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hoplite)들의 기본 무장은 나름대로 상당히 비싼 편이었습니다. 창과 방패도 그렇고, 청동제 투구와 린넨을 누벼 만든 갑옷도 상당히 비쌌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몸에 자가용 한대씩을 걸치고 다닌 셈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당시의 병사들은 각자의 무기를 각자의 돈으로 마련해야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중장보병은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집안 아들들만 할 수 있었습니다. 돈없는 집안 아들들은 그럼 병역 면제였냐고요 ? 그건 아니죠~. 그런 집안 아들들은 투석병이나 투창병, 또는 삼단 노선의 노젓는 사공 같이 더 품위없고 더 볼품없는 병종에 동원되었습니다.
(방패 밑이 좀 허전하여... 정강이를 가릴 것이 필요했지)
그렇게 있는 집안 아들들 중에서도 좀더 부유한 집 아들들은 greaves라고 부르는, 정강이 가리개도 하고 나갔습니다. 당시 그리스 중장보병의 둥근 방패(hoplon)은 허벅지까지만 가려줄 뿐, 정강이는 그대로 노출되었거든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로 가면, 이 정강이 가리개는 점차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무게 때문에, 병사들의 기동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저거 발가락이 다 보이는게... 분명히 맨발이지 ?)
하지만 이렇게 부유했던 그리스 병사들도, 정작 구두를 살 돈은 없었는지, 맨발인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지중해 지역이라 추운 날씨가 별로 없었던지라, 신발이라고 해봐야 샌달 형태의 것들이 많았는데, 이 샌달 형태의 신발은 거친 전장터에서는 오히려 걸리적거렸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게다가 그리스인들은 굳이 스파르타인이 아니더라도, 어려서부터 온갖 운동으로 몸을 단련했는데, 그럴 때면 당연히 맨발로 뛰었기 때문에, 발바닥이 잘 단련되어 있어 맨발로 들판에 나서는 것이 별로 어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대 그리스의 군화에 대해서는 별로 문건이 없습니다. 거의 유일한 문건은 아테네의 몰락을 가져온 유명한 원정, 즉 아테네군의 시라쿠사 원정편에 나옵니다. 당시 니키아스 및 알키비아데스와 함께, 아테네군을 이끈 3명의 지휘관 중 하나인 라마쿠스(Lamachus)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라마쿠스라는 사람은 매우 가난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신을 군화조차도 공금으로 사야 했기 때문에, 병사들 앞에서 영이 서질 않았다고 하는 장면입니다.
(언젠가 영화로 만들면 정말 딱 좋을 이야기...화려하게 시작되어 비참하게 끝난 시라쿠사 원정)
로마시대로 가면서부터 군화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로마 공화정 초기에는 그리스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적어도 마리우스가 이끌던 병사들은 칼리가(caliga)라고 하는, 밑창을 튼튼한 가죽으로 만들고 거기에 징까지 박은 샌달형 군화를 신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로마인들의 도로와 관계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단한 돌로 포장된 도로를 맨발로, 그것도 장거리를 걷자면 아마도 튼튼한 밑창의 군화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저 칼리가라는 군화의 이름에서 칼리굴라 황제의 이름이 나온 것은 유명한 일이지요. 갈리굴라는 어려서부터 병영에서 자랐기 때문에, 병사들이 그를 귀여워하면서 '작은 군화'라고 불렀던 것이 그의 별명이자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시대 이후로는 아시다시피 제대로 규격화된 군대라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군화에 대해서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17~18세기에 이르면 대개 장교들은 장화를, 병사들은 발목까지 오는 구두를 일반적으로 신게 됩니다. 이때 병사들의 구두는 조임쇠로서 주로 버클이 달려있었습니다. 요즘처럼 구두끈이 달린 형태는 아니었지요.
(나도 장화 한번 신어보고 싶다)
물론 장교들도 복장에 따라 장화대신 구두를 신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해군 장교들의 경우는 당연히 장화보다는 구두를 신었습니다. 가령 아래는 나폴레옹의 평상시 복장을 보여주는 초상화인데, 나폴레옹은 평상시 근위대 엽기병(chasseur) 또는 척탄병(grenadier) 대령 제복을 즐겨 입었다고 합니다. 최소한 이 그림에서는 버클 달린 단화를 신고 있네요. 저 버클은 아무래도 금 같지요 ? 혼블로워 소설에서도, 혼블로워가 파티에 갈 때, 가난때문에 금이 아닌 쇠로 만든 버클이 달린 신을 신고 가는 것을 창피해 여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네 눈엔 내가 신은 것이 장화로 보이나 ?)
기병들의 경우는 장교나 일반병이나 장화를 신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말 등에 올라타자면 정강이도 보호할 겸 장화가 더 적합했겠지요. 그런데, 유럽인들은 예로부터 기사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서 그런지, 그 후예라고 할 수 있는 기병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교들은 보병이라도 별 이유도 없이 장화를 신게 되었나 봅니다. 사실 보병이라도 군화를 신으면 좋은 점들이 꽤 있습니다. 일단 최소한 전쟁터에서 구두가 벗겨지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직 검이 중요한 역할하던 시기였으니, 스타킹보다야 가죽 장화가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보호구 역할을 했겠지요.
