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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레미제라블에는 왜 코끼리가 나올까 ?

by nasica-old 2013.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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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는 빅토르 위고의 젊은 시절 모습이 많이 반영된 캐릭터인 것에 비해, 오른쪽의 앙졸라는 빅토르 위고가 순수한 상상으로 빚어낸 먼치킨 캐릭터입니다.  꽃같은 미모에 머리 속에 든 것도 많고 카리스마가 넘쳐나는데다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앙졸라는, 결정적으로 무술까지 뛰어납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저 장면에서 꽃미남 마리우스와 앙졸라 (사실 원작 소설 속에서는 앙졸라가 진정한 카리스마의 꽃미남으로 묘사됩니다) 뒤에 추한 엉덩이를 보이고 있는 코끼리를 주목하신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저 코끼리는 이 장면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꼬마 가브로슈가 기어나오는  곳이기도 하고, 게다가 맨 마지막 피날레 부분에서도 엄청난 크기의 바리케이드와 함께 다시 등장합니다.  그 피날레 합창 부분은 사실 마침내 왕정을 무너뜨린 1848년의 2월 혁명을 나타낸 것인데, 장발장과 팡틴느가 이 바리케이드와 군중들을 내려다보는 곳이 바로 이 코끼리 등의 전망대 위입니다.  파리 한복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코끼리는 대체 왜 자꾸 영화에 나오는 것일까요 ?  이렇게까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코끼리는 뭔가 상징하는 바가 있어 보입니다.




(영화 피날레 장면에서 휴 잭맨과 앤 해써웨이는 건물이 아니라 바로 저 코끼리 위에 서있는 겁니다.   이거 촬영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왔더라구요.  http://www.youtube.com/watch?v=OXIsH8zMOfk  )




(참고로, 저 피날레 합창 장면을 촬영하는 광경을 보니까 상당히 초라해 보이더라구요.  이렇게 영화 속에서 웅장하게 보이는 것은 그래픽 덕분인 모양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코끼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코끼리 모형은 원래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에 나폴레옹이 세우려다 중단된 조형물이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과 함께 민중들의 공격으로 함락된 바스티유 요새는 그후 몇 달에 걸쳐 아예 철거되어 버렸고 그 터는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상당히 넓은 공간에 무엇을 만들면 좋을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했는데, 1793년에는 거기에 이집트 풍의 조각으로 장식된 '재생의 샘'이라는 분수가 만들어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이후, 나폴레옹은 파리 시내의 조경 정리와 장식에 무척이나 공을 들여 많은 건축 공사를 시행했습니다.  이 바스티유 감옥터, 즉 Place de la Bastille 같은 빈터도 당연히 나폴레옹의 관심을 피해가지 못했고, 나폴레옹은 여기에 자신의 전승과 무훈을 기념할, 뭔가 웅장하고 힘에 넘치는 조형물을 원했습니다.  그러다가 1808년에 나폴레옹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거대한 청동 코끼리였습니다.  나폴레옹은 당시의 예술가들이나 지식인들이 흔히 그랬듯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에 관심이 많았는데, 고대의 영웅들이 맞서 싸웠던 전투 코끼리야말로 자신의 정복과 권력을 상징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청동 코끼리는 프러시아 및 오스트리아에게서 노획한 청동 대포들을 녹여 만들 계획이었는데, 높이가 무려 24m로서 대략 8층 건물 높이였고, 계단을 통해 관광객들이 코끼리 등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주변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크기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편에 나왔던 그 괴물 코끼리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나폴레옹이 꿈꾼 청동 코끼리가 정말 완성되었다면 지금도 주요 관광 명소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1798년 나폴레옹을 따라 이집트에도 갔었고, 1803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초대 루브르 박물관 관장으로 임명된 도미니크 비방 (Dominique Vivant)이 코끼리 동상의 초기 작업을 지휘했었는데, 이 청동 코끼리 설치를 위한 기초 공사가 완성된 것은 나폴레옹의 초기 구상이 나온지 4년 뒤인 1812년이 되어서였습니다.   건축가인 알보인 (Jean-Antoine Alavoine)이 구체적인 코끼리 상의 설계를 맡았는데, 그는 그 실제 제작을 촉진시키기 위해 나중에 완성될 청동 코끼리의 석고상을 실제 크기로 미리 만들었습니다.   목재로 뼈대를 만들고 비바람에 강한 석고를 발라서 외피를 만들었는데, 워낙 큰 구조물이다보니 이렇게 석고 모형을 만드는데만도 2년이나 걸려, 1814년이 되어서야 겨우 석고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분이 저 석고 코끼리의 제작자인 알보인 씨입니다.)



