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은 남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여자분 있다면 댓글 달아 BoA요. 절대 없다는 것에 한표.) 남자분들이라면 아마 미팅 나가셨을 때, 여자의 어떤 부분을 가장 먼저 보는지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성격 ? 학교 성적 ? 집안 ? 절대 아니지요. 얼굴입니다. 여자들은 뭘 볼까요 ? ㅋㅋ 제가 알기로는 남자의 키입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 1위가 '잘난 체 하는 남자'이고, 2위가 '키작은 남자'라고 합니다. 흔히 여친이 없고 키가 작은 남자분들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매우 분개하면서 된장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오는데요, 과연 키가 작은 것이 흠일까요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세계 각국 남자 평균 신장같은 자료가 발표되는 것을 보면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이, 한 민족의 평균 신장 = 그 민족의 우수성 내지는 최소한 '자존심'이라는 공식은 어느 정도 성립하는 것 같습니다.
키작은 남자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폴레옹 이야기입니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지만 유럽을 정복했다는 것이지요. 과연 그랬을까요 ? 사실 나폴레옹은 키가 그리 작지 않았습니다.
(나 키높이 구두 안신었다 !)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둔 나폴레옹을 부검한 의사 프란체스코 안토마치(Francesco Antommachi)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키는 168cm였습니다. 이는 당시 프랑스 성인 남성의 평균 키였습니다. 왜 나폴레옹은 키가 작다고 잘못 알려졌을까요 ?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나라마다 다른 도량형이 문제였고, 둘째 그의 애칭이 그런 잘못된 인상을 주었으며, 끝으로 그와 붙어다녔던 척탄근위병들 때문에 나폴레옹이 키가 작다는 소문이 난 것이었습니다.
일단 1인치는 몇 cm인가요 ? 지금은 영국이나 미국 빼고는 인치 단위를 안쓰니까, 당연히 영국식으로 1인치는 2.54cm이지만, 당시 프랑스에서는 1인치가 2.71cm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의 키가 5피트 2인치라는 보고를 받은 영국에서는 157.48cm를 생각했지만, 실제 측정 단위인 프랑스 인치로 하면 167.83cm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병사들이 나폴레옹에게 붙여주었던 'le petit coporal'(작은 하사관)이라는 별명도 나폴레옹이 작은 키였다는 이야기를 퍼뜨렸지만, 사실 프랑스어의 'petit'라는 단어는 작다라는 뜻과 함께 '친밀한'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병사들은 나폴레옹이 마치 하사관처럼 자기들과 똑같이 함께 고생하며 전장을 누빈 것에 대해 경애하는 마음으로 그런 애칭을 붙여준 것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의 경호를 경호를 맡았던 척탄근위병들은 모두 키가 큰 병사들 중에서 4번 이상의 원정에 참여했던 고참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런 거인들과 함께 다니다보면 당연히 키가 상대적으로 작아보였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처럼요. 척탄병이 왜 키가 큰 가에 대해서는 영국 근위대가 곰가죽 모자를 쓰게 된 사연 ( http://blog.daum.net/nasica/5561874 )를 참조하세요.
(브뤼메르 쿠데타 때의 모습을 그린 저 그림을 보면, 저 두 척탄병에 비해 나폴레옹이 작아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만 보면 다른 의원들과 나폴레옹의 키 차이는 거의 없어보입니다.)
어쨌거나 일반적으로 독일인들이 프랑스인들보다는 키가 좀더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 Wikipedia에서 찾아본 오늘날 성인 남자들의 각 국가별 평균 신장을 보시지요.
