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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영화 인터스텔라와 기독교 - 라자루스 이야기

by nasica-old 2014.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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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난주에 인터스텔라 영화를 가족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저는 '듣던 것처럼 엄청난 재미있지는 않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제 와이프와 아이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한번 더 보고 싶을 정도다' 라고 말하네요.




 

이 영화는 어쩌면 기독교인들에게는 살짝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인류의 구원이 예수님의 재림 등을 통한 것이 아니라, 끝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일부 외계 존재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진 셈이니까요.  애초에 천지창조부터 시작하는 종교는 과학계와 약간이라도 충돌이 있기 마련입니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등의 박해 사례 등이 그 사례이지요.  하지만 빅뱅 이론을 맨 처음 주창한 사람이 바티칸의 신부라는 점이나, 뉴튼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는 점, 아인슈타인이 신의 존재를 믿었다는 점 등을 보면, 궁극적인 과학과 진실한 종교는 결코 서로 배타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UFO나 외계인이라면 일단 무조건 부정하는 일부 기독교 원리주의자가 아니라면, 인터스텔라는 매우 기독교적인 영화이고, 그 안에는 많은 기독교적인 은유가 숨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성에도 참여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양반 최소한 성서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진 분입니다.




(기독교 탈레반들이 UFO 이야기라면 치를 떠는 이유 중 하나가, 자꾸 예수님이 외계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 영화 속에서, 쿠퍼가 만난 나사(NASA) 과학자들은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찾아서 이미 몇 해전에 웜홀 속으로 떠난 12명의 과학자들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주인공은 연료 부족 떄문에 그 중 3명의 과학자들이 각각 착륙한 행성에만 갈 수가 있었지요.  따라서 굳이 먼저 떠난 과학자들의 숫자가 12명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 3명이 전부라고 설정해도 되고, 7명, 혹은 15명이라고 설정해도 됩니다.  굳이 12명이라고 설정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12사도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심지어 저 인듀어런스 호의 외곽을 둘러싼 박스형 모듈들의 수도 12개....  그리고 그 중 하나는 배신자와 함께 boom !~ )




그건 너무 아전인수격인 해석이라고 주장하실 분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12명의 과학자들을 떠나보낸 그 프로젝트 이름이 라자루스 원정 (Lazarus Mission)이라는 점을 보면 그 기독교적인 함축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라자루스가 누구냐고요 ?

요한복음 11장 32절~44절 ------------------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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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보면 명시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딱 2명, 예수님 본인과 나사로입니다.  우리 말로는 나사로, 영어로는 Lazarus지요.  지구의 황폐화로 인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 인류의 부활을 위한 프로젝트 이름이 라자루스 미션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요.  실제로 이 라자루스라는 이름은 부활과 관계된 여러가지 용어에 많이 사용됩니다.   가령 응급실 등에서 심장이 정지하여 사망한 것으로 선언되었다가, 몇 분 뒤 기적적으로 다시 소생하는 환자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현상을 Lazarus phenomenon (라자루스 현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인류의 운명을 구원하는 것이, 결국 인류 자기 자신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블랙홀 안에서의 작은 기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은 가족, 더 나아가 인류를 구하려는 주인공과 그 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어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순응하고 분노하지 말라, 오직 복종하고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신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성서에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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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 복권 당첨을 기원하며 기도하려면, 먼저 최소한 복권은 사셔야 합니다.)





이 세상은, 환경에 그저 복종하고 기다리면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곳이 아닙니다.  원하는 바가 있으면 구해야 하고, 잃어버린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며, 부당한 일이 있다면 분노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인류 구원의 길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도 인류의 차원을 초월한 그 미지의 존재가 막연히 구원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존재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이 제공해준 웜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서지요. 

영화 속에서 우주선의 발사 장면에서 브랜드 교수가 읊조리는 시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by Dylan Thomas: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달콤한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노인은 날이 저무는 것에 길길이 뛰고 격노해야 하느니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분노하라, 빛이 죽어가는 것을 노여워 하라


...






전에 쓴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http://blog.daum.net/nasica/6862571 에서도 인용했습니다만, 이 프랑스 국가에서도 자유의 여신에게 '우리를 구원해달라'가 아니라 '너를 지키려는 우리와 함께 싸워달라'며, 단순히 엎드려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민중이 들고 일어나 독재자와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내용의 국가를 어릴 때부터 배워 부르는 국민들에게 독재자는 발붙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Liberte, Liberte cherie,
리베르떼, 리~베르떼 셰리에~
(자유여, 소중한 자유여,)

Combats avec tes defenseurs !
꽁~바 자벡 떼 데팡쇠르
(너의 수호자들과 함께 싸워다오 !)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참고로, 저 라자루스, 즉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다음 일화에 나오는 바로 베다니의 마리아입니다.

마가복음 14장 3절 ~ 8절 -------------------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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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도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더라도 가난한 이웃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부당한 사회 문제를 보았을 때, 가만히 앉아 좌절하지 마시고 항상 일어나 분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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