특히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헤센 부츠가 대인기였습니다. 헤센 부츠(Hessian boots)라는 것은 사실 별 것이 아니고, 윗부분에 술로 장식이 된 긴 승마용 장화입니다. 말을 탈 때 발 끝에 등자를 쉽게 걸기 위해 발 끝 부분이 약간 뾰족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요즘 구두들처럼요.
이 장화가 어찌나 인기였는지, 헤센 출신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장교들도 모두 이 헤센 부츠를 즐겨 신었으므로, 헤센 부츠는 거의 장교들의 표준 복장처럼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돈 좀 있는 집안 출신의 장교들은 멋진 장화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장교들 군복은 규정된 형식이 있는 자켓을 제외한, 바지나 구두, 셔츠 등은 다소 자유롭게 골라 입을 수 있는 편이었거든요.
나폴레옹 전술의 핵심은, 제가 아직 읽은 책이 몇권 안돼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동력에 있습니다. 뛰어난 기동력으로 적을 기만하여 분산시키고, 아군의 병력을 집중하는 것이지요. 기차도 없고 트럭도 없던 시대에, 기동력이란 바로 보병의 다리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징기스칸 시대에는 기병의 기동력이 세계를 제패했지만, 총검이 달린 플린트락 (flint-lock) 머스켓 소총의 시대의 주력은 아무래도 보병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보병의 기동력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군화였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보병들의 군화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헤센 부츠같은 것들은 다 장교들, 그것도 돈 푼깨나 있는 장교들 이야기였고, 일반 병사들은 군에서 지급되는 구두를 신어야 했습니다. 이 구두라는 것이, 뭐 당시에는 다 그랬겠습니다만 품질이 너무나 형편없었습니다. 특히 대규모 징집제 육군을 유지했던 프랑스의 경우, 군수품 업자들이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조악한 품질의 군화를 대충대충 만들어서 납품했습니다. 일부 업자들은 아예 얇은 가죽 밑에 두꺼운 종이를 집어넣은 가짜 가죽 구두를 만들어 납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병사들은 너덜너덜한 군화를 신고 싸움터로 행군을 해야 했고, 이는 많은 비전투 부상자를 낳았습니다.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이후, 러시아군과 승부를 겨룬, 혹독했던 아일라우 전투 때도, 나폴레옹은 폴란드의 진창길을 걷는 병사들 대부분이 누더기가 다 된 군화를 신은 모습을 보고, '무엇보다 군화가 필요하다, 만약 군화를 보낼 수 없다면 현지에서 만들 수 있도록 가죽이라도 보내라'는 훈령을 본국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항상 '병사들의 배낭 속에 두 켤레의 군화가 여분으로 배낭 속에 들어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요즘 병사들은 한켤레지요 ?)
(내가 간지나는 이유는 내가 황실 근위대이기 때문일 뿐, 실제 대개의 병사들은 아주 누더기였다네)
나폴레옹이 맨처음 이탈리아 원정길에 나서기 위해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으로 취임했을 때도, 병사들은 누더기 옷에 거의 맨발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고 하는데, 그건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로 진격한다고 하자, 병사들은 '행군을 시키려면 먼저 군화부터 줘야지'라며 노골적으로 웅성거릴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나폴레옹 특유의 카리스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부대 장악이 어려웠을 겁니다. 아무튼 나폴레옹이 이끈 부대는 이탈리아 진격 이후, 아마도 질좋은 이탈리아제 명품 구두를 신게 되어 전투력이 더 좋아졌을 것 같습니다.
이때 당시 영국군은 버클이 달린 군화가 아닌, 구두끈이 달린 군화를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요즘 우리가 신는 끈달린 신사화나 운동화처럼, 구두의 발등 부분이 혀처럼 따로 분리되어 있고, 그 위를 끈으로 조이게 되어 있는 스타일의 신발이 이때부터 나오게 된 것이지요. 요즘 군화들은 대개가 이 블루커 부츠입니다.
(다들 2~3년간 신으시면서도 이런 부츠의 이름이 뭔지 모르셨지요 ?)
이런 형태의 신발을 더비 (Derby) 구두 또는 블루커 (Blucher) 구두라고 합니다. 블루커라... 예, 바로 워털루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지휘했던 독일 장군 블뤼허입니다.
(워털루의 진짜 주인공은 나라고 나 !)
왜 이런 형태의 신발을 블루커 구두라고 부르는지 열심히 웹을 뒤져보았지만, 단서를 못찾겠더군요. 어떤 곳에서는 블뤼허 장군이 이런 형태의 구두를 발명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아, 웰링턴 부츠도 있습니다. 이건 헤센 부츠를 약간 개량하여 다리에 좀더 딱 붙게 만든 부츠인데, 이건 정말 웰링턴 장군이 만든,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제화공에게 주문한 부츠라고 합니다. 제가 보니까 헤센 부츠와 '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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