습니다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어서 런던 시내에도, 프랑스 왕당파 장교 3명이 돌아다니면서 이 소식이 사실임을 확인해주는 찌라시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바래왔던 평화가 당도했던 것입니다 !

 

가장 흥분했던 것은 이제 곧 돌아올 군인 아버지나 수병 아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런던 주식 시장 (London Stock Exchange) 관계자들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전해지면서 주로 정부 관련 유가 증권들의 가격이 큰 폭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세마포어 전통문을 통해 받은 뉴스에 주가가 크게 솟았다가 곧 시들해졌지만, 정오 쯤에 3명의 프랑스 장교들과 그 찌라시로 인해 글자 그대로 떡상승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떡상승은 곧 떡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부가 (인터넷도 없던 당시로서는 정말 신속하게도) 그날 오후에 '그거 다 개구라야'라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주식 시장은 원래 가격으로 되돌아가버렸습니다. 

 

철두철미한 런던 주식 시장 위원회는 이 소동에 대해 깊은 의심을 가지고 곧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누군가 그 전주에 110만 파운드 상당의 정부 관련 유가증권을 샀다가 이 월요일 대소동 때 큰 차익을 남기고 팔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대규모 주가 조작 사기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뒤 부르그 대령이라는 사람은 베린저 (Random de Berenger) 대위라는 사람이었고, 이 인간은 오후에 3명의 프랑스 장교 중의 한명으로도 변장을 했었습니다.  물론 체포되어 처벌을 받았지요.

 

하지만 이 사건의 주모자는 놀랍게도, 당시 영국 해군의 유명한 영웅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토마스 코크레인 백작과 그 삼촌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코크레인 경은 바로 저 위에 인용된 잭 오브리 시리즈의 모델로서, 정말 소설같은 삶은 살았던 양반이었습니다.  코크레인 경은 자신은 아무 것도 몰랐고 삼촌 짓이라고 항변했지만, 아무튼 당시 정치적으로도 급진적이던 코크레인 경을 미워하던 재판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년의 감금형과 벌금, 그리고 목과 손에 칼을 쓰고 저자거리에 전시되는 치욕을 선고받습니다. 

 

 

 

(영국 해군의 영웅 코크레인 백작이 이런 일을 당한다고 ???) 

 

하지만 평소 귀족들과는 사이가 안좋았으나 민중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영웅 코크레인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분노한 추종자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한 당국이 칼을 쓰는 형은 면제를 해줍니다.  하지만 기사 작위도 박탈당하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던 영국 해군에서도 쫓겨난 코크레인은 나중에 해외로 나가 용병 해군 제독으로서 칠레 독립 전쟁에 참여, 혁혁한 전과를 세웁니다.  이 이야기는 Bernard Cornwell의 Sharpe's Devil 편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관련된 포스팅을 올리도록 하지요.  그 후 브라질 해군과 그리스 해군에서 용병 제독으로 활약하던 코크레인은 결국 1832년 사면을 받고, 1848년에 다시 영국 해군에 받아들여져서, 영국 해군 제독의 지위까지 올라갑니다.  그때까지도 코크레인은 계속 주식 사기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고, 빅토리아 시대 내내 사람들은 그의 무죄를 믿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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