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케이블 TV에서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또 첫부분을 약간 놓치고 보긴했는데, 저는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습니다만, 이 영화는 밀레니엄 시리즈라고 해서, 밀레니엄이라는 잡지사 소속의 언론인인 미카엘 (Mikael Blomkvist)와 약간 정신병이 있는 듯란 펑크족 해커인 리스베트 (Lisbeth Salander)의 범죄 수사 모험담을 그린 스웨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 스토리 라인 자체도 재미있었습니다만, 흔히 접하기 어려운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길고 끔찍한 겨울, 금발 미녀와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북구의 모범 국가 스웨덴에 대해서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그 모습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우리 와이프가 조지 클루니 다음으로 좋아하는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입니다. 저도 이 양반 좋아합니다. 배역에도 잘 어울린다고 저는 생각했고, 영화도 재미있게 봤는데, 결과적으로 소설 원작의 흥행에 비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범 지역입니다. 국가 전체가 상당히 부유하면서도 빈부격차가 별로 없는데다, 온 국민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복지 천국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좌파들의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나라들은 살인적으로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매우 경쟁력있는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지를 위한 증세를 주장하는 좌파들이 자주 인용하는 모범 사례거든요. 가령 세계에서 4번째로 경쟁력있는 경제 구조를 가진 스웨덴은 2010년 기준으로, 총 GDP의 무려 45.8%를 세금으로 걷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거의 2배 수준입니다. (미국도 우리나라 수준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우파 지식인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나라가 바로 스웨덴입니다. 아무리 부자 나라라고 해도, 역시 그런 복지 천국은 비효율적이고 돈이 너무 많이 들었는지, 스웨덴도 복지를 줄여나가고 또 세금을 줄여나가는 편이거든요. 특히 우파 지식인들이 열광하는 부분이 바로 증여상속세를 없애고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높였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재계가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바로 증여상속세를 없애고, 소득세나 법인세 대신 부가세를 올리는 것이거든요. 좌파들의 이상향인 스웨덴이 바로 그런 식으로 고쳐 나가고 있으니, 우파들이 흐뭇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물론 저도 우리나라가 스웨덴과 같은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그것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 스웨덴은 자타 공인 선진국인데 말입니다.) 다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상황을 오도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봐요. 전에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어떤 경제 신문에서, '북유럽 사회의 실상'인가 하는 제목으로, 우리가 모두 부러워 하는 북유럽 사회가 사실 알고 보면 결함이 많다 하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너무 과다한 세금으로 인해, 국민들이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경제가 활력을 잃는다는 것이지요. 국민들이 돈을 많이 벌어도, 세금과 의료보험, 연금 등 준조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서 허덕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건 사실인 모양이에요.
(지상낙원처럼 보이는 스톡홀름이 실은 중과세에 찌든 사람들이 경제적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곳이라니...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번에 본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리스베트가 미카엘에게 '나 돈 좀 꿔줘요'라고 하니, 그러지 뭐 하며 지갑을 꺼내들던 미카엘에게 리스베트가 '6만 크로나'라고 하니 미카엘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그런 돈은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해커인 리스베트가 '니 계좌에 8만 크로나 있는 거 다 안다 곧 갚겠다' 라고 하니 미카엘이 조금 고민하다가 '그러지 뭐'하면서 꿔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의 성공한 언론인인 미카엘의 계좌에 8만 크로나가 들어있다고 하니 그게 얼마인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지요. 대략 1200만원 정도더군요. 약간 놀랐습니다. 그 나이에 그거 밖에 없나 ?
(알고 보면 빈털털이...??)
동양인들,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은 해외에서 소매치기 등의 범죄 대상 1호입니다. 돈이 많거든요. 그런데, 왜 스웨덴은 부자 나라고 중국과 한국은 개발 도상국 수준의 나라로 인식될까요 ? 제 경우를 보면 당연히 미카엘보다는 돈이 많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만, 미카엘보다는 훨씬 불안불안한 삶을 살고 있고, 또 항상 더 쪼들리게 살고 있습니다. 아마 미카엘은 노후 연금 등의 형태로 노후가 전혀 불안하지 않겠지요. 직장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굶거나 애 학비 걱정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현금이 좀더 많더라고 하더라도, 그건 불안한 노후를 위한 저축에 불과합니다. 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과연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충분한 돈을 모을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늙어 죽을 때까지 충분한 돈'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감이 없습니다. 그렇게 나중에 늙어서 폐지를 주워야 하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가 없고, 항상 경제적 공포에 쫓기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저처럼 이제 바햐흐로 40대 후반에 접어들어, 이제 언제 회사에서 짤려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대가 되면, 그런 공포가 정말 현실적으로 느껴지지요. 제가 요즘 행복하냐고요 ? 글쎄요.