국가 |
남자 신장 (cm) |
측정 대상 |
네덜란드 |
182.9 |
25–45 |
스웨덴 |
181.5 |
20–29 |
독일 |
181.0 |
18–19 |
덴마크 |
180.6 |
징집병, 18-19 |
노르웨이 |
179.7 |
징집병, 18–19 |
헝가리 |
179.1 |
대학생 |
미국 |
178.9 |
백인, 20–39 |
호주 |
178.4 |
18–24 |
핀란드 |
178.2 |
15–64 |
그리스 |
178.1 |
18-26 |
스위스 |
178.1 |
징집병, 18–21 |
독일 |
178.0 |
성인 |
스페인 |
178.0 |
21 |
미국 |
178.0 |
흑인, 20–39 |
스웨덴 |
177.9 |
20–74 |
영국 |
177.8 |
16-24 |
미국 |
177.6 |
전체, 20–29 |
뉴질랜드 |
177.0 |
19–45 |
프랑스 |
177.0 |
20–29 |
벨기에 |
176.6 |
18 |
이탈리아 |
176.2 |
18–40 |
터키 |
176.1 |
18-29 |
이스라엘 |
175.6 |
20–30 |
말타 |
175.2 |
25–34 |
호주 |
174.8 |
18+ |
남한 |
174.5 |
19 |
뉴질랜드 |
174.5 |
45–65 |
아르헨티나 |
174.5 |
19 |
프랑스 |
174.1 |
20+ |
캐나다 |
174.0 |
성인 |
이란 |
173.4 |
21-25 |
포르투갈 |
172.8 |
징집병, 21 |
대만 |
172.7 |
대학신입생 |
중국 |
172.7 |
도시성인 |
이탈리아 |
172.2 |
20–74 |
아제르바이잔 |
171.8 |
16+ |
일본 |
171.5 |
19 |
홍콩 |
171.0 |
17 |
싱가포르 |
170.6 |
17–25 |
카메룬 |
170.6 |
도시성인 |
콜롬비아 |
170.6 |
18–22 |
미국 |
170.6 |
라틴계, 20–39 |
이란 |
170.3 |
21+ |
중국 |
170.2 |
도시, 17 |
코트 디부아르 |
170.1 |
25–29 |
말타 |
169.9 |
성인 |
브라질 |
169.0 |
21–65 |
칠레 |
169.0 |
성인 |
몽고 |
168.4 |
25–34 |
중국 |
166.3 |
시골, 17 |
북한 |
165.6 |
20–39 |
이라크 - 바그다드 |
165.4 |
18–44 |
바레인 |
165.1 |
19+ |
말레이지아 |
164.7 |
20+ |
인도 |
164.5 |
20 |
페루 |
164.0 |
20+ |
나이제리아 |
163.8 |
18–74 |
필리핀 |
163.5 |
20–39 |
인도네시아 |
162.4 |
도시, 19–23 |
베트남 |
162.1 |
25–29 |
인도 |
161.2 |
시골, 17+ |
확실히 독일인들이 프랑스인들보다는 큽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이에 따라, 또 사는 곳이 도시냐 시골이냐에 따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평균 키가 꽤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젊은 나이일 수록, 그리고 도시에 살 수록 평균 키가 더 크지요. 즉 키라는 것은 영양 상태나 생활 조건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네덜란드의 경우 (25~45세의 평균인데도 가볍게 1위...), 나폴레옹의 시대에는 평균 신장이 무척 작은 나라였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 다행스럽게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병사들의 키를 재서 기록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거든요. 그 기록을 보시지요.
