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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나폴레옹의 수송 엔진 - 말 이야기

by nasica-old 2010.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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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재난 영화의 고전을 아십니까 ?  2006년도에 리메이크된 것 말고, 1972년도에 진 해크먼이 주연했던 진짜 '포세이돈 어드벤처' 말입니다.  'The Morning After'라는 제목의 주제가도 아주 좋았습니다.





여기에 나온 인물 중, 이 거대한 여객선의 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꼬마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대사가 있는데,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배의 엔진들은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에 사용했던 군마들보다도 더 강한 힘을 낸대요."


그 대사를 듣고, 어린 나이에도 대체 나폴레옹은 유럽 정복에 몇마리의 말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과연 몇마리나 썼을까요 ?  정답은, 항상 그렇지만, 저도 모릅니다.  영화에 나왔던 포세이돈 호는 아니지만, 더 유명한 실제 여객선이었던 타이타닉 호의 출력은 대략 5만 마력이었다고 하네요.  나폴레옹이 워털루에 끌고 나갔던 말의 숫자도 대략 이 정도였으니까, 저 꼬마가 말한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에 사용했던 군마들'은 아마도 워털루 전투 때에 동원된 말의 숫자였던 것 같습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주연인줄 알고 출연했다가 도중 하차하는 조연임을 알게 된 영국군 스캇츠 그레이 연대)



군대의 강약을 따질 때, 흔히 병력이나 탱크, 전투기 등의 숫자는 따지지만, 수송용 트럭이나 수송기의 숫자는 따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송 능력이 없는 군대는 국지 방어전 외에는 거의 쓸 모가 없습니다.  요새화된 지역을 방어만 하려 해도, 많은 보급품이 필요하니까, 수송 능력이 없는 군대는 생존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이야 트럭이나 기차, 수송기를 이용하지만, 나폴레옹의 수송 엔진은 바로 말이었습니다.  말, 그리고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해서 식량과 탄약을 나르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대포를 끌었지요.  물론 이런 '볼품 없는' 임무 외에도, 말은 간지의 상징인 기병대의 엔진 노릇도 했지요.



(말과 대포와 포가는 한몸을 이루어 자주포를 구성합니다)



사실 말에 주요 수송 능력을 의존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선 바로 뒤쪽까지는 현대화된 증기 기관차가 병력과 화물, 대포를 수송했지만, 철길이 끝나는 종착역부터 최전선까지의 먼 길은, 병사들과 말의 다리에 의존하여 이동해야 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 제3제국 즈음의 독일군 포병대.  나폴레옹 시대와 거의 다름없이 말이 끌었습니다.)



심지어는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이 전통은 이어집니다.  DC 인사이드에서 읽은 이야기로는, 독일 패망 이후 취조 과정에서, 괴링에게 '왜 독일이 독가스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묻자, 그 대답이 '말 때문이었다'라고 합니다.  즉 독가스를 살포하면 말들도 죽을텐데, 독일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자동차가 그다지 많지 않아 수송을 말에 많이 의존했으므로, 말 없이는 전쟁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1차 세계대전 때부터도, 사실 사람용 뿐만 아니라 말을 위한 방독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은 항상 중요 전쟁 자원이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명작 역사 소설 '삼총사'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즉 달타냥과 삼총사가, 프랑스 왕비를 위해 그 애인인 영국의 버킹엄 공작을 도와주게 되는데, 그 답례로 버킹엄 공작이 돈을 주려 하자 삼총사는 '적국인 영국의 귀족에게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며 거절합니다.  그러자 버킹엄이 대신 값비싼 말들을 한마리 씩 선물하며, '말은 전쟁 무기'이니 괜찮다며 받으라고 권하고, 삼총사도 그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말은 칼이나 총, 대포 못지 않게 중요한 전쟁 무기이지요.


그래서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독일이나 프랑스나 모두 말의 소유주는 정기적으로 말을 어떤 종류로 몇마리 소유했는지 등록해야 했고, 군에서는 이 말이 어디에 있는지 항상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에서도 4륜 구동차는 모두 군에 등록을 해서 유사시 즉시 징발할 수 있도록 했던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대신 자동차세가 쌌던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순식간에 독일은 70여만 마리, 오스트리아는 60여만 마리, 러시아는 100여만 마리를 징발할 수 있었고, 가장 육군 규모가 작았던 영국조차도 16만 마리 정도를 징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병사들과 말의 비율은 대략 3대1, 그러니까 병사 3명당 말 1필 씩이 징발되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시대나 제1차 세계대전 때나, 중포는 12마리의 말이 끌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규모는 어땠을까요 ?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병력은 7만 정도였습니다.  그때 프랑스 군이 보유했던 말의 숫자는 저 위에 언급한 대로, 약 4만7천 정도였습니다.  2만5천이 기병대 소속이었고, 1만2천이 포병대에서 대포와 탄약을 끌었으며, 1만마리 정도가 보병대 및 수송대에서 짐마차를 끌었습니다.  기병대 소속이라고 모두 긴 다리의 전투마는 아니었고, 상당수는 기병대 소속의 짐마차를 끄는 수송용 말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7만명이라는 나폴레옹군에서, 기병대 소속의 병사는 겨우 1만4천명에 불과했거든요.  포병대는 약 7천명이었습니다.