사실 제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불행과 불안감의 근본 원인은 돈입니다. 애정 문제나 가족간의 불화, 건강 등 돈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를 겪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저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마 행복이란 것이 돈에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한, 즉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 그건 동화책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가령 제가 가끔 보는 웹툰 중에 윤서인이라는 분의 만화에서도 그런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별로 좋지 못한 예로 드는데 허락도 없이 퍼오지는 못하겠고... 직접 가서 보세요.)
http://www.toonburi.com/cartoon/0/20140314155736tGY
이 만화의 요지는, 어차피 내가 돈이 있어도, '남보다 많지 않으면 잘 사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
아래 기사를 한번 보시지요. (보시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제가 요약했습니다.)
http://www.dailyfinance.com/2014/03/26/would-americans-be-happier-if-u-s-were-more-like-denmark/
UN의 찬조를 받는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이라는 기관에서 펴낸 2013년 '세계 행복 보고서'라는 자료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행복지수는 부탄처럼 그냥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냐 라는 주관적인 개념으로 측정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1인당 GDP, 평균 수명, 사회 보장 제도, 개인적 자유, 정부 부패지수, 관용 등 다양한 항목의 점수로 매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합니다. 10점 만점에 덴마크는 7.7점을 받았거든요. 가령 미국의 경우는 7.1점을 받아 세계 17위를 기록했고,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곳은 아프리카 토고라고 하네요.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제가 특별히 그 2013년 '세계 행복 보고서'를 구해서 우리나라 순위도 표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총행복지수는 6.276으로서, 세계 41위입니다. 태국이나 우루과이, 수리남보다 낮지만,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는 높습니다.
덴마크의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 CIA World Factbook을 근거로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적은 돈으로 산다 Make Do With Less
사실 덴마크는 생각보다 부자 나라가 아닙니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 (GDP per capita PPP)로 보면 미국의 $52,800에 비해 훨씬 적은 $37,800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34,777로서 세계 26위입니다.
2) 세금을 더 많이 낸다 Pay More Taxes
미국의 경우는 (사회 보장 비용까지 포함해서도) 전체 GDP의 22% 정도만을 세금으로 걷지만, 덴마크는 거의 56%를 걷습니다. 덴마크는 이 부문에서 세계 8위입니다.
3) 저축을 더 많이 한다 Save More
소득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세금을 왕창 뜯기는데도 불구하고, 덴마크의 노후 대비 저축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전체 GDP의 24.1%를 저축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13.5%입니다.
4) 적게 쓴다 Spend Less
당연히 소비는 작아집니다. 덴마크 가정에서 쓰는 돈은 전체 GDP의 49% 정도입니다. 미국의 소비지향적인 경제에서, 가정 소비액은 GDP의 69%입니다.
5) 사람에 투자한다 Invest More in People
그렇게 중과세한 세금으로, 교육과 국민 건강에 투자합니다. 덴마크는 대학까지 무료 교육입니다. 그리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 의료보험 제도가 있습니다. 실제 들어가는 1인당 건강 의료 비용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덴마크 국민의 90%가 건강 의료 제도에 대해 '전적으로 만족'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기대 수명 (life expectancy)은 미국과 비슷하여, 건강 의료 제도의 질적 수준도 미국보다 낮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덴마크에서는 벽돌공과 의사의 급여 수준이 큰 차이 안난다더니... 아마 그래서 의료비가 적게 드는 것일까요 ? 괄호안은 기사 내용이 아닌, 제 사적인 궁금함입니다.)
6) 만족이 열쇠다 Satisfaction Is the Key
덴마크의 행복의 비결은, 벌어들인 소득을 전체 국민에게 만족할 수준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핵심이지요. 소크라테스도 "행복의 비밀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면서 즐기는 것에 있다" 라고 말한 바 있지요.
