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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칼은 독일제가 최고 ?

by nasica-old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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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s Eagl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9년, 스페인) --------------

 

푸른색과 주홍색이 섞인 군복을 입은 기병대원들이 무기공(armourer) 옆에 줄을 지어 서있었다.  샤프는 그들이 칼을 다 갈때까지 기다린 뒤, 그의 커다란 군도를 꺼내어 숫돌바퀴로 가져갔다.  이것은 샤프가 전투에 나가기 전에 항상 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중략...

 

무기공은 마치 애무를 하듯 칼날의 위아래를 숫돌바퀴에 대고 날카롭게 갈고나서, 칼등 끝부분의 6인치 정도도 날카롭게 갈았다.  그는 기름을 묻힌 가죽 조각으로 군도를 닦았다.

 

"독일제 칼을 장만하시지요, 대위님."  클링겐탈 (Klingenthal)제 검이 영국제보다 더 좋은지 여부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논란거리였다.  샤프는 머리를 저었다.  "난 이걸로 독일제 칼을 여러개 잡아먹었다네."

 

무기공은 킬킬 웃으며 이빨이 다 빠진 잇몸을 드러내보이고는, 칼날을 따라가며 검사를 했다.  "여기 있습니다, 대위님.  이놈을 잘 돌봐주세요."

 

샤프는 숫돌바퀴대에 동전 몇개를 올려놓고는 서쪽하늘의 마지막 석양빛에 칼날을 들어보았다.  칼날에서는 새로운 번뜩임이 보였다.  그는 칼날을 엄지손가락으로 만져보고는 무기공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클링겐탈제 칼은 이렇게 날카롭게 안될 걸 ?"

 

무기공은 아무말 없이 등 뒤에서 경기병용 군도를 하나 꺼내어 샤프에게 건네주었다.  샤프는 칼집에서 굽은 군도를 꺼내 들었다.  그 검은 마치 샤프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검의 균형이 정말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했고, 붉은 석양빛에 빛나는 칼날은 전혀 무게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는 칼날을 만져보았다.  그 칼날은 프랑스 기병대의 흉갑을 잘라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단도 깔끔하게 자를 것처럼 날카로왔다.

 

"독일제인가 ?"  샤프가 물었다.

 

"예, 대위님. 우리 대령님 거지요."  무기공은 칼날을 다시 받아들었다.  "게다가 이 칼은 아직 날을 갈지 않은 상태랍니다."

 

샤프는 웃었다.  그 군도는 아마 200기니(당시 영국군 소위 연봉의 3배정도, 현재 원화 가치로는 약 7천만원 정도 - 역주)는 나갈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그도 그런 칼을 하나 장만할 것이라고.  죽은 적병의 시체에서 �앗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새겨진 그런 칼을, 그의 키에 맞게, 그의 손아귀에 딱 맞도록 균형이 맞춰진 군도를 하나 장만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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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당시 장교들의 무기나 군복은 모두 장교가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구매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돈많은 장교는 좋은 말과 좋은 군복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까지는 좋습니다만, 무기의 질까지도 장교 개개인의 호주머니 사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좀 그렇지요 ?

 

사실 장교의 무기는 어떤 것이더라도 그 군대의 전투력과는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웰링턴이 소설 속 주인공 샤프에게 망원경을 선물하면서 하는 말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명심하게.  장교의 눈은 장교의 검보다 훨씬 중요하다네."  즉, 요즘도 그렇습니다만 당시도 장교가 최전방에서 칼부림을 하거나 권총을 쏘는 것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삼국지와는 많이 다르지요.  하지만 그 망원경까지도 다 개인 돈으로 사야 했다는 것은 정말 좀 그렇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K1A1 전차장이 자기 사비를 털어서 야간 투시 장치를 장착한다는 이야기네요.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 클링겐탈이라는 곳 이야기입니다.  저 위에서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클링겐탈은 독일의 어느 도시거나 공장 이름처럼 보입니다.  사실 클링겐탈이라는 단어 자체가 독일어지요.  저는 독일어를 모릅니다만, klingen은 칼날, thal은 계곡이라고 하더군요.  무협지로 따지면 "검곡(劍谷)"이네요.

 

하지만 이 클링겐탈은 프랑스 땅입니다.  여기가 그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알사스 지방이거든요.  서정원이 뛰었던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근처에 있다고 합니다.  스트라스부르나 클링겐탈이나, 모두 독일 이름인 것은 맞습니다. 

 

클링겐탈 검의 시작은 루이 15세인가..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군대에 독일제 검이 판을 치자, '자주 국방'의 중요성을 통감했던 프랑스 정부에서 독일인 검 장인들 수십명을 초청하여 대규모 검 워크샵을 만듭니다.  그런데 당시 알사스 로렌 지방은 철과 석탄의 산지였던데다가, 결정적으로 그 지방 주민들은 독일어가 모국어인지라, 이 독일인 검 장인들을 살게 하기에 딱 좋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 위에서 클링겐탈 군도를 보고 독일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분위기가 '칼하면 독일제' 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은데, 사실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편이지요 ?  각종 기계류는 독일제가 최고라고들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랬을까요 ?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중세 초기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월터 C. 스캇 경의 '아이반호'라는, 12세기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 기사 소설의 대표작에는, 로빈 훗도 출연을 합니다.  검은 기사로 신분을 감춘 사자왕 리처드가 로빈 훗과 함께 어떤 귀족의 성을 공격하는데, 로빈 훗이 화살을 날려 성벽 위의 기사의 투구 얼굴 가리개를 맞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그 화살이 투구 안면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자, 로빈 훗이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틀림없이 스페인제 강철이군.  영국제였으면 뚫었을텐데."

 

요즘 스페인제 공산품이 유명하다는 소리는 못들었는데, 당시에는 이야기가 틀렸나보지요 ?  그 이유에 대해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아셨을 것입니다.  예, 당시 스페인에는 아직도 이슬람 세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강철검으로 가장 유명했던 것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담금질 과정에서 칼날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다마스커스의 물결 무늬는 상당히 유명한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의 기술이 스페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당시 스페인의 강철 기술은 상당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 다마스커스 웨이브...)

 

자, 요즘의 검은 어디 것이 가장 유명할까요 ?  일단 요즘은 검을 뭐 쓸 일이 거의 없지요 ?  칼덕후나 조폭 형님들 빼고는요.  하지만 정말 좋은 칼을 써야 하는 분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유명 주방장과 외과 의사 슨상님들이지요.  주방장들께서는 그 스웨덴제인가 독일제인가 하는 무슨 '쌍동이표' 칼이 가장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외과 수술실에서는 정말 일제 메스가 가장 인정받는다고 하더군요.  흠... 약오르지요 ?  저도 약오릅니다.  하지만 이공계 출신은 비전없다고 다들 뇌까리고, 특히 숙련공 알기를 뭣처럼 아는,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를 더 탓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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