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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1804년, 스페인 보물선 함대를 둘러싼 모험

by nasica-old 200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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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라는 직업은 전통적으로 '돈'과는 거리가 좀 있는 직업입니다.  군인의 급료는 거의 언제나 일반 사회 숙련공보다 낮았고, 대개는 숙련공의 절반 정도에 해당했습니다.  장교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장군직은 돈을 쓰는 직업이었지 급료를 받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돈이 없으면 장군이 되지 못하던가, 장군이 되었다고 해도 부하들 앞에서 영이 서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시칠리아 섬으로 원정을 떠난 아테네군의 3명의 장군 중의 하나인 리키아스입니다.  이 양반은 용감하고 능력있는 장군이었으나, 워낙 가난하여 '자기 신발도 공금에서 보조를 받아 사서 신을 정도'였기 때문에 부하들이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유럽 각국 군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위의 경우, 받는 연봉보다 소속 연대 장교 식당에 지불해야 하는 밥값이 더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집에서 용돈을 부쳐주지 않으면 먹고 살 방법이 막막했다는 거지요.  당시 장교 = 신사계급이라는 공식이 통했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되는 관습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군대에서 돈을 벌 기회가, 그것도 큰 돈을 벌 기회가 있었습니다.  육군에는 없었고, 해군에만 있었습니다.  바로 나포 포상금 (prize money) 제도입니다.  이 prize money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일종의 인센티브나 보너스 같은 것인데, 해상에서 적의 군함이나 상선을 나포하면 그 선박과 거기 실린 모든 화물 전체가 함장 및 선원들의 재산으로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해상에서 적선에 대해 함장이나 선원들이 더 열심히 싸우도록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전투를 앞두고 수병이 기도를 하자, 장교가 겁장이라고 욕을 합니다.  그러자 수병 왈, '아닙니다, 저는 그저 prize money를 나눠 받는 비율대로만 적의 포탄도 나눠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포된 적의 선박이나 군함은 prize agent라고 불리우는 공식 상인들에게 위탁되어, 영국 정부가 일정한 가격에 사들였고, 그 판매 대금은 일정한 비율로 함장부터 일반 선원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당연히 함장은 큰 몫을 받았고, 일반 선원은 쥐꼬리만큼 받았습니다. 

함장은 전체 금액의 2/8, 장교(commissioned officer)들 전체가 1/8, 준위(warrant officer)들 전체가 1/8, 그리고 기능장(petty officer: 목수, 갑판장, 보급장 등)들 전체가 1/8, 그리고 해병을 포함한 나머지 전체 선원이 2/8를 나누어 가졌습니다.  합쳐보면 1/8이 남지요 ?  이건 그 군함이 소속된 제독이 자기 몫으로 챙겼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군함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Hornblower 시리즈 중, "Flying colors" 편을 보면, 주인공 혼블로워 함장이, 갑판이 있고 대포를 실을 수 있는 군함 중 가장 작은 군함인 커터(cutter) 한척을 나포하여 prize money를 받는데, 그 가격이 4000 파운드였습니다.  100년전 4000 파운드면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대략 6억원 정도입니다.  원양 항해가 가능한, 갑판있는 요트가 요즘 대략 이 정도 가격이더군요.  이 커터라고 하는 군함은 어느 정도로 작은가 하면, 선원들이 젓는 노로 배를 움직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배입니다.  이런 작고 텅빈 배가 4000 파운드였는데, 적의 프리깃 함이나 전함 정도면 얼마나 비쌌겠습니까 ? 

 

그러니 당연히, 함장들은 적의 배를 나포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또 많은 함장들이 이 prize money를 통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포 현장에, 만약 다른 아군 함정이 시야 안에 들어있었다면, 그 군함도 나포에 기여를 한 것으로 인정되어 그 prize money에 숟가락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대개의 함장들은 함대 내에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단독 임무를 수여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적의 군함을 침몰시키지 않고 나포를 해야 돈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혹시 침몰시키지 않기 위해 너무 소심하게 싸우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당시의 목제 군함은 아무리 포격을 받아도 침몰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침몰하는 군함의 함장은 그 배와 운명을 같이 한다"라는 말은 적어도 이 시대에는 전혀 없던 말입니다.  일단, 적의 포격으로 침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또 열심히 싸우다가 적에게 항복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별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만, 가끔 가다가, 정말 용감한 적을 만나서, 적함이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싸운 끝에서야 항복을 받아낼 경우도 있겠지요.  이런 경우, 나포된 배가 너무 파손되었다면 정부가 매입을 거부하는 수도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재수가 옴붙은 경우겠지요.

