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폴레옹의 시대

나폴레옹, 냄새와의 전쟁을 벌이다

by nasica-old 2009. 11. 14.
반응형

예전에 '타이판'이라는 영화가 TV에서 방송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아편 전쟁이 끝나고 홍콩이 조차되었던 시절, 당시 홍콩에서 무역일을 하던 어떤 영국 상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저는 처음 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지요.



(주인공 브라이언 브라운 옆의 중국 여자는 트윈픽스에 나왔던 조안 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첫부분에 저를 경악하게 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주인공의 10대 후반 정도되는 아들이 영국에서 막 도착을 하자 주인공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얘야, 너도 이제 여기 중국 사람들처럼 매일 목욕을 하도록 해라."

"목욕이요 ?  리버풀 떠나기 전에 했었는데요 ?"

"그리고 옷도 좀 빨아 입도록 해라."

"옷을 빨아요 ?  그럼 옷이 다 망가진다고요 !"


세상에, 리버풀을 떠나기 전에 했다니 !  이 부자간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 아들 몸에서 났을 악취가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 


그러고보니 제가 예전에 어떤 포르투갈 여자와 일을 한달 정도 같이 했던 경우가 기억이 납니다.  이 여자는 영국에 유학을 갔었는데, 영국인들이 샤워를 별로 안하더랍니다.  샤워를 매일 한다고 하면 '물 낭비가 심하군'이라면서 오히려 핀잔을 주더라는 것이지요.  (저는 그 말 안 믿었습니다.  제가 몇명 만나본 영국인들은 냄새가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최소한 19세기 당시 영국인들은 별로 청결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영국인들만 욕할 일은 아닙니다.   나폴레옹의 치수 (治水) 이야기 ( http://blog.daum.net/nasica/6862404 참조) 에서 이야기되었던 것처럼, 당시 프랑스인들도 목욕을 자주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잦은 목욕은 사치와 방종으로 여겨졌습니다. 




(훗, 날 더러운 앵글로색슨 놈들과 비교하진 말아줘)



하지만 나폴레옹은 목욕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이건 나폴레옹을 사랑하는 역사 학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폴레옹이 유난히 깔끔을 떨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나폴레옹의 피부염과 상관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젊은 시절부터 신경성 피부염을 앓고 있어서, 가려움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가능하다면 매일, 좀 너무 뜨겁다 싶을 정도의 목욕물을 담은 목욕통 안에 들어가 장시간 목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인(이집트에서 데려온 마멜룩 노예인 루스탕)에게 거친 솔로 자신의 등짝이나 가슴을 벅벅 문지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인이 조심스레 솔질을 하면 '좀더 세게, 당나귀 털 문지르듯이 빡빡 !' 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 피부염인지, 나폴레옹은 목욕을 거의 할 수 없는 야전에서도, 최소한 속옷은 자주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2번씩 갈아입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겉옷은 어땠을까요 ?


나폴레옹의 겉옷 세탁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습니다.  정말 저 '타이판'이라는 영화에 나온 그 아들내미 말마따나, 옷을 빨면 옷이 망가지기 때문에 옷 세탁을 안했을까요 ?


실제로 당시 유럽인들의 겉옷은 주로 모직물이었으므로, 물로 빨면 쭈글쭈글해지거나 보풀이 잔뜩 생기는 등, 망가지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세탁소에 드라이 클리닝을 맡길 수도 없었습니다.  최초의 드라이 클리닝은 19세기 중반 장 밥티스 졸리((Jean Baptiste Jolly)라는 프랑스의 염색업자가 우연히 발명하게 되었거든요.  결국 당시 유럽인들은 겉옷은 거의 세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솔질로 먼지를 털어내고, 얼룩이 묻은 것을 해당 부분에 대해서만 '지르잡기' 정도로 제거하고, 다림질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특히 다림질은 중요했습니다.  뜨거운 다리미로 옷을 다리는 것은 옷 솔기 등에 숨어있는 이를 죽이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멋은 있습니다만, 그 옷 마지막으로 빠신 것이 언제쯤...?)



냄새는 어떻게 하냐고요 ?  글쎄요, 사실 겉옷에는 땀냄새나 뭐 그런 것이 그렇게까지 안 배는 것이 사실이니까, 어차피 목욕도 제대로 안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뭐 그런 정도의 냄새에 해서는 별로 놀라거나 할 일은 아닙니다.  최소한 면이나 리넨 등으로 된 속옷은 물빨래가 가능했으니까요.  하지만 물빨래조차도 어려운 환경이었던 당시의 선박들에서 나는 냄새는 가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특히 상선에 비해 더 많은 수의 해병과 수병들이 좁은 선실에서 득실거렸던 군함에서는 끔찍했을 것입니다. 


