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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나폴레옹은 어떤 공부를 했길래 군사적 천재가 되었을까 ?

by nasica-old 2009.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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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존경하는 중국인은 신필(神筆) 김용 선생이십니다.  이분의 고전 무협소설인 의천도룡기의 주인공은 장무기라고 하는, 약간 우유부단한 캐릭터인데, 이 친구는 우연한 기회에 무림비급인 구양진경을 손에 넣고 혼자 익힙니다.  그래서 내공으로는 천하 제일의 실력을 갖추고 강호에 나가게 되는데, 처음 나가자마자 싸움에서는 경험 부족으로 적의 간계에 빠져 두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습니다.

 

사실 위와 같은 설정이 오히려 사실적입니다.  아무리 학교 또는 선생님에게서 잘 배운다고 해도, 실전에 나가서는 당장은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실무 경험 전혀 없이도 대번에 전쟁 바닥에서 지존의 위치에 오른 분이 있습니다.  바로 제갈량, 자는 공명, 바로 그 분입니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이 양반은 정규 군사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그저 시골에서 책만 열심히 읽으며 이론에만 통달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유비를 만나 강호에 출도하게 되고, 첫번째 전투에서 오합지졸의 병졸들을 지휘하여 조조의 정예군을 그야말로 박살을 내버립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 

 

 

 

(불가능할 건 또 뭐 있니 ?) 

 

 

이와 비슷한 업적을 남긴 대인배가 서양에도 있었으니, 바로 나폴레옹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제대로 된 군사 작전을 지휘한 것은 이탈리아 원정 때가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경험은 툴롱 포위전이 전부였는데, 그때도 직급은 대대장 정도였었고 대규모 야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원정에서, 나폴레옹은 정말 오합지졸에 무장이나 보급도 형편없을 뿐더러 군기도 없고 싸울 의지도 없는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강력한 오스트리아군을 연전연패시키며 이탈리아 북부를 휩쓸고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위협하여 결국 캄포포르미오(Campoformio)의 협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정말 허영만 선생님의 만화 '비트'에 나오는 대사처럼 "싸움 바닥에도 모짜르트같은 신동이 나올 수도 있는" 걸까요 ?  과연 나폴레옹은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훈련을 쌓았기에 이런 군사 천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

 

 

 

(캄포포르미오에서 나폴레옹이 딱 한마디 말합니다. "꿇어 !") 

 

사실 나폴레옹은 10살 때 브리엔(Brienne) 군사학교에 들어갔으므로, 1796년 27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원정길에 나섰을 때는 이미 17년간의 군대 생활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상당한 오해입니다.  당시 군사학교라는 것은, 제복을 입고 군대 흉내를 냈다 뿐이지, 사실상 평범한 기숙 중학교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학교에서는 주로 라틴어, 역사, 수학 등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물론 여기서 나폴레옹은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여, 나중에 그의 출세길의 발판이 되는 툴롱 전투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포병 탄도학의 기초를 쌓습니다.

 

 

 

(너 뭐 공부하고 있는거니 ?)

 

 

나폴레옹은 1784년, 15세 때 진짜 프랑스 왕립 사관학교(Ecole Militaire)에 입학합니다.  이 사관학교는 루이 15세가 창립한 것으로서, 파리 시내의 그르넬(Grenelle) 광장에 위치한, 한마디로 으리으리하고 호화로운 궁전같은 곳이었습니다.  매년 입학생이 겨우 50~60 명 정도로서, 원래 창립 당시에는 가난한 귀족 자제들을 훌륭한 귀족 장교로 키워내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여기서 명문가의 자제들과 함께 사치스러운 대접을 받으며 군사 학문에 매진했...을까요 ?  아닙니다.  여기서도 주된 교육은 수학, 문법, 역사, 지리 등이었고, 군사 훈련보다는 승마, 펜싱, 사교 댄스 등을 배웠습니다.   저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루이 15세가 이 사관학교를 창립한 것은 무자비한 전투 기계들을 키워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외국 용병들을 사서 쓰면 되는 것이고, 루이 15세가 필요했던 것은 국왕에 충성하고, 우아한 교양을 쌓은 귀족 장교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군사학은 요새 구축법 강의 정도였습니다.  물론 요새 구축 실습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졸업한 Ecole Militaire, 이건 뭐... 진짜 궁전이네 궁전 !!) 

 

그나마 이 학교에서 나폴레옹은 1년만에 졸업을 해버립니다 !  1년 동안에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  나폴레옹의 졸업 성적은 50여명의 졸업생 중 48등으로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나폴레옹은 어떻게든 빨리 졸업하여 소위 봉급을 받아야 했으므로, 남들이 3~4년 씩 걸리는 졸업 시험 준비를 1년 만에 마쳐야 했던 점을 감안하면,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요.  특히 그의 졸업 시험을 심사한 학자는 '라플라스의 방정식'으로 유명한 대(大)수학자 라플라스(Laplace)였습니다.

 

 

 

(내가 그때 그 코르시카 촌놈을 불합격 시켰으면 21세기 유럽의 지도는 오늘날과 많이 달라졌을까 ?)