하지만 제 블로그에 출입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1814년이면 이미 나폴레옹의 몰락이 명약관화해진 뒤였습니다.  당연히 청동 코끼리 상의 건설 계획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프로젝트가 되었고, 불쌍한 석고 코끼리 상도 방치되었습니다.  실은 이 코끼리 상 뿐만이 아니라 바스티유 감옥터 자체가 방치되었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도 이 코끼리 상 근처에 넓은 공터에 빈민들이 움막같은 것을 아무렇게나 짓고 사는 모습이 나온 것입니다.

이 코끼리는 돌보는 사람이 없다보니 점차 석고가 벗겨지면서 나무 골격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흉물스러운 모습은 그야말로 처치곤란 그 자체였습니다.  이 석고상의 제작자인 알보인은 이 코끼리 동상의 실물 제작에 애착을 갖고 1833년까지도 청동제 진짜 코끼리상의 제작비 모금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1834년 그가 사망하면서 정말 아무도 이 코끼리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이 코끼리 흉물의 철거에 대한 청원은 182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주된 이유는 그 흉물스러운 모습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코끼리 내부에 쥐떼가 번식한다는 주변 주민들의 불평이었습니다.  이 주변 주민들의 청원은 마침내 1846년에 결실을 맺어 마침내 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동네에 이런 흉물이 서있으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말입니다 !!)



사실 이 코끼리 석고상은 나폴레옹의 헛된 야심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아마도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 이 코끼리 석고상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당해서 쓰지 않았다면 당시 이런 코끼리 석고상이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 이 코끼리 석고상의 남루함에 대해 통렬하게 언급함으로써, 이 허름한 코끼리는 인류의 역사에 그야말로 불멸의 기억을 남기게 되었지요.  그런데 왜 빅토르 위고는 굳이 이 코끼리를 언급했을까요 ?  저는 아마도 나폴레옹 3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853년의 빅토르 위고입니다.  수염이 없으니까 우습게 보인다고요 ?  위고는 1822년 불과 20세의 나이에 첫 시집을 냈고, 이 시집으로 인해 그 약관의 나이에 루이 18세로부터 연금을 받는 위엄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원래 빅토르 위고는 1830년 7월 혁명에 의해 성립된 7월 왕조 (오를레앙 왕조)를 지지하는 입헌 군주제 지지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앙졸라 및 'ABC의 친구들'이 타도하고자 했던 루이 필립(Louis Philippe I)의 지지자로서, 빅토르 위고 자신은 앙졸라의 적이었던 셈입니다.  위고는 1841년에는 루이 필립에 의해 귀족 작위까지 받을 정도였습니다.  상당히 뜻 밖이지요 ? 



(친구들, 알고 보니 우리를 창조한 위고라는 영감이 우리의 적이었다는구만 ???)



그러나 그는 40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공화주의자가 되었습니다.  흔히들 젊어서 좌파가 아닌 자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고, 나이 들어서도 좌파인 자는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빅토르 위고의 경우를 봐도 그건 다 개소리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대학 다닐 때는 고딩 때 읽었던 헤로도투스와 투키디데스, 플루타르크 등으로 인해서 보수파였다가,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진보파로 돌아섰거든요.




(빅토르 위고와 에밀 드 지라르댕(Emile de Girardin)이 고대 로마에서 영웅에게 해주듯 루이 왕자를 떠받들고 있지만 별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  라고 되어 있는 1848년 12월의 잡지 삽화입니다.  여기서의 저 루이 왕자가 바로 훗날의 나폴레옹 3세입니다.  이 루이 왕자는 이 1848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75%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지요.)



빅토르 위고는 원래 젊어서 나폴레옹을 우러러보는 Bonapartist였고, 그 모습은 레미제라블 속의 마리우스에게도 투영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완성된 1862년에 빅토르 위고는 영국령 건지 (Guernsey, 프랑스 식으로는 게른제) 섬에서 객지 생활을 하고 있던 정치적 망명객이었습니다.  그는 1851년 나폴레옹 3세, 즉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당시 프랑스 제2 공화국의 대통령이던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자 그를 '프랑스의 배신자'라고 부르고 망명을 택했던 것입니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에 의한 쿠데타로 제2 공화국 전복 !!  당시 제2 공화국의 대통령은 바로 루이 나폴레옹 자신 !!)



