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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치즈 이야기 - 스파르타부터 1차세계대전 프랑스까지

by nasica-old 2008.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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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는 흔히 서양 음식이라고 생각들 하시지만, 정작 치즈의 기원은 대체로 중동 또는 중앙 아시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은 유럽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족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음식이라는 이야기지요.  원시인...까지는 몰라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즐겨 만들어 먹을 정도의 음식인데도, 의외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아닙니다.  가령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한번도 자체적으로 치즈를 만들 줄 몰랐습니다.  몰랐던 것이라기보다는, 사실 만들 생각 자체를 안한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동물의 젖꼭지에서 나오는 기름기 섞인 분비물을 먹는다는 것은, 상당히 꺼림직한 일입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보면, 갖 짜낸 염소젖을 마신 클라라가, "마치 고기즙에 설탕을 탄 것처럼 맛있어요" 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우유를 직접 마셔보면, 매우 맛이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그리이스나 로마인들도 '다른 동물의 젖꼭지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먹는 것은 상당히 야만적인 식습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꺼림직한 분비물에서 걸러낸 기름기, 즉 버터도 먹지 않았습니다.  약이나 화장품 용도로는 썼다고 하네요.  다만, 그래도 치즈는 먹었습니다.

 

성경을 빼면 (사실 성서 학자에 따르면 창세기는 구약 중에서도 상당히 최근에 씌여진 것이라던데), 서양 문헌 중에서 치즈가 언급된 것 중 최초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입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유명하지 않은 대목입니다만, 네스토르가 부상당한 마카온에게, 치즈를 권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또 오디세이 중에서, 오딧세우스를 잡아먹으려했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 세간살이를 보면, 엉긴 젖, 즉 응유에서 물을 빼내 치즈를 만들기 위한 등나무 바구니가 나옵니다.

 

 


치즈에는 무한히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현대 프랑스에서나 있는 것이고, 고대 그리스에는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위에 언급한 대로, 폴리페모스가 하던 방식처럼, 그저 엉긴 염소젖을 등나무 바구니에 넣어 두어 물을 빼내고, 소금을 넣어 굳힌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어보면, 전체 문장 중에서 치즈라는 단어는 딱 한군데에서만 나옵니다.

 

BC 425년, 아테네군은 늘상 하던 대로, 본국인 아티카 (Attica,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명)를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군이 유린하도록 내버려두고, 해군을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해안 지방을 유린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테네 군 지휘관 중 하나인 데모스테네스가, 새롭고도 깜찍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해오던 것처럼 노략질을 하다가 스파르타 군이 오면 도망치던 형태에서 벗어나, 아예 펠로폰네소스 해안의 필로스라는 반도에 작은 임시 요새를 쌓고 눌러 앉기로 한 것입니다.

 

본토에 적군의 요새가 들어섰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란 스파르타는 아티카를 황폐화하고 있던 주력군을 불러들이고, 코르키라에 파견했던 함대도 소환하여, '제대로' 준비해서 이 작은 요새를 탈환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테네군이 만만치 않게 저항하여, 이 작전은 대실패로 이어집니다.  결국 아테네군은 요새를 더 굳게 지키게 되었는데, 이 전투에서 그보다 더 큰 결과가 나옵니다.  즉, 스파르타인 중에서도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진짜 스파르타인, 스파르티아테스 (Spartiates)라고 불리던 오리지널 성골들의 자제들로 구성된 정예부대가 스팍테리아라는 작은 섬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스파르타는 발칵 뒤집혀서, 이들을 구출해내려고 묘안을 짜내게 됩니다.

 

 


당연히 이 고립된 정예부대에게는 보급이 당장 문제가 되었고, 스파르타는 광고문을 내겁니다.  아테네 해군에게 봉쇄된, 좁은 스팍테리아 섬의 스파르타인들에게 식량을 건내주는 사람에게는 높은 포상금을, 그리고 농노 계급인 헬로트인 경우에는 자유를 약속했습니다.  이런 광고효과에 힘입어 몰래 섬으로 반입된 식품류의 종류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밀가루, 와인, 치즈, 기타 포위 상황에 도움이 되는 모든 식품"


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내내 식품류에 대한 언급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치즈에 대해서는 그래도 한마디 나온 것이지요.

 

성서에도 치즈가 자주 등장합니다.  노아 시대 이전에는 치즈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그 후손인 아브라함 대에 이르면, 아브라함이 천사들에게 '엉긴 젖과 우유와 송아지 고기'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 자신들은 이런 요리를 절대 먹지 못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어미의 젖에 그 새끼양의 고기를 삶지말라'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마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지나치게 잔인한 짓을 삼가라는 뜻 같은데, 아무튼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문장을 글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이에 따라, 고기에 유제품을 넣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고기 요리를 먹은 후에는, 그것이 위장에서 소화될 시간인 2~3 시간 전에는, 우유나 치즈를 먹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제품용 식기와 고기요리용 식기를 엄격히 분리해서 사용합니다.