 

그렇다면 재수가 대박으로 터지는 경우도 있었을까요 ?  있었습니다.  프랑스나 스페인 군함 및 사략선(privateer, 민간 무장선)의 경우에는, 인도에서 진귀한 향료를 잔뜩 싣고 오는 무역선(indiaman)을 나포하면, 그건 재벌 함장의 탄생을 뜻했습니다.   영국 측 입장에서는, 아메리카에서 황금을 싣고 들어오는 스페인 선박이 바로 대박이었습니다.  이건 몇백억짜리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일반 선원들조차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또 이월이 매주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스페인 보물선은 전쟁 초기 외에는 거의 나포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국 해군의 제해권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은 영국과 전쟁에 들어간 이후에는 아예 상선을 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장 유명한 스페인 보물선은 나폴레옹 전쟁 초기에 나포된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 전쟁 직전에 나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1804년 10월 5일에 일어납니다.

 

당시 스페인은 나폴레옹과 비밀 협약을 맺고, 곧 영국에 선전포고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선전포고가 늦춰지는 이유는 단 하나, 남미에서 곧 들어올 보물선 함대 때문이었습니다.  이 보물선들이 스페인 항구에 들어오기 전에 선전포고를 해버리면, 굶주린 영국 해군이 얼씨구나 하면서 나포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스페인은 이 보물선 함대가 들어올 때까지 선전포고를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국 정보부(MI5는 아니었습니다만)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국제법 상에는 어긋나지만, preemptive action, 즉 선제 공세를 취하기로 합니다.  즉, 전쟁이 발발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스페인 보물선 함대를 나포하기로 한 것이지요.  마치 이라크나 북한이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기 전에 선제 공격을 해버리겠다는 미국의 행동과도 비슷한 행동이었습니다.

 

이 스페인 보물선들은 4척의 프리깃함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즉 40문의 포를 갖춘 메데아(Medea)호, 34문의 파마(Fama)호, 36문의 메르세데스(Mercedes)호, 그리고 34문의 산타 클라라(Santa Clara)호였습니다.

 

이에 맞서, 영국 해군도 4척의 프리깃함을 파견합니다.  이건 전형적인 영국 해군성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압도적인 해군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함 4척을 파견할 수도 있었고, 프리깃함 8척을 파견할 수도 있었는데, 비슷한 수준의 프리깃함 4척만을 파견했습니다.  즉, 포 44문의 인디퍼티거블 호 (HMS Indefatigable), 38문의 라이블리 호 (HMS Lively), 32문의 암피온 호 (HMS Amphion), 그리고 32문의 메두사 호 (HMS Medusa)였습니다.

 

 스페인 보물선 함대는 8월 4일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을 출발했는데, 영국 함대는 9월 29일부터 스페인의 카디즈 항 근해에 집결하기 시작하여, 10월 3일에야 집결을 완료합니다.  그로부터 겨우 2일 뒤, 그러니까 10월 5일 아침 7시에 카디즈 항으로 접근하던 스페인 보물선 함대와 마주칩니다.  정말 스페인에게나 영국에게나, 의미는 달랐지만 아슬아슬했던 타이밍이었던 것이지요. 

 

 

 

전투 결과는 시시했습니다.  포격전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스페인 측 메르세데스 호가 (당시의 쇳덩어리 포탄으로는 드문 일이었는데) 화약고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했고, 다른 스페인 프리깃함들도 30분만에 항복을 했습니다.  파마 호만이 도주를 시도하다가 결국 HMS 라이블리 호에게 붙잡혀 결국 나포됩니다.  이렇게 1척의 배가 보물과 함께 침몰했음에도, 이때 나포된 프리깃함과 그 화물은 당시 돈으로 무려 90만 파운드에 달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시가로 따지면 1400억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4명의 함장이 이 돈의 1/4을 나눠가지면 되었으므로, 각 함장의 몫은 1인당 무려 90억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역시 선전포고도 하기 전에 선제 공격했던 것은 법적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이 나포는 전시 상황이 아니었다'라는 이유로, 영국 정부는 prize money의 지급을 거부합니다. 나중에 많은 법적 분쟁을 거친 뒤에, 결국 이때 함장 1인당 약 32억원 씩, prize money가 아닌, 사례금이 지급되었습니다.  결국 그 함장들은 떼돈을 벌기는 벌었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것이어서,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영국 해군 이야기를 그린 양대 명작, Hornblower 시리즈와 Aubrey-Maturin 시리즈 모두에서 이 해전에 주인공들을 참여시킵니다.  그래서 이 주인공들이 떼돈을 버냐고요 ?  글쎄요... 미리 이야기하면 재미없으니 읽어보세요.

 

참고로, 실제 스페인은 그해 12월에 가서야 영국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가만 보면 스페인 사람들은 전쟁도 종종 느리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아직 우리도 늦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지금도 카디즈 앞바다 대서양 깊숙한 곳 어딘가에, 막대한 보물을 실은 메르세데스 호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야 말로 줍는 사람이 임자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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