사실 당시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 및 제2 제국 선포는 혼란스러운 프랑스 정국에 질서를 안겨주는 것일 수도 있었고, 특히 더 이상의 혼란이 지겨웠던 국민들이 국민 투표에서 무려 710만표 대 60만표 차이로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 집권에 대해 찬성표를 던질 정도로 국민적 지지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이상에 반하는 이런 폭거에 대해 위고는 타협하지 않고 망명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위고가 부인과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불륜 관계였던 정부 줄리엣까지 데리고 간 것은 에러...)   위고가 마침내 프랑스로 돌아온 것은 거의 20년이 지나,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보불 전쟁에서 패배하여 비스마르크의 포로가 된 뒤였습니다.  아마도 굳이 레미제라블 속에 저 초라한 코끼리 석고상을 등장시킨 것은 나폴레옹의 후광을 업고 즉위한 나폴레옹 3세에 대한 조롱이었는지도 모르지요.


 


(4명의 나폴레옹입니다.  맨 위의 인물이야 잘 아실 것이고, 왼쪽 위의 청년이 나폴레옹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이자 라이슈타트 공작입니다.  오른쪽 아래의 수염 아저씨가 나폴레옹 3세이고, 저 맨 아래 치마를 입고 있는 꼬마가 바로 그의 아들이자 Napoléon Eugène Louis Jean Joseph, 즉 왕위에 오르지 못한 황태자 나폴레옹입니다.  이 황태자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3세의 폐위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여 거기서 영국군 장교가 되는데, 불행히도 남아프리카 줄루 전쟁에 참전했다가 줄루족의 습격을 받고 창에 찔려 죽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나폴레옹 직계가 모두 끊겼기 때문에, 그의 뜻하지 않은 전사는 당시 유럽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 짐작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빅토르 위고가 굳이 이 코끼리를 등장시킨 것은 아래 장면을 쓰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삽화가 바로 레미제라블 초판에 실린 에밀 바야르의 진짜 가브로슈입니다.)



(가브로슈는 1832년 2월 어느 춥고 비오는 날, 여자용 숄을 뒤집어 쓴 채 어느 이발소 앞에서 망을 보며 비누를 훔칠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브로슈도 배가 고픈 참인지라, 비누를 훔쳐 팔아서 빵을 살 작정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이 이발소 주인이 6살과 4살 짜리인 두 거지 소년을 거칠게 쫓아내는 광경을 봅니다.  사실 가브로슈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 꼬마들은 사실 가브로슈의 친동생들입니다.  아무튼 가브로슈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에, 이 생면부지의 꼬마들을 데리고 빵집으로 데려가 호주머니를 톡톡 털어 빵조각을 하나 사서 3등분 한 뒤, 자기가 작은 조각을 먹고 큰 조각 2개를 이 꼬마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가브로슈는 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느 14살 정도의 소녀가 누더기를 걸치고 길 옆에 앉아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는 호기있게 걸치고 있던 숄을 벗어 던져 줍니다.   가브로슈는 이 두 꼬마를 자신의 은신처인 코끼리 뱃속에 데려 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쥐떼들이 움직이는 것을 듣고 작은 꼬마가 겁을 내자, 가브로슈는 이 꼬마에게 욕을 하면서도 꼭 안아주어 잠을 재웁니다.)

밤이 깊어 갔다.  어둠이 바스티유의 넓디넓은 광장을 덮고 있었고, 빗방울이 섞인 겨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경관들이 밤의 불량배들을 찾아 거리와 골목길, 그리고 으슥한 구석을 뒤지며 코끼리 앞을 지나가곤 했다.  이 괴물은 가만히 서서 어둠 속에 눈을 뜬 채, 마치 자신의 선행에 만족한 것처럼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서는, 잠들어 있는 이 가련한 세 아이들을 하늘과 인간들로부터 지켜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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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브로슈의 노래 소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주문해서 받아본 OST 속에는 이 친구의 How do you do, my name is Gavroch 하는 그 부분이 수록되어 있지 않더군요 !!!  하긴 진짜 가브로슈는 굶기를 밥먹듯 하는 친구인데 이 소년은 너무 건강해 보이는 것이 좀 에러이긴 했어요.  그건 에포닌도 마찬가지이지요 ㅋ)