국가 |
병사들 평균 신장 |
호주 |
172 cm |
미국 |
171 cm |
노르웨이 |
169 cm |
아일랜드 |
168 cm |
스코틀랜드 |
168 cm |
스웨덴 |
168 cm |
보헤미아 |
167 cm |
오스트리아 |
167 cm |
모라비아 |
166 cm |
영국 |
166 cm |
프랑스 |
165 cm |
러시아 |
165 cm |
독일 |
164 cm |
네덜란드 |
164 cm |
스페인 |
162 cm |
이탈리아 |
161 cm |
일본 |
155 cm |
이 기록을 보면 신대륙의 사람들의 키가 훨씬 큽니다. 요즘 1위를 달리는 네덜란드는 그야말로 하위권이네요. 확실히 당시 미국 사람들의 급양 상태가 훨씬 좋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19세기에는 독일인들의 키가 프랑스인들의 키보다 오히려 작습니다. 물론 19세기에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없었으니까, 어느 어느 지방의 독일인들의 키를 잰 것이냐가 의문입니다만, 어찌되었거나 프랑스인들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키가 크다라는 것은 로마 시대 때 게르만족과 싸운 로마 역사가들부터가 인정했던 사실입니다. 확실히 이탈리아인들보다야 게르만인들이 더 컸던 것 같은데요, 특히 근대에 와서 '키가 큰 독일군'이라는 신화는 특히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이라는 왕 때문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양반은 바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버지입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흠... 우리가 생각하는 프러시아인의 모습치고는 좀 짧군요.)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키가 5피트 5인치(165.1cm)에 불과했으나 키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집착했습니다. 특히 그는 키가 큰 병사들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여 마치 수석이나 우표를 수집하듯 키 큰 병사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키 큰 병사들로 척탄근위대를 편성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포츠담(Postdam)의 거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모두 최소 6피트(182.9cm)가 넘었고, 호만(Hohmann)이라는 이름의 어떤 훈련 교관은 7피트(213.4cm)의 키로 유명했습니다.
(프리드리히와 그의 수집품들... 포츠담 척탄근위병)
확실히 당시 전장에서 키가 큰 것이 유리했습니다. 일단 다리가 기니까 남들과 똑같은 속도로 걸어도 더 빨리 전진할 수 있었고, 당시에 아주 많이 벌어졌던 총검을 이용한 백병전에서도 긴 팔과 큰 키를 이용하여 손쉽게 적을 제압했습니다. 심지어 총을 사용할 때도 더 이유했습니다. 이 부분은 이해가 안가시지요 ? 키가 크면 괜히 총알에 맞을 확률만 커질 것 같으니까요. 그러나 당시의 긴 전장식 머스켓 소총을 재장전하려면 키가 큰 편이 훨씬 유리했습니다. (머스켓 소총의 장전 절차에 대해서는 머스켓 소총을 둘러싼 이야기 http://blog.daum.net/nasica/4768750 를 참조하세요.) 빠른 재장전 속도는 분당 발사 속도, 즉 화력을 끌어올려 주었으니까 큰 이점이었지요.
문제는 어떻게 키가 큰 병사들을 끌어모으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러시아인들이 프랑스인들이나 이탈리아인들보다는 키가 큰 것은 사실입니다만, 당시 프러시아를 포함한 유럽에서 180cm 이상의 남자는 희귀했거든요. 물론 프러시아 국내에서 키가 큰 청년은 절대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갈 수 없었습니다. 마치 1920년대에 시칠리아 출신 청년이 뉴욕으로 이민오면 마피아의 손을 빠져 나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래도 많이 부족했던 키 큰 병사들은, 일부는 외국에서 용병으로 사왔고, 일부는 주변 국가의 왕들이 '선물'로 프리드리히에게 주었습니다. 가령 스웨덴 출신의 용병들이 프러시아 척탄 근위대에 꽤 많았고, 또 러시아의 페테르 대제도 프리드리히에게 정기적으로 키 큰 러시아 청년들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결국 당시 프리드리히의 척탄 근위대는 프로농구가 창설되기 이전에는 역사상 가장 키가 큰 직업군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척탄 근위대에 소속된 장신의 병사들을 사오기 위해 지불한 몸값도 프로농구 선수들의 이적료 못지 않게 셌다고 합니다. 가령 프리드리히의 아들 프리드리히 왕세자(훗날의 프리드리히 대왕)도 아버지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려고 영국에서 키가 198.1cm 정도되는 청년을 사오기 위해 쓴 돈은, 군마 20마리를 살 수 있는 액수였다고 합니다.
(글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꿈꿨던 것은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
그렇게 돈으로 사오는 것으로도 왕을 만족시킬 만큼 키가 큰 병사를 모으는 것이 어려워지자, 외국에서 장신의 남자들을 납치까지 했습니다. 가령 커크만(Kirkman)이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남자는 런던 한복판에서 납치되어 프러시아에 끌려왔는데, 그 납치에 든 비용은 무려 1천 파운드였습니다. 나중에는 정말 막장 스토리까지 나옵니다. 어떤 장신의 오스트리아 외교관이 하노버에서 대중 마차를 타다가 납치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풀려난 이 외교관은 평생 여러 사람들과의 사교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즐겨했다고 합니다. 이런 납치 정책은 당연히 이웃 국가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가 모두 외교적으로 항의했습니다.