재계 및 그 후원을 받는 경제 연구소에서는 우리나라가 더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소득세와 같은 직접세를 더 줄이고, 특히 기업 투자 의지를 꺾는 증여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부족한 재원은 세금 혜택을 많이 받는 일반 서민들로부터 더 걷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건희나 일반 서민이나 똑같은 비율로 내는 부가세를 스웨덴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양반들은, 그런 세제 개편이 그렇지 않아도 큰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벌일 것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업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면 경제가 침체되어 결국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지요. 많은 돈을 들여 연구한 결과가 그렇습니다. 그 분들은 덴마크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었길래 저렇게 좋은 분배 시스템을 갖추면서도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해보실 의향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지니 (Gini) 계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숫자가 작을 수록, 그 국가의 빈부 격차가 작다는 것을 뜻합니다. 스웨덴은 24.9로서 매우 낮은 편에 속하고, 덴마크도 28.1로서 낮은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31.1로서 '중위권' 수준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니 계수는 우리나라의 실업률처럼 사실 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느껴집니다.
(태국이 세계 최저의 실업률이고... 우리나라도 3% 정도네요. 믿어지세요 ??)
우리나라 재계의 후원을 받는 연구 단체들이 '우리나라도 증여상속세와 법인세를 내리고 대신 부가세를 올려야 한다, 좌파들의 이상향 스웨덴에서도 그렇게 한다' 라고 주장하지요. 저는 일단 우리나라도 수십년간 그런 중과세와 국가 복지를 통해 빈부 격차를 해소한 뒤에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정도 되는 인구 대국이자 경제 대국이, 항상 내수 시장은 없고 수출 위주의 경제를 위태위태하게 꾸려 나가는 이유는, 대부분의 돈이 기업, 그것도 대기업에 몰려 있고 정작 국민들은 가난하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최저임금을 높이면 다 해결되느냐 ? 규제를 풀어야 직장이 좀더 늘어날 것 아니냐 ? 저는 우리 국민들이 이제는 빨갱이 신드롬에서 좀 벗어나서 부디 그런 세제 개편안에 대해 좀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전에 제가 올린 세월호의 비극 관련 포스팅의 댓글로, 생명나무님이 어느 일본인 기자의 글 주소를 달아주셨는데요, 거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18분, 만원의 통근 전철이 오사카로 가는 길에 커브를 틀지 못하고 아파트에 충돌해,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다. 대학 입학식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여대생들, 아이 4명의 아버지...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학교나 회사로 떠났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부서진 차량 안에서 피해자를 구출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세월호 사고처럼 초조해하면서 구출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을 찾아다닌 날들이 떠오른다.
전철은 23세의 남성 운전기사가 운전했고, 직접 원인은 과속이었다. 운전기사는 과거에도 실수를 잇따라 저질러 재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실수를 연발해 도착 시간 지연을 만회하려고 서둘렀던 것 같았다. 더 이상 실수가 드러나면 운전기사에서 강등될까 봐 두려워했던 것 아닌가 싶다. 운전기사도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정부 사고조사위원회는 그러한 배경을 캤다.
그러나 "미숙한 운전사 한 명 탓이다" 식의 비난은 언론도 일본 사회도 퍼붓지 않았다. 그렇게 힐책하는 유족들이나 생존자, 철도회사 사원은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큰 소리가 아니었다. 초점은 "왜 운전기사는 그런 상황에 몰렸을까?"로 압축됐다.
그것은 아마, 적지 않은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다시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누군가가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사고의 교훈을 재발 방지에 살리길 바란다. 아니면 희생이 쓸모 없게 돼 버린다"고 원했고 사회도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운전기사에게 책임을 돌려 결국 국철에서 분할 민영화된 철도회사나 행정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했던 것이다.
유족들은 단합해서 사고를 일으킨 철도회사와 재발 방지책, 피해자 보상 등을 끈질기게 교섭했다. 철도회사는 승무원의 안전 교육에 힘을 쓰게 됐고 재교육 제도가 징벌적 성격이 너무 강해서 운전기사에게 압박을 준다고 비판 받자 더욱 실천적인 커리큘럼으로 바꿨다. 도착 시간을 중시하는 철도 운행 시간표가 운전기사에게 압박이 된다고 지적 받자 도착 시간도 늦췄다. 정부는 사고 현장을 비롯해 전국의 급커브에 속도를 자동으로 낮추는 안전 장치를 설치했고, 원래 국토교통성 기관이었던 사고조사위원회도 보다 독립성이 높은 '운수안전위원회'로 강화됐다.