저는 신앙심이 없는 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매주 교회를 나갑니다.  때때로 드는 생각이, 저 꼬마 가브로슈는 과연 천국에 갔을까 지옥에 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가브로슈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도 않았고, 십일조는 커녕 일요일에 교회를 간 적도 없고, 또 도둑질 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밥먹듯이 어긴 악당입니다.   그 점을 상기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서 영겁의 세월을 불지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어야 합니다.    흔히 교회에서 하는 말은 "아무리 착한 일을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  예수를 믿지 않더라도 착한 일을 함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며 그 생각 자체가 죄다" 라고 하지요.   그래서 결국 가브로슈가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면 이건 뭔가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12세기의 지옥 상상도입니다.  뮤지컬 영화에서 자베르가 부르는 Stars라는 노래에서도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이들에게는 불과 검이 있을 뿐 !' 이라는 가사가 나오지요.  지옥이든 북괴 공산당이든, 무엇인가에 대한 공포가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긴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29절 ~ 37절 (아가페 출판사 쉬운 성경) --------------------------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이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은 채로 버려 두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을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길 반대편으로 피해서 지나갔다.
어떤 레위인도 그 곳에 와서 그 사람을 보고는 길 반대편으로 피해서 지나갔다.
이번에는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 길을 여행하다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의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붕대로 감쌌다. 그리고 그를 자기의 짐승에 태우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
다음 날, 그는 은화 두 개를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을 잘 보살펴 주세요. 만일 돈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겠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들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율법학자가 대답했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똑같이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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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들은 순혈 유대인이 아니였고, 종교적으로 당시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이단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저 성경 구절에 나온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심술장이라서 부상당한 사람을 보고도 그냥 가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유대인들에게 시신은 매우 부정한 것으로서, 특히 제사장이나 레위인같은 성직자 계급은 절대 시신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하더군요.  즉, 저 위 이야기에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비양심적인 사람이라서 부상자를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은 혹시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 근처에 가서는 안되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만져보았더니, 죽은 시체더라 하면, 그 제사장은 그 날로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기'를 읽어보면, 로마군의 도움으로 라이벌 제사장을 사로잡은 유대인 하나가, 직접 그 라이벌의 귀를 물어 뜯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귀를 망가뜨려 놓으면, 설령 나중에 자기가 권력을 잃는다고 해도, 그 라이벌은 신체가 완전하지 않으므로 다시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저 위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예수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웃이라는 사람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이민족이라 교리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인도주의적인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바로 너의 이웃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가브로슈는 지옥에 갔을까요, 천국에 갔을까요 ?  판단은 여러분이 하시기 바랍니다.



 


(프랑스 혁명 이야기에는 꼭 이 브리오슈가 나오는 것이 참 희한합니다.  과연 혁명의 과자라고 할 만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혁명의 과자 브리오슈 http://blog.daum.net/nasica/5328379  참조)



아, 한가지 더.  가브로슈는 아시다시피 1832년 6월 파리 봉기 사건에서 피살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두 꼬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뒤에 어떤 중산층 신사와 그의 아들이 공원에서 백조들에게 던져준, 연못물에 젖은 브리오슈 빵을 나누어 먹는 장면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그 후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약간 뜻 밖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17년간 쓰면서 모든 갈등과 떡밥에 대해 일일이 매듭을 지어 놓았습니다.  가령 코제트의 출생 증명서는 어떻게 만들어 냈고, 또 코제트의 결혼식 문서에 장발장이 서명하게 되면 그 혼인 문서 자체가 불법이 되어 버리니까, 장발장이 일부러 결혼식 전날 오른손을 다쳤다고 핑계를 대고 마리우스의 할아버지인 질노르망씨가 대신 서명을 하게 하는 장면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테나르디에의 와이프는 감옥에서 죽었고, 테나르디에는 죽은 에포닌의 여동생인 아젤마와 함께 마리우스에게 받은 돈으로 미국에 가서 노예 상인이 되는 것까지 다 해설을 해놓았습니다.  그런 빅토르 위고가 이 두 고아 꼬마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을 안하고 소설을 끝낸 것에 대해서는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 망나니 부부도 원작 소설 속에서는 나름 고초가 심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테나르디에 일당이 장발장을 함정에 끌여들여서 습격할 때, 이들 부부는 다 자베르에게 잡혀 갑니다.  남편은 나중에 탈옥하지만, 부인은 결국 감옥 안에서 죽지요.)



그러나 이런 해석도 있더군요.  빅토르 위고는 자기가 쓴 이 소설을 읽을 많은 중산층들에게, 지금도 그 두 꼬마들이 추운 겨울날 저 거리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주기를 바랬다고요.  여러분도 사실 잘 아실 겁니다.  세상은 그런 꼬마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종교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예수도 그렇게 말했지요.  심판의 날, 자신을 모른 척 했기 때문에 벌을 받을 사람들이 '주여 제가 언제 주를 모른 척 했나이까' 라고 물을 때 그들이 들을 대답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려운 이웃들, 굶주린 이웃들, 감옥에 갇힌 이웃들을 모른 척 했던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모른 척 한 것'이라고요.  그 말을 생각하면, 저도 아무래도 천국에 못 갈 것 같습니다...  보편적 복지가 되고 정치범도 없는 스웨덴이나 덴마크 사람들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걸까요 ?  참 골치가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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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고 마음에 드셨으면 추천 눌러 주시면 감솨요.... 라고 덧붙이려고 다시 열어보니 어느 분이 먼저 찍어주셨네요.  시간으로 봐서 아마 읽지도 않고 그냥 찍어주신 것 같아서 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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