이렇다보니, 고대 유대인들의 치즈 종류도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요 ?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대로 된 굳은 치즈를 만드려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재료로 '레닛'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소나 염소같은 반추 동물의 위 속에만 있는 효소입니다.  아랍인들이 염소의 위로 만든 주머니에 염소젖을 보관했다가 굳은 치즈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발견된 것이라고 합니다.   고기와 유제품이 접촉하는 것을 크게 꺼려했던 유대인들은 레닛을 쓸 수 없었겠지요.  대신 무화과 수액 등에도 치즈를 굳히는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런 '식물성' 효소를 이용한 치즈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참고로, 현대적인 치즈들은 대개 중세의 암흑시기에, 각지의 수도원에서 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인간의 굴레, 서머셋 모옴 작 (배경 : 19세기 말 영국) --------------------------

 

 


그는 완전히 당황해버렸다. 다행히도 그 순간 오믈렛이 나왔다. 그는 그것을 반으로 나눠서 미스 프라이스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필립은 뭔가 다른 잡담을 해보려고 애를 썼고, 미스 프라이스도 (제 딴에는) 친근하게 굴려고 노력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찬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필립은 비위가 예민한 편이었는데, 미스 프라이스가 음식을 먹는 모습에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쩝쩝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동물원의 짐승을 약간 닮은 듯 했다.  게다가 코스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그녀는 마치 단 한방울의 국물도 아깝다는 듯이, 접시가 하얗게 빛날 때까지 빵 조각으로 접시를 싹싹 닦아 먹었다. 마지막 코스로 카망베르 치즈가 나왔는데, 역겹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치즈 조각을 껍질째 먹어버렸다.    아마 며칠을 굶었다해도 그토록 걸신들린 듯 먹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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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에서는 고기를 잘 먹지 않습니다.  와이프가 고기를 잘 안먹는데다, 고기는 건강에 해롭다는 굳은 믿음을 가진지라, 집에서는 고기를 잘 안먹습니다.  특히 이제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쇠고기는 절대 못 먹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에게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가끔 코스트코에 가서 간식거리로 '미니 제라드'라는 이름의 치즈를 사옵니다.  이건 한입에 들어가는 사이즈의 작은 카망베르 치즈입니다.  한개 한개 단위로 포장이 되어있지요.  비싼 편이라서 자주 사주진 못합니다...


카망베르 치즈라는 것은 겉에 하얀 피막이 덮혀있습니다.  이건 일종의 곰팡이 막이라고 하더군요.  속은 아주 부드럽고 말랑말랑합니다.  맨 처음에 아이가 이걸 먹을 때, 묻더군요.


"이거 껍질도 먹는거야 ?"

 

흠... 저도 답을 몰랐습니다.  먹어도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먹는게 정상인지, 안먹는게 정상인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저 "인간의 굴레"에서의 한 장면을 읽게되었습니다.  아 !  안먹는게 정상이구나 !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먹느냐고요 ?  애나 저나, 그냥 껍질째 다 먹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  맛이 뭐 나쁘지 않은데요.  솔직히, 껍질 벗겨내고 먹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어느 분 말씀이, 요즘 만드는 카망베르 치즈의 껍질은 하얀 색에 부드럽지만, 18~19세기에 만들던 카망베르의 껍질은 꼭 우리나라 메주 껍데기처럼 색깔도 짙은 색에 딱딱했으므로, 당시에는 벗겨내고 먹는 것이 맞았을 거라고 하던데,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카망베르 치즈와 너무나 닮은 치즈가 또 있습니다.  바로 브리(Brie) 치즈입니다.  그냥 생긴 것만 봐서는 차이를 잘 모르겠더군요.  더 솔직히 말하면, 먹어봐도 제 입맛에는 그게그거라는...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원래 카망베르 지방에는 치즈 산업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서 브리 지방의 브리 치즈는 아주 오래전, 거의 8~9세기 때부터 유명했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 대제가 맨 처음에 이 브리 치즈를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서 계속 즐겨찾았다고 하며, 그때문에 이 치즈를 '치즈의 제왕, 제왕의 치즈'라고 부릅니다. 


그러다가 통설에 따르면, 1791년에 마리 아렐(Marie Harel)이라는 이름의 노르망디 시골 여자가, 브리 지방에서 온 어떤 수도사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만든 것이 카망베르 치즈라고 합니다.  특히 카망베르 치즈는 1차세계대전 중에 프랑스 병사들의 배급 식량에 포함되면서부터 아주 널리 애용되게 되었고, 전형적인 프랑스 치즈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원래 카망베르 치즈는 처음에는 부슬부슬 부서질 정도로 단단한 성질의 치즈인데, 숙성시키면 점점 연해지고 특유의 냄새가 진해진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숙성된 카망베르 치즈는 상온에서 아예 녹아내려서 흐물흐물해지는데, 달리의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품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그림은 이 카망베르 치즈의 녹은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미니 제라드라는 치즈의 어느 곳에도, 카망베르 치즈라는 말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카망베르 치즈는, 마치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든 발포 포도주에만 '샴페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노르망디 지방에서 생산된 것만 카망베르 치즈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근성있게 '샴페인'이나 '카망베르 치즈'라는 말을 쓰지요.  뭐 우리가 굳이 프랑스 애들 농간에 놀아날 필요는 없쟎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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