왕은 급기야 거인을 만들어낼 생각까지 했습니다. 자신의 척탄병들을 장신의 여자들과 결혼하도록 한 것입니다. 약 100년 뒤 찰스 다윈도 '인간의 유전'이라는 책에서 이 결혼과 그 아이들에 대해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너무 느렸고, 또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종종 평범한 키로 태어나 왕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구성된 척탄 근위대의 수는 2천명에 달했고,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이들에게 매주 한번씩 주지육림의 잔치를 벌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잔치에서 병사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겼습니다. 이렇게 왕답지 않은 처신에, 왕 자신도, '포츠담 거인들이야 말로 나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반성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도 그 버릇을 못 버려, 1740년 그가 죽기 전 병상에 누웠을 때, 신하들이 수백명의 근위 척탄병로 하여금 그의 병실을 가로 질러 행군하게 하자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왕의 이런 병적인 키에 대한 집착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과도한 모병 비용 및 외국의 항의 뿐만 아니라, 군 내에서의 키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었습니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키가 작은 장교는 대체 승진이 안되었던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 자신도, 키가 작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자신을 볼품없는 난장이 취급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프리드리히 대왕은 아버지의 사후 이 척탄 근위대를 즉시 해체해버렸습니다.
그에 비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어땠을까요 ?
프랑스군의 일반 보병들의 평균키는 위의 표에 나온 19세기 프랑스 보병들과 같은, 165cm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주로 경보병 부대의 평균은 162.5cm 정도로 작았습니다. 프랑스 군 중에서도 키가 큰 병사들만 뽑아서 편성했던 척탄병 부대는 최소 173.5cm가 넘어야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금이야 옥이야 아꼈던 고참 근위척탄병 (Old Guard Grenardiers)은 평균 키가 180cm 정도였고, 역시 덩치가 큰 병사들로만 구성되었던 흉갑 기병들의 평균 키는 172.5cm 정도였습니다.
(나폴레옹을 경호하고 있는 근위척탄병. 흠... 정말 간지 하나는 죽여주죠 ?)
문제는 해가 갈 수록 프랑스군의 평균 신장이 자꾸 작아졌다는 것입니다.
원래 1701년 루이 14세가 만든 규정에 따라 프랑스군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키가 최소한 162.4cm는 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1799년, 나폴레옹은 이 최저 신장 요건은 1인치 낮추어 159.8cm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804년이 되면, 이를 다시 2인치 낮추어 154.7cm 이상인 사람이면 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전쟁이 계속 되면서, 나폴레옹은 점점 더 많은 병력을 요구했지만, 프랑스인들은 징집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습니다. ( 나폴레옹 시절 젊은이들이 앞니를 뽑아야 했던 이유 http://blog.daum.net/nasica/6862352 참조) 그러다보니 키가 작고 약한 남자들도 닥치는 대로 징집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나폴레옹 자신조차도, 언젠가 신병들을 검열하는 자리에서 너무나 허약해보이는 청년들이 대오에 끼여 있는 것을 보고는 '몇몇은 총을 들기에 부적합해보인다... 군복을 입히기 전에 검사를 해서 부적합한 자들은 돌려보내라'고 명할 정도였습니다.