 

 

결국 나폴레옹이 군대 실무를 쌓은 것은 1785년 발랑스의 포병 연대에 부임한 16세부터였습니다.  여기서 나폴레옹는 탄도학이나 부대 전술 같은 실무를 익히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나폴레옹의 초기 장교 생활은 그리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겨우 6개월 복무 후에, 집안일을 돌보기 위해 6개월 휴가를 낸 것을 계속 연장하여, 결국 거의 2년 동안을 코르시카 섬과 파리에서 휴가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옥손의 라 페르 부대로 부임하느데, 여기서도 주로 한 공부는 탄도학 외에도, 그리스나 카르타고의 역사, 영국 역사, 프리드리히 대왕의 역사, 심지어 아랍의 역사 등 주로 역사학을 많이 공부했고, 그 외에도 박물학이나  인류학, 동인도 회사에 대한 공부 등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공부한 군사학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책은 기베르(Jacques-Antoine-Hippolyte de Guibert) 장군이 지은 '전술학 개론'(Essai general de tactique)이었습니다.

 

 

 

(돈 아까지 말고 사서 봐, 너도 혹시 이거 읽고 황제가 될지도 모르쟎아 ?  뭐 ?  불어를 모른다고 ?  이런...) 

 

 

이 기베르의 '전술학 개론'은 제목에서 보이듯이 정말 에세이 형태의 책이었고, 정말 일선 장교들이 익혀야 할 군사 실무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머스켓 소총의 최초 사격 개시 거리는 몇 야드여야 한다든가, 기병대에 대응하여 방진을 짤 때의 부대 전술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고 (그런 건 사실 부대 하사관들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병력을 집중하라, 일관성을 유지하라, 적을 분산시켜라 등등의 뜬 구름 잡는 소리가 많았습니다.  또 이 책의 내용은 오히려 정치적인 면을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직업 상비군 제도에 대해 비판하면서, 용병이 아닌 '국민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뭔가 연상되는 것 없으십니까 ? 

 

 

 

(Grande Armee의 탄생과 영광은 이미 기베르 옹께서 예언하셨다는 거...) 

 

 

바로 손자병법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즉, 세세한 실무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지요.  손자병법의 내용을 보면, 심리학, 경제학, 그리고 정치학을 섞어놓은 듯한 내용이 많습니다. 

명나라 때 왜구들과 몽골군을 무찔러 명성을 올린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라는 병법서가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요.  이 병법서에는, 군대가 행군할 때의 요령이라든가, 공방시에 병사들의 대오 편성법, 심지어 병사들의 취사 문제까지도 세세히 다루고 있습니다만, 결코 병법의 고전으로 뽑히지도 못하고, 오늘날 세계인이 널리 읽지도 않습니다.  손자병법이 지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것과 크게 대조되지요.  그 이유는 잘 아실 것입니다.  기효신서에서 다루는, 군대가 행군하는 방법이나 병사들의 전투 진법 등은 시대가 바뀌면서 다 낡은 것이 되어버리지만, 손자병법에서 다루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 활용은 현대에 와서 읽어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령 '장수된 자는 오로지 백성의 이득을 위해야 행동해야 한다'라든가 '장수가 전장에 나와서는 군주의 명을 듣지 않아도 된다' 등은, 전쟁이란 오로지 군주의 이득을 위해서 수행되던 당시 전국시대 중국에서는 혁명적인 사고 방식이었고, 이는 21세기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상입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서양의 군사고전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도 사실상 군사정치학에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을 군사 천재로 만든 교육, 학문은 무엇이었을까요 ?  흔히 나폴레옹 전술의 핵심은 포병의 효과적 운용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폴레옹의 포병대라고 뭐 더 특출난 것도 없었고, 또 툴롱 전투나 방데미에르 (Vendemiaire) 진압 사건 이후로는 나폴레옹이 직접 대포를 지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군사적 천재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탄도학이 아니라 바로 역사학과 정치학, 즉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었습니다.

 

 

 

(이 방데미에르 진압 작전 때 나폴레옹이 대포를 선점한 것도, 결국 대포가 가지는 심리적 위력 때문 아니었을런지.  대포가 아니었다면 5천명의 군대로 2만5천명의 왕당파 봉기군을 진압할 수는 없었을 듯.)

 

 

며칠전 라디오 뉴스를 듣다보니, 현재의 금융 위기를 맞이하여 기업들의 CEO들이 인문학이나 소설책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았던 금융 공학이나 경영학 등이 결국 아무 소용없게 되자, 근본적인 것, 즉 인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헝가리 출신의 전설적인 전업투자가 코스톨라니도 이런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정확히 이 말 그대로를 한 건 아닙니다.)  "회계학 ?  그런 거 공부할 시간 있으면 심리학을 공부해라.  주식 시장은 결국 회계 장부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자가 승리한다."

 

 

 

 

나폴레옹이 왜 청년 장교 시절, 그토록 잡다한 인문학 책들을 탐독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를 프랑스 황제로, 불멸의 영광으로 이끌어준 것이 바로 그러한 학문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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