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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장 란 특집 (3편) - 사랑과 전쟁의 시작

by nasica-old 2016.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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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나 소년 만화를 보면 열혈남아에게는 반드시 꽃미녀가 1명 이상 따라 붙게 되어 있고, 주인공 열혈남아는 아무리 주변의 유혹이 강해도 그 뜨거운 심장을 청순가련한 그녀에게만 바치지요.  실제로도 그럴까요 ?  역사상 실존하는 열혈남아 중 2번째라면 서러워할 장 란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시지요.


1793년 12월 25일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피레네 산맥 인근 빌롱그(Villelongue)를 탈환한 공으로 소령(chef de brigade, 직역하면 여단장입니다만, 여단장은 장군이고 불어로 général de brigade입니다. 이는 소령 또는 중령 정도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으로 승진한 란은, 군의관으로 명령으로 후방인 항구 도시 페르피냥(Perpignan)으로 휴양을 떠나게 됩니다.  이 곳에서 란은 꽤 번듯한 집을 가지고 있던 메릭(Meric)이라는 은행가의 집에 숙사 배정(billeting)을 받았습니다.  메릭가의 가장인 은행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고, 이 집에는 남은 것이라고는 자존심 밖에 없던 미망인과 그 자식들 밖에 없었습니다.  






(페르피냥 외곽인 바니율스-쉬르-메르입니다.)





(페르피냥 시내의 모습입니다.)




그 집의 마님이신 메릭 부인의 눈에는 지저분한 군복 차림에 말투와 행동도 거칠었던 란이 상대할 가치가 없는 촌뜨기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당시는 아직 혁명이 일어난지 불과 4~5년 밖에 경과되지 않았던 관계로, 농부나 날품팔이 등이 자기들끼리 위원이니 장군이니 하며 서로 추켜 세우는 모습들이 전통적인 귀족들과 부르조아의 눈에는 우습게 보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딸인 무척 활발하고 예쁜 19살짜리 아가씨 하나의 눈에는 어느 날 붕대를 감고 찾아온 이 우락부락하고 거친 상남자가 이야기 속의 기사나 용사 같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장 란은 꽃미남과는 거리가 먼, 작은 눈을 가진 평범한 얼굴의 사내였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24세의 약관의 나이에 스스로의 용기만으로 소령 계급까지 벼락 출세한 청년이었고, 나름 매력적인 사내였습니다.  이 아가씨의 정식 이름은 Jeanne-Josephine-Barbe, 보통 폴레트(Polette)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란도 이 폴레트라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집니다.  최소한 란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정작 란 본인이 정말 폴레트를 열렬히 사랑했는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당시 분위기 상, 열혈남아라면 귀여운 아가씨를 애인으로 두고 있어야 폼이 났는데, 20세 초반이라 다소 철이 좀 덜 들었던 청년이었던 란도 벼락 출세한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장식품을 달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이 아가씨에게 열심히 구애를 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심이 드는 이유는 뭔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폴레트에게는 란이 매력적인 '나쁜 남자'로 보였을지 몰라도, 메릭 부인의 눈에는 무식한 상 퀼로트(sans-culotte)일 뿐이었습니다.  란은 자신이 결코 농부 출신이 아니며 (이건 사실입니다. 란은 결국 염색공 일을 배우다 때려치우고 군에 입대했으니까요) 나름 괜찮은 집안 출신이라고 자신의 배경에 MSG를 좀 지나치게 많이 쳐서 떠벌였습니다.  자신의 무공을 잔뜩 과장해서 늘어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요.  


거짓말과 과장 어느 중간에 위치한 이런 떠벌임은 아가씨를 꼬시려는 젊은이들에게는 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상이 많이 나아서 현역으로 복귀하고 나서의 행동은 다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의 1년 정도 폴레트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  어쩌면 자신의 엉터리 맞춤법과 삐뚤삐뚤한 글씨가 창피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요.  1794년 12월이 되어 피레네 전선이 프랑스군의 완승으로 마무리되면서 할 일이 없어지자, 란은 뻔뻔스럽게도 마치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오듯 다시 폴레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좀더 말끔한 군복을 입고 오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메릭 부인은 란 따위는 성에 차지 않는 사윗감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시대였다면 부르조아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는 결혼이 이루어졌을지 의문이지만, 당시는 혁명 직후 사회 혼란기여서 1795년 3월 15일 란과 폴레트는 나름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메릭 부인과 폴레트의 오빠은 폴레트를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하고 이 결혼식에 불참했습니다.