모든 일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KBS인가... 필리핀 마닐라 시내를 흐르는 강의 오염이 너무 심해서, 그 개선안을 연구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수질 오염의 주범은 강변에 빈민들이 무허가 판자촌을 잔뜩 짓고 살면서 거기에 온갖 분뇨와 생활 쓰레기를 그대로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강의 수질 오염은 '미개한 국민' 탓이었을까요 ? 그 다큐는 한발 더 나가서, 왜 필리핀 국민들이 그렇게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사는지를 다루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일부 부유층이 농토를 독점하면서 결국 가난한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날품팔이라도 하기 위해 마닐라로 몰려 들면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으로 나옵니다. 결국 일부 부유층의 토지 과점이 마닐라 시내를 흐르는 강의 오염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세월호는 왜 그렇게 위험한 개조를 하고 엉터리 정비를 했으며, 명예심도 사명감도 없고 비상시를 대비한 훈련도 제대로 못받은 일용직 저임금 선원들을 썼을까요 ? 국민이 미개해서일까요 ?
(아래 만쭈리님의 블로그 인용 부분은 야채님의 댓글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추가했습니다. 허락 안받고 인용한 것 만쭈리님은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요즘 즐겨보며 감탄하는 역사 블로그가 있습니다. 댓글에 누가 소개해주신 것을 보고 들어갔다가 한눈에 광팬이 되었지요.
http://blog.naver.com/alsn76 만쭈리님의 '레알뻘짓' 블로그입니다. 제 블로그보다는 백만배 더 뛰어난 블로그입니다. 그 풍부한 내용도 좋지만 베지터와 손오공이 등장하여 질문하고 대답하는 식으로 간단 명료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은 정말 감탄을 불러 일으킵니다. 가끔 나오는 '분노한 유재석' 캐릭터도 정말 재미있고요. 여러분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보니까 조선 시대의 운송 수단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는 도로도 제대로 없어서 수레를 거의 쓰지 못했지요. 대신 삼면이 바다이다 보니, 해상 수송은 상당히 발달한 편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에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세곡을 실어나르는 조운선이었습니다.
그런데, 해안선에 바짝 붙어서 가는 이 조운선에는 난파와 침몰 같은 해상 사고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서해안이 특히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암초도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너무 많았습니다. 거기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더군요.
조운선은 곡식을 운송하는 특성상 당연히 일년 중 짧은 기간 동안에 대량의 수송이 필요했는데, 조정이 가진 배의 숫자는 충분치 않았으므로, 주로 경강상인들에게 그 세곡 수송을 위탁했습니다. 그런데 경강상인들은 자신들이 몰고 가는 조운선을 종종 일부러 침몰시켰다고 합니다.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을까요 ? 여기에는 긴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경상상인들은 그 조운선에 세곡을 싣지 않고, 엉터리 쓰레기같은 것을 실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당한 곳에서 배를 침몰시키고, 그 세곡은 빼돌린 것이지요. 조정에서는 이렇게 침몰한 조운선에 실려있던 세곡 손실에 대해서는 경강상인들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원래 백성들에게 다시 세곡을 더 걷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고혈이 빨려나가 경강상인들에게 간 꼴이지요.
왜 조정에서는 이런 식으로 손실처리를 했을까요 ? 간단합니다. 조정에서 경강상인들에게 세곡 수송 위탁을 줄 때, 그 용역비를 터무니없이 적게 주었기 때문에, 아무리 뻔뻔스러운 조정에서도 세곡 손실에 대한 배상을 경강상인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왜 조정에서는 충분한 용역비를 안 주었을까요 ? 그것도 간단합니다. 재정이 튼튼치 못해 돈이 없었거든요. 재정이 튼튼치 못했던 이유도 알고 보면 단순합니다. 원래 상업을 억제하고 농업 위주의 경제만 추구하다보니 그런 것도 있었으나, 토지를 가진 양반들이 면세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도 그랬습니다.
