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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여자와 아이부터" 전통의 유래 - Birkenhead 호의 침몰

by nasica-old 200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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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주는 정말 이런저런 일이 많아 새로운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예전에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인데, 이 짧은 글로 이번주는 넘어가겠습니다.  죄송...

 

 

 

 

1852년, 병력 수송선인 증기선 버켄헤드(Birkenhead)호는 남아프리카로 가는 영국군 부대를 싣고 가고 있었습니다.  이 병력은 남아프리카의 카피르 전쟁에 투입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는 사이먼스타운 근처에서 그만 암초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선장의 실수로 배에는 큰 구멍이 생겼고, 배는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배에는 모든 사람을 태울 만큼의 구명보트는 없었습니다.

배에는 군인들 뿐만 아니라, 군인들의 가족들도 타고 있었습니다. 이 부대들은, 침몰하는 배 위의 갑판에 도열했고, 일부는 구명정에 타는 가족들을 돕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병사들은 대오 속에 그저 조용히 서있었습니다.

배가 가라앉으면서 마침내 갈라질 위기에 처하자, 선장은 "각자 알아서 살 길을 찾아라 ! (Every man for himself ! - 우리집 가훈입니다)"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자신들의 지휘관으로부터 명령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이미 만원 상태인 구명정에 올라타려고 하거나 매달리면 구명정이 전복되어 가족들도 위험해진다는 것을 설명하고는, 그냥 갑판 위에 서있도록 '명령'이 아닌, '부탁'을 했습니다.

결국 배는 두동강이 났고, 많은 병사들 중 극소수만이 부유물을 붙잡거나 또는 수마일을 헤엄쳐서 육지에 닿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대부분은 상어가 득실거리는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유명한 "여자와 아이부터"라는 전통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버켄헤드호에 승선한 638명 중 193명만이 목숨을 건졌는데, 이들중 여자나 아이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프러시아의 왕은 이 사건에 큰 감명을 받아, 자기 군대의 모든 연대에 대해 이 사건의 전말을 읽어주도록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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