처가 집에서는 대놓고 박대를 했으므로, 란 부부는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곧 란의 부대로 함께 복귀했습니다.  군 부대에 와이프를 데리고 가는 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군 주둔지에는 병사들과 장교들, 그리고 그 가족들 뿐만 아니라 군에 필요한 식료품이나 자재를 공급하는 많은 상인들이 들락거렸고, 이런 군 병영은 그 자체가 꽤 큼지막한 마을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을에는, 아무리 다른 장교 및 병사들의 부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젊고 멀쑥한 중산층 출신의 부인은 꽤 희소가치가 있는 존재였습니다.  


거기서 작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제 막 20세를 넘은 예쁜 용모의 란 부인은 그 병영의 장교들과 상인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평생 고향인 페르피냥 밖으로는 거의 나가보지 않았던 폴레트는 갑자기 인기가 폭발한 자신의 인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자신에게 과도한 친절과 관심을 베푸는 뭇 남성들과 즐겁게 노닥거렸습니다.  물론 그렇게 노닥거리는 것이 불륜을 뜻하지는 않았고 또 란은 프랑스 대혁명의 인권 선언을 신봉하는 열혈 공화주의자였습니다만, 그런 와이프를 너그럽게 풀어 놓을 정도로 진보적인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몇 주 못가 견디다 못한 란은 가기 싫어하는 폴레트를 처가댁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무식한 상 퀼로트 따위와 결혼을 했다고 대놓고 구박하는 친정집은 폴레트에게 결코 편히 있을 곳이 아니었습니다.  전장에서 또 전공을 세우고 잠시 처가에 들린 란에게 폴레트는 아무 곳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눈칫밥 먹는 것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매달렸지요.  이제 곧 북부 이탈리아 침공 작전에 나서게 될 란은 거친 전투 현장에 도저히 와이프를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럴 때 기댈 곳이라는 고향의 가족 밖에 없었습니다.  란은 결국 폴레트를 렉투르(Lectoure)의 초라한 자기 고향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여기서 폴레트는 (대략 짐작은 했겠지만) 란이 떠벌이던 나름 잘 사는 집안이라던 란 가문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어쨌거나 란은 고향 집에서 폴레트가 시댁 식구들과 단란하게(?) 살도록 배려를 해준 뒤, 이탈리아 방면군으로 떠났습니다.







(렉투르 전경입니다.  뭐 나름 아름답습니다만, 항구 도시 페르피냥에 비하면 확실히 작네요.)



그 이후는 란에게는 정말 폭풍의 나날이었습니다.  나폴레옹과 처음 만나 드디어 인생의 기회를 잡은 것이니까요.  란은 거의 언제나 선두에서 나폴레옹의 롬바르디아 침공 작전을 이끌었습니다.  한번은 이미 두번이나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의 천막에 누워 있다가, 근처에서 들리는 포성을 듣고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일어나 군의관을 뿌리치고 홀로 전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 달려간 곳이 바로 아르콜레 다리의 치열한 전투 현장이었고, 여기서 란은 다시 한번 오스트리아군의 총탄을 얻어 맞고 뻗어 버립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미 란을 눈여겨 보던 나폴레옹은 여기서 란에게 완전히 꽂혀, 파리 총재 정부로 보내는 보고서에서도 란에 대해 칭찬을 늘어 놓았으니까요.


나폴레옹이 파리에 써대는 편지의 반의 반만이라도 란이 폴레트에게 연락을 보냈다면 좋았겠으나, 란은 굉장히 적은 수의 편지만을 집에 보냈습니다.  그나마 편지 내용은 온통 전투 이야기 뿐이었고, 폴레트에 대한 다정한 애정 표현 같은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생사확인이나 하는' 수준이었지요.


란이 롬바르디아에서 역사를 쓰는 동안, 폴레트는 '란이 자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옹색한' 란씨 집안에서 무척 불행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폴레트의 고향인 페르피냥도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었으나 란의 고향인 렉투르는 그야말로 시골이라서, 도시 여자였던 폴레트에게는 그야말로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고상한 부르조아 아가씨였던 폴레트의 행동거지는 시골뜨기 란씨 집안에서는 험담 대상이 될 뿐이었습니다.  란은 가끔씩 오가는 편지를 통해서, 폴레트와 시댁 식구들의 불화를 진정시키려 노력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전장에서 란은 두려운 것이 없었으나, 이런 와이프와 시댁 식구들 간의 싸움은 란이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량 조절 실패인데다 졸리네요... 죄송...  란의 여자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한번 더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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