결국 원인을 찾아나가다 보면, 조선에서 조운선 난파 사고가 많았던 이유는 유교 사상에 입각한 엄격한 신분제 사회,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었던 것입니다.
세월호의 참사 뒤에는 박근혜의 오만함과 국민의 미개성이 있는 것일까요 ? 글쎄요. 일단 뭐가 어떻게 되든 돈만 벌면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 어차피 모두가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원칙대로 살다간 망한다, 일단 돈을 벌고 봐야 한다, 쟤는 우리 편이니 특별히 잘봐줘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원칙은 어겨도 된다 라는 우리 사회의 온갖 추악한 단면이 차곡차곡 쌓여서 발생한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증여상속세가 폐지되고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가 줄어드는 것이 당장은 부유층의 이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당장의 이익만 추구하다가는 사회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만쭈리님의 '레알뻘짓' 블로그에는 목은 이색 선생과 고려의 멸망에 대한 이유도 나오더군요. (울 와이프가 사극 '정도전'을 좋아하는데, 마침 어제 그 드라마에 목은 이색과 정도전의 충돌 장면이 나오더군요.) 원래 정도전이 속한 '신진 사대부'들은 실력은 갖추었고 과거에 급제해서 조정에도 진출했으나,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유는, 녹봉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재정이 튼튼하지 못해서였고, 그 이유는 고려시대 권문세가들이 국가의 토지를 과점하고 있었는데, 세금은 안 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이유로,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은 아예 국가를 리셋하여 토지 소유권을 개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대지주들은 당연히 강력 반발했고, 목은 이색 선생도 대지주였기 때문에 그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목은 이색 선생을 그저 고려 왕조에 충성한 충신, 그러니까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뜻 밖이었습니다.
만약 고려시대의 귀족들이 그 부와 토지를 백성들과 함께 나누었다면 어땠을까요 ? 고려가 망한 것은 왜구나 홍건적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일부 특권층이 독점한 부에 대한 내부 불만 때문이었을까요 ?
모두가 함께 잘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니 지금 하듯이, 우리 애들에게는 일단 우리만 잘살면 된다 그러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맞을까요 ?
오늘 친척을 만났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애가 중학생인데,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명문 중학교를 다닙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애들끼리 교과서나 필기 노트의 도난사고가 종종 일어난다는 거에요. 돈이나 스마트폰은 도난당하는 일이 없답니다. 하도 의아해서 좀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 아이들끼리 성적에 대한 경쟁이 심해서, 경쟁 학생이 공부를 못하도록 시험 기간 전에 그런 책/노트북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는 거에요. 기가 막혔는데, 그 학교 선생님들의 지도 방식을 들으니,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전교에서 30명 따로 추려내어, 이른바 특수반을 조직하여 걔들은 따로 아침에 1시간 먼저 등교하게 하여 특별 수업을 시킨다는데, 이 특수반은 매학기마다 시험 성적에 따라 일부 학생은 탈락하고 일부 학생이 새로 들어가는 것이 반복된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너도 이번에는 특수반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니 ? 원래는 알려주면 안되도록 되어 있지만 사실 너의 전교 석차는 몇등이다' 라고 압력을 준대요.
우리나라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나요 ?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과연 우리나라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놓을까요 ?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살벌한 경쟁 속에서 친구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방법보다, 다 같이 더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 아닐까 싶습니다.
** 제 글의 취지에 동의하신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거나 아래 추천 표시 손가락 눌러시면 감솨요. 저도 제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이 얼마나 계신지 궁금합니다.
** 이번 세월호 사태를 보고 제 와이프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와이프는 원래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다가 이번 사태를 통해 JTBC와 KBS 뉴스를 보고, 또 네이버와 다음의 댓글 성향을 보고 무척이나 놀랐더군요. 공중파 방송의 보도 성향이야 정부의 입김이 안 들어갈 수 없다고 보지만, 네이버 댓글을 보고는 '정말 댓글 알바가 있나 ?' 라고 의심하더군요. 저는 댓글 알바가 일부 있다고 믿어요. 그러나 그 모든 댓글이 다 알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령 제가 '추천 좀 굽신굽신'하면 보통 달리는 추천수가 한 500~1000 정도 거든요. 그런데 이 글에는 약 200개 정도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 사람들 과반수 이상은 진보보다는 보수쪽을 선호한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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