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참극 속에서 무책임하게 승객들을 버리고 도주한 선장과 선원들은 물론 비난과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들을 살인자에 비유하며 비난했지요. 이미 거의 대부분의 선원들이 다 구속된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초짜 선원들에게는 재판 과정에서 정상 참작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총책임자인 선장을 비롯하여 1등 항해사, 기관장 등등 하늘같은 상관과 선배들이 다 모여 있는 위기 상황 한 가운데서, 초짜 선원들은 상관 및 선배들이 하는 대로 아무 생각없이 따라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물론 항해사로서, 또 선원으로서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초짜 선원들이 그런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훈련을 받았는지는 따져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항해사 시험에는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을테니, 그 3등 항해사는 처벌을 피할 길이 없겠네요.)
전에 여러번 언급했던 해양 소설 시리즈인 Hornblower 편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막 작은 슬룹 (sloop) 함의 함장이 된 혼블로워가 선원들을 검열합니다. 이때, 하갑판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지키는 임무를 받은 해병대원에게 전투시 자신의 임무를 말해보라고 하자, "(화약고에서 화약을 가져오기 위해) 빈 화약통을 든 선원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하갑판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것" 이라고 정답을 말합니다. 원래 전투가 벌어지면 겁을 먹고 갑판 아래로 도망쳐 숨으려는 선원들이 꼭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혼블로워가 이런 추가 질문을 합니다. "부상자를 업고 갑판 아래의 의무실로 내려가려는 선원이 있다면 ?"
여기에 대해서는 해병이 머뭇머뭇하다가 결국 답을 못하고 말지요. 그리고 혼블로워 함장 뒤에 서있던 선임 사관인 Mr. 부시가 이에 대해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얼굴이 벌겋게 됩니다. 그런 훈련을 시키는 것은 그의 책임이거든요.
결국 자기의 임무도 제대로 모르는 해병대원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철저히 훈련시키고 조직하지 못한 장교가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국정원 댓글 사건 때도, 과연 국정원 직원들은 '어떤 일이 국내 정치 관여이고, 어떤 일이 대북 심리전의 일환인지의 구분에 대해 명확히 교육은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카투사로 근무할 때, 미군 교육 자료를 보고 정말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가령 비무장 민간인을 쏘라는 등의 불법적인 명령을 받을 경우,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가 하는 점에 대한 교육 자료였는데, 저는 당연히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이니 상관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미군 FM (진짜 Field Manual) 책자에는 명확하게 '상관에게 그 명령의 불법성에 대해 항의하고, 그래도 그 명령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명령에 불복종하라'고 씌여 있더군요. 과연 우리나라 국정원에서는 뭐라고 교육을 시키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외국계 기업의 예를 보면, 그 회사의 일상적인 업무 처리에 있어 어떤 점은 부적절한 행위이므로 해서는 안되는지를 실례를 들어가며 명확하게 매년 반복 교육 합니다. 심지어 '상관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너와 네 상관이 함께 징계받을 뿐,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라는 것을 명확히 교육시킵니다. 그래야 회사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침몰 사고가 벌어질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규정대로 훈련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해운사 경영진의 책임이고, 그런 규정이 제대로 배포되지 않았거나 시행 여부를 감독하지 않았다면 그건 정부가 책임을 질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책임한 정부를 고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국민의 책임이지요.
이번에 "참사를 악용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나설 ‘제2의 5.18폭동’에 대비하라 시체장사 한두번 당해 보나"라는 발언을 한 지만원씨의 처신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양반에 대해 원래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 발언이 유족이나 희생자를 모욕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근혜씨에 대해 '국민들이 알고보니 박근혜가 무능하다라고 평가한다' 라고 언급하여 박근혜씨를 모욕했지요.
지만원씨를 좋게 보게 된 것은, 그 양반의 홈피 이름인 '시스템 클럽'이라는 말의 근원을 설명한 것을 읽어 본 적이 있었는데, 공감하는 바가 컸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내용은 이랬어요.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은행은 줄도 제대로 안서는 사람들 때문에 북새통 난장판이었다. 그걸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서의식이 없는 무지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날 번호표 뽑는 기계가 생기자, 그토록 엉망이던 은행 창구가 아주 질서정연해졌다. 결국 우리에게 없었던 것은 질서의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때, 그 폐허 속에서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선 일본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속으로 감탄도 하고, 또 저런 민족과 경쟁을 해야 한다니 겁도 냈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줄을 서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일본인들은 줄을 서면 결국 정부 또는 사회단체가 생필품을 공급해줄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줄을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정부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줄을 당연히 설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태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판단이 옳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말을 그대로 믿으면 봉변 당하기 딱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참극에서 우리 국민이 미개인이라는 소리도 나오고, 정부 관계자의 여러모로 부적절한 언행도 많이 나와서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는데요, 사실 이번 일을 박근혜씨 보고, 정부 여당보고 책임지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도 우리고, 지금의 여당을 여당으로 만들어 준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 우리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 우리가 이런 참극을 겪고도 고쳐 나가지 않는다면, 그거야 말로 정말 슬픈 일입니다.
** 정부와 방송에서 그야말로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는데... 그 노력을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집중했으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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