(프랑스 유격병들은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들은 최소 신장이 160cm만 넘으면 입대가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갈 수록 프랑스 병사들의 키가 점점 작아졌습니다. '어느 폴란드 창기병의 회고록'이라는 책을 쓴 동시대의 폴란드인 츨라포프스키(Chlaspowski)에 따르면, 저 위의 표에 프랑스인의 평균 신장이 독일인보다 약간 큼에도 불구하고, 프러시아 병사들에 비해 프랑스 병사들의 평균 신장이 작았던 것이 확실합니다. 이 츨라포프스키라는 사람이 본 최초의 프랑스 군대는 아우어슈타트 전투에서 프러시아군을 무찌르고 폴란드로 들어온 다부(Davout) 원수 휘하의 보병 사단이었습니다. 그의 회고록에는 이 프랑스 병사들은 프러시아 병사들과는 많이 달랐다고 씌여있습니다. 프러시아 병사들은 프랑스인들에 비해 머리 하나는 확실히 더 컸고, 어깨도 더 넓은 것이 아주 튼튼해보였는데도, 이들은 고작 반 마일(약 800m)을 행군하고는 휴식을 하기 위해 부대가 멈추면 우르르 흩어져 드러누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센(Posen)시 외곽까지 무려 150마일을 행군해온 프랑스 병사들은, 겉보기에 무질서하게 흩어져서 도착하더니, 북 소리가 울리자 대오를 바로하고 더러워진 외투를 벗고 모자를 고쳐 쓰고는, 아주 활기찬 발걸음으로 시내로 행군해들어왔습니다. 시내 광장에 집결한 이 프랑스 병사들은 무기를 질서정연하게 쌓아두고는 덤불 부스러기로 군화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더니 농담짓거리를 하면서 노닥거리더랍니다. 별로 지쳐보이지 않더라는 이야기지요.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에서의 나폴레옹과 그의 근위병들... 이때만 해도...)
키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좋았던 프랑스 병사들의 스태미나도, 아일라우 전투를 고비로 많이 약해집니다. 츨라포프스키가 보고 감탄했던, 아우스테를리츠와 예나 등에서 단련된 고참병들은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특히 아일라우 전투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고 그 수가 무척 줄어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우수한 사나이들을 다 소모해버린 나폴레옹은 키 뿐만 아니라 스태미나도 딸렸던 어린 병사들을 뽑아 써야 했으므로, 이는 곧 병력의 질적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가령 1809년 아스페른-에스링 전투에서 전과 같지 않게 나폴레옹 군의 사상자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도 ( 서바이벌 시리즈 - 나폴레옹 전쟁에서 살아남기 http://blog.daum.net/nasica/6862382 참조) 나폴레옹 군의 질적 저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폴레옹 전쟁 이후 약 20년 후 프랑스인들의 평균 신장은 극적으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키가 평균 이상인 사람들은 군대에서 많이 죽었고, 반대로 전쟁에 나가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키가 아주 작은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키 작은 남자들의 유전 형질이 그 후손에게 물려져 내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슬링 전투 광경)
프랑스군이 그 작은 키로 인해 스페인에서도 굴욕을 당했습니다. 1808년 점령군으로서 스페인에 진주한 프랑스군은 대개 신병들로 구성된 부대였습니다. 나폴레옹 밑에서 많은 전쟁에 참전했고, 나중에 워털루 전투에서 부상까지 당한 마르보 남작의 회고록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들은 프랑스군의 어린 신병들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합니다. 건장한 스페인 사내들이 마르고 키가 작은 프랑스 소년병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 스페인 사람들이 격렬하게 저항 운동을 펼친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우습게 보였던 것이지요. 사실은 마르보 남작 자신도 스페인 사람들이 비웃는 것을 보고 프랑스인으로서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과연 키가 신체적 장점이나 민족적 자존심과 결부될 만한 일일까요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덩치 큰 게르만족을, 체구는 작지만 다부진 훈련을 받은 로마군 병사들은 잘만 무찔렀습니다. 또 축구 천재 마라도나는 저보다도 키가 작았습니다. 요즘 뜨는 메시도 그렇고요. 또, 예전에 어떤 신문 기사에서 읽었는데, 인류가 진화한다면 가장 생존에 적합한 신장은 약 150~160cm 정도라는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체구가 작을 수록 식량이나 기타 자원 소모량이 적고, 또 건강에도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보다 더 작으면 개나 소, 돼지 같이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가축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므로 더 작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여러분 모두 이미 인식하시다시피, 민족적 자부심까지는 모르겠고, 개인적으로는 모두들 큰 키를 바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같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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