아무튼 기병대와 포병대를 제외하면, 약 4만9천명의 보병을 지원하기 위해 1만 마리의 말이 있었던 셈입니다.  대략 보병 5명에게 필요한 보급품을 1마리의 말이 수송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꼭 다리 길고 잘 빠진 기병대용 말만 군마는 아닙니다.)



포병대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  저 7천명의 포병들이 약 1만2천마리의 말과 함께 다루어야 했던 대포의 수는 얼마 정도였을 것 같습니까 ?  당시 나폴레옹은 대략 250문의 대포를 워털루에 끌고 갔습니다.  대포 1문당 무려 28명의 병사와 48마리의 말이 필요했던 셈입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포병 ( http://blog.daum.net/nasica/4973554 ) 편에서 1개 포대 (battery)에는 6문의 대포, 172명의 포수 및 164마리의 말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대략 1문의 대포에 28명의 병사와 27마리의 말이 필요한 셈이었습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포병대에 이보다 높은 비율의 말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더 구경이 큰 중포가 많았거나, 혹은 일반 포병이 아닌, 포병 모두가 말에 올라타서 이동했던 기마 포병대의 비율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 정도의 대포에는 6마리가 1조입니다.)



중간 정도의 크기라고 할 수 있는 8 파운드 포 1문을 끌기 위해서 보통 6마리의 말이 2열 종대로 1팀을 이루었습니다.  간혹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8마리로 1팀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중포인 12 파운드 포인 경우, 12마리의 말이 1팀을 이루어 끌었습니다.  탄약차는 4마리가 1팀을 이루었지요. 


아마도 단순히 가용한 말이 더 많아서 그냥 예비마로 데려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은 많은 보급품을 필요로 하는 존재거든요.  흔히 말은 실컷 타고 난 뒤에 들에 풀어놓으면 알아서 풀을 뜯어먹고 배를 채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들판에 나가면 말이 풀을 뜯을 만한 목초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을 위해서도 많은 양의 사료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런 아름답고 풍족한 목초지는, 요즘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전쟁터에서도 흔한 광경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도 하실 겁니다.  "말이 수송 수단이니까, 자기가 먹을 건 자기가 싣고 다니면 안되나 ?"


실제로 그러기도 했습니다.  보급 없이 한동안 작전을 해야 했던 기병대는 말 안장 뒤에 건초더미를 한다발씩 붙들어 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말 한마리가 하루에 어느 정도의 건초를 먹어야 하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  찾아보니, 말의 크기에 따라 차이는 나겠습니다만, 대략 10kg 정도를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10kg의 건초면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가 일단 큰 문제겠지요.  또 대개 추가로 곡물도 좀 먹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진짜 좋은 말은 풀보다는 곡물을 먹여 키웠다고 합니다.  풀만 먹고 자란 말과, 곡물을 먹여 키운 말은 스피드가 확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10kg 정도면 부피가 어느 정도일까요 ?  잘 가늠이 안되네요.)



가령 아직도 말이 제 1의 수송 수단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나 프랑스나, 열차를 통해 전선으로 보낸 각종 군수품 중에서 부피로 따지면 가장 많은 단일 품목은 포탄도 아니고 식량도 아닌, 건초였습니다.  모두 말을 위한 것이었지요.  특히 기병 사단의 경우에는 그 병력 수가 보병 사단의 1/3에 불과했지만, 필요한 보급품의 분량은 거의 같은 수준일 정도였습니다. 


전쟁에는 많은 수의 말이 동원되었고, 또 이렇게 많은 수의 말이 엄청난 양의 건초와 곡물을 먹어댔으므로, 전쟁이 발발하면 말 사료의 가격이 껑충 뛰기 마련이었습니다.  영국의 기차와 철도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에 특히 그 기술 발전이 크게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말 사료 가격의 급등 때문이었다고 하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군대에서 사용된 말이 철도 기술 발전에도 이바지한 셈입니다.