당시 군함들은 매일같이 갑판을 닦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할 정도로, 청결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갑판이나 각종 밧줄, 삭구류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청결일 뿐이었고, 코로 맡을 수 있는 청결은 어쩔 수 없이 형편없었습니다.


당시의 범장 선박들에는 샤워실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고, 물도 정말 아껴써야 했으니까, 당연히 목욕 같은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C.S. Forester의 주인공 Hornblower는 군함에서도 매일 같이 바닷물을 펌프질하여 몸을 씻는 것이 습관으로 나옵니다만, 소설 속에서도 부하들은 그 습관을 '매우 괴이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 Patrick O'Brian의 주인공 Jack Aubrey는 가능하다면 매일 아침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당시 영국인들의 몸냄새가 아끼는 주인공들에게서 폴폴 난다고 생각하기가 애처로왔던 작가들이, '내 주인공만큼은 깨끗했어'라는 위로를 삼으려고 그런 설정을 한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주인공인 샤프는 당대의 두 유명한 전투인 트라팔가와 워털루에 모두 참전합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요 ?  예, 스페인 귀족 중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한번은 프랑스 편에서, 한번은 영국 편에서요.)



반면에, Bernard Cornwell의 Sharpe 시리즈에서는 좀더 솔직한 대화가 오갑니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는 상선에 올라탄 주인공 샤프 소위는, 배 위에서 동인도 회사 간부의 아름다운 와이프인 그레이스와 불륜 행각을 벌이는데, 인도양 어디쯤에서인가 이 둘이 남녀상열 지사를 벌이고나서 끌어안은 채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인도를 떠난 이후로 목욕을 한번도 못했어.  내 몸에서 끔찍한 냄새가 날거야."

"내게는 좋은 냄새만 나는 걸?"


좋은 냄새가 날 턱이 없쟎습니까 !!!  더군다나 그렇게 더운 적도 부근을 항해하면서 말이지요 !  향수로 덧칠을 한다고 해도, 한도가 있었을텐데, 참 대단들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 몸에서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장교들이 거주하는 상갑판 쪽에서는 덜 했지만, 수병들이 거주하는 하갑판 쪽이나, 그 밑 쪽의 orlop deck, 특히 닻줄이 보관되는 cable tier 쪽에서는 안좋은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보통 닻을 던지는 항구나 강 하류의 바닥은 온갖 퇴적물이 쌓이기 마련이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항구 도시의 바다 밑바닥에는 인간의 만들어내는 아름답지 못한 배설물이나 쓰레기가 많이 쌓여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 사이에 푹 쩔어있다가 끌어올린 닻줄에는 당연히 꺼림직한 질척질척한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는데, 바쁜 출항 길에 그런 진흙을 씻어내면서 닻을 끌어올릴 여유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뱃바닥에는 닻줄에서 흘러내린 오물이 고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썩기 마련이었습니다.



(Orlop, hold, cable tier 모두 안좋은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당시 선박들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고, 그냥 뱃전의 head라고 불리는 노천 화장실 밖에 없다는 점도 배의 악취에 한몫 했습니다.  몇달씩, 혹은 몇년씩 장기 항해를 하다보면, 폭풍이나 높은 파도 속에서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깜깜한 밤에, 마려워서 깼는데, 폭풍이 몰아치고 거친 파도가 갑판을 휩쓰는 상황에서 뱃전의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러 간다는 것은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장교들 몰래 어둠 속 배 한 쪽 구석에다 몰래 실례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오물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   결국 나무 판자 틈으로 스며 내려가 결국 뱃바닥에 고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닻줄이나 사람 몸에서 나온 오물들이 바닥에 고인 것을 bilge water라고 했습니다.  오래된 배일 수록 이런 bilge water의 악취는 대단했습니다.





(현대적인 선박에도 bilge water는 항상 있습니다. 다만 이젠 전기 펌프로 뽑아내지요.)


이런 bilge water를 걷어낼 방법은 없었을까요 ?  있었습니다.  Sweetening cock 이라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이는 긴 관을 배의 옆면을 통해 배 바닥에 연결한 것입니다.  물론 평소에는 이걸 안 썼습니다만, 정말 심하다 싶을 때면 이 관을 통해 배 바닥에 바닷물을 투입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행구는 것이지요.  이렇게 바닷물에 희석된 bilge water는 선원들이 고되게 펌프질을 하여 다시 뽑아내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엄청난 고역이었지요.  이 sweetening cock이 자주 사용되었을까요 ?  이 단어는 영어 사전에도 거의 안나오는 단어인 것으로 보아, 불행히도 당시 함장들은 배의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는지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