(1812년 영국에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증기 기관차인 살라망카 호(Salamanca)가 등장합니다.  그 이름은 아마도 그 해에 있었던, 웰링턴 공작의 살라망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이러다보니 기병대가 그 특장점인 기동력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습니다.  즉, 보급 마차 속도에 기병대의 행군 속도를 맞춰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던 것입니다.  전에 나폴레옹은 보급품 수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량의 '현지 조달'(라고 쓰고 약탈이라고 읽지요)에 의지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가장 큰 낭패를 당했던 곳이 바로 러시아였지요.  실은 사람보다도 말이 더 큰 희생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즉, 폴란드와 러시아의 경계선인 네만 강을 건넌지 불과 1달 동안 무려 1만 마리가 죽어 넘어진 것입니다. 제대로 된 건초나 사료를 먹지 못한 군마들이, 독초가 섞인 러시아 벌판의 풀을 뜯어먹고 병에 걸리거나, 그나마 아무 풀도 먹지 못해 굶었던 것이지요.


엄청난 희생이라고 했지만, 사실 군마들의 희생은 항상 어디에서나 병사들의 희생보다는 더 컸습니다.  일반적으로 원정을 하나 치루고나면, 병사들의 희생은 승패에 따라 약 10~30% 정도였지만, 말의 희생은 40% 정도였습니다.  러시아 원정의 경우 돌아오지 못한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프랑스, 폴란드, 독일 다 합쳐서 약 50여만 명이었다고 집계되는데,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숫자, 즉 20여만 마리의 말도 함께 죽었습니다.




(러시아 원정길에서, 사람은 그래도 꽤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 돌아온 말은 거의 없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가혹한 조건으로 그야말로 '죽도록' 부려먹으니 정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사실 말이 짐승이라고 병이나 피로에 강할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극한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서, 말은 사람보다도 더 연약한 존재입니다.  특히 말의 생명은 발굽과 다리인데, 편자를 주기적으로 갈아주는 등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강행군에 내몰리면, 사람 발에 물집 잡히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손상이 말발굽에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악화되어 말이 다리를 절게 되면, '뛰지 못하는 말은 쓸 모가 없으므로'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장교들이 전투 중의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기 위해 가장 즐겨썼던 표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Had my horse killed under me' 였습니다.  즉, 말을 타고 싸우다 자기가 탄 말이 총이나 대포에 맞아 죽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자신을 던졌다는 이야기지요.  나폴레옹만 하더라도, 이렇게 나폴레옹을 태우고 전장을 누비다 죽은 말이 10여마리 된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자신이 입은 부상 중 가장 심했던 것은 엄지발가락에 총알을 맞은 것이었지요, 아마 ?  (이런 걸 보면 정말 영웅을 위한 천운이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흔히 장군 하나가 훈장을 받기 위해 수백 수천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말들도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군인은 월급이라도 받지만, 말은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



이렇게 많이 죽어나간 말은 얼마나 비싼 존재였을까요 ?  요즘처럼 말이 귀한 시대에는, 유명 경주마같은 경우 몇억, 몇십억씩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요즘 자동차처럼 말이 흔했던 시절에는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왠만큼 좋은 말이 약 100파운드, 현재 우리나라 원화로는 약 2천3백만원 정도였습니다.  정말 요즘 왠만한 중형 자동차 가격이지요 ?


나폴레옹 전쟁 중 가장 유명했던 말 이야기로 이번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지요.  나폴레옹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나폴레옹이듯, 가장 유명한 말은 그의 애마인 '마렝고'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출신의 가난한 몰락 귀족 출신인지라, 어릴 때부터 말타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황제가 된 다음에도 말을 폼나게 타지는 못했고, 그 때문에 항상 좀 작고 유순한, 잘 훈련된 말만을 탔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말 품종은 아라비아 산으로서, 나폴레옹 개인이 약 80마리를 소유했었는데, 그 중 가장 아끼는 말은 '마렝고'라는 이름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얻은 말로서, 프랑스에 데려와서 이탈리아 북부의 전역에서 계속 탔으며, 그때의 마렝고 전투 이후 마렝고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주요 전투에서는 이 말만을 계속 탔는데, 아우스테를리츠나 심지어 워털루 전투에서도 이 말을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별로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입니다.)  확실한 것은 워털루 이후,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탔다고 알려진 '마렝고'라는 말을 영국군이 영국으로 가져와 전시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1831년에 죽었는데, 그 골격은 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1868년에 나폴레옹 3세에게 선물로 반환되었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마렝고... N자 낙인이 찍힌 그 말가죽은 분실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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